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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쫓아오는 밤 (양장) - 제3회 창비×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소설상 수상작 ㅣ 소설Y
최정원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평점 :
여행이라고는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이서 가족은 큰 맘 먹고, 깊숙한 펜션에 놀러오게 된다.
갑자기 전기가 나가고 인터넷이 안되고, 비 바람이 몰아치던 날 그것이 나타나게 되는데....
괴물에 쫓겨서 도망치고 싸우고 달아나는 순간에도 인간의 이기적임을 그대로 보여주는 박사장과 종석은 극의 선과 악 대립적인 구도를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하였고, 특히 회장님은 악마 같은 인물로 그려져서 섬뜩할 정도였다.
괴물의 정기를 먹고 사는듯한 대사를 하면서, 왜 괴물을 살려두는지 보여주는 장면이 나왔는데 비중은 작았지만 너무 강렬해서 잊혀지지가 않았다.
"저놈이 제일 맛있거든. 제일 달아 이게 사람의 죄의 맛 인가봐요. 먹으면 이렇게 손발에 힘도 차오르고 말이지."
그것의 정체를 알기도 전에 음습해오는 강렬한 분위기와 을씨년스러운 공포감이 극의 몰입도를 가중시켰다.
그리고 괴물의 정체가 밝혀지는 이야기를 알게 되니, 인간의 사악함과 이기적인 마음들이 더 크게 느껴졌다.
괴물은 사람의 악을 뜯어먹고 살아가고, 악한 사람을 찾아 다닌다는 표현이 이서에게는 더 죄책감으로 표현되었다.
"저놈이 오늘 해 놓은 짓 한번 봐라. 그게 보통 짐승 새끼가 할 짓이야? 짐승들은 원래 사람 피해 다녀. 그런데 그놈은 안 그래, 눈 똑바로 마주 보면서 싸우려고 하는 게지." 속을 뒤져 찾아내 벌 받아야 되는데 벌 안 받고 있는 그런 사람.
과연 이 마을의 사람들은 모두 악하기 때문에 잡아 먹힌 걸까?
악마는 사람의 악을 뜯어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볼 때마다 몸집을 점점 불려 나가는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더 공포에 질려갔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이서와 수하의 성장 스토리가 가득 담겨있다. 가족과의 불화, 여러 사건들로 상처 받은 그들의 마음에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을 감싸 안아주는 용기와 독립심이 강하게 자라난다. 그리고 그것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뭐든지 이겨낼 수 있고 더이상 후회하고 싶지 않은 그들의 간절함이 녹아들어가,맞서 싸울 힘이 더 크게 생겨나는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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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옆으로 길게 드러난 흰자 한가운데서 새까맣고 작은 눈동자가 희번덕거렸다.
마치 사람의 눈처럼, 한쪽 눈은 반쯤 짓물러 고름이 흐르고 있었다.
시뻘겋게 피부가 드러난 흉터가 한쪽 얼굴의 절반 가까이 덮고 있었다.
그 허세를 들키는 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아니까. 우리 는 너덜너덜하게 해진 허수아비다. 잔뜩 기울어져서, 한 번 만 바람이 훅 불면 뒤로 넘어가고 말겠지. 하지만 저기 새 떼가 밀어닥치고 있으니 지금은 서 있을 수 있어야 했다.
말에 마음을 담으면, 말대로 이루어지니까 언제나 그러했다. 날카롭고 뾰족해진 마음은 입 밖으로 내지 않고, 단단하고 튼튼한 말을 갑옷처럼 둘렀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 다. 엄마의 마법은 항상 이루어졌는데 이서의 마법은 항상 실패였다.
마음을 입 밖으로 내는게 서툴기만 한 이서는, 한순간의 감정 분출로 엄마를 잃은 죄책감을 가득안고 살아간다.
그런 이서가 괴물에 혼자 맞서고, 동생을 지키고 아빠를 찾아내면서 자신을 지키고 회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방법을 찾아가며 스스로 확신에 찬 눈빛과 태도로 변하는 모습이 뭉클했다.
등 뒤가 든든했다. 그냥 그곳에 누군가가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뒤에서 불어 닥치던 바람 이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평온함이었 다. 힘이 솟았다.
그리고 이서의 뒤에는 수하가 계속 있었고, 옆에서 힘들때마다 도와주면서 위로해주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은 동생을 지켜야 하는 신이서도 자기 때문에 엄마를 잃은 신이서도 다른 가족들의 반응이 무서워 그날의 이야기를 평생 숨기고 살겠다고 다짐한 신이서도 아니었다. 이서는 그냥 이서있다. 아픈 다리를 절뚝이며 눈물을 훔쳐 내는, 아빠가 보고 싶고 동생이 보고 싶은 그냥 이서였다.
괴물을 무찌르고 아빠를 찾아나서는 이서는 이제 더이상 누구의 신이서도 아닌 그냥 이서라는 문구가 너무 좋았다.
살짝 아쉬웠던 점은, 괴물과 싸워 나가는 장면과 주인공들의 서사가 오버랩되면서 성장해 가는 장면에 치중되어서 극의 흐름상 깊이가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같이 도망쳤던 주변 인물들과, 그 뒤로 그 괴물과 회장님은? 괴물에 잡혀먹은 사람들은? 여러 인물들의 궁금증이 계속 쌓여가서 조금 마무리가 부족해서 아쉬웠다. 주인공들의 서사와 함께 주변인물들의 설명도 조금 더 들어갔다면 극의 깊이가 더 차곡차곡 쌓여서 완성도가 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느낀 점
오랜만에 긴장하면서 몰입도 있게 본 소설이었다. 나도 모르게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고, 극의 인물에 동화되어서 같이 도망치면서 응원해주는 마음으로 마치 함께 한 기분이 들었다.
주인공들의 성장스토리를 보면서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너무 많은 역할과 짐을 안고 살아가고 그럴 수 밖에 없는 환경과 사회구조에서 살아간다. 그 속에서 자신의 역할, 본질을 찾아내고 그 알맹이를 잊지 않고 계속 유지해가며 나아가는 게 정말 중요할 것 같다.
나 또한 그들처럼 항상 성장할 줄 알고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며, 이기적임보다는 감싸안아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의 크기를 가진 사람이 되어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