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찾아 산티아고
정효정 지음 / 푸른향기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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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보고 정말 솔직한 제목에 놀라고, 산티아고에 남자를 찾으러 간다는 게 어떤 건지 호기심이 생겨서 보게 되었다.

 

산티아고 하면 산티아고 순례길에 인생의 진리를 찾으러 뭔가 대단한 뜻을 품고 가는 게 떠오르는데, 제목만 보면 뭔가 심플하고 단순하게 산티아고를 가도 되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 때 SNS에서 유명했던, 손 잡고 찍은 사진들로 표지가 되어 있다. 여러 외국인들의 표정과 다양한 옷,가방, 유쾌한 사진 포즈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뭔가 재밌고 신나는 일들이 펼쳐질 것만 같아서 기대가 되었다.

 

정효정 작가님은 방송 작가로도 일하셨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봉사와 일을 하셨다. 정말 여러 경험들을 하셨고, 책에서도 그녀의 내공과 압축되어 있는 문장들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산티아고 책을 찾아보는데 한효정 작가님을 찾았다. 이름이 비슷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분이 산티아고에 괜찮은 남자가 많다는 말로 정효정 작가는 산티아고 길에 가게 되었다고 하니 신기했다.

 



작가는 나와 나이와 고민하는 것도 비슷해서 이 책을 읽는 내내 공감하면서 보게 되었다.

연애, 결혼, 사랑, 인생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면 할 수록 어렵고 답을 꼭 내려야 한다는 압박감은 심해질 뿐이었다.

 

책에서 작가도 자신의 고민을 같이 걸으면서 이야기하고,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고 때로는 그들이 툭 던지는 말 한마디로 깊은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인생은 혼자 사는 게 아니기에 누군가와 다른 입장에서 그들의 고민에 작가가 조언을 쉽게 해주기도 하고, 그들 역시 조금 떨어진 입장에서 상대방을 잘 알지 못하고 처음 만나지만 더 깊고 솔직한 조언들을 해주기도 했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무언가를 찾는 게 역시 제일 힘든 일인 것 같다.

 

33P. 누구에게도 피해주지 않고 그저 '보편적'이라고 생각되는 삶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이어도 나잇값을 못한다는 이유로 필요 이상의 비난이 쏟아지곤 한다. 우리 사회에서 나잇값은 '나이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으로 지혜로워지는 것' 이 아니라 '나이에 걸맞는 삶'을 뜻하기 때문이다.

 

나이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은 어떤 걸까? 그리고 나이에 걸맞는 삶은 어떤 걸까? 나이에 맞게 대학교를 가고 취업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다시 육아 하기 위해 돈을 벌고, 중년이 되면 다 큰 아이를 바라보고 헛헛함을 느끼며 제2의 인생을 살아보자 이런걸까?

 

매번 생각하는 것이지만 평범하게 살아가는 건 힘든 일인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부러웠던 점은 와인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거였다. 길을 가다가도 스페인 에서의 질 좋은 와인을 쉽게 구할 수 있었고, 말만 잘하면 동네에서 포도도 얻어 먹고 라벨로 달리지 않는 동네 와인도 정말 맛있다고 한다. 스페인에서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나눠 먹는 와인은 어떤 맛일까?



산티아고 순례길은 800km를 묵묵히 걸어야 한다. 하루의 할당량 만큼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걷다가 알베르게에서 묵으면서 밥 먹고 새로운 여행객들을 만나서 수다 떨고, 다시 같이 걷고 이런 생활을 한달쯤 계속 한다. 그러다보면 일상생활에서 걷던 무거운 고민도 덜어낼 수 있고, 오로지 목표만을 위해 걷는 가벼워진 나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왜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서 인생의 진리를 찾고 자신을 찾게 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뭔가 거대한 인생의 진리나 목표를 얻는 성과주의의 폐해에서 벗어나, 어렵게 자신을 마주보고 온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도 뿌듯한 일일 것 같았다.

 

44P. 순례길처럼 모두가 고민 없이 한 길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인생은 훨씬 마음 편할 것이다.

 


작가의 마음을 잠깐 움직이게 만든 다니엘에 관한 일화도 재밌었다. 한국에서 사랑의 마지막 관문이 결혼이라면 외국의 마인드는 너무나 자유롭고 소신있게 살아가는 것에 거리낌 없이 살아가는 게 대단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계속 생각하게 되었고, 결혼이라는 구속의 틀에서 벗어나고 미약한 서약을 꼭 해야 하나 생각하는 다니엘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아이린이라는 사람과 대화한 내용이 너무 와닿았다. 대학생 딸은 있지만 결혼은 하지 않은 그녀는 작가를 스페셜 걸이라고 칭하며, 아껴주고 특별하다고 말해주는 것에서부터 애정이 듬뿍 느껴졌다. 작가는 솔직하게 남자를 만나러 왔다고 털어놨고, 작가의 목표가 확실히 있다는 점도 남들고 다르다며 그 점을 칭찬 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가 조언해주며 따스하게 감싸 안아주는 부분에서 너무 공감이 갔고, 작가가 마지막에 한 말처럼 인생이 꼭 반드시라는 단어는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123P. 외눈박이 세상에 양눈박이가 살든, 양눈박이 세상에 외눈박이가 살든 어쨌든 내가 사는 세상에선 다른 건 틀린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 말은 신경쓰지 않아도 돼 어차피 삶은 누구에게도 같을 수 없거든." 내 자존감이 이제야 좀 숨을 쉴 것 같았다.

 

254P. '얻을 것이 있다면 취하고, 없다면 버릴 일이다' 이렇게 800KM를 걸으며 나는 삶에서 '반드시'라는 단어를 지웠다. 고민이었던 결혼도, 연애도 '반드시'라는 수식어가 사라지자 그것은 인생의 수많은 요소 중 하나로 자리를 평범하게 자리매김 했다. 나는 그제야 겨우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었다.



작가가 발에 물집이 생길 때 소독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다리를 마사지 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조언도 아낌 없이 해주는 좋은 사람들로 가득했던 순례길의 여정이었다. 위험하거나 안 좋았던 사람들에 대한 경고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서로 도와주고 의지하며 걸어가는 모습이 그려져서 같이 응원하게 되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고 국적도 모두 다르지만 하나의 목표를 위해 걷는 사람들끼리, 같이 음식을 나눠먹으면서 함께 한다는 게 너무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런 여행의 자유롭고 뭐든지 다 허용되는 스페셜한 느낌을 나도 다시 느끼러 가보고 싶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마지막 날 작가의 생일이었다. 그녀의 생일을 위해 여러 친구들이 길 위에서 축하해 주기도 하고 , 같이 파티도 하는 모습이 너무나 유쾌해보였고 작가가 좋은 사람이기에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길을 걸으며 같이 와인을 나눠 마시고, 축하 케이크에 노래까지 너무 즐거운 마지막 여정일 것 같아서 행복해 보였다.

인생에서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 생일이지 않았을까?



스페인에 있기 때문에 스페인 사람들은 자유롭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오기도 했고 가까이 사는 유럽인들은 굳이 모두 완주하지 않아도 다음을 기약하며 목표라는 압박감을 생각하지 않고 돌아가는 모습이 신기했다. 아무리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멀기도 하겠지만, 평생 목표를 위해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 아둥 바둥 살아온 입시생활을 겪은 우리의 모습들이 생각나서 조금은 슬프기도 했다. 가치관이나 사회 환경의 차이도 있겠지만, 무엇이든 과정보다 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의 편견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아직도 그게 잘 되지 않는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인 것 같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작가는 여러 사람들과 인생, 사랑, 일 등 여러 주제로 거리낌 없이 이야기 하였다. 질문의 팻말을 들고 서 있기만 해도 여러 사람들의 답변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산티아고 순례길은 종합 선물 세트 같다고 표현한 게 너무 와닿았다.

 

208P. 아이를 낳지 않음 으로써, 그들 말대로 '여자로서 꼭 해봐야 할 경험''여성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기쁨' 그리고 인생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 되는 걸까?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랑, 행복, 결혼 이런 단어들에 속박되지 않고 오랜 시간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자신 만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고 그걸 해낼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게 가장 어렵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 길을 걷고 있는, 일상 속에 살고 있는 누구나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더 감동적이기도 했다.

 

222P. 비범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길 위에 존재한다는 것. 검의 비밀은 바로 검이라는 보상이 아니라 그 검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동기였다.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이 힘을 지닐 수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여행이란 무엇일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 라는 말이 있다. 인생이라는 기준점에서 자꾸만 벗어나고 싶을 때, 혹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한번씩 떠나게 되는 게 여행의 순간이기도 했다. 다녀와서 대단한 깨우침이나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나에 대해 조금이라도 들여다 볼 수 있었고, 나만의 에너지를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254P. 이렇게 낯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떠다니며 나를 증명하는 것이 여행이다. 그리고 새로운 땅을 밟고 돌아가는 이는 기존의 자신이 아니라 기준점을 다시 맞춘 확장된 자신이 된다. 경계를 넘어선 순간 나를 둘러싼 언어는 다시 써지는 것이다. 이렇게 여행은 한 인간이 자유를 지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한 문장

이 책을 읽으면서 산티아고 순례길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고, 코로나가 종식 되는 날에 한번쯤은 시간을 투자해서 인생을 되짚어보며 순례길을 힘차게 걸어 보고 싶어졌다.

 

산티아고 길이 궁금하다면, 사랑과 인생이 뭔지 궁금하고 같이 걸으면서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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