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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짜리입니까
6411의 목소리 지음, 노회찬재단 기획 / 창비 / 2024년 7월
평점 :
저녁 때 분리수거를 하다 보면, 제대로 분리되지 못하고 뒤섞인 재활용 쓰레기들과 악취 나는 음식쓰레기 봉투,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뒹구는 정체모를 물건들이 분리수거장 주변에 쌓여 있는 것을 종종 본다. 혹시 쓰레기 수거를 거부당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만약 이대로 쓰레기가 방치된다면 내가 사는 주택가는 단 사흘도 못되어 쓰레기 악취가 진동을 하고 해충과 온갖 질병에 시달리게 될 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뒤따른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다행스럽게도(?) 그 엉망진창이던 쓰레기들이 여지없이 깔끔하게 수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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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다른 지역의 도서관 책을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 바로바로 받을 수 있는 상호대차 서비스 덕분에 이제는 필요한 책을 찾아 도서관을 전전하지 않아도 되었다. 세상이 이렇게 편리해지다니...
하지만 이러한 세상의 편리 이면에는 불편의 수고로움을 감당하는 이들이 있다. 세상이 편리해질수록 기존 근무자들의 업무는 확장되고 세분화되며 가중된다. 그러면서도 이로 인한 보상이 추가로 주어지진 않는다. 시스템은 개선되었지만 처우는 더더욱 열악해지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전태일의 절규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누군가의 목청을 울리고 있고, 자본의 이익이 창출될수록 상대적으로 빈곤과 불이익에 시달리는 이들은 사회 전반에 산재해 있다. 단지 눈앞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을 뿐이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에 실린 다양한 목소리들은 내가 직접적으로 접촉한 적은 없지만 분명히 함께 살아가고 있었을 이들의 현실과 사회적 이면의 실체를 상기시킨다. 노동의 대가를 외면당한 저임금 노동, 부당 해고, 열악한 근무환경... 하지만 이 목소리들은 고용 노동자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개인 타투이스트, 프로축구 4부리그 선수, 번역가, 영세자영업자, 도축검사원, 초등학교 교장, 재일동포 3세, 탈북민, 성소수자, 해어디자이너, 여행사대표, 배우, 신체장애인... 어쩌면 다양한 직업과 삶이 각각 짊어져야 할 애환으로 여겨지는 사연들이 짤막하지만 육중하게, 얄팍한 종이 위에 기록된다. 그리하여 어느 직장인들, 어떤 삶인들 녹록한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내가 겪었던 부당함과 억울함이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하지만 책에 실린 다양한 사례들도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하나의 대표성을 띤 이들의 사연은 훨씬 더 다양한 영역에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유사한 상황과 처지에 놓여 있다는 방증이 된다.
농부가 일을 해야 세상 사람들이 밥심으로 일할 수 있고, 주얼리 노동자가 반지를 깎아야 사랑을 약속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모든 것을 혼자서 이룬 것처럼 착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실상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타인의 노동 없이 살 수 없는 약한 존재입니다.
왜 이렇게 많은 이들의 사연이 책에 실리고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이들의 삶을 둘러봐야 하는지, 고객센터에 대한 분노와 툭하면 번역의 탓으로 돌리던 삶의 태도를 재고해 보아야 하는지 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서민들이 지탱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위기에서 늘 나라를 지켜왔던 이들의 후예답게, 우리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얽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