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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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요구해야 하는 것은 존엄과 안전이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안전하기 위해 가만히 있는 삶이 아니라 활동과 의견의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를 요구해야 한다. 안전하기 위해 시위를 피해 다니는 삶이 아니라 거리에 나와 시위를 하는 게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 시위 자체가 우리 삶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는 국가의 무능과 무관심, 그리고 무모함을 막기 위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런 활동이 안전하지 못할 때, 국가는 더욱 무관심해지고 무능하며, 무모해지기 때문이다. 이 위험을 막기 위한 활동이 안전하지 못할 때 국가는 흉기가 되고 우리의 삶은 파괴된다. p167

'망했다', '망해버려라',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라고 종종 말하는 나를 본다.
때로는 의식적이고,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오는 말이다. '망하다'라는 말의 뜻은 '개인, 가정, 단체 따위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끝장이 나다'라는 뜻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생각해보면 그런 말을 내뱉는 순간에도 나는 '망하고' 싶은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상황이 너무 절망적이어서 자조적으로 '망해버렸구나' 내뱉었던 것 같다.

이 책,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듯 하다. '망해버렸어',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라는 말 뒤에는 '다시 잘 해보고 싶어', '처음부터 시작하면 어쩐지 잘 할 것만 같아'라는 희망이 담겨 있는 것일 테니까. 그런데 정말 다시 하면, 처음부터 시작하면 잘 할 수 있을까. 다시 망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에잇, 그러면 그냥 포기해버리자, 이런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요즈음 우리 사회를 두고 사람들은 다들 절망적이라고 말하고, 희망이 없다고 말하고, 망할놈의 나라같으니라고, 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정말 '망해버려라' 하는 진심이 클까, 다시 잘 됐으면 좋겠어, 하는 마음이 클까. 아마도 후자가 아닐까. 그렇지 않았다면 매주 그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국민들이 '정치'걱정 따위는 하지 않고 자신의 발전과, 가족의 행복을 고민하고 그에 맞춰 삶의 질을 높이는데 자신의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나라가 좋은 나라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처럼 정치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 조차 뉴스의 신문의 정치면을 제일 먼저 보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심각하게 국민들에게 정치를 생각하게 한다. 나라를 걱정하게 하고, 미래를 걱정하게 한다. 이건, 분명 제대로된 나라가 아니다. 두 명만 모여도 대통령이 하야를 할까, 탄핵이 가결될까를 이야기하는 나라라니.

저자는 '나는 우리가 역사를 믿는다면서 왜 역사에 절망하며 역사 자체를 리셋하고 싶어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정념은 어떻게 우리를 지금의 모습으로 변모시켰는지, 그리고 다시 역사로 귀환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필요한지를 살펴보기 위해 이 책을 썼다'라고 프롤로그에 적었다.

1장 리셋을 원하는 사람들
2장 리셋을 부르는 세상
3장 리셋을 넘어서

세 장으로 나뉘어 서술하면서 우리는 왜 정말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분석하고,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해 고민한다.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쓴 게 우선 마음에 든다. 어렵다고 느껴지는 책은 시작부터 막혀버리게 되고, 그러면 그게 좋은 얘기는 아니든 우선 끝까지 읽지 못할테니까.

'전부다 가망이 없지만 특히 희망을 갖는 게 가망이 없다고 했다. 희망이란 삶이 지금보다는 나아진다는 기대가 있어야 가질 수 있는 것인데 그런 기대가 없다는 것이다. 나아지려고 노력하면 노력할 수록 삶은 더 비참해지고 파괴될 거라고 우울하게 말했다.p18'

희망을 갖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 희망 자체가 절망인 사회.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  이 불온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정말 희망이란 가망없는 일일까. 그렇다면 너무 슬프지 않은가. 이 책은 이런저런 생각의 꼬리를 물게 만들었다.

'자아에 탐닉하지만 자기가 파괴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결코 심리적인 사건이 아니다. 개인이 병들고, 주체의 심리가 약해져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자기를 잃어가고 있고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는 것은 신뢰할 수 있는 바깥의 소멸과 함께 벌어진, 사회학적이며 역사적인 사건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지나치게 병리학적이다. 나는 주체를 '병리학'화하는 것이 바로 사회의 무능이라고 생각한다. p71'

세월호이후 우리는 멈추었다고, 생각한다. 2년이 지나는동안 변한 건 없었다.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다. 국민들은 국가를 믿지 못하고, 국가로부터 보호 받는다는 믿음은 사라진지 오래다. 국가를 부정하고, 스스로를, 나의 가족을 지킬 수 있는 건 사회나 국가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라고 믿게 되었다. 국민들이 원하는 안전한 국가, 믿을 수 있는 국가가 될 수 없는 현실에서 우리는 또 다시 절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민 스스로 국가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촛불은 오래도록 꺼질 수 없을 것이다. 결국은 우리가, 국민들이, 당신과 내가 희망인 셈이다.

'고통 중에서 가장 크고 절망스러운 고통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을 직면하는 것이다. 그런 고통에 직면했을 때 사람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끼고, 그 고통을 외면하고 싶어한다. 이 외면은 나만 살아남겠다는 외면이라기보다 모든 것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다시 절망을 마주하고 좌절을 맛보지 않겠다는 외면에 가깝다. 고통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 속에서는 서로의 얼굴을 대하는 것이 위로는 커녕 가낭 끔찍한 고통이 된다. 위로가 불가능하다는 것만을 되새기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사람들은 '덜 괴롭게 사는 것'을 택한다. p170-171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무서운 생각을 한가지 하게 되었다.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결국엔 희망이 사라진다면, 그래서 모두들 더 이상 희망따위 품고 살지 않게 된다면, 더 이상 촛불이 켜지지 않고 다들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 들어가 살게 된다면 어쩌지, 하는 생각.
지난 역사가 부정되고, 우리 세대가 만들어가야 할 역사가 바로 쓰여질 수 없는 세상이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
그러면서 한편으로 다시 희망하는 내 마음을 만난다. 광장에 나가 서 있는 우리의 희망을 믿어 보기로 하는 내 마음을 만난다.

'100만에 대한 열광 속에서 봤어야 하는 것은 내 옆에 선 이들의 '얼굴'이다. 민주주의를 만드는 협력은 내가 기꺼이 점이 되는 것에서 시작되고, 존엄은 옆에 선 이를 점이 아닌 동등한 목소리이자 얼굴로 기억하는 데서 시작된다.
나는 우리 사회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협력과 존엄. 광장에서 점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기꺼이 점으로 협력하자. 그러나 광장에서 나란히 점으로 있던 다른 이의 얼굴을 기억하자. 그 얼굴이 가진 나와 평등한 존엄, 나와 평등한 목소리의 힘을 기억하자. 삶의 전 영역에 드리워진 히드라처럼 증식하는 왕의 목을 치자. 만약 내가 왕이라면 기꺼이 내 목을 치자. 그래서 삶의 영역에서 '동료 시민'으로 서로 만나자. 민주주의가 실패한 곳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p21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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