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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인주의자의 결혼생활
이정섭 지음 / 허밍버드 / 2021년 5월
평점 :
'이 책엔 세상이 말하는 관습적인 역할을 내려놓고 지속 가능한 대안을 찾은 우리 부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일상적으로 각방을 쓰고, 집밥은 간단히 먹으며, 아이 없이 지내면서, 나 홀로 여행을 떠나는 우리의 생활은 티브이에 나오는 '보통의 결혼생활'과는 거리가 있다. 일견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방식의 삶이기에 지치지 않을 수 있었고, 지치지 않았기에 그 에너지로 서로를 더욱 아끼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p8'
비혼이 늘고, 결혼의 형태가 달라지고 있는 요즘 무조건 '결혼을 하지 않겠어!' 보다 좋은 사람과 같이 사는 즐거움을 누리면서
나의 삶도 잘 살아낼 수 있는 긍정적인 형태의 결혼 가정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했다.
여기에, '임신과 출산, 육아'가 갈등의 문제로 끼어들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가능할 수도 있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단언하건대, '부부'만의 가족과 '아이가 있는 가족'의 삶은 너무나도 다르다.
아무리 둘 사이가 좋아도, 아이와 양육이 끼어드는 순간 그 결혼 생활은 부부가 생각하는 결혼 생활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역시, 아이를 낳고 안 낳고의 문제도 각가의 선택이니 정답은 없겠다)
이 책 속의 이야기는 '우리 부부는 이렇게 삽니다'쯤 되겠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잘 삽니다' 로도 읽힐 수 있겠다. 그게 정답입니다! 가 아니라 이렇게 사는 부부도 있습니다,로 읽혀서 부담스럽지 않았고, 이렇게 사는 부부들이 있구나, 알게 돼서 신선했다.
만약, 결혼을 고민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은 커플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될 듯하다.
결혼 전엔 막연히 두려워지니까. '아, 나는 도저히 둘이 늘 함께 하는 건 자신 없는데. ' '누가 내 생활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참을 수 없는데.' 같은 고민을 하게 될 테지만 그걸 어떻게 풀어 나갈 수 있을지 떠오르지는 않을 수도 있으니까.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면서 함께 할 땐 즐겁게! 가 가능하다는 희망 하나로도 결혼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아 지겨워. 어떻게 이렇게 평생을 사냐' 싶은 권태기가 올 듯 말 듯 한 부부라면, 적정한 거리 두기를 어떻게 하지 헤매는 부부라면 이런 방법도 있겠구나 생각해 볼 수도 있겠고.
결혼 10년 차쯤 되니, '부부가 성격차이'로 이혼한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것도 같다.
이혼 사유가 무조건 성격 차이래, 쉽게 사람들은 말하지만 결혼 생활을 해보니 부부 사이에 성격이 맞지 않는 것만큼 함께 하기 괴로운 일이 없겠다 싶기도 했다. 맞춰 산다는 건 누군가 양보하고 배려한다는 것인데 그것도 쌓이면 늘 배려한 사람이 나가떨어질 확률이 높으니까.
독립성과 사랑 중에 뭐가 먼저냐 묻는다면, 그 둘은 서로를 가능하게 해 주는 보완 요소라고 답하겠다. 사랑하기에 상대가 나와 별개로 누리려는 일상을 인정할 수 있고, 나 자신의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기에 깊은 사랑을 키워갈 여유가 생긴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는진 모르겠다. 만약에 결혼 후 지나친 속박이 두려워 누구와도 함께 살기를 꺼리는 사람이 있다면 비슷한 사람을 만나 보시도록. 존재합니다, 분명히.
- <누구랑 함께 살지 못할 사람> 중에서, p25
우리 부부는 취미도, 성향도 정말 다른데 딱 한 가지 맞는 게 있다면 '개인주의적' 성향이다.
서로의 시간과 공간 취미를 존중하기. (왜? 내가 간섭받기 싫으니까 상대에게도 간섭하지 않는 거다). 이게 부부 사이에 너무 정 없는 거 아냐? 생각하기 시작하면 또 끝이 없다. 행복한 부부 사이, 이런 건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살아보니 '내'가 그리 불행하지 않으면 그걸로 나쁘지 않은 결혼 생활 같기도 하다.
상대의 감정에 너무 치우치면 '나'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크고, '나'의 감정에만 너무 매몰되다 보면 상대방의 감정은 의도치 않게 무시하게 될 수도 있다. 결혼 생활에, 부부 관계에 너무 큰 의미 부여를 하지 말자.
결혼한 지 10년이 넘으면서 알게 된 건 어느 부부든 마음속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개인주의 생명체 고양이가 그렇듯 누구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다가 문득 외로워지면 서로를 찾아 찰싹 붙어 온기를 나누며 행복해한다. 꾹꾹이를 할지도 모른다. 고양이 주인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방금까지 몸을 부비던 고양이가 갑자기 가 버린다고 서운해할 필요는 없다. 이내 다시 찾아올 테니.
- <우리 부부는 각방을 쓴다> 중에서, p88
이 문장이 꽤 공감 됐는데, 우리 부부가 각방을 쓰면서도 나쁘지 않은 지점을 잘 표현해 준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작가가 글에서 이야기하는 '따로 또 같이'의 의미가 잘 함축된 느낌 들기도 했고.
결혼 생활은 결국 케이스 바이 케이스. 결혼은 으레 이러이러하다는 일반론이 통하지 않는다. 예측 불가능한 존재인 인간 둘이 만나 이루는 결혼이란 우주가 그리 단순할 리 없다. 남들의 기준에 휘둘리지만 않으면, 뒤집어 말해 부부가 자기들의 기준으로 결혼 생활을 꾸려 나가면 거기에 일반론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둘의 의지와 노력만 남는 셈이다. - <좋은 소식은 없지만 매우 좋습니다> 중에서 - P116
인간이란 완벽하지 못하기에 결혼한 부부 모두 각자 비뚤어지는 순간이 있다. 아내는 일상적으로 자잘하게 비뚤어지고, 난 가끔 크게 비뚤어진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가 큰 갈등이 없는 것은 아내 덕이다. 비뚤어지는 순간에 격차를 두어 최악의 순간엔 보듬어 주고, 나머지는 모두 실리를 추구한다. 진짜 거울은 아니지만, 놀라운 이해심으로 나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돌아보게 한다. - <작지만 밉지 않은 우김> 중에서 - P146
마음 깊은 곳에선 알고 있다.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노후의 삶은 우울해지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어느 날부터 모든 게 조금씩 안 좋아지기 시작할 것이다. 감기에 걸렸는데 이상하게 잘 낫지 않을 것이고, 친한 친구들이 하나둘 사라질 것이다. (중략) 그래서 노후를 위해 또 한가지 준비할 것은 지금 이 순간의 일상을 즐기는 습관이다. 미래를 보지 못하고(않고), 눈앞에 닥친 일만 중요하게 여기는 무식함(현명함)이다. 알랭 드 보통은 저서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인간이 가진 근시안을 칭찬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생활의 지혜일지 모른다. 현자들이 가르친 대로 죽음에 대비하라는 것은 죽음을 지나치게 존중하는 것이다." "우리의 일은 적어도 우리가 거기에 정신을 팔게는 해 줄 것이다." "우리를 더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 있게 해 줄 것이다." - P176
. 세상에 고유한 개인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다. 결합해 바뀌며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맞추질지 모른다. 그리고 그 바뀐 자리에 더 이상 자신은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상대방의 행동 중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이 있더라도 관계에 해를 끼는 일이 아니라면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해야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상대방 역시 나의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인정할 것이고. 그런 점에서 결혼은 두 사람의 결합이 아닌 두 사람의 공존이다. - <개인주의적 결혼생활> 중에서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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