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 스펜서 존슨
스펜서 존슨.래리 윌슨 지음, 안진환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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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성공은 과연 무엇일까?

성공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까?

행복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일까?

이런 명제와 함께 이책을 시작해 본다.

 

스펜서 존슨의 책이 새로 나왔다는 소식에, 마치 중독된 사람처럼 다시 이책에 끌렸다.

이번책을 읽은 소감은 그동안의 스펜서 존슨의 책과는 조금 다르게, 문체도 길어졌고,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많은 수식은 붙은 감이 있었다.

하지만, 나름 내 생에, 앞에 시작한 명제를 던져주는 책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줄수 있었다.

 

성공. 행복.

이 두단어는 내가 가장 갖고 싶어하는 인생의 목표중 하나이다.

성공하고 싶다. 특히 물질적으로 성공하고 싶다.

얼마냐고 묻는다면, 내 평생 돈걱정안하고 편안하게 풍요롭게 살수 있을 정도로.

행복하고 싶다. 특히 정신적으로 행복하고 싶다.

얼마큼이냐고 묻는다면, 눈감고 잠들기 전 편안함 속에서 잠들수 있고, 눈 뜨고 일어나면서 다가올 하루가 기대되고 설레이는 정도로.

이 두단어를 묵어서 생각해 본적이 없다.

하나는 분명 물질적이고, 다른 하나는 분명 정신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책을 읽으면서, 너무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빠져, 따로따로 생각하고 살지 않았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성공의 중심 (세일즈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었고,

내가 지향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일을 하고 만족감을 얻어야 하며,

나뿐만 아니라, 상대방역시 행복감과 만족감을 얻어야 하는 것이 바로 성공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물론 이건 자의적인 해석일수도 있다.

세일즈맨 (스스로는 세일즈퍼슨이라고 칭함), 대기업 CEO의 프랭크의 말과 대니의 대화의 중심에는 세일즈가 있었다.

하지만, 세일즈를 좀더 광의적으로 해석해 본다는 앞서 내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렇게 성공을 바라보면, 행복한 사람이 바로 성공한 사람일 가능성이 훨씬 높아보였다.

1분세일즈. 목표, 칭찬, 반성 등을 통해 스스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도출해 보고, 스스로 만족감을 높이고, 상대방의 만족감을 고취시키는 행위를 통해 행복감과 성취감을 얻게 되고, 자연히 성공이 따라온다는 것.

사실, 세일즈를 주로 하고 있지 않지만은 이 1분간의 목적, 칭찬, 반성은 정말 도움이 될 아이디어로 보였다.

그것이 정말 성공의 지름길일까? 라는 의문을 완전히 떨친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런 과정을 통해 행복감과 만족감은 얻을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결국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는 마지막 명제가 정답에 가까울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난 성공하면 행복해 질것이라고만 생각하던 좁다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조금은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볼수 있을거 같았다.

성공. 행복.

반드시 내 인생에서 두가지 모두를 손에 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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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빌 브라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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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만나면 즐거운 이유는 몇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이유중에서,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어린시절의 추억을 공유하고 함께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생활하면서 지내는 동안 어린시절의 추억은 잘 떠올리지 않고 살아가지만,

친구를 만나거나, 오랜만에 어린시절의 다큐같은 것을 보면 새록새록 떠오르는 추억과 함께 미소가 번진다.

이책은 마치 어린시절의 친구를 만나, 카페에서 도란도란 수다를 떠는 기분을 나에게 느끼게 해주었다.

물론 작가는 외국인이며, 만나본적도 없을뿐만 아니라, 나보다는 20~30년 정도 나이가 많은신 분이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의 친구이자, 동지였다.

 

선더볼트 키드. 1951년생. 

유명한 야구선수나, 축구선수 또는 피구를 잘하는 그런 아이가 아닌 미국 아이오아 디모인 근처에서 사는 평범한 아이, 악동이었다.

하지만, 나와 선더볼트 키드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비록 다른 나라, 다른시대이지만, 공통적으로 각 나라의 번영기에 태어났다는점.

미국이 전세계의 경제를 담당하고 있던 시기에 선더볼트 키드는 풍요롭게 자라났으며,

나역시 새마을 운동이 지나고, 우리나라 경제부흥의 시대에 태어났다.

따라서, 선대보다 더 풍요롭고, 또한 후대보다 더 순수한 생각을 가진 시대에서 태어난 행운아들이었다.

요새 아이들은 밖에서 뛰어노는 재미도 모르며, 학원에 시달리지만,

선더볼트 키드와 나는 아침이 지나면, 저녁먹을때까지 집에 들어가면 안된다는 의무가 있는 듯이,

온종일 밖을 쏘다니며, 동네 또래 아이들과 말썽을 피우거나 싸우거나, 장난을 치며 놀았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그시절 나를 중심으로 나와 친하거나 나와 관계되는 인간관계만을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나, 행동들이 너무나 닮아있었다.

운동화끈 하나, 만화책 한권, 공한개가 소중했던 나와 선더볼트

그 작은 하나가 하루종일 또는 며칠동안의 놀이감이 되었고, 탐구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그시절 아이들과 나와 선더볼트는 순수하고 단순하고, 어리숙하고, 엉뚱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책은 만약 1951년에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읽었다면, 그 공감도가 나보다 더했을리라 생각한다.

아련한 어린시절의 추억속 여행, 오래된 낡은 앨범을 만나는 기분.

이것이 이책을 만나면서 즐거웠던 가장 큰 이유이다.

성장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순수하고, 즐거운 이야기였고,

그렇다고 단순 추억놀이라고 보기에는 깊은 감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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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체
박범신 지음 / 푸른숲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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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체' 이책 제목에서 난 어떤 장르인지, 어떤 스토리일지 전혀 짐작조차 못했다.

촐라체 (cholatse)가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산 이름인지도 몰랐던 내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박범신님께서 이 소설을 블로그 (http://blog.naver.com/wacho)에 연재하였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이책을 접하게 되고 알게 되었으니, 몰랐던 것이 당연하다.

 

산악소설. 처음 접하는 장르에다가 전문산악용어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초반에 고전을 하였지만, 점점 이 새로운 장르와 박범신 작가의 필력에 빠져들어갔다.

마치 등산을 할때 등산 초반에는 다리에 통증도 오고 힘이 들지만, 어느 순간 고비를 넘어서면, 통증없이 꾸준히 올르수 있고 그때부터 산이 내게 다가오듯이 그렇게 이 촐라체는 다가왔다.

이책안에는 여러명의 등장인물이 있고, 그들 각자의 시선과 삶이 이 책속에 담겨있었다.

 

하나뿐인 하들을 잃은 '나'와 이혼의 아픔을 겪은 나의 교생시절 제사 박상민, 그리고 상민과는 형제이지만, 아버지가 다르고, 그 아버지때문에 도망중인 하영교는 서로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촐라체에 오른다.

촐라체에서 등장하는 또하나의 인물 캠프지기, 그 역시 상처를 갖고 사는 사람이었다.

정상 6440m인 촐라체. 그 높이만으로도 예상이 되듯 이들의 산행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정상에 도착하고, 하산을 하게 되지만, 하산길역시 그들에게 쉽지 않았고, 결국 그들은 조난을 당하게 된다.

이처럼 이들은 극한의 상황, 죽음의 사선을 넘나드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이 순간에 그동안 삶을 억누르던 상처와 아픔을 벗어나 진정한 이해와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그들이 진정 원하고 바라던 것을 그 극한의 상황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열게 되면서 삶에서 좌절 대신 사뢍과 용서와 열망을 얻게 된다.

 

우리도 촐라체의 등장 인물처럼 역시 상처와 아픔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또한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미워하고, 때로는 아파하면서 그렇게 안으로 안으로 곪아가며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것은 미움과 복수가 아니라, 자유와 사랑 그리고 열망이 아닐까 싶다.

마치 그들이 촐라체 조난에서 얻은것 처럼.

그들이 촐라체에 오르는 이유는 실낱같은 희망때문이었고, 촐라체에서 맞게 되는 극한 상황, 그리고 좌절된 삶을 극복할수 있었던 이유는 용기였다고 본다.

우리가 진정 삶속에서 원하는 것을 얻고, 삶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희망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단순 산악소설로만 보지 말아 달라는 작가의 당부가 아니더래도, 이 촐라체를 읽고 나니,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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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악녀
페이 웰던 지음, 김석희 옮김 / 쿠오레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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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책은 '패미니즘 문학의 걸작'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어 개인적으로 많은 기대감을 갖게 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너무 큰 기대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기존 패미니즘 작품과의 두드러진 차이가 없어서인지 기대에 못미치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난 이책은 여성들에게 읽기를 권하고 싶다.

이책 속에는 비록 여성들에게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해 주시는 못했지만, 여성이 사회속에서 그리고 본능적으로 가지는 허와 실을 단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세명이다.

여기서 이미 짐작이 가능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남자 1명, 여자 2명. 여기서는 이미 스토리가 대강 그려질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 여자 한명은 남자의 조강지처이고, 또다른 여자 한명은 남자의 애첩이다.

남자의 이름은 보보, 조강지처의 이름은 루스, 애첩의 이름은 메리피셔.

보보는 자신의 조강지처이자, 가정을 위해 요리를 하고, 정원을 가꾸고, 청소를 하는 루스를 버리고, 등대탐에서 연애소설을 쓰며 황상속에 사는 메리 피셔를 선택한다.

남자들의 흔한 선택이며, 뻔한 스토리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스토리이기도 하다.

난 루스의 모습에서도 메리피셔의 모습에서도 서로 상반되지만, 여자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단면들을 볼수 있었다.

어쩌면, 이는 가정을 지키려는 그러면서도, 남성을 유혹하는, 그리고, 공주가 되고 싶어하는 본능적인 그리고, 원초적인 여성의 공통심리일것이다.

에덴 그로브의 넓은 마당을 가진 집에 사는 것으로 가정을 지키려는 본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루스와 등대탑에서 살면서 언젠가 올 왕자님을 기다리는 공주를 대변하는 메리가 마치 여성의 단적인 면을 두드러지게 표현했을뿐, 둘다 모두 같은 여성의 본능이다.

그저 안타까운 것은 가정을 지키려는 루스는 못생겼으며, 공주가 되고 싶어하며, 공상속에 사는 메리피셔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가정파탄은 이 책 이야기의 큰 흐름을 만들게 된다.

 

이 가정파탄의 전적인 책임자인 보보, 하지만, 단순하기 짝이 없고 여자를 잘 모르는 보보는 화를 자초하게 되는 한마디를 루스에게 내뱉는다.

"당신은 최악의 여자야, 사실 여자라고 할수도 없어, 당신은 악녀야"

왜? 못생겨서? 가정을 위해 헌신해서? 보보 자신의 맘에 들지 않아서?

적어도 루스는 못생겼지만, 바보같이 남편을 믿었을뿐, 악녀는 아니었다.

보보가 뱉은 이 말은 결국 루스를 악녀가 되게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보보에게 "최고의 여자, 천사"가 되기로 하는 것이다.

자신이 그토록 지켜왔던 가정과 아이들을 버리면서까지...

이것이 어쩌면 또하나의 여성의 원초적 본능일거라고 본다.

흔히 바람피는 남편을 때리기보다는 애첩의 머리끄덩이를 붙잡는 우리나라의 여성들에게서 이런 모습은 보인다.

질투? 글쎄 난 질투라고만 정의하기에는 뭔가 더 복잡함이 있지 않을까 싶다.

직접적인 가정 파탄의 책임자 보보에게 복수를 함에 마땅하지만, 복수는 보보가 아닌, 메리를 향하게 되고, 황당한 선택을 통해 다시 보보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한다.

 

이점이 이해가 가면서도 이책에서 기대에 못미치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 좀더 발전적인 건전한 방향을 제시하기 보다는 문제점과 한계만을 들어내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어쩌면 페이 웰던은 그 몫을 독자에게 남기는 것일수도 있다.

그저 페이 웰던은 얼마나 황당한 선택을 여성들이 하는지 경종을 울리고 싶었을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패미니즘 문학의 걸작이라고 표현할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좀더 발전적인 방향 제시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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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쟈핑와 지음, 김윤진 옮김 / 이레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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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이 단어는 참 어려운 단어같다.

인지도와 공감도 그리고, 만남의 정도에 따라 각자 개인적 기준에 의해 친구와 아는 사람으로 나뉠수 있다는 점에서 친구의 의미는 참 다양하다고 본다.

그저 자주 만난다고 공감과 교감을 꼭 이르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공감하고 교감을 나누는 사이라고 반드시 서로의 삶이 닮아있거나 교집합을 이루고 있지는 않은것 같다.

더구나, 때로 친구에게 상처받고, 좌절을 경험하기까지 ㅎ나다.

또 배신당하기도 하고, 원수가 되어 서로에게 상채기로 남기도 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친구에게 받은 상처는 매우 치명적이다.

그런 허와 실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서로 사귀며, 친구라 불리기도 친구라 부르기도 한다.

 

이 책속에는 저자 쟈핑와의 친구들이 있다.

쟈핑와의 친구에는 친부모같은 작은 어머니를 비롯하여 서로의 재능을 아껴주는 친구들, 삶을 내어주는 친구들, 그리고, 친구의 친구등 다양하다.

쟈핑와가 가장 책 처음에 작은 어머니를 언급하였듯이 작가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친구는 바로 그의 작은 어머니였다.

처음 작은 어머니 이야기를 읽으면서, 부모님이 따로 계셔, 부모 가족과는 별개로 친구의 작품의 처음을 장식하였구나 라는 씁쓸함도 들었지만, 친구를 가족보다 소중히 여기는 쟈핑와의 마음을 알게 되면서, 작은 어머니의 서두 등장이 남달리 다가왔다.

 

친구와 어울려 있는 것을 좋아하여 가족들에게 소원한 작가 쟈핑와 처럼 그의 친구들 또한 쟈핑와와의 삶속에 고스란히 함께 하고 있었고, 또안 그 친구들 속에는 작가 쟈핑와의 삶과 가치관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그렇게 친구들의 삶과 쟈핑와의 삶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사, 세상사가 단지 한사람만이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삶을 공유하고 생각을 나누고, 감정을 교류하며 그렇게 부딪치며 살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특히 이 쟈핑와의 책 친구를 읽으면서, 친구들 속에서 쟈핑와를 발견하게 되고, 쟈핑와의 친구들속에서 공통된 느낌을 받게 되면서, 친구들은 그렇게 비슷하게 닮아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책속의 많ㅇ느 쟈핑와의 친구와 그 누군가의 친구들, 그렇게 그들을 통해 쟈핑와를 만날수 있었고, 작가의 삶에 대한 자세와 가치관을 옅볼수 있었다.

누군가도 나의 친구들을 통해 나의 모습을 볼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몇몇 친구들이 문뜩 문뜩 떠오른다.

그동안 소원했던 친구들에게 안부전화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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