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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노래가 있었고 가요톱텐에서 적어도 10위권 내에는 들었던 유행가였다. 여자아이도 귀여웠고.

오늘은 해가 떴다. 적어도 하늘이 물찬어항은 아니니까.  형광등을 켜지 않아도 충분히 밝고, 애들은 밖에서 유치원 버스를 타고 있다. (확인안해봄)

그런데 나는 그렇지 못하고 있다.

나는 날씨라는 변수놈이 휘엉청 휘엉청 가지고 놀기 좋은 사람이다. 그래서 비오기전에는 말소리도 느리게 가는 걸 느낀다 (진짜야) 소리가 파동이니 어쩌니 이런 과학적인 이유를 말하고 싶지만 아는게 없군.  하늘에 양잿물로 만든 구름이 채워지기 시작하면 그 날의 해야 할일이며 하고 싶은 일 행동 거지 승질머리 지랄 발광 싸가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좋지 못한 부분이 꿈틀하는 것이다. 심한 날은 가만히 혼자 있다가 승질나서 발을동동 구르기도 한다. 맘대로 되는게 없는게 짜증나니까. 근데 또 하려면 안되고 안하고 싶고.

 

비가오려나… 하는 관절염환자들의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니다. 내가 뭐 미실도 아니고 하늘의 도움은 커녕 하늘에게 제발 파란 하늘 파란색 풍선을 품어달라고 애걸복걸해도 모지랄판.

오죽하면 친구들은 날더러 기상청이라 불렀다. 비가 올 법한 날이면 야자가끝날떄까지 의자에서 엉덩이도 안뗴고 잠만 퍼질러 잤기 때문에 그걸로 우산을 사네 마네 했다. 나쁜년들ㅋ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그렇게 나쁘지 않은데 최악의 난조를 겪고 있다. 너무 화가 난다. 어제 도서관에서 신나게 빌려온 책도 다 던져놨다. 그걸보니 또 짜증이 나고. 이걸 적고 있는 자체도 웃긴다. 아마 후회하겠지.

 

영화 파수꾼은 내게 말했다. 구렁이 담넘듯 넘긴 작은 상처들은 결국 쌓이고 뭉개져서 그다음 시대로 넘어가버린다고. 그는 더이상 상처가 아니라 날카로운 단도가 되고 누군가에게 부딛치기만 해도 칼에 찔리는 격이 되어 버린다고. 그리고 그런 사람을 오래도록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슬픈건 그 상처는 가장 가까이 두고 싶고 함께하며 신뢰했던 사람과의 충돌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칼은 다시 죽음 후에도 살아서 제3자에게 넘어가버린다는 거였다.

 

엄마는 늘 말했다. 우리애는 사춘기라고는 없다고. 그게 문제였나? 불행하지 않은데 자꾸 곯은 곳들이 쑤신다. 쑤시는건 참을 수 있는데 화가 나는건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나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미라같은 나를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속상한것 따위야 참을 수 있는데.

 

날이 좋지 않은 날에는 늘 반은 미라가 되어서 누워있었다. 다음날이 되어 날이 개이면 언제 그랬냐면서 어제의 일은 휴지통에 넣어 버린다. 비우기는 또 까먹고.

 

오늘은 그런 날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분명 어떤 시기에 겪어낸 상처가 있다면 각각의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는데 사고가 없는건 말도 안되니까. 그럴 때 어떻게든 극복해내는것. 모진 사막의 시간을 지나보내는 것. 그것이 나의 방법이다.

누구가 보고 있다면 당신은 어떤지. 혹시 당신의 마음에도 은장도가 품어져 있는건 아닌지. 아니면 누군가의 마음에 자상을 입히지는 않았는지. 그걸 정말 내가 모르는 건지. 아는데 모르는 척하는 건지. 가르쳐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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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not dictate to your author; try to become him. Be his fellow-worker and accomplice.”  


"The only advice … that one person can give another about reading is to take no advice, to follow your own instincts, to use your own reason, to come to your own conclusions."



버지니아 울프의 읽고 쓰는 법이다. 


읽기보다 쓰기에 눈이 간다. 



누구의 말도 듣지 말고 자신의 마음속 본능적 감각을 따르며 자신의 논지를 활용하면서 스스로의 결론으로 내딛는 것- 그 말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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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딜 봐야 할지 아유 민망해서- 라는 관용구. 실제로 쓰는 건 듣도 보도 못했지만 여튼 여기저기 자주 나와서 마치 아줌마들에게 흔치 않고 성적인 무언가가 보였을때 그 입에서는 그 말이 나왔겠거니 생각한다. 



개뻥이지. 정말 눈치보는건 사실 여기다. 학교에서 집에서 회사에서 고개숙여도 우리에겐 키보드가 있다며, 우리의 쉼터가 되줄꺼라고 영원을 약속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녀석떄문에 나의 오래된 친우인  머리맡 책장의 녀석들에게 까지 난 불편한 사람이다. 


뭐가 뭔지 나는 알 수 없다. 어떤 역학관계인지 누구의 말이 옳은지 찾아볼 여유가 없고 그런 식으로 감정만 소모하는 나는 분명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채 순간만 활활 분노할 것이다. 뭐 좋겠다고. 눈을 돌리는게 편하다, 마음대로 되느냐고? 비겁해지기 위한 용기를 득템하는데 꽤 걸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는 원하는 것을 사고 생산자는 그의 이득에 맞추어 행동하면서 자연스레 서로의 needs 가 맞추어 진다고, 그렇게 이기적 경제주체는 스스로는 모르는 이타적인 사람들이다. 그런데 여긴 독서라는 나의 중요한 시간까지도 눈치보게 했다. 사는데도 그리고 읽는 데도 아 난 나쁜년인가? 난 이렇게 사는건가봐 다들 그러니까.... 리고 넘기는척 자꾸 연습하는 찜찜한 버거움을 던져줬다. 


불만이었나? 몰랐던것도 아니면서 서롤 위한단걸. 그리고 그 소비라는 것이, 독서라는 행위가 얼마나 특별한지. 나는 벗에 비유했지만 나보다 훨씬 그에 대한 위대하고 고고한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시간까지. 인생이라는 순간까지 우리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앗아가 버렸다. 선하시고 책을 사랑하시는 국회의원 나으리는 이렇게 말 씀하실지도 모르겠다. (확실치 않다) 작가의 이익과 출판시장의 안정화를 위함이라며. 


그런데 이건 .... 지금 꼴을 좀 보시죠. 그 간신히 출판시장을 짊어지고 문학을 사랑하고 예술을 공유하던 사람들이 글자와 잉크사이의 행간을 보며 사색할 시간이 있나요? 아뇨. 되려 무거운 마음에 그냥 정말 편하게 좋은 책이나 보았으면 싶은 사람들에게 되려 무기력과 상실감을 줬어요. 그 아슬아슬한 서까래를 억센 국회의 손으로 흔들었다고. 집수리한다면서 왜  서까래를 건드려!!  대들보를 세워야지!! 



여기도 편치 않아. 이 화면 안의 세상까지 이젠 유토피아로 만들 수도 없고 비겁해지는게 아니라 악하게 변하지 않으면 편안하게 생각없이 협탁의 책을 펼칠 수 없게 된거. 



피해도 보상도 무형이며 그 피해의 여부조차 확인 불가능한 이 모든 일들은 현실 앞에 시커먼 연기로 법전뒤에 몸을 감추고 나도 너도 잊던지 떠나던지 할거다. 


그래 이제 다들 행복하세요? 여기가 유토피아로 가는 길이군요! 근데 내가 무슨색깔 알약을 먹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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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 2013-01-29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깨 2013-01-29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핫하하하하하하핫이슈

참깨 2013-01-29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꾸벅 ( _ _ )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봇이라는 꾸준한 녀석은 일정양의 디비를 집어 넣어서 자동으로 돌아가게 하거나 아니면 아예 관리자의 수기로 랜덤하게 트윗하는 반자동의 계정이다. 특히나 시의 경우 유달리 봇이 많다. 여성시봇, 시봇, 옛날시봇, 한시봇... 이에 더하여 좋은글봇이나 책소개봇 활자봇 등등의 다른 종합적인 활자전체의 밑줄긋는 계정들에도 시는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그리 길지도 않은 시를 작성자가 마음대로 그럴싸한 부분을 오려내어 전체가 아닌 부분만을 향유하는 트위터의 아포리즘이 시를 소비하는 옳은 생각이냐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별로 안긴데 왜 니맘대로 짤라서 리트윗 시키고 그러냐는 것이지. 



물론! 


요즘보다 시집을 더 읽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적어도 내 모집단에서는 그랬다. 김경주의 시집이 일만부를 돌파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놀라자빠진게 나였다. 그렇게 시는 서점의 문턱에서 간신히, 그러나 여전히 자기 자리에 더는 뻇길 자리도 없으며 뻇기지도 않을 심산으로 꼽혀있다. 


그러나 늘 문학은 궁핍하고 조금씩 움츠러들어 출판의 파이가 커지는 통계와 비례하지 않게 되어가고 있고 이미 그리 되었다. 아마도.  그런데 그나마 갖은 시봇과 운영자들이 뽑아낸 포장지는 많은이들의 공감을 사며 시인이름이 생경하지 않은 시절로 자리하며 조금씩 입문자들을 끌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빠른 정보가 돌고 또 사라지지만- 뇌리에 스치는 어떤 기억들로 자리 잡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도 출판시장의 침체를 걱정하시고 문학을 사랑하시는 마음을 가진 독자들께서 그정도도 못봐줘서 저렇게 비난을 하면 못쓰지. 바이엘 치는 애한테 얘야 드뷔시의 에뛰드가 입시에 자주나온단다 지금부터 그거만 보고 비슷한 수준으로 치거라. 하는 격이나 다름없어보인다. 


예쁜 포장지와 그럴듯함이라는 훅이 꼴보기 싫으면 나가. 그러면 될 것이 아닌가? 그러나 가만히 생각을 해봐 생각을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들 하니까. 과연 아포리즘을 욕해서 싸움을 들끓게 하고 봇의 운영자들을 맥 빠지게 하는게 옳은지  아니면, 그렇게 해서 하나둘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또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아포리즘도 줄어 가겠지... 라고 생각하는게 옳은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요. 비교형량의 문제에요. 그리고 어떻게 소비한들, 창작의 자유가 있고 또 수용자에게 오독은 권리인 것을. 왜 모르는척 올드팬의 고집을 부리시는지. 아 이해가 안되네요.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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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 앞을 볼 수 없는 미래를 두고도 여전히 나름대로는 타협한 길에서 갈팡질팡 하는 것. 


그 길로 오게된 연유도, 생각도, 자질도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으면서 다른 일에 새삼스레 도전하려는 나를 붙잡는 생활의 관성. 


낙관주의와 철없음으로 일관할 수 없음을 깨달아 버린 나와 여전히 특출난 삶을 살고 싶어하는 허영에 사로잡힌 나의 지리한 싸움. 


실은 철없음과 허영을 방패삼아 다른 평범하고 어려운 삶 속으로 뛰어들 자신이 없어서라고 여전히 인정하기를 여러번 번복하는 왼손. 


보통의 사람으로 태어나 비범하게 살 수 없음을 고릿적에 깨달았지만,

그렇지만 여전히 비범한 이들의 땀과 노력 고민은 무시한채 내 열병만 생각하며 재능있는 이를 시기하고 또 동경하는 이중성. 


이도 저도 안된다면 구조와 제도 그리고 경기침체라는 듬직한 벽에 기대어 허송세월하며 결론 없는 고민만 되풀이 하는 멍청함. 



실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 아무것도 알 수 없음과 함께 저 세가지의 무엇무엇무엇이 나를 모두 배신했으면 어쩌지 하는 지레먹어버린 겁. 



너는 꿈이 뭐야? 


하는 물음에 철렁하고도 구렁이 담넘듯 넘어가면 그만이라고 꿈이며 현실이며 아무것도 똑바로 쳐다 보지 못한 비겁함. 



Herr, bitte gib keine göttliches Zeichen für m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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