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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 이동도서관
오드리 니페네거 글.그림, 권예리 옮김 / 이숲 / 2016년 8월
평점 :
전자책을 읽어보려고 시도를 종종 해본다.
학교도서관에 책을 신청하면 전자책이 있는 건 전자책 구입이 우선이라고 해서 여러 번 전자도서관을 이용해 보기도 했다. 결과는 번번이 실패.
전자책 읽기를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작은 화면 안에 들어 있는 활자는 눈으로 읽어도 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어딘가로 흩뿌려지듯 사라졌다.
다음 페이지를 넘길 때 종이책에서 나는 사각거리는 촉감 없이 미끈한 패드에 닿는 느낌도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연필을 들고 마음에 드는 문장에 쭈욱 밑줄을 그을 수 없는 게 즐겁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에 가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찻잔을 서랍 위에 놓고 이동 도서관 뒤쪽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거기서 나는 위안을 찾았다. 손등으로 코를 훔치고 서가를 둘러 보았다. 꽃에서 정성스레 추출한 향이 향수에 담겨 있듯이, 책장에 꽂힌 책들에는 내 삶이 스며 있었다. 나를 바람맞힌 소개팅 상대를 기다리며 카페에서 읽은 바버라 터크먼의 『희미한 거울』이 보였다. 여러 번 읽어 두툼해진 『안나 카레리나』도 있었다. 나는 『중력의 무지개』를 집어 들었다. 책을 펼치자 글이 57쪽까지만 있고 그 뒤로는 없었다. 끝까지 읽지 못한 책이었다. 내가 읽다 만 페이지에 아이스크림 막대가 꽂혀 있었다.
간절히 원했던 것을 손에 넣었다가 놓쳐버린 적이 있는가? 나는 독자로서의 내 초상을 봤던 것이다. 공기가 탁한 교실에 몇 시간씩 앉아 있던 나날, 아파서 결석하고 집에서 『낸시 드류』시리즈에 빠져든 기억, 금지된 책들을 밤늦게 몰래 읽던 어린 시절. 『네이키드 런치』, 『파우틴 헤드』, 『율리시스』, 『사랑에 빠진 여인들』처럼 남들이 중요하다고 하는 책을 읽은, 아니 읽으려 애쓰던 10대 시절. 마치 완벽한 연인이 나온 꿈에서 깨어나 사라진 이를 그리워하며 풀이 죽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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