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상속
키란 데사이 지음,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서구적인 요소가 비서구적인 나라에 도입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나의 흥미를 끌었다.

많은 나라들이 세계화, 민주화의 폭풍에 자신의 것들을 잃어가는 현실에서 이 소설은 특히 외국으로 많이 진출해 있는 인도인의 시각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왔다.

 

이책은 무척 제누바이, 특히 판사직을 퇴직한 후 초오유집에 사는 제누바이를 닮아있었다.

잔뜩 웅크린듯하면서, 메마른듯 하게 느껴지는 감정의 선들.

그리고, 간결한 문체. 사이의 첫인상인 도마뱀같은 노인의 느낌을 풍기는 그런 소설이었다.

이 책은 히말라야 북동부 고원의 칼림퐁 근처의 초오유집과 제누바이의 추억으로 여행을 한다.

초오유에는 제누바이 옛판사와 꼬리가 긴 늑대개 무트, 제누바이의 손녀 사이, 곱사등 요리사가 산다.

제누바이라는 이름은 그의 추억속 여행에서만 등장할 뿐, 초오유집에 대한 설명에는 철저히 판사로 등장하며, 요리사는 그저 비주의 아버지로만 비춰진다.

이 부분이 매우 흥미로왔다.

왜 그들은 자신들의 이름으로 불려지지 못했을까?

 

판사는 젊은 시절의 추억속에서만 스스로의 이름을 갖고 있다.

그의 젊은 시절이 자랑스럽고, 행복해서 그런것은 아니다.

그시절 그는 그로써 살아가고 있었고, 그의 의지로 자신을 위해 살았다.

오히려 그것이 지나쳐, 영국으로의 유학에서 그는 스스로에게 가학을 한다.

엘리트로서 인도인으로서 촉망받고 있는 인물이지만, 낯선문화와 환경속 영국에서는 그는 철저히 이방인이었다.

인도인으로서 가진 특징인 피부색, 말투 등은 그에게 굴레와 허물로 그에게 다가왔다.

결국 그는 인도인을 극단적으로 싫어하고 기피하게 되고, 결국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나는 제누바이의 행동은 이해할수 없었지만, 적어도 갈등과 번민은 이해할수 있었다.

나역시 미국유학시절, 이미 철저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것인지 잘 안다.

제누바이 역시 외로왔으며, 그 외로움이 지나쳐 결국 어긋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리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들 비주가 미국에서 직장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 행복을 찾지만,

그 행복은 역시 상실이다, 허상이다.

비주는 요리사가 자랑할만큼 미국에서 직장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싸구려 일자리를 이곳저곳 전전하는 겨우겨우 살아가는 인생이다.

 

사이는 어린시절 우주비행사가 꿈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주 단란한 시절을 6살까지 보냈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기억에는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죽고, 수녀원 부설학교에서 지내다, 하나뿐인 외할아버지를 찾아 판사 초오유집으로 오게 된다.

그곳에서 가난과 궁핍속에서 살아간다.

 

"상실의 상속" 이 제목이 너무나 잘 어울렸다.

개인적으로 미국에서 몇년간 살아본 경험이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단편적이나마 들어나고 있었고, 제무바이가 유학시절을 돌이켜 생각해 본다면, 그 감정들이 얼마나 더했을까 이해가 되었다.

상실은 어디서 왔을까? 과연 영국으로의 유학과 미국으로의 진출이 무엇을 가져다 주었는가?

누가 상실을 상속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이책 제목 상속이라는 단어에 모든 것이 담겨있지 않나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