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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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이나 영화 팜플렛에서 봤던 위대한 개츠비, 중년이 되면서 철이 드는 것인지 아님 고전에서 삶의 지혜를 찾고자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올해 목표가 고전 100권 읽기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고전으로 분류되어 회자되고 있는 이유를 사실 잘 모르겠다. 옛 연인을 못 잊어 하는 캐츠비의 순정을 높이 사는 것인지, 세상의 모든 것을 돈으로만 보는 데이지의 황금만능 주의를 높이 사는 것인지, 국가에서 내려진 금주령을 위반하며 개츠비를 비호하는 마피아 울프심의 무법천지 부조리를 역설하는 것인지, 개츠비의 라이벌이며 그와 버금가는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 제 멋대로인 톰 뷰캐넌의 무질서를 지적하는 것인지, 신사게임으로 알려진 골프에서 알까기를 하는 조던 베이커의 무 매너를 알리고자 함인지 .......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 중 법과 도덕에 자유로운 인간은 없는 듯 보인다. 어쩌면 이런 장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탓도 있고, 미국 문화를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22년도의 미국이니까 남북전쟁이 끝나고, 대공항이 오기 몇 년 전쯤 이니 물질의 과잉이 서서히 팽창해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물질 과잉의 극치는 보여주는 곳은 매일같이 파티를 열어 금주령 상태에서도 만취자가 속출하는 캐츠비의 집이다. 물론 이와 못지 않은 톰 뷰캐넌 부부의 사치도 버금가긴 하지만 ........

이 소설은 역설적인 요소가 많다.

첫째. 엄청난 재력에 남이 눈독 들이는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볼품없고 가난하고 더군다나 유부녀이기도 한 머틀이라는 정부를 만나는 것이다. 단순한 호기심인가? 아님 돈만 밝히는 아내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나?

둘째. 뛰어난 머리(예일대를 졸업했으니)와 강인한 체력(럭비부에 있었으니)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것을 가진  남편을 가졌음에도 옛 연인 개츠비에 눈길을 돌렸을까? 놓친 물고기가 커 보이고 아까워 보이기 때문일까? 내가 봤을 땐 사랑은 절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이 여자의 심리가 가장 궁금하다. 한때 사랑했던 연인이 부자로 돌아와 연정이 생겼다고 치자 그런데 그가 죽자 장례식에 나타나기는 커녕 남편과 여행이라니 ...... 혹시 연락을 못 받았나??

톰 뷰캐넌은 예일대 출신답게(비꼬는 것임) 윌슨을 사주하여 개츠비를 죽이고 윌슨을 자살케하여 자신의 손에는 피 한방을 묻히지 않고 아내를 넘보는 개츠비와 정부의 남편을 제거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보았다.

물질 만능과 사치, 무질서가 난무하지만, 역겨운 정사나 타락의 묘사는 찾아 볼 수 없으니 난잡한 것 같으면서 그렇지 않고, 뭔가 큰 태풍이 몰아칠 기세 같은데 다시 잠잠해지고, 강렬한 하드코어에 어울릴 것 같은 배경임에도 잔잔한 소프트 코어가 선보이고 .......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소설로 읽는 것 보다 영화나 뮤지컬을 보는 것이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에 대해 전달이 용이 할 것 같다.

3인칭 전지적 관찰자 시점에서 쓴 캐러웨이 닉을 제외하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좀 난해한 사람들이다. 책을 읽은 후 소설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저자에 대해 internet Surfing을 해 보았다.

피츠제럴드는 1896년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의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태어났지만 부유했던 외가의 도움으로 프린스턴대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세계1차 대전에 참전하고, 판사의 딸 지니브러 킹을 만나 결혼하고 위대한 개츠비로 문단에 들어가 큰 돈을 벌었으나 술과 방탕한 생활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아내가 병에 걸리자 치료비 마련을 위해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일을 했으나 알코올 중독에 빠진 후 1940 44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이 한다.

작가를 알고 나니 이 책에서 행해졌던 파티문화나 개츠비의 재력 그리고 여성상이 일정부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결국 세상에서 믿을 사람은 본인 뿐이고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지 말라 것이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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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세트 - 전3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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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하면 왠지 고지식하고 어렵게 느껴져서 즐기는 편은 아니었는데 해가 거듭할수록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고전을 간과할 수가 없어 틈틈이 읽으며 나름 고상을 떨고 있는 중 도덕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 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말이 가슴에 와 닿아 이 책을 주문하여 읽고 있다.

글을 아는 이라면 톨스토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들어 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접해본 이는 생각 보다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안나 카레니나의 리뷰를 쓰기 전에 톨스토이라는 작가를 알아보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되어 간단하게 발췌하였다.

톨스토이는 러시아 남부 야스야나 폴랴나에서 1828년 백작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부친보다 훨씬 저명하고 부유한 귀족의 외동딸로 톨스토이의 고향 야스야스 폴랴나를 지참금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그러나 부모를 일찍 여윈 탓에 다섯 남매는 친척집에서 성장했고, 16세에 카잔대학에 입학 했지만 대학교육에 회의를 느껴 3년 만에 공부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농노들을 대상으로 계몽실험을 벌이다 잠깐 동안 모스크바로 가서 이상주의와 쾌락주의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즐겼으나 그에 대한 환멸과 자괴감으로 괴로워 했으나 모순적이게도 이것이 그의 사상과 작품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군인 이었던 형 니콜라이의 추천으로 육군장교로 입대하여 체첸 공격과 크림전쟁을 경험한 후 전역하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독일을 여행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농민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세워 농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쏟았다. 백작의 아들이면 자신이 상류층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식인이나 상류층과의 교류를 불편하게 생각했다. 1862 34세에 18세의 소피아 안드레예브나 이슬레네프와 결혼하여 8남매를 두었지만 이상주의자인 본인과 현실주의자인 가족들과 성격차이로 힘들어 하였다. 그는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에 대해 숙고하며 신학과 성서 연구에 전념하였는데 기독교에 실망하고 자비, 비폭력, 금욕을 강조하는 기독교적 아니키즘을 제창하였다. 말년에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와 부활을 발표하며 러시아 정교에서 파문당하고, 러시아 정부와 갈등이 있었지만 필력으로 극복되고, 가족 중 유일하게 자기 편이었던 딸 알렉산드라에게 모든 저서의 판권을 상속한다는 유언장을 작성하자 아내는 남편의 행적을 감시하는데 이를 본 톨스토이는 격분하여 가출을 하여 기차여행 중 감기와 폐렴으로 결국 사망에 이른다.

 

톨스토이에 대해 알기 전에는 안나 카레니라 이야기가 허구려니 생각했는데 톨스토이의 생애에 대해 알고 나니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콘스탄친 드리트리치 레빈이 어쩌면 자신을 대변하고 그가 사랑하는 여인 키티는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인 상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만인들이 칭송하는 안나를 등장시켜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자신과 타인과 하느님에게 잘 보이기 위한 위선의 가면을 벗으라고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상주의와 탐욕주의는 현실과 맞지 않으니 현실을 즉시 하라는 것일까?

안나 카레니라는 스테판 오블론스키의 여동생이자 유능한 고위 관리인 카레닌의 아내인데, 미모와 재력 그리고 사교성까지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talent 였다. 아마도 표지의 그림이 그녀가 아닌가 싶다. 이야기의 전개는 오빠 스테판이 불륜으로 파국에 치닫자 이를 해결하고자 모스크바에 방문하여 올케 돌리를 만나 원만하게 해결하고, 돌리의 동생 키티의 초청으로 무도회에 참석하여 그녀의 잠재적 결혼 상대자인 브론스키와 춤을 추면서 사랑에 빠져 결국 그의 아이까지 갖게 된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자신의 사랑을 찾아 배우자와 가족을 배신하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있나? 이상주의나 쾌락주의자들에게는 가능한 일이고 현실주의자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를 표방하지만 지나친 자유주의는 사회를 전복시킬 수 있는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제한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사회 지도층으로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랑을 찾아 가는 모습이 개인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는 '사고'라고 배웠는데 본능을 이성에 앞세우는 인간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주인공 콘스탄친 드미트리치 레빈은 스테판 오블론스키의 친구이면서 1,000만평의 농지를 돌보며 사는 귀족인데, 이상적인 여인 키티에게 청혼을 했으나 거절당해 모든 것을 잊고 농사짓는 일에 열중하며 전원생활을 하던 중 스테판이 놀러와 키티의 결혼이 성사되지 않았으며 요양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 될지 모르겠지만 흐름으로 보아 레빈과 키티가 잘 될 것 같은 암시를 받았다.

개인적으로 1권의 등장 인물 중 가장 호감이 가는 인물이다. 저자 자신이 농촌 계몽을 하며 지냈던 에피소드를 일부 인용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2부의 이야기 전개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19세기에 나온 책이 21세기에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비슷한 모양이다. 과학이나 기술은 발전했지만 인간의 내면이나 본질은 전혀 변화가 없는 모양이다.

500페이지가 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고 2부가 궁금하다. 리뷰는 이만하고 책을 더 읽어보자.

고전이 현재까지 여전히 사랑 받는 이유에 대해 알게 해준 작품이다. 이 책 1권 시작하자 마자 나오는 이유처럼 사랑 받는 이유가 제각각 이겠지만 첫째. 19세기 작품이 21세기에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다. 둘째. 이백 년이 지났음에도 인간관계의 필수 요소인 정의와 인간의 심리는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셋째. 인간은 나를 위해 사는 사람보다는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여기서 남을 위한 부분은 봉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허영심을 말하는 것임) 넷째. 기득권들은 대를 이어 기득권을 유지하고 프롤레타리아는 대를 이어 가난을 유지한다는 점 등이다. 수백, 수천 년이 지났음에도 이런 것들은 왜 변하지 않는 걸까?

이 책의 배경은 제정 러시아 시대이다. 제정 러시아는 절대왕정시대를 말하는 것으로, 유럽의 경우 왕이 통치를 하였으나 러시아는 코사크족, 우즈벡크족, 타타르족 등 다문화를 지배했기 때문에 황제라 하였다. 농민들에게는 매우 암울한 시기였던 것 같다. 이 책에는 농민들의 암울한 부분이 세밀하게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귀족들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문화 이면에는 반대편의 누군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대하소설 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제 각각의 개성을 가졌고, 자신이 처해진 상황에 대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어필하고 있는데 이는 각 부류의 대표성을 가지고 대변하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레빈이라는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2권 대부분이 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예상대로 레빈 이라는 인물을 통해 톨스토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나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부분을 적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그의 성격을 100% 지지하지는 않지만 많은 부분 공감대가 형성이 된다. 천리를 달릴 수 있는 말이지만 사람 태우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야생마 같은 인물 같은 느낌이다. 타인의 주장에 반박하고  자신의 주장을 앞세우지만 자신감 있어 보이고, 이상주의가 아닌 현실주의에 가까운 인물 인 듯 하다.

세상은 틀에 갇혀있지 않다. 같은 사물을 보고 관심분야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레빈에게 시골은 삶의 장소(기쁨과 고통과 노동의 장소)인 반면, 이바노비치는 노동에서 벗어난 휴식의 공간이자 타락의 독소를 제거하는 해독제로 생각한다. 이렇듯 둘의 생각은 다르다. 사실 이것만으로 다듬어졌느냐 여부를 따지는 것은 무리이지만 레빈의 경우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젬스트보를 멀리하고 있다. 아무리 젬스트보가 기득권자나 부유층을 대변하더라도 그 속에 들어가 예산도 감시하고 편의 시설도 주창했어야 하는데 뜻대로 안 된다며 방관하는 것은 동조와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인지 못하는 듯 하다. 형은 이상주의에 가깝고 레빈은 현실주의에 가까운 것 같은데 반반씩 섞였으면 이상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스테판 아르카지치는 집에 돈은 갖다 주지 않으면서 집안의 돈을 다 끌어다 쓰는 바람에 다리야 알렉서드로브나는 레빈이 사는 근처의 시골로 거처를 옮겼다. 자신은 사치하고 가족들은 고생하는 것이 미안해서 인지 레빈에게 가족들을 부탁한 탓에 방문하여 키티의 소식을 듣게 되고 스테판 아르카지치의 만찬 초청으로 그의 집을 방문하여 키티를 만나고 서로 호감이 있어 결국 결혼에 골인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톨스토이가 이상형으로 생각했던 여성상이 키티 같은 여자였음에 틀림없다.

또한 그의 친형 니콜라이가 병색이 짙어 지며 레빈을 방문한다. 하지만 반가운 것도 잠시, 형은 고통 때문에 화를 내지만 죽음으로 가까워 지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투정을 다 받아 준다. 하지만 형은 떠나고 한 참 뒤 모스크바의 호텔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키티와 같이 가서 임종을 맞는다.

브론스키와 바람이 난 안나의 문제 때문에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는 이혼을 해야 할 것인지 용서를 해야 할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이혼을 하면 안나는 브론스키와 결혼하게 되어 그들은 행복해 지고 자신은 불행해진다는 결론에 불순한 마음으로 용서하고 한집에서 같이 살지만 얼굴은 대하지 않고 남남처럼 지낸다. 하지만 안나와 브론스키는 은밀하게 만나며 결국 아이까지 가지게 된다. 이로 인하여 안렉산드로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지만 내가 미워하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이혼소송을 제기한다. 안나가 출산 후 산후 열로 인하여 죽임의 경계에서 카레린에게 용서를 구하자 브론스키와 그녀를 용서하지만, 브론스키는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상급자들이 비난하자 전역 후 안나와 외국으로 떠나 버렸다. 과연 이들의 광적인 사랑에 찬사를 보내야 하는지 이성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 봐도 찾을 수 없는 귀족들이라 치부하고 방관해야 하는지 많은 독자들이 혼란스러워 할 것 같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알렉산드르의 삶이 안나의 사랑 때문에 엉망이 되어 버린다. 침착함을 잃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지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행복이 없어져 버리니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상과 현실, 불행과 행복, 부자와 빈자, 남자와 여자, 선과 악 등 대치되는 것에서 조화로움을 찾고자 노력한 작가의 노고덕분에, 대치되는 것들의 대립에서 인간의 감정을 세밀하게 엿 볼 수 있어서 흐뭇하고, 이 책을 읽는 것 만으로 지식창고가 가득 차는 것 같아 기쁘다.

풀 바디의 와인을 마신 듯한 느낌이다. 와인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풀 바디 와인을 선호하지 않겠지만 와인 마니아라면 풀 바디 와인의 매력을 알고 있을 것이다. 고전이 그러하고 이 책이 또한 그러 하다. 올해 목표가 고전 100권 읽기 도전하고 있는데 벌써 10권째 이니 스스로 대견하고 뿌듯하다. 고전을 읽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부분의 고전은 본문에 들어가기도 전에 책의 두께에 질려 버린다. 높은 산의 정상을 밟아 본 사람만이 등산의 참 맛을 알듯이, 책의 두께에 겁먹지 않고 읽은 자만이 고전에서 지혜를 찾을 수 있다.

예술작품이나 기업에서 부르짖는 혁신, 심지어는 일상에서도 똑 같으면 주목 받지 못한다. 뭔가가 달라야 그 속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각광받는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참신성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은 이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 당시가 봉건사회였기 때문에 기득권을 비판하는 것이나 본인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어려웠을 텐데 이를 들어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소설의 두께 만큼이나 많은 이슈와 심리 그리고 메시지가 들어 있다. 1, 2권 읽을 때는 이야기의 전개나 사람의 심리에 초점을 맞춰 읽었는데 3권에서는 작가가 비판한 메시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첫째 제정 러시아 시대 도시 환락을 비판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빛 좋은 개살구로 묘사된 스테판 오블론스키는 가족 부양조차 어려운 상황임에도 바람을 피우고, 빚을 내어 파티를 즐기고, 사냥을 하는 등 그 당시 귀족들의 허례허식에 경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에게도 장점은 있다. 정직한 관리이며 무난한 평을 받고 있는 행정가로 좋은 가문과 뛰어난 사교성으로 인맥구성이 잘 되어있다.

둘째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에서 인간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동물들이 생산해 놓은 모든 것을 가져가고 심지어는 모든 동물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처럼, 친척집을 돌며 식객으로 있는 바르바라공작의 영애 바센카 베슬로프스키의 무위도식과 귀족들의 비 생산적인 파티문화와 말싸움을 비난 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상류 사회의 결혼은 일반인들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요즘 연속극 소재로 많이 사용되는 끼리끼리 사돈 맺기, 사실 연속극 소재가 아니라 대한민국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가문을 위해 사랑 없는 결혼에 대한 경종도 숨어 있는 듯 하다. 안나의 불륜에도 불구하고 주위 사람들의 눈총과 자신의 위신 때문 이지만 종교적인 이유를 내세워 아내를 용서한다는 취지에서 이혼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세운 카레닌 (물론 안나가 바람나기 전까지는 사랑했을 수도 있고 사랑한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을 내세워 그 당시 결혼문화를 비판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넷째 레닌이 참석한 음악회를 통해 귀족들의 음악에 대한 위선을 거짓과 허위의 예술이라고 비꼬아 놓은 듯 싶다.

이외에도 많은 메시지가 있겠지만 언뜻 떠오른 것들이다.

많은 등장 인물 중 인간성을 느낄 수 있고 솔직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레빈이다. 안나가 관능적 유혹에 넘어가 주기도 하고, 아내가 불편해 하는 손님을 면전에 대고 쫓아 내기도 하고, 농부들과 풀을 베기도 하는 등 자기 주장만 내세우던 고집 불통에서 서서히 인간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았다.

안나와 브론스키, 레빈과 키티에 이어 바센카와 세르게이 이바노비치의 사랑 이야기가 전개될 줄 알았는데 예상이 빗나가 약간 서운하다.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듯 한데 속마음을 표출하지 못해 사랑이 이루어 지지 않은 걸 보면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안나와 키티가 좋아했던 남자가 브론스키와 레빈인데 이들은 도시와 시골, 세련미와 마초 등 서로 상반 되지만 여성들이 좋아할만한 재력과 외모를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책을 덮고 나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었는데 조금 지난 후 리뷰를 쓰려니 그 당시 상황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내용이 너무 길어서 인지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제 각각이어서 좀 혼란스러웠다. 어느 곳에서는 성만 쓰고, 어느 곳에는 풀 네임을 쓰고, 어느 곳에선 애칭만 쓰고, 어느 곳에선 이름만 쓰기도 하고, 이름도 약간씩 다르게 쓰이고...... 개인적인 바램은 문맥상 큰 의미가 없다면 가급적 이름을 하나로 통일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러시아 이름인지라 입에 붙지도 않는데 각기 다른 이름을 쓰다 보니 같은 인물인지 다른 인물인지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내용이나 숨은 의도를 놓칠 수도 있을 것 같다. 감히 이러 저러한 의견을 쓰고 있지만 머리 속의 지식 창고가 점점 쌓여가는 느낌이다. 좀더 욕심을 내어 속도를 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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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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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바디의 와인을 마신 듯한 느낌이다. 와인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풀 바디 와인을 선호하지 않겠지만 와인 마니아라면 풀 바디 와인의 매력을 알고 있을 것이다. 고전이 그러하고 이 책이 또한 그러 하다. 올해 목표가 고전 100권 읽기 도전하고 있는데 벌써 10권째 이니 스스로 대견하고 뿌듯하다. 고전을 읽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부분의 고전은 본문에 들어가기도 전에 책의 두께에 질려 버린다. 높은 산의 정상을 밟아 본 사람만이 등산의 참 맛을 알듯이, 책의 두께에 겁먹지 않고 읽은 자만이 고전에서 지혜를 찾을 수 있다.

예술작품이나 기업에서 부르짖는 혁신, 심지어는 일상에서도 똑 같으면 주목 받지 못한다. 뭔가가 달라야 그 속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각광받는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참신성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은 이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 당시가 봉건사회였기 때문에 기득권을 비판하는 것이나 본인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어려웠을 텐데 이를 들어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소설의 두께 만큼이나 많은 이슈와 심리 그리고 메시지가 들어 있다. 1, 2권 읽을 때는 이야기의 전개나 사람의 심리에 초점을 맞춰 읽었는데 3권에서는 작가가 비판한 메시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첫째 제정 러시아 시대 도시 환락을 비판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빛 좋은 개살구로 묘사된 스테판 오블론스키는 가족 부양조차 어려운 상황임에도 바람을 피우고, 빚을 내어 파티를 즐기고, 사냥을 하는 등 그 당시 귀족들의 허례허식에 경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에게도 장점은 있다. 정직한 관리이며 무난한 평을 받고 있는 행정가로 좋은 가문과 뛰어난 사교성으로 인맥구성이 잘 되어있다.

둘째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에서 인간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동물들이 생산해 놓은 모든 것을 가져가고 심지어는 모든 동물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처럼, 친척집을 돌며 식객으로 있는 바르바라공작의 영애 바센카 베슬로프스키의 무위도식과 귀족들의 비 생산적인 파티문화와 말싸움을 비난 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상류 사회의 결혼은 일반인들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요즘 연속극 소재로 많이 사용되는 끼리끼리 사돈 맺기, 사실 연속극 소재가 아니라 대한민국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가문을 위해 사랑 없는 결혼에 대한 경종도 숨어 있는 듯 하다. 안나의 불륜에도 불구하고 주위 사람들의 눈총과 자신의 위신 때문 이지만 종교적인 이유를 내세워 아내를 용서한다는 취지에서 이혼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세운 카레닌 (물론 안나가 바람나기 전까지는 사랑했을 수도 있고 사랑한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을 내세워 그 당시 결혼문화를 비판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넷째 레닌이 참석한 음악회를 통해 귀족들의 음악에 대한 위선을 거짓과 허위의 예술이라고 비꼬아 놓은 듯 싶다.

이외에도 많은 메시지가 있겠지만 언뜻 떠오른 것들이다.

많은 등장 인물 중 인간성을 느낄 수 있고 솔직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레빈이다. 안나가 관능적 유혹에 넘어가 주기도 하고, 아내가 불편해 하는 손님을 면전에 대고 쫓아 내기도 하고, 농부들과 풀을 베기도 하는 등 자기 주장만 내세우던 고집 불통에서 서서히 인간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았다.

안나와 브론스키, 레빈과 키티에 이어 바센카와 세르게이 이바노비치의 사랑 이야기가 전개될 줄 알았는데 예상이 빗나가 약간 서운하다.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듯 한데 속마음을 표출하지 못해 사랑이 이루어 지지 않은 걸 보면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안나와 키티가 좋아했던 남자가 브론스키와 레빈인데 이들은 도시와 시골, 세련미와 마초 등 서로 상반 되지만 여성들이 좋아할만한 재력과 외모를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책을 덮고 나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었는데 조금 지난 후 리뷰를 쓰려니 그 당시 상황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내용이 너무 길어서 인지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제 각각이어서 좀 혼란스러웠다. 어느 곳에서는 성만 쓰고, 어느 곳에는 풀 네임을 쓰고, 어느 곳에선 애칭만 쓰고, 어느 곳에선 이름만 쓰기도 하고, 이름도 약간씩 다르게 쓰이고...... 개인적인 바램은 문맥상 큰 의미가 없다면 가급적 이름을 하나로 통일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러시아 이름인지라 입에 붙지도 않는데 각기 다른 이름을 쓰다 보니 같은 인물인지 다른 인물인지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내용이나 숨은 의도를 놓칠 수도 있을 것 같다. 감히 이러 저러한 의견을 쓰고 있지만 머리 속의 지식 창고가 점점 쌓여가는 느낌이다. 좀더 욕심을 내어 속도를 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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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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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현재까지 여전히 사랑 받는 이유에 대해 알게 해준 작품이다. 이 책 1권 시작하자 마자 나오는 이유처럼 사랑 받는 이유가 제각각 이겠지만 첫째. 19세기 작품이 21세기에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다. 둘째. 이백 년이 지났음에도 인간관계의 필수 요소인 정의와 인간의 심리는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셋째. 인간은 나를 위해 사는 사람보다는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여기서 남을 위한 부분은 봉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허영심을 말하는 것임) 넷째. 기득권들은 대를 이어 기득권을 유지하고 프롤레타리아는 대를 이어 가난을 유지한다는 점 등이다. 수백, 수천 년이 지났음에도 이런 것들은 왜 변하지 않는 걸까?

이 책의 배경은 제정 러시아 시대이다. 제정 러시아는 절대왕정시대를 말하는 것으로, 유럽의 경우 왕이 통치를 하였으나 러시아는 코사크족, 우즈벡크족, 타타르족 등 다문화를 지배했기 때문에 황제라 하였다. 농민들에게는 매우 암울한 시기였던 것 같다. 이 책에는 농민들의 암울한 부분이 세밀하게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귀족들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문화 이면에는 반대편의 누군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대하소설 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제 각각의 개성을 가졌고, 자신이 처해진 상황에 대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어필하고 있는데 이는 각 부류의 대표성을 가지고 대변하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레빈이라는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2권 대부분이 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예상대로 레빈 이라는 인물을 통해 톨스토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나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부분을 적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그의 성격을 100% 지지하지는 않지만 많은 부분 공감대가 형성이 된다. 천리를 달릴 수 있는 말이지만 사람 태우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야생마 같은 인물 같은 느낌이다. 타인의 주장에 반박하고  자신의 주장을 앞세우지만 자신감 있어 보이고, 이상주의가 아닌 현실주의에 가까운 인물 인 듯 하다.

 

세상은 틀에 갇혀있지 않다. 같은 사물을 보고 관심분야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레빈에게 시골은 삶의 장소(기쁨과 고통과 노동의 장소)인 반면, 이바노비치는 노동에서 벗어난 휴식의 공간이자 타락의 독소를 제거하는 해독제로 생각한다. 이렇듯 둘의 생각은 다르다. 사실 이것만으로 다듬어졌느냐 여부를 따지는 것은 무리이지만 레빈의 경우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젬스트보를 멀리하고 있다. 아무리 젬스트보가 기득권자나 부유층을 대변하더라도 그 속에 들어가 예산도 감시하고 편의 시설도 주창했어야 하는데 뜻대로 안 된다며 방관하는 것은 동조와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인지 못하는 듯 하다. 형은 이상주의에 가깝고 레빈은 현실주의에 가까운 것 같은데 반반씩 섞였으면 이상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스테판 아르카지치는 집에 돈은 갖다 주지 않으면서 집안의 돈을 다 끌어다 쓰는 바람에 다리야 알렉서드로브나는 레빈이 사는 근처의 시골로 거처를 옮겼다. 자신은 사치하고 가족들은 고생하는 것이 미안해서 인지 레빈에게 가족들을 부탁한 탓에 방문하여 키티의 소식을 듣게 되고 스테판 아르카지치의 만찬 초청으로 그의 집을 방문하여 키티를 만나고 서로 호감이 있어 결국 결혼에 골인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톨스토이가 이상형으로 생각했던 여성상이 키티 같은 여자였음에 틀림없다.

또한 그의 친형 니콜라이가 병색이 짙어 지며 레빈을 방문한다. 하지만 반가운 것도 잠시, 형은 고통 때문에 화를 내지만 죽음으로 가까워 지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투정을 다 받아 준다. 하지만 형은 떠나고 한 참 뒤 모스크바의 호텔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키티와 같이 가서 임종을 맞는다.

브론스키와 바람이 난 안나의 문제 때문에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는 이혼을 해야 할 것인지 용서를 해야 할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이혼을 하면 안나는 브론스키와 결혼하게 되어 그들은 행복해 지고 자신은 불행해진다는 결론에 불순한 마음으로 용서하고 한집에서 같이 살지만 얼굴은 대하지 않고 남남처럼 지낸다. 하지만 안나와 브론스키는 은밀하게 만나며 결국 아이까지 가지게 된다. 이로 인하여 안렉산드로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지만 내가 미워하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이혼소송을 제기한다. 안나가 출산 후 산후 열로 인하여 죽임의 경계에서 카레린에게 용서를 구하자 브론스키와 그녀를 용서하지만, 브론스키는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상급자들이 비난하자 전역 후 안나와 외국으로 떠나 버렸다. 과연 이들의 광적인 사랑에 찬사를 보내야 하는지 이성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 봐도 찾을 수 없는 귀족들이라 치부하고 방관해야 하는지 많은 독자들이 혼란스러워 할 것 같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알렉산드르의 삶이 안나의 사랑 때문에 엉망이 되어 버린다. 침착함을 잃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지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행복이 없어져 버리니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상과 현실, 불행과 행복, 부자와 빈자, 남자와 여자, 선과 악 등 대치되는 것에서 조화로움을 찾고자 노력한 작가의 노고덕분에, 대치되는 것들의 대립에서 인간의 감정을 세밀하게 엿 볼 수 있어서 흐뭇하고, 이 책을 읽는 것 만으로 지식창고가 가득 차는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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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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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하면 왠지 고지식하고 어렵게 느껴져서 즐기는 편은 아니었는데 해가 거듭할수록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고전을 간과할 수가 없어 틈틈이 읽으며 나름 고상을 떨고 있는 중 총균쇠라는 책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 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말이 가슴에 와 닿아 이 책을 주문하여 읽고 있다.

글을 아는 이라면 톨스토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들어 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접해본 이는 생각 보다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안나 카레니나의 리뷰를 쓰기 전에 톨스토이라는 작가를 알아보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되어 간단하게 발췌하였다.

톨스토이는 러시아 남부 야스야나 폴랴나에서 1828년 백작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부친보다 훨씬 저명하고 부유한 귀족의 외동딸로 톨스토이의 고향 야스야스 폴랴나를 지참금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그러나 부모를 일찍 여윈 탓에 다섯 남매는 친척집에서 성장했고, 16세에 카잔대학에 입학 했지만 대학교육에 회의를 느껴 3년 만에 공부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농노들을 대상으로 계몽실험을 벌이다 잠깐 동안 모스크바로 가서 이상주의와 쾌락주의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즐겼으나 그에 대한 환멸과 자괴감으로 괴로워 했으나 모순적이게도 이것이 그의 사상과 작품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군인 이었던 형 니콜라이의 추천으로 육군장교로 입대하여 체첸 공격과 크림전쟁을 경험한 후 전역하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독일을 여행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농민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세워 농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쏟았다. 백작의 아들이면 자신이 상류층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식인이나 상류층과의 교류를 불편하게 생각했다. 1862 34세에 18세의 소피아 안드레예브나 이슬레네프와 결혼하여 8남매를 두었지만 이상주의자인 본인과 현실주의자인 가족들과 성격차이로 힘들어 하였다. 그는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에 대해 숙고하며 신학과 성서 연구에 전념하였는데 기독교에 실망하고 자비, 비폭력, 금욕을 강조하는 기독교적 아니키즘을 제창하였다. 말년에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와 부활을 발표하며 러시아 정교에서 파문당하고, 러시아 정부와 갈등이 있었지만 필력으로 극복되고, 가족 중 유일하게 자기 편이었던 딸 알렉산드라에게 모든 저서의 판권을 상속한다는 유언장을 작성하자 아내는 남편의 행적을 감시하는데 이를 본 톨스토이는 격분하여 가출을 하여 기차여행 중 감기와 폐렴으로 결국 사망에 이른다.

톨스토이에 대해 알기 전에는 안나 카레니라 이야기가 허구려니 생각했는데 톨스토이의 생애에 대해 알고 나니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콘스탄친 드리트리치 레빈이 어쩌면 자신을 대변하고 그가 사랑하는 여인 키티는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인 상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만인들이 칭송하는 안나를 등장시켜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자신과 타인과 하느님에게 잘 보이기 위한 위선의 가면을 벗으라고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상주의와 탐욕주의는 현실과 맞지 않으니 현실을 즉시 하라는 것일까?

안나 카레니라는 스테판 오블론스키의 여동생이자 유능한 고위 관리인 카레닌의 아내인데, 미모와 재력 그리고 사교성까지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talent 였다. 아마도 표지의 그림이 그녀가 아닌가 싶다. 이야기의 전개는 오빠 스테판이 불륜으로 파국에 치닫자 이를 해결하고자 모스크바에 방문하여 올케 돌리를 만나 원만하게 해결하고, 돌리의 동생 키티의 초청으로 무도회에 참석하여 그녀의 잠재적 결혼 상대자인 브론스키와 춤을 추면서 사랑에 빠져 결국 그의 아이까지 갖게 된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자신의 사랑을 찾아 배우자와 가족을 배신하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있나? 이상주의나 쾌락주의자들에게는 가능한 일이고 현실주의자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를 표방하지만 지나친 자유주의는 사회를 전복시킬 수 있는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제한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사회 지도층으로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랑을 찾아 가는 모습이 개인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는 '사고'라고 배웠는데 본능을 이성에 앞세우는 인간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주인공 콘스탄친 드미트리치 레빈은 스테판 오블론스키의 친구이면서 1,000만평의 농지를 돌보며 사는 귀족인데, 이상적인 여인 키티에게 청혼을 했으나 거절당해 모든 것을 잊고 농사짓는 일에 열중하며 전원생활을 하던 중 스테판이 놀러와 키티의 결혼이 성사되지 않았으며 요양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 될지 모르겠지만 흐름으로 보아 레빈과 키티가 잘 될 것 같은 암시를 받았다.

개인적으로 1권의 등장 인물 중 가장 호감이 가는 인물이다. 저자 자신이 농촌 계몽을 하며 지냈던 에피소드를 일부 인용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2부의 이야기 전개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19세기에 나온 책이 21세기에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비슷한 모양이다. 과학이나 기술은 발전했지만 인간의 내면이나 본질은 전혀 변화가 없는 모양이다.

500페이지가 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고 2부가 궁금하다. 리뷰는 이만하고 책을 더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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