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 - 불행한 시대를 살다간 두 명필을 위한 변명
최준호 지음 / 한얼미디어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모 겔러리에서 메일 한통이 와서 확인 해 보니 창암 이삼만 선생의 글씨 2점을 첨부 하였다. 문득 잊고 있었단 원교와 창암의 생각이 났다. 맨 처음 글씨를 접한 건 열 서너살 무렵 겨우내만 생겼났던 서당에서 였다. 그때 천자문을 배우고 명심보감을 배울때는 별 뜻 없이 의미 없게 배웠었는데 이정도 나이에 들어서고 나니 주옥 같은 말들이 가슴에 사무치게 의미로 되돌아 온다.
몇 해전부터 옛 기억을 더듬으며 글씨를 써보기 위해 서예책을 몇권 사던 중에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라는 책을 같이 구매 하였었다.
글씨나 그림을 보고 가슴이 뛰어 본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원교와 창암의 글씨를 보고 가슴이 너무 두근거렸다.
아마도 나의 needs 와 일치 해서 그랬을 수 도 있다.
이 책에 보면 내가 처한 현실과 비슷한 문장이 나온다.

口諷牛毛心麟通角 실지 뜻은 입으로 소털 같이 많은 것을 외우고 마음으로 성인의 학문과 통한다.’인데 나는 이렇게 해석을 했다.
입으로 외우는 사람은 소털 같이 많으나 마음으로 통하는 사람은 기린뿔 같이 적다. 겉으로 하는 척 하는 것은 아무 필요가 없고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우러 나오는 것이 진정한 것이라고 하는 것 같다.

원교 이광사는 옥동 이서에서 출발하여 공재 윤두서, 백하 윤순으로 이어지는 동국진체를 완성 하였고 진...전서 모두에 능했으며 그의 독특한 서체인 원교체를 완성 하였다.
원교체는 글자의 자획이 웅장하고 기상이 빼어나며 단아하면서도 교하다.
창암 이삼만은 원교 이광사를 흠모하여 평생동안 원교체를 연마하였으며 끝없는 노력을 통해 김정희도 탄복할 정도로 건유한 필세를 특징으로 하는 창암체를 이루어 냈으며 특히 초서체에 능했다고 한다. 약간 독특한 점은 글씨를 쓰면서 갈필(칡뿌리), 죽필, 앵우필등 독특한 필기구를 사용하였으며 그의 명성은 중국에 까지 알려 졌다고 한다.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였는지도 이 책에 나와 있다.
본인이 병석에 있으면서도 하루에 천자씩 글씨를 썼으면 평생동안 벼루 3개를 닿아 없앴다고 하니…..그의 노력이 가히 가상하다 하겠다.
허나 이 두분 모두가 중앙으로 진출을 하지 못하여 크게 이름은 알려 지지 않았다. 그나마 원교 이광사는 명필로 이름이 알려 졌지만……….창암 이삼만 같은 경우 지방의 중인으로 거의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한다.
말년에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귀향을 가면서 창암의 글씨를 보고 비꼬았는데 귀향이 끝나고 이를 사과하러 들렀을 때 이미 그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가 이름이 널리 알려 지지 않는 이유는 제자와 후사가 없었던 탓이다. 그나마 그 지역에서 창암 이삼만 학술대회도 열리고 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역사에는 항상 승자만 살아 남아 있듯이 이 두분 또한 그의 희생양이 된 듯한 느낌이 나를 씁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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