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달까지 - 파리에 중독된 뉴요커의 유쾌한 파리 스케치
애덤 고프닉 지음, 강주헌 옮김 / 즐거운상상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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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파란색 표지에 에펠탑이 있고 기차가 달까지 가는 그림이 있어서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책을 펼쳤는데 첫페이지를 다 읽기도 전에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음을 알았다.

사실 파리 하면 누구나 가보고 싶은 동경의 여행지중 한곳일 것이다. 이 책에서 간접경험이라도 해볼 겸 열심히 읽었는데 내용이 생각보다 많이 어려웠다. 원인은 독자가 프랑스에 한번도 가보지도 않았고 프랑스어도 전혀 알지 못하고 심지어는 프랑스에 관심도 많지 않아서일 것이다.

프랑스 하면 생각나는 것 해봐야 처음 설치할 때 애물단지로 여겼지만 지금은 없어서는 안될 명물이 돈 에펠탑하고 라붐에서 청순하게 나왔던 여배우 소피마르소, 축구선수 앙리나 지단 그리고 프랑스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 정도……..

작가는 뉴욕출신 기자로서 프랑스에서 5년동안 살면서 자신이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을 자신의 직업을 숨기지 못하고 기자의 시각으로 디테일하게 써 내려 갔지만 독자가 그의 시각을 따라가기가 약간 벅차다. 아마도 너무 이 책에서  너무 많은 것을 얻기를 희망해서 일 것이다. 싶게 건너가며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느낌이다.
어떤 부분은 상당히 비판적으로 지적한 것 중똘레랑스를 외치며 사회적 기득권을 인정하는 프랑스인의 이중적인 심리를 꼬집은 부분은 유독 프랑스 국민만이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국인, 독일인, 일본인, 유대인, 우리나라의 기득권들 조차도 그러하다. 심지어는 조선의 양반에서부터 현재의 이메가 바이트 까지도기득권을 가진 세력들이 그것을 내놓지 않는 다는 사실을 기자인 본인이 더 잘 알 것 같은데…..ㅋㅋㅋ
작가가 파리를 사랑한다고 했듯이 정치, 음식, 식당, 공원, 월드컵, 아파트, 심지어는 놀이 공원까지 자세하게 서술 하였다.
작가가 책 서두에 언급했듯이 여행자에는 두 유형이 있다. 볼 것이 있는 것을 보러 가서 정말로 보는 사람과 머릿속으로 어떤 상상을 한 후 그 상상을 실현해 보려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다.(p27)
파리를 여행해 보지 않는 사람으로 후자를 염두하고 책을 읽었는데 머리속에 파리의 모습이 잘 그려 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부분 부분 사진을 첨부해 준 출판서의 배려 덕분에 그나마 지루하다는 느낌에서는 벗어 날수 있었다.
책의 내용은 파리에서나 뉴욕에서나 심지어는 서울에서도 일상적으로 일어 날수 있는 일 인듯 보이나 작가의 필치가 뛰어남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프랑스 월드컵 부분에서는 직접 경기를 보아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지 경기장에서 내가 본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정도로 작가의 필치가 돋보였다. 아마도 다른 부분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이 프랑스 파리에 대한 지식이 없는 독자로선 그 부분을 같이 동조하기가 좀 어렵다.
파리에서는 외국인들까지 무상의료라는 사실은 조금 놀라웠다.
파리를 여행했던 사람들이 봤으면 훨씬 사실적으로 다가올 것 같고 앞으로 여행을 해볼 사람이라면 읽어봐도 괜챦을 듯……
책을 읽다가 보면 오타가 몇 자 보인다. 하지만 문맥상 내용이 크게 바뀌지는 않으므로 큰 문제는 없지만 독자로서 그런 오타가 보이면 책의 내용과 관계없이 평가를 낮게 할 수도 있으므로 출판사측의 세심한 교정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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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가장 잘 통하는 설득전략 24
이현우 지음 / 더난출판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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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고 나의 마음을 다스릴 수도 있는 마음의 학문인 심리학은 접할수록 매력을 느낀다. 맨 처음 접한 심리학 책은 로버트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이란 책이었다. 그 책을 보면서 맞아 맞아 을 연발하였었는데 우연챦게도 그 책을 옮긴이가 이현우 교수였고  설득의 심리학의 내용을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아주 잘 표현해 놓은 책이다.
설득의 심리학과 이책의 공통적인 6개의 원칙이 있다.
첫째 상호성의 원칙 먼저 주어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빚지고는 못사는 사람들이 많다. 일단 주는데 성공하였다면 거래의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둘째 일관성의 원칙 일단 시작하게 하라. 일명 문전 걸치기 전략이라고도 한다.
일단 상대방이 대꾸를 시작 했다면 이 거래 또한 성공하기가 쉬워 진다.
셋째 다수의 증거 원칙 네가 하면 나도 한다. 검증은 되지 않았지만 사람이 많은 식당에 음식이 맛이 있다.(?) 오직 5%만 창조자이고 나머지 95%는 모방자들이라 한다.
넷째 희귀성의 원칙 단 한번, 마지막 기회는 내가 잡는다. 백화점 세일 마지막이라고 하면 손님이 몰리고 홈쇼핑에서 마감5분전 하면 전화통에 불이 난다고 한다.
다섯째 호감의 원칙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 실제로 재판장에서 잘생긴 범죄자가 낮은 형을 받을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한다.
여섯째 권위의 원칙 힘 없으면 따라 가야지. 전문가가 말하면 설령 틀린 말이라도 꼼짝 못한다.
여기까지가 설득의 심리학에서 나오는 6가지 원칙이고 아래글이 이현우 교수가 한국 사람 입맛에 맞는 설득법이라고 구성해놓은 원칙들이다.
첫째 온정주의 문화 그 놈의 정 때문에….  맞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합리적이기 보다는 정을 중시하는 풍토가 많다.
둘째 전통적 연고주의 고래 힘줄보다 더 질긴 연줄…. 곳곳에 붙여 있는 프랭카드 00 향우회, 00 동문회, 00 전우회, 심지어는 같은 유치원 어머니 모임까지 ㅋㅋ
셋째 유별난 가족주의 가족이란 이름이면 만사 ok……. 우리 아이가 떠드는 것은 착하게 노는 것이고 남의 아이가 떠드는 것은 유별난 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넷째 외형을 중시하는 체면 의식 - 1등만 원한다. 우리나라 사교육비가 높아진 이유중에 하나일 것이다. 우리아이는 뭐든 잘해야 된다는 생각에 엄마는 파출부 나가고 아이는 과외 시키고……. 비싼 명품들이 가장 잘 팔리는 나라
다섯째 빨리빨리 속도주의 속전속결, 신속배달
치킨집에서 치킨 시켜놓고 닭요리 하는 동안 술이 취해서 정작 치킨은 쌓아가는 사람들….. 2번 본적 있다.ㅋㅋㅋ 닭시켜 놓고 30분만에 안왔다고 취소 시키는 사람..
이건 내가 한번 이런적 있다…….
일상 생활에서 흔히들 접하는 것들이 모두 심리학 이란 학문 이라니
남에게 사기 당하지 않기 위해선(?) 꼭 한번 읽어 봐야 할 책인 것 같다.
벌써 이책 읽은 지가 2년이 지났는데 우연히 회사 책꽂이 꽂힌 책을 보고 속독하고 리뷰를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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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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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간서치라고 불리우는 이덕무 선생을 좋아 한다. 다른 책에서 이덕무 선생을 접했을 때에는 일부분의 일화만 소개되어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그가 주연이 되고 그의 친구들의 조연이 되어 있는 책을 만나게 되어 매우 반가웠다. 看書痴 볼간, 책서, 어리석을 치, 어쩌다 이렇게 좋은 별명을 얻게 되었을까? 이 책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돈을 주고 스승을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독학으로 공부를 하면서 잘 모르는 내용이 있거든 밥도 먹지 않고 하루종에 방에 처막혀 있다가 마침내 그 뜻을 알아 냈을 때 좋아서 그 방에서 뛰고 소리 지르고 난리를 치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그를 간서치라는 별명을 지어 줬다고 한다. 어쩌면 오직 그에게만 어울리는 별명이 아닌가 싶다. 그의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이 서얼 출신들이다. 그 시대의 서얼출신들은 양반도 아니고 중인도 아닌 어정쩡한 신분이었다. 그래서 과거를 볼 수도 없었고 장사를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그들의 생활은 궁핍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책보는 일 이외에는 할 것이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그의 친구들을 나이 순으로 나열해 보자

대용(1731~1783)은 이덕무보다 10살이 많고 정상적인 양반출인이며 성리학 보다는 실학을 중시 하였고 특히 천문학에 조예가 깊었고 과학기술분야에 관심이 많았으며 실력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천거하여 그 능력을 널리 펼치길 바란 사람이다. 겉으로 보이기엔 묵자의 사상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박지원(1737~1805)은 이덕무 보다 4살이 많다. 이덕무는 스스럼없이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후배들과 친구를 맺었는데 박지원에게는 깎듯하게 스승으로 모셨다. 호는 연암이고 위의 홍대용과 친하게 지내며 서양의 신학문에 접했으나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독서에만 전념하다가 중후년에 미관말직이라고 할 수 있는 벼슬을 한적이 있다. 하나 그는 북학파의 영수로 실학을 강조하였으며 양반계층의 타락상을 고발하는 양반전, 호질, 열하일기, 연암집을 비롯한 수많은 저서들을 남겼으며 정경대부로 추증이 되었다. 여기서 정경대부란 정치와 경제의 큰 스승이란 뜻으로 사후에 내려진 벼슬이다.

백동수(1743~1816)는 이덕무의 2살 아래로 친구이며 그의 손아래 처남이다. 이 또한 서얼 출신이며 숙종때 검선이라 불리우는 김체건의 아들 김광택에게 조선검법을 전수 받는등 무예가 출중하여 당당히 무과에 합격하였지만 관직이 모자란 탓에 벼슬을 얻지 못했으나, 중후반에 장용영 초관에 임명되는 행운을 얻어 이덕무, 박제가 등과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하였으며 그는 실기를 담당하게 된다.
유득공(1749~1807)은 이덕무 보다 8살 아래로 증조부와 외조부가 서자출신이라 신분이 역시 자유롭지 못했으나 정조때 규장각 검서관으로 출발하여 마침내 신분이 자유로울 수 있었으며 중국 사절단을 따라 심양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발해에 대한 책을 썼는데 그것이발해고이다. 발해는 고구려 땅이며 발해가 고구려을 계승한 나라임으로 발해의 역사를 우리나라 역사에 편입하는게 타당하다고 역설하였다.
박제가(1750~1805)는 이덕무 보다 9살 아래이나 이 책에서 나오는 백탑아래서 위의 인물들과 실학에 대해 연구 하였으며 이 또한 규장각 검서관으로 편입되어 신분이 자유로워 졌다. 1778년에는 채제공의 수행원으로 청나라에 가서 새 문물을 접하고 나라가 부강하기 위해선 반드시 청나라의 문물을 도입해서 생산기술과 도구를 개선하고 상업을 장려하여 대외무역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으나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그의 저서로는북학의로 청의 선진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내편과 외편으로 구성되는데 내편은 수레와 배, 성벽, 궁실, 도로, 교량, 목축, 고시, 상업과 시장등 39항목으로 구성되어 있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기구와 시설에 대한 개혁론을 제시하였고 외편은 논밭과 거름, 뽕나무, 농업과 잠업, 관리의 월급등 17항목으로 농업기술의 개량과 외국무역의 이점을 설파하였다.
마지막 인물로 이서구(1754~1824)는 이덕무보다 무려 13살 아래이며 이는 서얼출신이 아닌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으나 연암 박지원 선생 슬하에서 수학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득공, 이덕무등과 어울리게 되었다. 아마도 나중에는 그리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조선시대의 사회가 신분제가 엄격하게 제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사간을 거쳐 이조판서. 대사헌. 우의정까지 지냈으며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과 함께 한시의 4대가로 알려져있으며 특히 오언고시에 능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면서 느낀 것인데 이덕무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이렇게 많은지 새삼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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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 - 불행한 시대를 살다간 두 명필을 위한 변명
최준호 지음 / 한얼미디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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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겔러리에서 메일 한통이 와서 확인 해 보니 창암 이삼만 선생의 글씨 2점을 첨부 하였다. 문득 잊고 있었단 원교와 창암의 생각이 났다. 맨 처음 글씨를 접한 건 열 서너살 무렵 겨우내만 생겼났던 서당에서 였다. 그때 천자문을 배우고 명심보감을 배울때는 별 뜻 없이 의미 없게 배웠었는데 이정도 나이에 들어서고 나니 주옥 같은 말들이 가슴에 사무치게 의미로 되돌아 온다.
몇 해전부터 옛 기억을 더듬으며 글씨를 써보기 위해 서예책을 몇권 사던 중에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라는 책을 같이 구매 하였었다.
글씨나 그림을 보고 가슴이 뛰어 본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원교와 창암의 글씨를 보고 가슴이 너무 두근거렸다.
아마도 나의 needs 와 일치 해서 그랬을 수 도 있다.
이 책에 보면 내가 처한 현실과 비슷한 문장이 나온다.

口諷牛毛心麟通角 실지 뜻은 입으로 소털 같이 많은 것을 외우고 마음으로 성인의 학문과 통한다.’인데 나는 이렇게 해석을 했다.
입으로 외우는 사람은 소털 같이 많으나 마음으로 통하는 사람은 기린뿔 같이 적다. 겉으로 하는 척 하는 것은 아무 필요가 없고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우러 나오는 것이 진정한 것이라고 하는 것 같다.

원교 이광사는 옥동 이서에서 출발하여 공재 윤두서, 백하 윤순으로 이어지는 동국진체를 완성 하였고 진...전서 모두에 능했으며 그의 독특한 서체인 원교체를 완성 하였다.
원교체는 글자의 자획이 웅장하고 기상이 빼어나며 단아하면서도 교하다.
창암 이삼만은 원교 이광사를 흠모하여 평생동안 원교체를 연마하였으며 끝없는 노력을 통해 김정희도 탄복할 정도로 건유한 필세를 특징으로 하는 창암체를 이루어 냈으며 특히 초서체에 능했다고 한다. 약간 독특한 점은 글씨를 쓰면서 갈필(칡뿌리), 죽필, 앵우필등 독특한 필기구를 사용하였으며 그의 명성은 중국에 까지 알려 졌다고 한다.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였는지도 이 책에 나와 있다.
본인이 병석에 있으면서도 하루에 천자씩 글씨를 썼으면 평생동안 벼루 3개를 닿아 없앴다고 하니…..그의 노력이 가히 가상하다 하겠다.
허나 이 두분 모두가 중앙으로 진출을 하지 못하여 크게 이름은 알려 지지 않았다. 그나마 원교 이광사는 명필로 이름이 알려 졌지만……….창암 이삼만 같은 경우 지방의 중인으로 거의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한다.
말년에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귀향을 가면서 창암의 글씨를 보고 비꼬았는데 귀향이 끝나고 이를 사과하러 들렀을 때 이미 그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가 이름이 널리 알려 지지 않는 이유는 제자와 후사가 없었던 탓이다. 그나마 그 지역에서 창암 이삼만 학술대회도 열리고 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역사에는 항상 승자만 살아 남아 있듯이 이 두분 또한 그의 희생양이 된 듯한 느낌이 나를 씁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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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지 않고 이기는 기술 묵자 - 고전에서 배우는 지혜 01 고전에서 배우는 지혜 1
친위 지음, 이영화.송철규 옮김 / 예문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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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자는 BC 470 ~ BC 390에 활동했던 사상가로서 공자의 제자였다고 한다. 공자보다는 좀 늦게 맹자보다는 좀 먼저 활동했던것 같다. 그러나 유가의 불합리한 부분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며 다른 학파 즉 묵가학파를 창시하였다. 그런데 별로 알려 지지 않는 사상가 묵자의 묵가학파가 왜 대두되기 시작 하였나?? 아마도 이명박 정부가 하도 실용 실용해서 나온 건 아닌지 모르겠다. 도대체 무엇이 실용이고 실리인지는 모르겠지만………..그렇다면 유가학파는 무엇이고 묵가학파는 무엇인가? 유가학파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공자, 맹자 그리고 순자를 거쳐 한나라에 이르러 봉건시대의 정통사상으로 자리 잡았으며 현재까지 일부 동양문화권에서는 그의 사상을 존중하며 따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어느 작가가 쓴 말과 같이 공자가 다시 살아 돌아 온다면 우리나라로 와야 한다고 했듯이…. 유가의 전통문화의 내용은 문인사회, 가정윤리, 인격과 생명존중를 중심으로 하는 예와 인이다. 인은 사랑을 말하는 것이고 예는 행동규범을 말하는 것이다. 인이 없는 예는 무의미 한다고 하였다. 유가에서는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가족에 대한 가족애, 다음에 친인척으로 확대되는 친족애, 거기에 더 나아가서 민족애로 확대된다는 것을 주장하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예절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묵자의 주장은 같은 듯 하면서도 다른점은 유가학파에서 인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예를 중요시 해야 된다는 것이고, 묵가학파는 예절 때문에 실용적이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이를 타파해야 된다는 주장하는 것이다.

묵자가 주장하는 것들을 잠깐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반전운동가 였다. 즉 개인의 이익 보다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 하였다. 전국시대에는 주변국들과 크고 작은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전쟁에서 이기든 지든 전체적으로 보면 양쪽 국가 모두가 손해 라는 것이다. 전쟁할 시간에 생산적인 사회 활동을 하면 부유해 질텐데 그 시간에 양쪽 국가 모두가 쓸데없는 소모전을 펼치니 벌것을 못벌고 써버리는 형국이니 이를 말리러 다니는데 많은 시간을 화려했다고 한다.
둘째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유가사상은 문인중심 사회를 주장하였는데 묵자는 중농주의를 주장 하였다.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생산적인 활동은 농사가 전부였으므로 묵자의 제자에게 까지 농사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교육하였다.
셋째는 어질고 훌륭한 자가 있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중용해야 한다고 주장 하였다. 이 부분이 공자와 많은 상이한 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의 사상은 이데올로기를 통한 통치할 수 있는 영원한 방법을 모색한 것이고 묵자의 사상은 출신성분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라고 생각되면 천거하여 중용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본인이 천민 출신이라 그것을 뼈져리게 느껴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넷째는 묵자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박애와 겸애를 주장하였고 본인이 직접 노동을 사랑하며 소박하고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하는 행동가였다.
다섯째 공자는 훌륭한 정치가 였다고 한다면 묵자는 고명한 전략적 방어 전문가 이자 군사전략가 였었다.
여섯째 공자는 예를 중시하여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후하게 지내고 상복을 3년동안 입어야 인간의 도리라고 교육하였지만 묵자는 죽은 사람에게 자신의 재산을 탕진해 가면서 할 필요는 없고 또한 3년동안 일을 안하는 것은 산업을 부진케하는 요인이라 하여 정면으로 반박하였다.
일곱째 묵자는 음악을 연주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반대 하였다. 이것은 재배층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 되었으며 시간과 돈만 들고 실익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이점에서는 그는 공리주의자였다 
여덟째 인명은 재천이란 운명론을 반대 하였다. 자기가 나고 죽는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열심히 살려고 하지도 않고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면에는 아마도 신분이나 부의 세습을 부정하는 것일 것이다.

이렇듯 현실적이고 실용주의가 왜 주목받지 못했나?

지배계층들은 자신의 부와 신분을 계속 세습되며 유지 되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묵자는 이를 반대 하였다. 기득권 층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지지를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사회에 진출할 기회가 거의 없어 진다. 그러니 자연히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줄어 들게 될 것이고 제자들이 줄어 들면 묵가학파는 점점 소멸되어 버리는 것이다.
묵자가 약소국들을 도와 주었기 때문에 소수의 집단으로 유지되어 그나마 이정도 까지 유지된 것이다. 묵자의 사상은 사회주의와 비슷한 점이 많다. 하지만 묵자는 사회주의자는 아니었다. 사회주의의 몰락은 욕심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묵자는 욕심을 배제하였다. 적어도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정치적인 야욕 때문에 국민들의 건강은 나몰라라 하며 광우병 위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쇠고기 협상을 한 딴나라당이나 왕권을 쟁탈하고 나서 국민들의 안위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 2메가 바이트의 행태나
광우병 때문에 쇠고기를 먹기 싫다고 시위하는데 그 것이 불법이라니…..도대체 시간이 갈수록 혁신적으로 변화되어야 되는데 오히려 더 역행하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뭘까? 우리 사회의 리더라고 공인하는 기득권 층들이 이 책을 보고 반성하며 리드해 나가야 우리나라가 잘될텐데…. 나 같이 아무것도 할수 없는 사람들만 이런 책을 보고 있으니….개탄 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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