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미 - 누군가를 만날 줄 몰랐던 여름, 베를린
이동미 지음 / 모비딕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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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이런 고백이 그리 부끄럽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게 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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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런 이야기

"나는 신혼여행 말고 해외여행 가본 적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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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이 부럽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그런 사람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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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짧은 여행 말고

한 도시에서 오래 머물면서 낯선 곳에서의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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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동미』의 표지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책 제목도 그랬지만

사진 속, 폴짝 뛰어오른 여자의 모습이, 옆모습이지만 활짝 웃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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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물론 나의 경우 대부분 떠날 수 있어도 떠나지 않았지만) 요즘이라서 그랬을까.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사춘기 아이 마음처럼 '진짜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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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미는 자유롭다. 그의 인생엔 걸림돌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

일, 연애, 결혼, 돈, 그 어떤 삶의 루틴 앞에서도 동미는 기죽지 않고 살았다. - 저자 소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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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결혼, 돈 그 어떤 삶의 루틴 앞에 번번이 무너지는(지고 마는) 나로서는 '와, 부럽다' 하는 마음이 드는 게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그래, 나는 이미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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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실컷 대리만족이라도.

누군가의 자유로운 삶을 염탐하듯 기웃거리며 부러워라도, 상상이라도 징하게 해보자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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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을 사랑했던 여자.

처음 베를린에 갔던 13년 전, 첫 만남에 베를린에 짝사랑에 빠진 여자.

한국으로 돌아와 이듬해(2008년) 결국 '다시 베를린'이라는 책을 출간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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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다시 찾은 베를린에서 뭔지 모를 쓸쓸함을 감지하고 돌아왔지만,

프리랜서 여행작가로 살겠다는 확신에 회사로 돌아가야 하나 하는 고민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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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경리단에 작은 바를 차렸으나 친구는 바를 차린지 1년도 안 돼서 결혼을 하고 베를린으로 떠났다.

친구가 있는 베를린으로 여행을 떠난 게 일 년 전.

그리고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남자(사랑)을 만나 연애를 하게 되고, 동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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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처음엔 베를린 여행기로 기획되었지만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면서 예정에도 없던 로맨스를 쓰게 된 여행 작가의 에세이다.

원래 쓰려던 여행기를 접고, 부끄럽지만 소소한 사랑 이야기를 썼다. 뒤늦게 만난 중년의 연애 이야기가 뭐 대단한 게 있을까마는, 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오랫동안 싱글로 살던 한 여자의 또 다른 삶의 과정으로 읽어주면 좋겠다. 한 남자가 아니라 한 사람과 깊이 교감하며 연애와 삶에서 새로 알게 된 것과 느낀 것들, 즐거운 한때를 기록한 이야기라고 이해해 주면 좋겠다.

- 프롤로그 중에서, p8

누군가의 연애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재밌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

연애 세포는 다 죽었는지 잘 생긴 남자를 봐도 '저 남자라고 집에 있는 남자랑 뭐 다르겠어.' 하는 마음이 드는 10년 차 아줌마에게도

간혹 슬쩍슬쩍 들리는 남의 연애 이야기엔 귀가 쫑긋하더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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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 알게 된다.

작가가 말한 '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한 여자의 또 다른 삶의 과정'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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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나라에서, 낯선 방식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맺어가는 일 자체가 뻔하지 않다.

그 뻔하지 않은 상황에 기대 글이 별로였다면 '아, 그랬구나.'하고 그만이었겠지만

여행기로서도, 에세이로서도 꽤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물론, 내 취향에 맞았으니까 그랬을 거다.)

베를린에 도착해 제일 먼저 (친구의 권유로) 데이팅 앱 '틴더'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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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몇의 남자와 그렇고 그런 만남을 거쳐 '스벤'이라는 특별한 남자를 만났다.

사랑에 빠지게 되면 모든 사람을 특별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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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속의 이야기는 작가와 스벤의 사랑 이야기이면서 작가가 한 남자를 만나 (베를린에서) 어떻게 살게 되고,

어떤 마음의 변화를 거치게 되는지 자연스럽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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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의 생활이 어떨지 상상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데이팅 앱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이 그렇게 쉬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베를린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커플이 되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했다.)

난 우는 게 창피하지 않아. 그래서 눈물도 금방 나. 혼자 있을 땐 오히려 안 울지만, 내가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 앞에선 금방 울 수 있어. 동양에서는 남자가 우는 일이 흔하지 않고 터부시된다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남자건 여자건 감정을 내보이고 우는 건 절대 창피한 일이 아니야. 오히려 그걸 참고 숨기는 게 문제지. 참고 참았다가 나중에 화병이 되거나 폭력적으로 되는 게 더 나쁜 거야. 참으면 더 큰 병이 돼. 나도 한동안 불안장애를 앓았지만, 지금은 사람들에게 숨기지 않고 얘기해. 그건 절대 창피한 일이 아니니까.

- <그가 처음 울던 날> 중에서, p56

불안 장애를 앓았던, 눈물이 많은, 외국인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질 확률이 얼마나 될까.

아마 작가 역시 틴더를 깔고, 남자를 만났지만 진짜 운명처럼 사랑에 빠지는 남자를 만날 기대를 한 건 아니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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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사랑은 낯섦과 불안과 (한국과 베를린의 거리만큼) 언젠가 한 번은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애달픔과 그럼에도 달달함이 합쳐진

특별하게 포장될 수 있는 '사랑'처럼 보였다. 처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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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을수록, 둘의 이야기에 빠져들수록

사랑은 결국 '포장'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사랑'이구나 싶어졌다.

"불안해서 그래. 불안하니까 너한테 계속 확인받으려는 거야. 네가 날 좋아한다는걸, 나랑 계속 같이 있고 싶다는 걸 자꾸 말로 들어야 안심이 돼. 왜 불안하냐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야. 나의 불안이 그냥 감기처럼 찾아오는 거야."

그가 불안해할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걸 알았다. (중략)

나 또한 스벤을 만나기 전, 냉소적이며,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없고, 우울한 마음이 한 편에 있었다. 그 우울함은 사실 <타임아웃 서울> 매체를 그만둔 이후부터 조금씩 생겼다. 온 애정을 쏟아부어 만든 매체를 예상치 못한, 심지어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 접어야 했던 것이 내게는 큰 상처와 우울이 됐다. 그런데 애써 괜찮은 척, 밝은 척하며 지냈다. 곧 괜찮아질 거라고 방치했다. 여름마다 베를린으로 온 건, 사실 일종의 도피였다. 어디로든 서울이 아닌 곳으로 떠나고 싶었고, 베를린에 오면 그나마 잠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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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떠나지 않을 거지? 계속 나랑 같이 있을 거지?"

오늘도 그가 똑같은 불안의 질문을 한다. 이제는 애 또 묻냐고 되묻는 대신,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몇 번이고 속삭여준다.

"응, 난 너랑 같이 있을 거야. 널 떠나지 않을 거야. 너도 내 옆에 있어줄 거지?"

내가 듣고 싶은 말. 그 말을 아끼지 않고 스벤에게 한다.

- <나의 불안이 감기처럼 찾아온 것뿐이야> 중에서, p77

 

 

언젠가(정말 언젠가)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겠지만,

내게도 그런 시간이 찾아온다면 몇 개월 살아보고 싶은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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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프랑스'라는 나라가 그랬고,

최근 1,2년 사이에는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내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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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현실 도피처럼 선택했던(찾아갔던) 베를린이라는 도시에서 또 다른 삶의 방향을 찾아내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낯선 곳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게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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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행에 지금의 짝꿍이 동행을 하게 될지, 아이들이 함께 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되도록이면 혼자, '나'로 떠나는 여행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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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야기에 (빠져서) 여행기로서의 책 이야기를 놓친 것 같아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그건 다시 이 책을 읽게 될 또 다른 독자들의 재미로 남겨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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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한 가지를 챙겨 마음에 담고 이 책을 책꽂이에 이쁘게 꽂아 두기로 했다.

언제가 내가 여행을 위한 가방을 싸게 될 때, 다시 이 책을 꺼낼 수 있으면 좋겠다(여행을 떠나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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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챙겨 담은 한 가지는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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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유연한 삶의 자세를 잊지 말자는 것'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의 인생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으니

지금 내 삶을 불행이나, 행복으로 평가하지 말고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분으로 여기면서

일어날 수 있는 많은 가능성들에게 너무 눈치 주거나, 거리를 두지 말자는 것.

나도 베를린에서 살고 싶은 때가 있었다. 뭘 해도 자유롭고 새로운 것 투성이인 이 쿨한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걸 훌훌 털고 오기엔 용기가 없었다. 30대 중반이란 나이도 그땐 늦었다고 생각했다. 여행 기사 쓴답시고 자주 외국을 다닌 것도 다른 도시에 살고 싶은 갈망을 줄였다. 한 달에 한 번씩 출장을 갔다 돌아오는, 내 집 있는 서울이 좋았다. 외국에 나가면 나갈수록 서울만큼 살기 편한 도시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내 영혼의 한식이 있는 서울을 굳이 떠날 이유가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나가면 고생'이란 생각만 늘고, 도전정신은 안일함, 귀찮음과 자주 맞바꿔 먹었다.

이런 내가 다 늦게, 갑자기, 베를린에서 살게 됐다. 거창한 계획도 없이, 베를린에서 만난 남자 하나 믿고 옮겨와 살고 있다. 온갖 애정으로 사들인 서울의 살림살이며, 친구며, 가족을 다 서울에 두고 왔다. 베를린에서 뭐해 먹고 사나 하는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고민은 서울이든 베를린이든 어디서나 하는 것. 프리랜서 작가로 오래 살았고, 한 직장에 매인 몸도 아니어서 결정하기가 쉬운 것도 있었다. 하지만 베를린에 훌쩍 오게 된 건 뭐랄까, 나이가 들수록 삶이 유연해졌달까. 아니면 만만해졌달까.

- <베를린으로 오는 건 평생의 꿈이었어> 중에서,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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