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이동도서관
오드리 니페네거 글.그림, 권예리 옮김 / 이숲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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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을 읽어보려고 시도를 종종 해본다.
학교도서관에 책을 신청하면 전자책이 있는 건 전자책 구입이 우선이라고 해서 여러 번 전자도서관을 이용해 보기도 했다. 결과는 번번이 실패.
전자책 읽기를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작은 화면 안에 들어 있는 활자는 눈으로 읽어도 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어딘가로 흩뿌려지듯 사라졌다.
다음 페이지를 넘길 때 종이책에서 나는 사각거리는 촉감 없이 미끈한 패드에 닿는 느낌도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연필을 들고 마음에 드는 문장에 쭈욱 밑줄을 그을 수 없는 게 즐겁지 않았다.

《심야 이동도서관》은 나처럼 책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거나 책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종이책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한밤의 인적 없는 거리, 당신 앞에 느닷없이 캠핑카 한 대가 나타난다. 망설이며 들어간 캠핑카 안에 당신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읽은 모든 텍스트가 순서대로 가지런히 꽂혀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책은 물론이고 시리얼 상자며 일기장까지. <심야 이동도서관>의 주인공은 우연히 마주친 이동도서관에서 떠올린 유년의 기억과 오래된 종이 냄새를 그리워하며 밤거리를 헤맨다. 어릴 적 읽었던 책과 지난날의 추억을 되찾으려는 주인공의 노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집착으로 변한다.』 책 소개 중(해당 책 제공)

내가 읽은 책들을 보관하는 도서관이라니, 상상만 해도 멋지다.
그 안에는 책마다 읽은 날짜를 기록해둔 흔적, 선물을 받았던 책에 적혀 있던 좋아하던 아이에 대한 추억, 친구에 대한 고마움, 많이 아팠거나 우울했던 어느 시절의 나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다.  이 주인공이 느끼는 '풀이 죽은 기분'에 조금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간절히 원했던 것을 손에 넣었다가 놓쳐버린 적이 있는가?' 이 문장과, 이 뒤에 이어지는 주인공의 행동이 연결되면서 결말이(조금은 충격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림이 없이 짧은 소설로만 읽었더라도 충분히 재미있었을 것 같지만, 그림과 함께 읽는 이야기는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내가 읽는 책들이 내 책장에 꽂혀져 있는 오래된 나의 책들이 애틋하고 사랑스러워졌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나의 한 시절을 기억하게 해 줄 사랑스러운 책들을 찾아 읽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에 가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찻잔을 서랍 위에 놓고 이동 도서관 뒤쪽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거기서 나는 위안을 찾았다. 손등으로 코를 훔치고 서가를 둘러 보았다. 꽃에서 정성스레 추출한 향이 향수에 담겨 있듯이, 책장에 꽂힌 책들에는 내 삶이 스며 있었다. 나를 바람맞힌 소개팅 상대를 기다리며 카페에서 읽은 바버라 터크먼의 『희미한 거울』이 보였다. 여러 번 읽어 두툼해진 『안나 카레리나』도 있었다. 나는 『중력의 무지개』를 집어 들었다. 책을 펼치자 글이 57쪽까지만 있고 그 뒤로는 없었다. 끝까지 읽지 못한 책이었다. 내가 읽다 만 페이지에 아이스크림 막대가 꽂혀 있었다.

간절히 원했던 것을 손에 넣었다가 놓쳐버린 적이 있는가? 나는 독자로서의 내 초상을 봤던 것이다. 공기가 탁한 교실에 몇 시간씩 앉아 있던 나날, 아파서 결석하고 집에서 『낸시 드류』시리즈에 빠져든 기억, 금지된 책들을 밤늦게 몰래 읽던 어린 시절. 『네이키드 런치』, 『파우틴 헤드』, 『율리시스』, 『사랑에 빠진 여인들』처럼 남들이 중요하다고 하는 책을 읽은, 아니 읽으려 애쓰던 10대 시절. 마치 완벽한 연인이 나온 꿈에서 깨어나 사라진 이를 그리워하며 풀이 죽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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