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봇이라는 꾸준한 녀석은 일정양의 디비를 집어 넣어서 자동으로 돌아가게 하거나 아니면 아예 관리자의 수기로 랜덤하게 트윗하는 반자동의 계정이다. 특히나 시의 경우 유달리 봇이 많다. 여성시봇, 시봇, 옛날시봇, 한시봇... 이에 더하여 좋은글봇이나 책소개봇 활자봇 등등의 다른 종합적인 활자전체의 밑줄긋는 계정들에도 시는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그리 길지도 않은 시를 작성자가 마음대로 그럴싸한 부분을 오려내어 전체가 아닌 부분만을 향유하는 트위터의 아포리즘이 시를 소비하는 옳은 생각이냐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별로 안긴데 왜 니맘대로 짤라서 리트윗 시키고 그러냐는 것이지. 



물론! 


요즘보다 시집을 더 읽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적어도 내 모집단에서는 그랬다. 김경주의 시집이 일만부를 돌파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놀라자빠진게 나였다. 그렇게 시는 서점의 문턱에서 간신히, 그러나 여전히 자기 자리에 더는 뻇길 자리도 없으며 뻇기지도 않을 심산으로 꼽혀있다. 


그러나 늘 문학은 궁핍하고 조금씩 움츠러들어 출판의 파이가 커지는 통계와 비례하지 않게 되어가고 있고 이미 그리 되었다. 아마도.  그런데 그나마 갖은 시봇과 운영자들이 뽑아낸 포장지는 많은이들의 공감을 사며 시인이름이 생경하지 않은 시절로 자리하며 조금씩 입문자들을 끌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빠른 정보가 돌고 또 사라지지만- 뇌리에 스치는 어떤 기억들로 자리 잡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도 출판시장의 침체를 걱정하시고 문학을 사랑하시는 마음을 가진 독자들께서 그정도도 못봐줘서 저렇게 비난을 하면 못쓰지. 바이엘 치는 애한테 얘야 드뷔시의 에뛰드가 입시에 자주나온단다 지금부터 그거만 보고 비슷한 수준으로 치거라. 하는 격이나 다름없어보인다. 


예쁜 포장지와 그럴듯함이라는 훅이 꼴보기 싫으면 나가. 그러면 될 것이 아닌가? 그러나 가만히 생각을 해봐 생각을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들 하니까. 과연 아포리즘을 욕해서 싸움을 들끓게 하고 봇의 운영자들을 맥 빠지게 하는게 옳은지  아니면, 그렇게 해서 하나둘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또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아포리즘도 줄어 가겠지... 라고 생각하는게 옳은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요. 비교형량의 문제에요. 그리고 어떻게 소비한들, 창작의 자유가 있고 또 수용자에게 오독은 권리인 것을. 왜 모르는척 올드팬의 고집을 부리시는지. 아 이해가 안되네요.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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