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 세계사 - 역사의 운명은 우연과 타이밍이 만든다
이성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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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심판 하면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작품
시스티나 성당의 핵심 그림인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그린 그는, 그의 작품을 오랜시간 동안 그린 만큼 장인정신 또한 누구보다 뛰어났다. 

미켈란젤로는 당시 교황이었던 율리우스 2세의 명령으로 천지창조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장장 4년 5개월에 걸쳐 엄천 큰 그 그림을 조수 한명 두지 않고 자신 혼자서 대작을 기어코 
완성해냈다. 천지창조가 세상에 선보이고 난뒤 20여년 뒤 교황 클레멘스 7세에게 작품 의뢰를 받게 되는 그 작품이 최후의 심판이었다.
그의 이 작품은 교황의 여러 세대의 교체로 인해, 여러번 심판에 오르게 되면서, 누드라는 이유로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하지만 교황의 권위를 거역할 순 없었기에 , 그 당시로서의 획기적인 누드 그림을 아무도 뭐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바오르 3세의 죽음으로 4세가 오르면서, 그의 그림을 당장 제거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벽화라 없앨 수 없자, 당장 부숴라는 명령이 떨어지는데 ....

누드라는 이유로 그의 역작은 신을 희롱한다는 말이 나오게 되고, 로마 예술계는 말 많고 탈 많아지게 된다.
그러다 결국, 속옷을 입히자는 타협을 하게 되는데 .... 정말 미켈란젤로의 명성을 더럽히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 거대한 작품을 누드라는 이유로 속옷을 입히면서 

그림에 때를 묻힐려고 하다니, 정말 말도 안되는 교황의 행패였다.  결국 속옷을 입히는 작업은 , 미켈란젤로의 제자가 수정을 하게 되는데, 스승의 명작에 덧칠을 해야 하는 그의 죄책감은
누구한테 탓할 수 있겠는가 .....  

 

 

우리가 잘 몰랐던, 위대하기만 했던 미켈란젤로의 그림이 이렇게 예술계에서 외설이라는 잣대로 떠들썩대며 모욕을 받고, 어렵게 수정을 했다니 정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카사노바, 그 이름만 들어도 바람둥이라는 뜻이란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이름이 바람둥이라는 대명사로 일컬어 질정도로 , 그의 역사적인 바람둥이 다운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름만 알고 있었지 그의 출생부터 역사적인 내용은 전혀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서 그의 힘들고도 어려웠던 바람둥이가 되기까지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 카사노바는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부모님이 아닌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나게 되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는 카사노바 ~ 

 

 

그는 음악과 미술에 남다른 감각을 보여주었고, 뿐만아니라 법학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정말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시대상의 상황적인 문제가 있었다. 비천한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군대에 들어가거나 교회의 사제가 되는 것이었다.
그가 처음 택한 신분 상승의 길은 바로 교회였는데, 귀족들의 도움으로 성직에 입문한지 1년 만에 비잔틴성당에서 첫 신학 강의를 하게 되었다.
그에게 신앙심은 있었지만, 여성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삶에 눈뜨게 된다. 카사노바는 결국 성직을 그만두고 장교로서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섬세한 예술가적 기질이 있었기 때문에 군대는 너무나 혹독한 곳이었다. 2가지 카드였던 성직과 군대를 모두 경험했지만, 여기에서 카사노바는 신분 상승의 길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택한 세번째 직업은 타짜였지만, 이것 또한 오래가지 못하고 적성에 맞지 않아서 그만두게 되었다. 이렇게 저렇게 생계를 꾸려나가다 어느날, 베네치아 귀족을 만나게 
되면서 인생을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그는 평생 무려 122명의 여성과 연애를 했다고 한다. 그는 화려한 언변과 외모로 사교계에서 사랑받았지만, 문란한 사생활로 인해 종교재판에 회부하게 된다. 

 

그는 결국 최고의 감옥인 피온비감옥에 수감되게 된다. 그는 여기서 인생을 낭비할 수 없다는 판단에 1년 반만에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정말 그의 집념은 대단한거 같다.
그의 화려한 귀족의 이상을 위해 감옥 탈출까지 감행하면서 사교계에 뛰어드는 그의 정신, 정말 대단하다. 그는 화려한 탈옥스토리를 가지고, 파리 사교계를 휘어 잡게 되면서 또다시 카사노바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복권 세계를 들었다 놨다 하기도 하고, 옷감을 수입해 귀족흉내를 내기도 했던 그는 오로지 자신의 한 몸과 화려한 언변하나로 폴란드의 국정 전반에 결친 토론을 나누기도 하며
교황에게 교황청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고 하니, 겉으로만 바람둥이가 아닌, 그는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젠틀했던 사람이란걸 알수 있는 점이었다. 그는 평생을 유랑생활을 하며
출세를 위해 집착하며 사교계를 휘어잡을려고 했지만, 그의 진정한 정신세계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의 동정을 받고 싶었던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늦잠을 자며, 인간의 이성으로 세계관의 무게중심을 옮긴 위대한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 , 그는 늦잠의 대왕이었다고 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이 늦잠을 자지 않고는
이런 유명한 명언도 나올 수 없었다는 사실 정말, 몰랐던 사실을 알아서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그는 누워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의 철학을 다듬어가는 철학자였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던 데카르트는 오전 열한시 까지 침대에 누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는게, 스스로의 철학을 다듬어가는 방법이었다. 이런 늦잠의 결과물이 바로 "방법서설"이었다. 
그는 고집도 정말 세서, 자신의 철학적인 주장이 너무 급진적인 이유로 , 21년간 네덜란드에서 숨죽인 채로 지내게 되었다. 그러다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에게서 철학 과외 선생을 제안 받게 되었다.
그는 일생을 늦잠을 자면서 살았지만 생계를 위해서 , 여왕의 아침형인간의 생활을 받아들이고 살게 된다. 그러나 이 아침형 인간의 생활이 데카르트의 목숨을 끊을 줄 몰랐다.
결국 폐렴에 의해, 그는 죽게되었다고 한다. 정말, 허무하면서도 그의 철학적인 부분이 이렇게 쉽게 결정됐는지 누가 알았겠는가,

 

 

정말 이 책을 보면서 , 세계사에 유명한 이야기들의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역사적으로 유명한 예술가,철학가, 문명가,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사람들의 사소한 이야기 까지 알게 되어서 정말
흥미롭기도 하고 세계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되는 시간이었다. 더 자세하게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이런 흥미로운 아이러니한 사실을 또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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