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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9 - 3부 1권 ㅣ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9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상현이란 인물이 지식인으로 한 몫을 할 줄 알았는데 그의 행동을 보면 실망스럽다. 청백리 이부사댁의 훌륭한 가문에, 독립투사 이동진의 아들이고, 일본 문물을 접해 세계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 허송세월을 보내는 걸 보면 먹물들의 근성인지 아님
그 사람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나라를 위해 희생할 용기가 없으면, 시대
흐름에 맞춰 평등사상이라도 부르짖던가 아님 가장으로 최소한의 도리를 지켜야
하건만, 여자 꽁무니나 따라 다니며 술이나 축내고 있는 꼴이 눈에 거슬린다. 결혼을 했으면서 서희를 좋아하다 길상과 결혼하겠다고 하니 화를 내고 떠나서,
고작 찾아간 곳이 봉순(기화)이 였고, 심지어는 친구 동생인 명희까지 연정을 품고 있는 것을 보면 시정잡배들이나 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다. 김평산이와 뭐가 다른가? 알고 있으면서 행하지 않는 걸 보면 더
나쁘다고 볼 수도 있다. 이후 기조에 변화가 생겨 지식인으로 행동하는 양심을 가지고 나타났으면 좋겠는데.....
양반 중에 이상현이란 인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상놈 중에는 두만이라는 인물이 거슬린다. 윤보 덕에 목수일을 배워 돈푼깨나 만져 토지도 장만하고, 서울에서
데리고 온 쪼깐이 음식 솜씨 덕에 식당이 번창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술 도매상도 잘 되다 보니 졸부
대열에 합류하였다. 원래부터 자신은 독야청청했던 것처럼 동네 사람들을 무시하고, 심지어는 아이 둘을 낳은 조강지처까지 학대하는 모습이 가관이다. 돈을
벌면 사람이 이렇게 변하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말고 또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배우고 가진 사람들이 솔선수범으로 밝은 사회로 이끌어야 하는데 그들이 밝은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난감하다. 왜 예나 지금이나 배우고 가진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것일까?
이상현이나 두만이에 못지 않는 밉상은 임이네다. 용이는
갈 수록 마르고 병들어 가는데 그녀는 점점 포악해지고 몸집은 비대해져, 마을사람 모두가 손가락질 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아들인 홍이까지 임이네가 없어져버렸으면 한다. 독립투사를
꿈꾸던 홍이는 임이네 때문에 갈 수록 삐뚤어지고 이에 석이는 홍이와 용이를 임이네와 떨어뜨릴 목적으로 조준구에게 사들인 평사리 최참판네 집에서
기거하게 한다. 관수가 용이 약해 먹으라고 사온 오골계를 머리와 다리만 남겨놓고 처 먹은 다음 다시
물을 부어 끓이려다 홍이에게 걸려 모자지간 몸 싸움까지 벌어지는데 인두겁을
쓰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싶다. 과연 못 먹고 못 배운 탓인가?
인간의 본능일까? 특이한 여자인 건 틀림없다.
한복은 관수의 부탁으로 독립자금을 공노인에게 전달하러 간도로 가서 형 김두수를 만난다. 악인이든 선인이든 혈육은 당기는 모양이다. 김두수는 순사부장을 그만두고
독립토사를 잡으러 다니는 헌병에 소속되어 진가를 발휘하다 금녀를 사로 잡아 고문하다가 죽게 만든다. 김두수란
인간은 이성이란 아예 없고 오로지 동물적인 본능만 가진 것 같다. 친구의 아내이건 동료의 아내이건 상관없이
성욕이 생기면 범하는 동물 그 자체다. 같은 배속에서 태어난 형제의 성품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신기하다. 성선설, 성악설
어떤 이론 맞을까?
서희는 평사리 집을 조준구에게 거금 오천원을 주고 구입한다. 겉으로 친일행위를 하고 있지만 뒤로는 군자금을 열심히 대는 듯 하다. 길상과
김환, 송장환, 장인걸 등은 여전히 독립투사로 바삐 행동하고
있다.
조준구에게 처절한 복수를 할 줄 알았는데 거금을 선뜩 내 준걸 보니 스토리가 밋밋하고
싱겁게 되어 재미가 반감되는 듯 하다.
내심 대 놓고 독립자금을 지원할 수 없으니 오천원을 집 값으로 내주고 관수와 석이를
시켜 그것을 빼앗아 독립자금으로 충당하게 할 줄 알았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삼일운동은 고종황제 장례식을 기점으로 모든 국민들이 들고 일어난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중국의 5.4 운동과,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 운동, 이집트의 반영자주운동, 터키의 민족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이후 일제는 창씨개명, 언론탄압등 문화말살정책을 펴 나간다. 그러나 3.1운동의 한계는 자주 독립이 아닌 외세에 의존한 독립을
희망하였다. 물론 힘을 갖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리더들의 무지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임시정부도 그렇고 해방 후에도 지도자들의 대립이 자주 목격되는데 가고자 하는 목표는 하나일 터인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무슬림이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어 제노사이드가 심심찮게 자행되는데 사실 제 3자 입장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사람의 생명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것을 보면 하나의 목표는
표면적인 것이고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다른 잇속이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어떤 잇속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대다수의 신도들이 왜 지도자의 말만으로 움직일까? 대중은 우매하듯 종교나 정치나 모두 비슷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