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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자오선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코맥 매카시.
나는 올해 그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처음 만났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난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았지만,
이번 "핏빛 자오선"은 그보다 더한 강렬함을 심어주었다.
이번 그의 소설은 살아남기 위한 살인, 명분이나 명령에 의한 살육도 아니었다.
그저 악, 악, 악, 악만이 존재하는 살육의 현장이었다.
고통스러웠다.
가슴과 등골이 서늘해지고, 아팠다.
"설마, 설마", "이럴수가, 어떻게" 란 소리를 반복할수 밖에 없었다.
이름없는 소년이 머리갖구 사냥꾼인 글랜턴의 부대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홀든 판사를 만나면서 잔혹한 살육은 절정에 다다르게 된다.
특히, 글랜턴 원정대, 홀든 판사, 그린 목사, 화이트 대위라는 이름이 실제 존재한 인물들이고, 그동안 알고 있었던 서부개척 시대의 상황보다는 더욱더 잔혹하고 아비귀환의 상황이 마치 이책속에 사실적으로 녹아있는 듯하여 섬뜩했다.
이러한 잔인한 현장들이 단조롭고, 감정이 전혀 들어갈 틈이 없는 간결한 문체들과 함께 뒤엉켜 마치 악마의 나래이션, 죽음의 찬미처럼 다가왔다.
왜 코맥 매카시는 이런 현장을 400페이지가 넘는 책에 담았을까?
그는 이소설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제목이 핏빛 자오선인것을 보면, 한 시간대를 의미하는 자오선, 즉 한시대의 핏빛역사를 기록하여, 서부 개척시대의 참극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듯 하였으며,
지구 자전의 흐름속에서 다시 그 핏빛 자오선의 시기가 올 것이라는 경고 암시를 갖고 있는 듯 하다.
그렇다. 세상은 강대국, 강자들이 일으키고 벌이는 전쟁으로 인해 역사는 흘어왔다.
삶과 인류의 역사는 죽음과 인류역사의 암흑기 즉, 전쟁을 통해 발전하였고, 이어져가고 있다.
코맥 매카시는 "핏빛 자오선"을 통해 세상이 죽음과 전쟁에 의한 것임을 이야기 하고 있었으며, 그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이었는가를 각인 시켜주는 듯 했다.
마지막 나의 바램을 무지막지하게 짓밟고, 마흔중반에 이른 그 이름없는 소년의 잔혹한 죽음을 선택한 결론에서도 코맥 매카시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다.
징그럽고, 역겹고, 소름끼치는 대머리 홀든 판사는 결국 그 이름없는 소년이었던 남자를 죽이고, 춤을 춘다.
그는 핏빛 자오선 즉,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악한 본성의 표상이자 죽음의 화신이었다.
영원히 뿌리 뽑히지 않는.....
핏빛 자오선, 그리고, 코맥 매카시가 하고자한 이야기는 전쟁과 살육을 경험하지 못하고, 현시대에 존재하는 전쟁과 내전에 무관심한 나에게는 무척 고통스러웠고 섬뜩했다.
하지만, 가장 못마땅한 것은 바로 이런 나 자신이었다.
이 책을 덮고나니, 가슴속에 형체를 알수 없는 슬픔이 가득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