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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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페이지 밖에 안 되는 분량의 소설이 현재까지 사랑 받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물론 소설을 읽자 마자 느낌이 팍 왔던 것은 아니고, 카뮈의 사상이나 철학 내지는 많은 해설서를 통해서 본질을 조금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실존주의라는 철학적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이 좋다. 실존주의에 대해 자세하게 알면 더 좋겠지만, 기본적인 개념 정도만 알아도 주인공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개인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실존주의는 첫째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다. , 타인이나 사물에 구애 받지 않고 지독할 정도로 솔직한 상태(아마 제도권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정도)를 말한다. 둘째 낙천적이고 긍정적이고 반 허무적인 철학이다. (역시 정신 나간 사람처럼 모든 환경에 적응을 잘 한다. 주인공 뫼르소처럼) 마지막으로 인간존재가 본질적으로 무의미하고 불합리 하지만 성실하고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충 이 정도 인식하고 책을 읽으면 뫼르소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맨 뒤 표지에 장폴 사르트르가 '이방인은 엄격한 질서를 갖춘 고전으로, 부조리에 관해서, 그리고 부조리에 맞서 쓰인 책이다.'라고 평을 해 놓았다. 알고 보니 사르트르 역시 실존주의자로 '인간에게 본질은 없다.'를 주장 하였다. 본질이 없다는 것은 정해진 틀이 없다는 말로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선택에 직면하고 그 선택을 함에 따라 우리의 삶이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이 옳던 그렇지 않던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주인공 뫼르소는 북아프리카의 알제에 사는 평범한 하급 샐러리맨인데, 양로원에서 죽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다음날, 해수욕장에 가서 여자 친구 마리와 해수욕을 즐기고, 희극 영화를 보면서 웃고, 밤에는 마리와 정사를 가진다. 그러던 중 같은 아파트에 사는 레이몽과 정부 사이에 문제가 있어 오빠가 개입하였는데 오빠를 패고, 그 오빠가 친구들을 불러 싸움이 나고 레이몽이 다쳤는데 뫼르소는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아라비아 인을 권총으로 살해한다. 이후 4발을 더 쏜다.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다.

아라비아인을 살해 것으로 재판에 회부되어 살해 동기를 묻자 '바닷가의 여름 태양이 너무 눈부셔서 죽였다고 대답하며, 죄의식도 없고 기도도 거부하며, 현재 생활에 행복을 느끼며 처형되는 날은 많은 군중이 밀려왔으면 하는 기대로 이야기가 종료 된다.

법이란 최소한으로 인간의 행동을 제약하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많은 이들은 이를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제나 또는 누구한테나 그렇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 7번 방의 선물에 나오는 용구나 변호인에 나오는 부림사건, 또는 주인공 뫼르소처럼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법이 최악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되는 이유도 많다.

가장 심한 경우는 변호인에 나오는 부림사건이나 이번에 발표된 서울 시청 공무원 간첩 사건처럼 국가가 개입하여 사건을 조작하는 것이다. 당사자들은 얼마나 억울할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국가는 미개한 국가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여기서 빠져 나가야 할 텐데 여전히 오리무중이니 걱정이다.

다음은 권력이 개입하는 사건이다. 7번 방의 선물처럼 경찰청장이 직접 나서서 조작하면 국가가 조작하는 것 보다는 낮은 단계이긴 하지만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나라는 부패가 심하다는 증거이다. 공무원이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자기네가 집행관이라 되는 것 마냥.......

다음은 언론이 특종을 노리고 조작하는 경우이다. 어쩌면 주인공 뫼르소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슈 사건이 꼴랑 2건 밖에 없는데 그 중에 주인공의 사건을 연재하며 조작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이나 내가 조작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분쟁이라고 한다. 이것은 법에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돈이 많은 사람이 대부분 이기긴 하지만........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보면 이 땅에 정의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알지 말아야 할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곤란함을 겪듯 사회를 알면 알아 갈수록 부조리 투성이다. 서로가 상대방을 돕고 배려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족이나 세대를 떠나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가치관은 공유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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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답지 않을 권리 - 강요된 남성성에 대한 철학적 도전
뱅상 세스페데스 지음, 고광식 옮김 / 명랑한지성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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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하고 학생은 학생다워야 하는데 남자 답지 않을 권리라니? 그렇다면 먼저 남자다움이란 게 무엇인지 알아보자. 첫째 강렬한 표정, 둘째 은근한 미소, 셋째 자연스런 침착함, 넷째 도를 넘지 않는 활력이라고 한다. 간단 명료해 보이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이 갖기 어려운 것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런 표정들은 기본적으로 많은 것들이 충족되어야 나올 수 있는 것들인데, 모든 것이 충족되는 사람들은 많지 많다. 재산, 명예, 준수한 외모, 늘씬한 몸매, 부드러운 매너, 스마트한 머리, 상대를 만족시킬 수 있는 스킬 ㅋ 등등

저자가 남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이런 남자다움을 배제하고 당당해 지라는 것인가? 현대의 남자들은 주눅들고 자신감이 상실되면서, 여자들에게 선택 받지 못해 포르노를 탐닉하고 스마트 폰을 애인 삼아 스스로를 가두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서 벗어나라고 주문 하는 듯 하다. 남자들이 주눅들고 자신감이 상실되는 이유는 첫째. 극단적인 성과주의를 지향하는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노동에 상처 받지 말라고 주문하고 있다. 둘째 똑똑한 여성들이 나오면서 그들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소득이 많은 일자리를 가지고 있어 성적 자기 주체성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셋째 인간적 가치가 없는 효율성 추구 때문에 성 본능이 억압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자다워지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가? 성적인 욕망을 회복해야 한다. 사실 남자들의 신체부위 등 노골적 묘사가 거북한 감도 없지 않지만 ........

저자의 주장은 남성들의 성적 욕망은 전혀 문제가 없는데 결혼이라는 제도 때문인 것 같다며 남자는 남자답지 않을 권리가 있고, 여자들은 여자답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길이 행복한 남자로 가기 위한 길임을 확신하고 있는 듯 하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꿈꾸고 그것을 희망한다. 행복한 가정은 그 이유가 모두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그 이유가 제각각 이다. 라는 안나카레니라의 법칙처럼 행복한 사람의 대부분은 스스로 삶에 만족을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행복에 성공이라는 것을 대입시키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의 말처럼 성공이 우리의 종교이고 최고 목표가 되고 있지만 성공은 다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성적인 성공은 유능한 섹스를 하기 위한 것이고, 지적인 성공은 유능한 두뇌를 얻기 위한 것이며, 학교 생활의 성공은 공부에 성공하기 위한 것이고, 인생의 모든 단계의 성공은 죽음을 잊기 위함이다.

자신의 삶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기본에 충실하자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주제가 흥미롭지만 내용은 많이 딱딱한 느낌이다.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철학적 소견이 가미되어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은 아닌 듯 싶다. 이분적으로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자답게 살 것인지 여부는 본인이 판단하여 실행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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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비룡소 클래식 16
루이스 캐롤 지음, 존 테니엘 그림, 김경미 옮김 / 비룡소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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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TV에서 방영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라는 만화영화가 기억난다. 예쁘장하게 생긴 꼬마 아가씨하고 왕비하고 트럼프 병정 그리고 토끼가 모험하는 걸로 기억이 되는데 내용도 생각나지 않고 책으로 읽어 본 적도 없어서 읽게 되었다.

동화책이라 그런지 내용도 그저 그렇고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전달받지 못했다. 약간 정신 없는 책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왜 이런 책이 지금까지 회자되며, 만화로 영화로 사랑을 받는 것일까?

책을 덮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어린이에게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 보다는 창의력에 초점을 맞추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이 숨어 있다.

우리 어린이 들이 더 나은 미래를 보장 받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한 밤중까지 책상 앞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생각하고, 그 들만의 세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

루이스 캐럴은 1832년 영국 체셔 주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럭비 공립학교와 옥스퍼드 대학의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에서 공부한 후 26년간 옥스퍼드 대학의 수학교수로 근무하면서 이 책을 펴냈고,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당초 이 책은 여러 독자를 대상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학장의 자녀인 로리나(앵무새), 앨리스, 에스디(독수리)를 주인공으로 하여 뱃놀이 중에 만들어 조지 맥도날드 자녀에게 보여준 다음 1865년 크리스마스를 기념해서 존 테니얼이 스린 삽화가 포함된 책을 출판하게 된 것이라 한다.

줄거리는 말하는 토끼를 따라서 굴속으로 들어가서 약을 먹는 바람에 몸이 커졌다 작아 졌다 하면서 각종 기이한 동물들을 (담배 피우는 애벌레, 가발 쓴 두꺼비, 체셔 고양이, 비둘기, 백작부인, 아기돼지, 모자 장수) 만나며 환상의 세계와 현실을 오가며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내 맘대로 마음에 드는 글, '고양이에게도 왕을 바라볼 자유가 있대요.' -> 어린이들도 자신만의 정체성이 있고 그를 행할 자유가 있어요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다들 자기 일에나 신경 써야 세상이 빨리 돌아간대요.!' -> 남의 기분이나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내 일에 먼저 집중하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

'다들 공정하게 경기를 하는 것 같지 않아. 서로 끔찍하게 말다툼만 해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어. 특별히 정해 놓은 규칙도 없는 것 같고. 있다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거야.' -> 기성세대들이 살아가는 데도 이와 다를 바 없는데 어린이들이 보는 세상은 더 어지러울 것이다.

백작부인의 말처럼 어떤 상황이든 교훈이 있기 마련이다. 고전에 답이 있을 수 있고, 동화에도 답이 있을 수 있다. 자신이 주어진 상황을 잘 대입해보면 모든 것이 너무나도 잘 들어 맞는다. 저자의 의도는 이 책에서 교훈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책 자체를 웃기 즐기라는 것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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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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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대학에서 명 교수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한국 독자들을 흥분케 하였는데 사실 그 책을 읽지 못했다. 오래 동안 베스트 셀러에 올라 있어 한 번 읽어 보고 싶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하지 못했다. 왜 그 책이 우리나라독자들에게 인기가 높은지 잘 모르겠다. 미국에서는 10만부 정도 판매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30만부가 팔렸다고 하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정의라는 것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어쩌면 하버드라는 포장지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

이 책 프롤로그에 소개된 '공정한 시민사회를 위하여'는 굳이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될 만큼 잘 함축해 놓았다. 우리는 좋은 삶을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공정한 공공선 없이는 좋은 삶을 실현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공공선과 개인의 자유가 대치될 때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가? 이 부분을 우리가 찾아내야 할 숙제다.

저자가 던져 준 4가지 tip을 가지고 숙제 하라고 주문하는 듯 하다.

첫째 시민의식, 희생, 봉사를 통해 공공선을 위한 건전한 시민 덕성을 배양해야 한다.

둘째 시장원리가 비 시장까지 파고들어 시장의 도덕적 한계가 모호해 졌다. 예를 들어 민간 사업자에게 전쟁을 outsourcing하는 것, 상업적 대리 임신의 증가, 영리를 추구하는 민영 교도소의 출현 등을 소개하였다.

셋째 빈부격차가 불평등, 결속감, 시민적 덕성을 방해한다. 딜레마 인 듯 하다.

넷째 정치와 법률이 도덕적. 종교적 논쟁에 참여되어서는 안 된다.

어려운 주제인 것 같지만 쉽게 풀어 보면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제 찾기에 앞서 정의, 도덕, 선 이란 뜻을 알아 봐야 할 것 같다.

먼저 정의란 무엇인가? ㅋ 결국 책 제목이 되어 버렸네.

이성적 존재인 인간이 언제 어디서나 추구하고자 하는 바르고 곧은 것을 정의라 한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정의라 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평등'을 정의로 보았고, 현대 철학자 롤스는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한 자유에 대한 권리와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득이 되고, 공정한 기회 균등의 조건에서 모두에게 개방되어야 한다.'는 말로 자유, 평등, 복자를 정의 라고 하였다. 또한 고대 중국에서는 인간이 준수해야 할 도리로 윤리적 의미도 포함 하였고, 제우스가 내린 정의는 '이것보다 나은 선한 것은 없다.', 플라톤은 지혜와 용기와 절제가 실현된 조화로운 상태라고 하였고, 벤담과 밀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정의로 보았다. 많은 학자들이 각자의 사상을 들어 이렇게 정의 하였지만 결국 만인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정의 인 듯 하다. 예를 들어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그러는 것

다음 도덕이란 무엇인가? 인간 상호간 또는 사회생활에서 개인이 가져야 할 당연한 의무(선과 악, 정의와 불의 등)를 말하는 것으로 윤리와 같은 말이다. 즉 생활양식과 생활관습을 정리하여 인간들이 공존하기 위한 규범으로 법과 비슷하지만 법은 외적 규제가 따르지만 도덕은 내적 규제가 따르는 것이다. 내가 봤을 땐 결국 정의와 도덕은 같은 뜻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선은 무엇인가? 넓은 의미로 긍정적 평가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을 말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행위 및 의지의 규정이라 한다. 가치 있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하는데 좋은 것은 보기에 좋은 것이나 사용하기 좋은 것 모두 선으로 본다고 한다. 하지만 본래는 자유에서 자각되는 것으로 자유의 근거이다.

핵심 키워드 3개를 알아 봤는데 거기서 거기 인 듯 한데 약간씩 차이는 있는 듯 하다. 그래서 결론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논쟁의 대상인 옳음을 선택해야 하는가? 좋음을 선택해야 하는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 좋음과 옳음에 대해 좀 설명 하자면 좋음은 행복(쾌락, 즐거움), 옮음(정의)로 보면 될 듯 싶다. 이렇게 풀어 놓으니 혹자는 선택이 쉽다라고 할 수도 있다. 왜냐면 남에게 보여지기 위한 보편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옮음을 선택하면 명분은 있지만 실리가 없다. 좋음을 선택하면 실리는 있지만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상주의자 인지 현실주의자 인지에 따라 선택이 갈라질 수 있다.

따라서 옳음을 선택할 것인지 좋음을 선택할 것인지는 개인이 판단해야 할 문제이지 마이클 샌델이나 철학자가 선택할 문제는 아니다.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부분은 쉽게 읽히는데 철학적 부분이 나오면 디디게 읽힌다. 나름 철학적 소견을 갖게 해준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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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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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경우 제목을 보면 읽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읽어 본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실제 읽었을 수도 있지만 제목, 지은이, 흐름 정도는 학습을 통해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책 또한 그렇다. 어려서 접했을 때는 그냥 재미 있는 우화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소련의 전체주의를 비판하였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이런 사실을 이제 알았다는 사실이 좀 창피하다.

조지오웰이란 작가는 영국 독립 노동당원으로 좌파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왜 소련을 비판하였을까? 이 부분이 조지오웰 이란 작가가 훌륭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맹목적으로 좌파라고 사회주의나 공사주의 또는 전체주의에 동조하는 것 보다 다수의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수 많은 정치인, 지도자, 공무원들이 있고, 각각의 사상을 부르짖고 있지만 결론은 국민의 행복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플라톤은 '대중은 우매하다' 라는 말을 했다. 개인대 개인으로 만났을 때 모두가 이성적이지만 대중으로 합류 했을 때는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군중심리에 편승해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만다.

동물동장이 소련의 전체주의를 비판했다고 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자본주의를 겨냥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나폴레옹이 스탈린으로 연결될 수도 있지만, 크게는 한 나라의 대통령, 또는 지도자, 작게는 회사 사장이나 상사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역대 대통령 중 잘했다고 칭찬받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다. 물론 공과가 있겠지만 사람들은 과만 크게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의 자질 문제인지 아님 그 자리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내가 그 자리에 올라가면 만인들을 이롭게 하는 정책을 펼칠 것 같은데 만인 보다는 나를 위한 정책을 펼치게 되니 말이다. 나 뿐 아니라, 당신이 그 자리에 올라도 마찬가지이고 철수, 근혜, 재인, 정은 ................누가 올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다. 조지오웰의 작품을 많이 접해 보진 않았지만, 핵심을 잘 잡아내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핵심 보다는 급소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야기는 전개는

수퇘지 메이저(마르크스, 레닌)의 설득으로 농장주 존스(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2)를 몰아내고, 똑똑한 돼지(볼세비치) 중에서도 더 똑똑한 나폴레옹(스탈린)과 스노우볼(트로츠키) 2강 체제를 출범시켜 동물 공화국을 건설하기 위해 여러 활동들을 하는 중 풍차건설(소비에트 5개년 계획)을 계기로 권력투쟁이 시작되며 스노우볼이 나폴레옹에 의해 추출되고 동물농장 전체의 적이 된다. (물론 나폴레옹의 자작극이긴 하지만)

스노우볼이 추출되자 나폴레옹은 스퀼러(프라우다로 러시아 기관지)를 대변인으로 내세워 동물들을 세뇌하고, 9마리의 개(비밀경찰)을 이용하여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며 1인 독재체제에 돌입한다. 모두가 잘 살고 평등하기를 바랬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고, 다른 동물들에게는 배급을 줄이고 노동력을 착취시키며 존스 시대보다 더 험난한 생활을 하게 하는 대신 자신은 존스 보다 더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사람처럼 행동을 한다.

심지어는 필킹턴(영국, 미국)과 우호관계를 맺으면서 거래(독소불가침 조약)는 프레드릭(독일, 히틀러)과 하였는데 이 일로 필킹턴과 교류는 단절이 되었다. 그러나 프레드릭과 거래에서 받은 5파운드짜리 지폐는 위조지폐였고 설상가상으로 동물들이 아침을 먹고 있을 때 프레드릭을 비롯한 15명의 남자들이 총을 가지고 침범하자 나폴레옹과 복서(프롤레타리아트)가 최선을 다해 막았으나 패배하여 목장 대부분이 점령되고 풍차까지 날려 버렸다. 동물들이 죽을 힘을 다해 인간들을 물리 쳤으나 암소와 양 세마리, 거위 2마리가 죽고 대부분의 동물들은 부상을 입었다. 상처 뿐인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나폴레옹은 일곱 발의 예포를 쏘고 풍차 훈장을 제정하여 스스로에게 수여하고 동물에게는 사과를 새에게는 옥수수를 개에게는 비스켓을 선물로 주는 무모함을 보였다. 갑자기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스스로에게 훈장을 수여한 생각이 나네.ㅋㅋㅋ 

미니무스는 스탈린을 찬양하는 시를 쓴 시인 마아콥스키를, 핑크아이는 스탈린의 검사원을, 새끼 돼지들은 소련 공산당의 권력 세습을, 혁명돼지들은 스탈인에게 반기를 든 트로츠키파의 공산당원들을, 클로버는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중산층이지만 무기력함을, 몰리는 러시아 혁명으로 축출된 부르주아 또는 러시아 백인/ 백군(황제의 군사), 벤자민은 지적이고 혁명에 반대하지만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는 현실도피의 지식인과 소련내 유대인(혹자는 조지오웰 자신), 뮤리엘은 지식인을, 닭들은 집산주의에 따른 사유재산 금지와 재산 국유화에 저항하던 부농을, 모세는 러시아 정교회를, 양들은 우매한 민중을, 들쥐는 소련 북쪽의 원주민을, 고양이들은 러시아 혁명과 공산주의에 소극적으로 저항하던 민중들을, 카드게임은 테헤란 회담을, 스페이드 에이스는 냉전을, 돼지와 인간은 소련과 서구 제국주의를, 윔퍼는 소련 체제의 진실을 모른 체 소련을 찬양한 서구 지식인(장폴 사르트르, 버나드 쇼, 소련과 거래하는 중립국), 존슨 씨를 실의에 빠지게 한 큰 소송은 러일전쟁을, 동물들의 반란은 러시아 혁명을, 외양간 전투는 러시아 내전을, 풍차는 드네프르댐을, 메이저 영감의 유골전시는 레닌의 시체를 방부 처리해 붉은 광장에 안치한 것을,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는 레닌의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구호를 상징한다.

짧지만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소설, 지식인 이라 함은 양심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많은 일이 발생하지만 용기의 부재로 불의에 눈을 감는 경우가 허다하다. 불의에 눈을 감는 것은 가해자를 방관하는 것으로 가해자와 다를 바 전혀 없다. 조지 오웰이 독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민중들은 좀더 영리해 지고, 지식인들은 행동하는 양심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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