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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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현재까지 여전히 사랑 받는 이유에 대해 알게 해준 작품이다. 이 책 1권 시작하자 마자 나오는 이유처럼 사랑 받는 이유가 제각각 이겠지만 첫째. 19세기 작품이 21세기에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다. 둘째. 이백 년이 지났음에도 인간관계의 필수 요소인 정의와 인간의 심리는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셋째. 인간은 나를 위해 사는 사람보다는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여기서 남을 위한 부분은 봉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허영심을 말하는 것임) 넷째. 기득권들은 대를 이어 기득권을 유지하고 프롤레타리아는 대를 이어 가난을 유지한다는 점 등이다. 수백, 수천 년이 지났음에도 이런 것들은 왜 변하지 않는 걸까?

이 책의 배경은 제정 러시아 시대이다. 제정 러시아는 절대왕정시대를 말하는 것으로, 유럽의 경우 왕이 통치를 하였으나 러시아는 코사크족, 우즈벡크족, 타타르족 등 다문화를 지배했기 때문에 황제라 하였다. 농민들에게는 매우 암울한 시기였던 것 같다. 이 책에는 농민들의 암울한 부분이 세밀하게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귀족들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문화 이면에는 반대편의 누군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대하소설 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제 각각의 개성을 가졌고, 자신이 처해진 상황에 대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어필하고 있는데 이는 각 부류의 대표성을 가지고 대변하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레빈이라는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2권 대부분이 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예상대로 레빈 이라는 인물을 통해 톨스토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나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부분을 적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그의 성격을 100% 지지하지는 않지만 많은 부분 공감대가 형성이 된다. 천리를 달릴 수 있는 말이지만 사람 태우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야생마 같은 인물 같은 느낌이다. 타인의 주장에 반박하고  자신의 주장을 앞세우지만 자신감 있어 보이고, 이상주의가 아닌 현실주의에 가까운 인물 인 듯 하다.

 

세상은 틀에 갇혀있지 않다. 같은 사물을 보고 관심분야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레빈에게 시골은 삶의 장소(기쁨과 고통과 노동의 장소)인 반면, 이바노비치는 노동에서 벗어난 휴식의 공간이자 타락의 독소를 제거하는 해독제로 생각한다. 이렇듯 둘의 생각은 다르다. 사실 이것만으로 다듬어졌느냐 여부를 따지는 것은 무리이지만 레빈의 경우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젬스트보를 멀리하고 있다. 아무리 젬스트보가 기득권자나 부유층을 대변하더라도 그 속에 들어가 예산도 감시하고 편의 시설도 주창했어야 하는데 뜻대로 안 된다며 방관하는 것은 동조와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인지 못하는 듯 하다. 형은 이상주의에 가깝고 레빈은 현실주의에 가까운 것 같은데 반반씩 섞였으면 이상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스테판 아르카지치는 집에 돈은 갖다 주지 않으면서 집안의 돈을 다 끌어다 쓰는 바람에 다리야 알렉서드로브나는 레빈이 사는 근처의 시골로 거처를 옮겼다. 자신은 사치하고 가족들은 고생하는 것이 미안해서 인지 레빈에게 가족들을 부탁한 탓에 방문하여 키티의 소식을 듣게 되고 스테판 아르카지치의 만찬 초청으로 그의 집을 방문하여 키티를 만나고 서로 호감이 있어 결국 결혼에 골인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톨스토이가 이상형으로 생각했던 여성상이 키티 같은 여자였음에 틀림없다.

또한 그의 친형 니콜라이가 병색이 짙어 지며 레빈을 방문한다. 하지만 반가운 것도 잠시, 형은 고통 때문에 화를 내지만 죽음으로 가까워 지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투정을 다 받아 준다. 하지만 형은 떠나고 한 참 뒤 모스크바의 호텔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키티와 같이 가서 임종을 맞는다.

브론스키와 바람이 난 안나의 문제 때문에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는 이혼을 해야 할 것인지 용서를 해야 할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이혼을 하면 안나는 브론스키와 결혼하게 되어 그들은 행복해 지고 자신은 불행해진다는 결론에 불순한 마음으로 용서하고 한집에서 같이 살지만 얼굴은 대하지 않고 남남처럼 지낸다. 하지만 안나와 브론스키는 은밀하게 만나며 결국 아이까지 가지게 된다. 이로 인하여 안렉산드로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지만 내가 미워하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이혼소송을 제기한다. 안나가 출산 후 산후 열로 인하여 죽임의 경계에서 카레린에게 용서를 구하자 브론스키와 그녀를 용서하지만, 브론스키는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상급자들이 비난하자 전역 후 안나와 외국으로 떠나 버렸다. 과연 이들의 광적인 사랑에 찬사를 보내야 하는지 이성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 봐도 찾을 수 없는 귀족들이라 치부하고 방관해야 하는지 많은 독자들이 혼란스러워 할 것 같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알렉산드르의 삶이 안나의 사랑 때문에 엉망이 되어 버린다. 침착함을 잃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지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행복이 없어져 버리니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상과 현실, 불행과 행복, 부자와 빈자, 남자와 여자, 선과 악 등 대치되는 것에서 조화로움을 찾고자 노력한 작가의 노고덕분에, 대치되는 것들의 대립에서 인간의 감정을 세밀하게 엿 볼 수 있어서 흐뭇하고, 이 책을 읽는 것 만으로 지식창고가 가득 차는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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