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0 - 3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0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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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임명희는 수치심을 무릅쓰고 이상현을 찾아가 자신과 혼인가능여부를 타진한다. 이에 이상현은 본처와 이혼을 해야 하던지 아님 데리고 노는 창부라면 가능하겠지만 명희는 그럴 수 없는 여자라고 생각하고 거절한다. 그나마 잘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만약 명희를 선택 했더라면 또 한 여자의 인생을 망쳤을 것이다.

이상현은 기화의 집에서 기숙 하면서 '헐벗은 나무 밑에서' 라는 소설을 썼는데 내용은 친구와 부모에게 버림받은 지식청년과 소꿉동무였던 기생과의 사랑이야기였다. 자신과 기화를 주인공으로 한 것 같다. 조상을 잘 둔 덕에 하는 일도 없으면서 많은 이들이 인정해주고 여자가 따라는 걸 보면 인물이 출중한 모양이다. 이 정도 지지를 얻고 국가나 백성을 위한 일에 앞장 섰더라면 큰 재목이 되었을 것인데, 여전히 여자관계가 복잡하고 술이나 처먹으면서 인간관계도 직업도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있어 아쉬움이 많은 인물이다.

명희는 이상현에게 사랑을 고백한 후 거절 당하자 친일귀족 조병모의 장남 조용하와 결혼을 한다. 당시 조용하는 기혼이었으나 동생과 같이 명희를 본 후 동생 조찬하가 좋아하는 기미를 보이자 거액의 위자료를 주고 이혼하고 임명희와 결혼을 한다. 그러자 조찬하는 도망치듯 일본으로 건너가 노리코와 결혼한다. 부모에게 올바른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절제를 모른다. 소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취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소유한 것은 싶게 실증 내고 버리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명희와 조용하의 관계를 보면 행복한 결혼 생활은 아니다.   

야무네는 푸건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없는 살림에 이바지까지 준비하여 섬으로 들어갔는데, 딸의 병색은 생각보다 짙고, 사돈들은 죄인취급을 한다. 그 나마 사위가 죄인 취급하지 않고 딸을 위하는 것을 보고 다행이라 생각하고 돌아 오지만, 이어 푸건을 중매했던 대추나무집 노파가 '사위가 아프니 딸을 데려가라'는 전갈을 한다. 아들 떡쇠와 사돈집에 가서 푸건을 데려온다. 없는 사람들일수록 더 단합하고 의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실상은 더욱 몰인정하게 구는 까닭을 모르겠다. 아무리 무지하더라도 인간이라면 이성이 있을 텐데 토지에서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하나같이 이해하기 힘든 인물들이다.

홍이는 친구 삼석이와 일본에 갈 요량으로 부산에 왔는데 마음이 바뀌어 자전거 수리공으로 일을 한다.

장이가 생각나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일본으로 팔리 듯 시집 간다는 말을 듣고, 도망 갈 배짱도 없고, 시집 가라고 하지도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났는지 장이 에게 마음에도 없는 악담을 퍼 붓고 집으로 돌아온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라면 데리고 도망치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아비를 닮아 여자관계에 대해선 우유부단한 것 같다.

부산에서 벌어온 돈 50원 중 20원은 임이네 에게 주고 나머지 30원은 병든 아버지 용이에게 주려고 했는데 아귀인 임이네는 홍이의 주머니에서 남은 30원 마저 훔쳐가 버린다. 임이네가 이렇게 탐욕스러운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들의 탐욕 때문인가? 아니면 과거 굶주림 때문에 미래를 기약하기 위함인가? 모성애라는 것 조차 기대할 수 없는 인간의 말로는 예상대로 초라했다.

중학교까지 공부하고 인물이 훤칠한 용이를 본 김훈장 외손녀 점아기는 집안 어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녀 보연이와 혼인을 시킨다. 김훈장이 이 사실을 알면 관 속에서도 벌떡 일어났을 텐데 그 사실을 아직 모르는 모양이다.

평산리 사람들은 추석을 맞아 오광대 구경하던 중 지삼만의 밀고로 김환 일행이 헌병에게 쫓기는데 그들은 무사하고 대신 마당쇠와 홍이를 비롯한 젊은이 열여섯이 끌러가 문초를 당한다.

결혼 후 운전기사를 하고 있는 홍이를 못 잊고 일본으로 시집간 장이가 찾아와 간통을 하다가 시고모와 사촌 시동생에 걸려 홍이는 죽도록 맞고 처가에 얼굴 팔리고 장이는 일본으로 끌려 간다.

기화는 이상현의 딸을 낳아 혼자 기르다 산호주가 알게 되어 이상현에게 그 사실을 알리자 괴로워 하며 간도로 도망친다. 조강지처에서 낳은 아들 둘도 거두지 않았는데 기생에게서 생긴 딸이야 오죽 하겠는가? 개인적으로 참 못된 인간 이라 생각 하는데 저자가 지속적으로 이상현을 지지 하는 것으로 보아 필시 뭔가를 하긴 할 인물인 것 같다.

팔백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지는데 있어 작가는 비중이 있는 인물이나 그렇지 않은 인물이나 똑 같이 죽음에 대한 묘사는 간결하게 '죽었다' 라고 표현하였다. 느낌 상 왠지 인간미가 없어 보인다. 죽음이라는 것을 묘사하기 싫어서일까 아님 확정된 줄거리가 속에서 지면에 할애할 만한 비중이 없어서 일까? 죽음을 묘사한다고 줄거리나 흥미가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현실에서는 죽음이 매우 큰일인데 여기서는 예삿일 같아서 트집을 잡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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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강국을 다시 상상한다 - 방송통신위원회 2000일의 현장 기록
신혜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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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의 수익구조가 어떻게 되었든 프로그램이 재미있던 없던 개인적으로 별 관심은 없다. 하지만 언론이 한쪽 색깔을 표방할 때 겉 잡을 수 없는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우리가 가장 손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가 바로 방송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잘못된 보도가 여과 없이 나갔을 때 시청자는 액면 그대로 믿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도 시비 가리기 가 쉽지 않은데 나이든 사람들은 속수무책일 것이다.

때문에 정권을 잡으면 가장 먼저 손아귀에 넣으려고 하는 것 중 하나가 언론이다. 하지만 언론도 자기 색깔이 있기 때문에 자기 코드와 맞지 않으면 잘 잡히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왜 조중동은 새누리당을 지지 하는가? 서로 보수로 코드가 맞고 각각 이해 관계가 충족 되기 때문이다. 언론은 보수정당이 원하는 대로 국민을 현혹시켜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정부는 언론에게 먹거리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반대로 야당은 반대한다. 보수여론이 국민들을 보수화 하려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결국 양쪽모두 국민은 위한다는 명분아래 각 당의 실리만 챙기고 있는 것이다. 양비론자는 아니지만 그런 것만 눈에 보이는 걸 어쩌란 말인가?

정권을 잡은 쪽에서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먼저 방송통신위원회 구성을 여당3, 야당 2명으로 하고, 의결이 있을 경우 과반수 이상 찬성을 가결로 하게 되어 있다.

다음은 KBS 이사회 구성도 역시 여당 7, 야당 4명으로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입김이 바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태이니 KBS 지분 100% MBC도 정부의 손아귀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는 명분상 합의제일 뿐 독임제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 동안 방송통신 위원회와 최시중이 언론에 자주 등장한 일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방송통신 위원회라는 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최시중이 누구인 줄 몰랐다. 그런데 운전기사의 폭로로 파이시티로부터 뇌물 8억을 받은 사실이 언론에 나오면서, 이명박의 멘토이고 이상득의 절친이란 사실과 언론악법 날치기 법적 공방을 벌일 때 종편 사업자를 선정하여 조중동에게 종편을 나눠주고 그것도 모자라 황금채널과 중간광고까지 허용해 준 인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종편을 나눠가진 조중동은 예상과는 달리 시청률이 1%대 밖에 나오지 않자 적자를 메우기 위해 신문사 권력을 이용하여 대기업 광고 수주에 압력을 행사하여 광고 시장의 생태계 마저 와해시키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지역방송사와 신문사는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시중의 활약은 이것 외에도 2G에서 3G 전환 시 반대 여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측 주장을 밀어붙여 소송에 걸려 패소하지만 즉각 항소한다. 방통위라는 곳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으면서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기 보다는 통신사 이익을 위해 일한 똘아이 같은 짓을 일삼았다.

세 번째로 한일이 KBS 사장 정연주 해임과 언론을 장악한 일이다. 최시중은 정사장을 배임죄로 해임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다. 하지만 무죄확정 판결을 받았다. 정 사장이 무죄이면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해놓고 무죄를 받자 살며시 말을 바꾼다. 정연주 전 사장이 겪었을 심리적 고통은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내 진퇴 논의는 부적절하다며 자신이 뱉은 말에 책임도 지지 않은 뻔뻔함을 보였다. 국민도 언론도 법도 자기 앞에는 아무 문제되지 않는 것처럼 행동 하였다. 물론 최시중하고 정현주하고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발생된 일은 아닐 것이다. 정사장의 생각이 정부의 생각과 다른 것이 죄라면 죄였던 것이다. KBS에 이어 MBC, YTN 사장까지 모두 정부 입맛에 맞는 인물로 교체하면서 독일의 선동가 괴벨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나마 국민을 위해 한 것이라곤 이명박의 대선 공약 중 하나인 통신료 인하 정책을 앞세우며 기본요금 천원을 인하하였다. 통신요금의 원가가 얼마이고 이익이 얼마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기업에게는 철철 넘치도록 퍼주면서 서민들에게 생색만 내는 꼴을 보고 있으려니 속이 뒤집힌다. 과거에 일이만원 이었으면 해결될 통신비가 이삼십만으로 늘어나 생계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어도 정부는 남일 보듯 하는 걸 보면 정치인이나 관료들은 절대 믿어서는 안될 사람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최시중 딸이 서울시의회의원인데 재선한 박원순 서울시장을 버릇없이 몰아붙이는 기사가 갑자기 떠오른다. 돈독이 올라 공무원에게 후원 받아 오라고 했다나 뭐라나. 47살 먹은 여자의 재산이 80억 이라는데 누가 돈 독 올랐는지 모르겠네. 국세청은 뭐 하는 곳인지 모르겠다.

몇 년 전 TV 화질이 나빠 던 기억이 난다. 이유를 몰랐는데 지상파 재전송 때문에 지상파 방송사와 유료방송사의 다툼 때문이었다고 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이 딱 들어 맞는 말이다. 힘을 가진 두 집단이 시청자의 속살을 빼 먹을 요량으로 한판 했는데 이를 관리감독 해야 할 정부는 수수방관하고 그 사유도 설명하지 않은 체 슬그머니 지금에 이른 것이다. 힘없는 소비자는 언제나 봉인 것이다. 언제쯤 봉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현명한 리더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눈과 귀를 막고 좋은 말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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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9 - 3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9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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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이란 인물이 지식인으로 한 몫을 할 줄 알았는데 그의 행동을 보면 실망스럽다. 청백리 이부사댁의 훌륭한 가문에, 독립투사 이동진의 아들이고, 일본 문물을 접해 세계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 허송세월을 보내는 걸 보면 먹물들의 근성인지 아님 그 사람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나라를 위해 희생할 용기가 없으면, 시대 흐름에 맞춰 평등사상이라도 부르짖던가 아님  가장으로 최소한의 도리를 지켜야 하건만, 여자 꽁무니나 따라 다니며 술이나 축내고 있는 꼴이 눈에 거슬린다. 결혼을 했으면서 서희를 좋아하다 길상과 결혼하겠다고 하니 화를 내고 떠나서, 고작 찾아간 곳이 봉순(기화)이 였고, 심지어는 친구 동생인 명희까지 연정을 품고 있는 것을 보면 시정잡배들이나 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다. 김평산이와 뭐가 다른가? 알고 있으면서 행하지 않는 걸 보면 더 나쁘다고 볼 수도 있다. 이후 기조에 변화가 생겨 지식인으로 행동하는 양심을 가지고 나타났으면 좋겠는데.....

 

양반 중에 이상현이란 인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상놈 중에는 두만이라는 인물이 거슬린다. 윤보 덕에 목수일을 배워 돈푼깨나 만져 토지도 장만하고, 서울에서 데리고 온 쪼깐이 음식 솜씨 덕에 식당이 번창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술 도매상도 잘 되다 보니 졸부 대열에 합류하였다. 원래부터 자신은 독야청청했던 것처럼 동네 사람들을 무시하고, 심지어는 아이 둘을 낳은 조강지처까지 학대하는 모습이 가관이다. 돈을 벌면 사람이 이렇게 변하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말고 또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배우고 가진 사람들이 솔선수범으로 밝은 사회로 이끌어야 하는데 그들이 밝은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난감하다. 왜 예나 지금이나 배우고 가진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것일까?

이상현이나 두만이에 못지 않는 밉상은 임이네다. 용이는 갈 수록 마르고 병들어 가는데 그녀는 점점 포악해지고 몸집은 비대해져, 마을사람 모두가 손가락질 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아들인 홍이까지 임이네가 없어져버렸으면 한다. 독립투사를 꿈꾸던 홍이는 임이네 때문에 갈 수록 삐뚤어지고 이에 석이는 홍이와 용이를 임이네와 떨어뜨릴 목적으로 조준구에게 사들인 평사리 최참판네 집에서 기거하게 한다. 관수가 용이 약해 먹으라고 사온 오골계를 머리와 다리만 남겨놓고 처 먹은 다음 다시 물을 부어 끓이려다 홍이에게 걸려 모자지간 몸 싸움까지 벌어지는데  인두겁을 쓰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싶다. 과연 못 먹고 못 배운 탓인가? 인간의 본능일까? 특이한 여자인 건 틀림없다.

한복은 관수의 부탁으로 독립자금을 공노인에게 전달하러 간도로 가서 형 김두수를 만난다. 악인이든 선인이든 혈육은 당기는 모양이다. 김두수는 순사부장을 그만두고 독립토사를 잡으러 다니는 헌병에 소속되어 진가를 발휘하다 금녀를 사로 잡아 고문하다가 죽게 만든다. 김두수란 인간은 이성이란 아예 없고 오로지 동물적인 본능만 가진 것 같다. 친구의 아내이건 동료의 아내이건 상관없이 성욕이 생기면 범하는 동물 그 자체다. 같은 배속에서 태어난 형제의 성품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신기하다. 성선설, 성악설 어떤 이론 맞을까?

서희는 평사리 집을 조준구에게 거금 오천원을 주고 구입한다. 겉으로 친일행위를 하고 있지만 뒤로는 군자금을 열심히 대는 듯 하다. 길상과 김환, 송장환, 장인걸 등은 여전히 독립투사로 바삐 행동하고 있다.

조준구에게 처절한 복수를 할 줄 알았는데 거금을 선뜩 내 준걸 보니 스토리가 밋밋하고 싱겁게 되어 재미가 반감되는 듯 하다.

내심 대 놓고 독립자금을 지원할 수 없으니 오천원을 집 값으로 내주고 관수와 석이를 시켜 그것을 빼앗아 독립자금으로 충당하게 할 줄 알았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삼일운동은 고종황제 장례식을 기점으로 모든 국민들이 들고 일어난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중국의 5.4 운동과,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 운동, 이집트의 반영자주운동, 터키의 민족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이후 일제는 창씨개명, 언론탄압등 문화말살정책을 펴 나간다. 그러나 3.1운동의 한계는 자주 독립이 아닌 외세에 의존한 독립을 희망하였다. 물론 힘을 갖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리더들의 무지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임시정부도 그렇고 해방 후에도 지도자들의 대립이 자주 목격되는데 가고자 하는 목표는 하나일 터인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무슬림이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어 제노사이드가 심심찮게 자행되는데 사실 제 3자 입장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사람의 생명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것을 보면 하나의 목표는 표면적인 것이고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다른 잇속이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어떤 잇속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대다수의 신도들이 왜 지도자의 말만으로 움직일까? 대중은 우매하듯 종교나 정치나 모두 비슷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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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8 - 2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8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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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사리에서 간도로 건너온 강포수, 김훈장, 월선이 낯선 땅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강포수는 살인자 귀녀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 두메를 데리고 자취를 감췄다가 간도에 나타나 객주집을 하는 공노인에게 두메를 학교에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두메가 학교에 들어가자 선생인 송장환에게 삼백원을 맡기고 아들 얼굴도 보지 않은 채 산으로 들어가 오발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다. 강포수는 우직한 면이 있지만 천성이 착하고 사랑하는 이에 대한 헌신적인 희생이 독자들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귀녀가 감옥에 있을 때 전 재산을 바쳐 그녀를 감동시켰고, 두메의 성장에 누가 될까 오발사고를 가장한 자살을 선택한 사람이다. 자신이 살아 있으면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오명을 쓸까 그런 선택을 한 것이다.

김훈장은 최치수가 죽은 후 평사리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는 인물로 천성은 착하나 유교를 최고로 생각하는 고리타분한 유학자로 보수적인 인물이다. 시대 변화에 따라 진보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으나 인간의 도리를 아는 사람이다. 대를 이를 아들이 없이 먼 친척집에서 양자를 들여 대는 이었으나 평생 동안 험한 길을 걷다 타국에서 숨을 거둔다. 연로한 사람이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간도까지 건너 왔을까? 독립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평사리에서 쫓겨날 만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

월선은 용이가 있어 기쁘고 슬프고 외롭고 즐거웠다. 그래서 언제나 용이에 관련된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고 경쟁구도에서 조차도 용이를 위해 타협해야 했다. 그런 그가 죽었다. 월선과 용이의 사랑이 잘 되길 바랬는데, 반대로 임이네는 날로 건강해지고 탐욕스러워지는 반면 월선은 점점 선해졌지만 암에 걸려 죽는 바람에 그들의 사랑이 여기서 끝나 버렸다. 3자 입장에서 용이는 나쁜 남자였다. 하지만 월선의 입장에선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용이의 입장을 이해 했으며 이렇게라도 만남을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였다.

죽음을 맞이한 그들의 짧은 대화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듯 하다.

"'내 몸이 찹제?"

 "아니요."

 "우리 많이 살았다."

 "."

"니 여한이 없제."

  ". 없십니다."

"그라믄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이 말을 끝으로 서로 이별하였다.

이들의 사랑이 왜 아름답게 보일까? 이루어지지 못해서? 만약 이루어졌으면 어땠을까?

김환이 서서히 정체를 들어내며 주인공의 대열에 합류하는 듯 하다. 윤도집과 대립하고 혜관을 자기 편으로 끌어 들이고, 공노인을 만나고, 조준구까지 만남을 가진다. 공노인을 디딤돌 삼아 길상을 만나 자신이 서희의 작은 아버지라는 사실까지 오픈하고 서희와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한다.

할머니를 닮은 김환을 만났으나 누구인지 몰랐으나, 김개주와 할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과 자신의 어머니와 도망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크게 분노한다. "뜻대로 안 되는 것을 뜻대로 살아 볼려니까 피투성이가 되는 게야. 인간의 인연같이 무서운 거이 어디 있나." 라는 공노인의 말처럼 천륜이나 인륜을 거슬리려 할 때 우리는 힘든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공노인의 활약으로 조준구에게 빼앗긴 토지 대부분을 회수하고 서희 일가는 고향으로 귀국한다. 하지만 길상은 독립운동을 하느라 동행하지 못한다. 서희와 길상의 부부 생활이 원할 하지 못한 이유는 각각의 자격지심 때문인 것 같다. 조금씩 양보한다면 해피앤딩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서희의 친일 행위는 일제를 비롯한 힘있는 자들에게서 자신과 자신의 재산 그리고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이고, 길상은 다른 신분으로 결혼 한 것에 대한 죄책감, 서희의 친일 행위에 대한 자괴감 때문에 독립운동에 올인 하는 것으로 보인다.

큰 아들은 길상을 닮았고 둘째 아들은 서희를 닮았다. 향후 이들이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변할 것으로 보인다.

밀정 김두수는 순사부장으로 승진하여 길상과 서희를 협박하고, 금녀를 찾았으나 금녀는 예전의 사람이 아니었다. 신분이 달라졌다. 중국어에 능통한 수냥으로 위장한 독립운동가였으며 권총까지 소유한 거물이 되어 있었다. 물론 배경에는 장인걸이 있었다. 때문에 만만하게 접근 했다가 금녀에게 총까지 맞았다. 머리통이나 심장을 맞췄어야 하는데 다리에 살짝 스쳤다고 한다. 하기야 악인들이 한꺼번에 몰락해 버리면 소설이 재미가 없어지니까 재미를 위해 남겨 놨을 것이라 생각한다.

토지 주인공들의 궁극적인 적은 누구일까? 조준구 일까? 아님 일제일까? 아님 중국 일까? 아님 본인 자신 ?????

갑자기 김두수의 아버지 김평산 모습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바로 12일에 나왔던 '유해진'이란 인물이다. 김평산이 그를 꼭 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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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용사전 - 국민과 인민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철학적 인민 실용사전
박남일 지음 / 서해문집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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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용(御用)은 임금이 사용하거나 쓰는 사람이나 사물을 말한다. 그런데 과거의 극 존칭이 오늘날에 와서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권력자나 권력 기관에 영합하여 줏대 없이 행동하는 것'으로 전락하였는지 궁금하다. 임금이 이것들을 자신에게만 사용했던 것처럼 어떤 이가 자신만의 이익 때문에 권력의 시녀 노릇한 것에 대한 비아냥거림인 모양이다. 그렇담 책의 제목을 왜 어용사전이라 붙였을까? 비아냥을 한번 더 꼬겠다는 작가의 의도인 것 같다.

세상은 내가 관심 있어 하는 것만 보이고 들린다. 관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세상이 긍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보인다고 하여 그것만이 진리라고 확정하는 것도 부정적으로 보인다고 하여 그것을 거짓으로 단정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분법으로 나눠 시비를 가린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시비를 누가 가릴 것인가? 신이 아닌 이상 이 시비를 공정하게 가릴 순 없다. 때문에 각자의 주장을 내세우고 조정하여 조화를 이루면 되는 것이다.

저자가 자신 있게 기득권과 권력, 자본가들을 깠지만 이것 또한 옳은 것도 옳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분법으로 결정할 수 없다. 대신에 이 글을 옹호하는 사람과 비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 일방통행은 자연법칙을 거슬리는 행위이므로 쌍방통행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저자의 주장처럼 재벌을 갈기갈기 찢어 해체하면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낫아 질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또한 재벌들이 두려워 하는 것도 무서워 하는 것도 없이 천상천하유아독존 하는 것도 좌시해서는 안 된다. 저자가 이와 같은 표현을 보면 기회주의자로 낙인 찍을 수도 있지만 내 생각은 분명하다.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며칠 전 지인이 최대호라는 사람하고 하상욱 이라는 사람이 쓴 글을 보내 왔는데 너무 공감이 가서 빵 터졌는데 이런 말 장난이 사람의 마음을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는 구나 라고 생각 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저자의 주장인 것인지 아님 실제 내막이 그러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획일적 교육을 받은 문외한 독자로 저자의 표현에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고 반감이 가는 부분도 있지만 상대적 약자를 보호하자는 취지로 받아 들이니 이런 저자의 비아냥이 누군가 에게는 큰 힘으로 작용 하겠구나 라고 생각 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에서는 대인관계에서 말의 중요성과 적절한 어휘 사용을 주문하는 것 같지만, 어용사전은 불의에 분노하라는 묵시적 강요가 숨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분명 눈에 보이는 불의에는 분노할 수 있지만 이처럼 기득권들이 자신들의 언어를 만들어 서민을 농락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대항해야 할까? 우리는 눈뜬 장님의 형국을 하고 있다. 눈뜬 장님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좀더 똑똑해져야 한다.

조중동을 위시한 무책임한 언론도,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다 고 허풍 치는 정치인도, 국민에게 봉사한다고 하면서 국민 위에서 군림하는 관료들도,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재벌들도 우리가 똑똑해 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좀더 공부하여 똑똑해질 필요가 있다. 스스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를 보살펴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선거 때만 되면  망각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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