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뇌 - 뇌의 새로운 이해 그리고 인류와 기계 지능의 미래
제프 호킨스 지음, 이충호 옮김 / 이데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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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4 저자: 제프 호킨스.


책을 쓴 사람은 신경과학자이면서 컴퓨터 공학자이다. 뇌에 대해 뭔가를 알고 싶다면 1부로 족하다. 2부의 인공지능에 대한 생각은 책이 나온 2021년에조차 유효했을지 의문이다. 한계가 많고 범용성이 떨어진다며 그 발전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던 AI는 생각보다 똑똑하고 학습을 잘하고 문제해결능력도 우수해졌다. 3부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주로 저자의 자유로운 상상이다. 책 초반의 뇌 이론마저 저자가 속한 연구팀의 가설이 대부분이고 이게 검증되고 통설이 된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이 책을 잘 못 알아들으면서도 읽고, 이 글에 여러 단어를 동원하고 자판을 눌러 글자가 새겨지는데에는, 뇌의 움직임과 뇌의 명령을 받은 몸의 움직임과 세상을 지각하는 뇌의 감각과 과거의 지식 같은게 마구 동원되었을 것이다. 뇌의 작용을 다른 신체활동과 마찬가지로 아주 작은 부위들의 움직임의 모임, 새로운 틀 짓기 같은 것으로(내가 제대로 봤다면) 표현한 게 흥미로웠다. 나머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그런 기대는 확률이 낮은, 이런 상상들은 그닥 내 뇌가 움직이는데 도움이 못됐다. 뇌에 관해 꼭 읽어보라거나 많은 걸 알려준다고는 못 하겠다. 그냥 이런 의견도 이런 상상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읽히는, 그러나 앞머리 이론 설명 덕에 결코 만만하게 쉽게 읽히지는 않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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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주가 존재했다가 사라졌는데, 그것을 아는 뇌가 하나도 없었다면, 우주는 실제로 존재한 것일까?(33)
만약 어떤 것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면, 우리는 그것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348, 책의 시작과 마무리에서 비슷한 질문을 던지며 지능이란 무엇인지 저자의 생각을 전개한다.)

-이것을 나타내는 용어가 바로 감각-운동 학습이다. 다시 말해, 뇌는 우리가 움직일 때 우리의 감각 입력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함으로써 세계모형을 배운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고 노래를 배울 수 있는 이유는 집 안에서 우리가 이 방 저 방으로 돌아다니는 순서와 달리 노래의 음정 순서가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에 존재하는 것 중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66-67)

-가지돌기 극파는 먼쪽 가지돌기에서 서로 인접한 시냅스 집단이 동시에 입력을 받을 때 일어나며, 이것은 그 신경세포가 다른 신경세포의 활동 패턴을 알아챘다는 것을 의미한다. 활동 패턴을 감지하면 가지돌기 극파가 발생하는데, 이 극파는 세포체의 전압을 높이면서 신경세포를 예측 상태로 돌입하게 한다. 이제 신경세포는 극파를 발화할준비가 되었다. (80, 신피질의 90퍼센트의 시냅스들은 신경세포를 활성화하되 충분히 자극하지는 못하는 가지돌기 극파를 통해 뇌가(사람이?) 예측을 하게 만든다.)

-정상적인 시각은 정적인 과정이 아니라 활동적인 감각-운동 과정이다. (141)

-어떤 것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수천 개의 피질 기둥에 분산되어 있다. (149)

-신피질은 모형을 배우는 일을 멈추는 법이 없다. 주의를 옮길 때마다 어떤 것의 모형에 새로운 항목이 추가된다. 모형이 일시적이건 오래 지속되는 것이건 학습 과정은 동일하다. (159, 뭔가 배움 종류마다 뇌 쓰임이 다를 것 같은데 이 책에서는 꼭 그렇지는 않은 감각-운동 영역과 계속 생성되는 틀에 관해 이야기한다.)

-지능 기계가 우리보다 더 빠르고 깊게 생각하고,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것을 감지하고,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을 가는 날이 오면, 우리가 무엇을 배우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231)

-하지만 대다수 분야에서는 학습 속도가 세계와 물리적으로 상호 작용해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제한된다. 따라서 기계가 갑자기 우리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게 되는 지능 폭발은 일어날 수 없다. (237,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초인적 지능 기계는 모든 종류의 비행기를 능숙하게 조종하고, 모든 종류의 기계를 다루고, 모든 프로그래밍 언어로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다. 또 세계 각국의 언어를 다 말하고, 전 세계 모든 문화의 역사를 알고, 모든 도시의 건축을 이해해야 한다. 사람이 집단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의 목록은 너무나도 길기 때문에, 어떤 기계도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237, 모두 까지는 아니라도 아주 다양하게는 가능한 범용 인공지능의 세계가 왔습니다 선생님…)

-나는 지능과 지식을 기반으로 한 후손의 가능성을 고려하라고 했고, 이 후손이 유전자를 기반으로 한 후손과 똑같이 가치 있는 존재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346, 인류의 유전자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책의 구성
-1부-신피질이 작용하는 방식, 세계 모형을 방식을 설명하는 이론
-2부-오늘날(2021년 이전)의 AI는 진정한 지능이 있지 않다는 주장
-3부-지능과 뇌 이론을 바탕으로 보는 인간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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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이옥전집 3 : 벌레들의 괴롭힘에 대하여 ㅣ 완역 이옥 전집 3
이옥 지음,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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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1 저자: 이옥.

천천히 읽기로 했는데 어쩌다보니 올해 안에 이옥 전집을 다 읽고 말았다. 3권은 ‘백운필’이란 책과 ‘연경’이란 책이 함께 묶여 있다.

‘백운필’ 구성은 1,2,3,4가 아니고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이렇게 종류마다 넘버링을 12개 해 놨다. 새, 물고기, 짐승, 벌레, 꽃, 곡식, 과일, 채소, 나무, 풀 이렇게 큰 주제 아래 소소한 자연물 하나씩을 글제로 짧은 짓기를 해 놓았다. 다 써 놓은 걸 그렇게 엮은 건지, 일부러 박물지처럼 그렇게 한 건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막 빼어나고 엄청 재미있고 그런 건 없고 약간 소소한 팁과 지식(대부분 중국 고서들이 출처인데 검증할 도리는 없음), 누구네 그거 있다더라, 어디서 주워다 들은 효능, 잡다한 종류가 많은데 내가 다 알진 못해, 하는 나열이 많았다.
정 쓸 게 없으면 이 책 목차 따라 자연물에 대해 잡글을 써 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벼슬은 못했어도, 이옥 집안은 땅과 집이 있고 부리는 사람도 있어 그럭저럭 잘 살았다. 곡식밭, 채마밭을 종더러 일구게 해서 잘 키운 무가 배보다 시원하다는 걸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양반 사대부 왕족 귀족 아닌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까이 듣고, 동식물 이야기도 하나하나 경험하거나 고서와 대조하면서 당시 삶을 글로 박제해 놓았다. 너무 관심사가 두루 많아 한 가지만 파는 전문가는 못되었다. 역사 교과서에 한 줄 실리지는 못했지만, 이쯤되면 이옥도 실학자 기질이 있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동물 부분은 어디서 들은 이야기들 위주라 좀 약하고, 꽃, 과일 이야기는 그보다는 나은데, 채소 이야기는 아주 신나서 적어둔 느낌이다. 오이 반찬 먹는다고 가난뱅이라고 누가 비웃으니 (아마도 긁혔을 것 같은데 초연한 척) 고서에서 본 부추 반찬 세 가지를 들먹이며 온갖 오이 반찬 먹는 내가 부자다, 하는 게 허세라도 자존감이 세 보여서 좋았다. 나도 시골 출신이라 그런가 채소 부분이 제일 재미있었다.

나무 부분에서 이옥은 시골 살며 심은 나무 종류와 그루 수까지 깨알같이 적어놨다. 이건 그냥 본인이 심심파적으로 헤아려봤나 싶게 누구를 위한 글인지 모르겠지만, 나무들을 세세한 종류별로 나누고, 차이를 구별하고, 고서 이름과 대조하고, 이러니 나무도 사랑했을 것이다. 바닷가에 절로 자란 해송을 사람들이 땔감으로 써서 까까머리, 벌거숭이 산이되자, 시골 사람들이 나무지키미로 결성한 결사대에 ‘장청사’라는 이름까지 붙여 주었다. 장청사의 규칙과 벌은 제법 엄격해서 진지한 모임이었구나 싶다.

‘연경’은 담배대백과 같이 재배법, 잎관리법, 불붙이기, 피우는 법, 도구, 담배 매너까지 다 나온 책이다. 세세하게 가르치는 듯 설명한 건 가상하나 하필 그게 몸에 안 좋은 담배야. 이 책이 이옥의 글 중 조금 늦게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시중에 별로 안 돌아다니고 안 읽혔으면 흡연자 늘리는 과오는 덜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담배잎 재배 과정을 자세히 읽게 된 나는 그냥 신기하다.

이렇게 전집 3권까지 이옥 읽기를 마쳤다. 4권은 원문, 5권은 저본 영인-원판을 사진 찍은 듯 그대로 올리는 것이라 하니 한문학 연구자 아니면 일부러 찾아볼 일이 없을 것 같다. 시대상이나 작가의 사상이 드러나는 글들이 많았다. 다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글을 독특하게 잘 쓰던 선비였다. 정조가 너무 에프엠이라 급제해도 떨어뜨리고, 과거도 못 보게 하고, 살아있는 동안은 벼슬에 미련이 없지 않았겠다. 그렇게 한가한 덕분에, 글을 이리저리 굴리며 살다간 사람 덕분에, 읽을 거리들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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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양 인가에 들어가 알록달록한 비둘기들이 지붕 꼭대기에 줄 지어 앉아 있는 것을 보면, 문득 주인의 품위가 열 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는 후생들이 경계할 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66, 지금 우리 곁의 비둘기는 이미 이백여년 전 조상들이 집에서 키우다 방생한 놈들이었나 보다. 무늬 따라 비싼 애들도 있었대…)

-새 중에서 조그만 것으로 참새보다 더 작은 것이 없지만, 마작 이외에도 더 작으면서 조금씩 모습이 다른 것들이 또한 많다. 혹 작으면서 조금 푸른 것, 조금 누른 것, 조금 붉은 것, 조금 검은 것들이 있으니 그 이름을 분별할 수가 없는데, 시골 사람들은 ‘박새’니, ‘피죽새’니, ‘굴뚝새’니, ‘면화작’으로 일컬으며 구별하기도 한다. 가장 작은 것을 ‘수사자’라 하니, 곧 뱁새(붉은머리오목눈이)이다. 그러므로 속담에 따라가지 못할 것을 억지로 흉내 내는 것을 두고 ”뱁새가 황새의 걸음 따라가려 한다“고 말한다. (89, ‘참새’ 전문. 옥이 아저씨는 조그만 새들 이름을 잘몰라 뭉뚱그려 참새, 해버렸는데 시골 사람들이 더 분류를 잘했다. 나도 작은 새이름을 죄 알면 좋겠다. ‘한반도의 새’ 도감을 열심히 봐야겠어...)

-경기와 호서의 까마귀는 모두 큰 부리에 새카만 빛을 띠고 있는데, 영남과 호남은 모두 갈까마귀이다. 내가 일찍이 영남에서 보니 그 무리가 몇 천마리인지 알 수 없는데, 날면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고, 내려앉으면 산 하나가 오통 새까맣게 된다. 그곳 사람들은 밤이면 죽림 가운데서 이들을 잡는데, 먹으면 또한 맛이 좋다고 한다. (92, ‘까마귀’ 전문. !!! 까마귀 고기를 먹었냐, 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조상들은 까마귀도 먹었다. 우리 동네랑 남쪽 동네 까마귀가 다른 종류인 것도 처음 알았다.)

-물고기가 오래도록 올라오지 않으면 긴 목을 늘이고 조심스레 작은 발걸음을 옮기며 엿보다가 요행히 물고기를 만나면 쫓아가서 쪼는데, 날갯죽지는 춤추는 듯 발걸음은 넘어질 듯하여 그 모습이 마치 미친 것처럼 보인다. 또 사방을 둘러보며 살피다가 다가오는 동류를 부리로 쳐서 좇아낸다.
대개 물고기의 처지에서 살펴보면 닭, 오리, 솔개, 까마귀와 진실로 다른 것이 없다. 아! 모습은 한가롭고 깨끗함을 취하고, 이름은 고상하고 우아함을 구하지만, 이익을 보고는 홀연 거꾸러지고 정신을 못 차리니, 세상에서 가장 험한 것은 욕심이요, 막기 어려운 것은 이익인 것이다. 사군자들도 오히려 지조를 잃고 타락을 하고 마는데, 하물며 새에 있어서랴!
(94, ‘갈매기와 해오라기’ 중. 방죽의 갑문을 지키며 학꽁치를 잡아 먹는 갈매기, 한가롭고 우아한 새라고 글의 문을 열더니 묘사된 바로는 별로 우아하진 않다. 그리고 나도 덩달아 지조를 잃고 타락했다는 기분이 든다.)

-작년 봄, 나무하는 아이가 우연히 여우 새끼 한 마리를 산에서 잡아 묶어 왔기에, 나는 빨리 때려죽이라고 하였다. 한 마리를 잡으면 한 마리를 죽이고, 천 마리를 잡으면 천 마리를 죽여야 하니, 잡는 대로 죽여야 하는 것은 오직 여우이다. (155, 시체 파먹는게 싫어서 여우를 혐오하는 옥이 씨. ‘여우와 나’ 라는 책을 읽어보면 생각이 달라지실까…)

-어지 알겠는가, 보지 못하고 심지 못한 것 중에 또 얼마나 어떠한 괴기한 모양이 있을 것인가?(219, 꽃의 모양을 논하던 중에. 궁금증도 많고 겸손함도 갖췄다. 내가 다 알지, 하지는 않고 늘 여지를 둔다.)

-대저 나의 집이 서울과의 거리가 불과 백이십 리인데, 매양 채소와 과실 등속을 비교해보면 늘 한 달쯤 늦게 이루어지니, 사람 노력의 부지런함과 게으름 탓만이 아니요, 또한 지기가 미약한가, 왕성한가에 달린 문제이다. 식물이 오히려 그러하거늘,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랴. (222, 환경의 영향을 강조하는 옥이 씨)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가령 집 뒤의 대나무가 큰 것이었다면 대그릇을 만들고 부챗살을 붙일 수 있을 것이고, 그 다음의 것이었다면 피리에 구멍을 내고 지팡이로 잘라 쓸 수가 있을 것이고, 작은 것이었다면 그래도 붓에 꽂고 담배통에 이을 만한 것이니, 장차 도끼로 베임을 당할 날이 이르렀을 것이다. 어지 능히 푸르게 우거지고 빽뺵하여, 도리어 책상을 맑게 하고 거문고와 서책에 어울림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인가? 그렇다면 대의 무성함은 그것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니, 쓸모가 없다는 것은 도리어 쓸모가 있는 것보다 낫다 하겠다. (227-228, 문장의 무성함은 쓸데없는 글에서 나올 수도 있겠다. 이옥은 동물보다는 식물에 대한 글을 더 잘 쓰고 또 더 잘 아는 것 같다. 이 말에 화답하듯 다음 글에서는 원래 게을러서 꽃 잘 못 돌보다가 노년이 되면서 꽃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장준(감의 종류)은 매우 높고 홈은 자못 선명한데, 그 껍질은 두꺼워 떡으로 만들어 먹는다. (264, 감 껍질로 감껍질 버무리 같은 떡을 만든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내 성질이 씨를 삼키지 못해 비록 앵두의 작은 씨라 하더라도, 씨를 삼켜 내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일찍이 앵두를 얻으면 그것을 잘게 부수어 베로 싼 뒤, 비틀어 즙을 내어 마셨다. 그 색은 담홍색으로 매우 예뻤다. 또 청포도를 얻으면 그 방법에 따라 즙을 냈는데, 그 빛깔 역시 옅은 초록색으로 예뻤다. 앵두에 비교하면 더 맑고 시원하게 느껴진다. (278, ‘앵두즙과 청포도즙’ 전문. 씨 못삼켜서 즙내달라고 징징대는 애기 같은 영감님. 뭔가 주스 광고 같아서 퍼왔다. 깨작깨작 쓸 때는 이걸 이백몇 년 후 어떤 애가 베끼고 앉았을 거라는 생각 못했겠지.)

-이는 개를 잡아 찢어 벽사하면서 갱헌(종묘의 제례에 쓰던 삶은 개고기)의 예를 쓰지 않는 것과 같은 잘못이다. (282, 복숭아만 제사에 안 쓰는 걸 지적하는데 종묘제례에 개고기 쓰는 TMI까지 알게 되었다.)

-혹시 과일에도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술배처럼 따로 과일배가 있는 것인가?(…) 나는 본디 과일에 벽이 없어서, 먹으면 또한 좋지만 많이 보면 쉽게 염증을 느낀다. (288, 저때도 술배 타령한 게 웃긴데 과일 앉은 자리에서 몇십 몇백 개 먹는 사람들 이야기 전하면서 디저트 배는 따로 있나 하는 것 같다. 실제로 잔뜩 먹은 사람도 디저트를 보는 순간 배가 꿀렁 하면서 자리를 만든다는 글을 어디서-아마도 찰스 스펜스- 본 것 같다. 그리고 마무리로 난 안 그래, 하는 게 또 새침하다. 다른 글에서는 ‘나는 천성이 산나물을 좋아해서 보게 되면 반드시 포식을 하고 만다.’하고 객점에서 산나물 반찬에 밥 몇 그릇 뚝딱-심지어 귀한 건어물과 바구어-먹은 이야기가 있다. 이옥은 과일은 그냥저냥 좋아했고 산나물은 무척 좋아했구나...)

-이 때문에 홍초, 만두, 청과, 송병, 생해, 침채는 그 근원을 궁구하면 모두 동성에서 전한 것이다. (291, 음식 사치하는 먼저 망한다고 옷 사치가 낫다고 뒤에 덧붙인다. 이 부분은 주석이 거의 없어 각각 음식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엄청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을 나열한 듯하다. 침채는 김치를 말하는 것 같다.)

-내 집에 작은 채마밭이 있는데, 마루 앞에 바로 면해 있다. 아이종 하나가 거기에 부지런히 힘을 기울이면 밥반찬으로 나물을 마련하는 데 이바지 할 수 있다. 그 심은 것으로는 파, 마늘, 부추, 무, 배추, 겨자, 아욱, 방아, 해바라기, 상추, 시금치, 오이 등이다. 이 채소들은 절여 먹을 수 있고, 국을 끓여 먹을 수 있고, 데쳐 먹을 수 있고, 생으로 먹을 수 있고, 해물이나 고기에 넣어 먹을 수 있고, 즙을 내어 먹을 수 있고, 약용으로 쓸 수도 있다. (294, 나열한 채소 뒤에 호박, 박, 미나리, 가지 고추도 있다고 추가로 자랑한다. 그러고는 주자가 안 부럽다, 이렇게 마무리하는 패기. 주자가 채소 13종에 대해 오언절구로 시를 지은 것은 주석 덕에 알게 되었다.)

-산가지는(…)생으로는 먹을 수 없다. 물가지는 굴젓에 섞으면 생으로 먹어도 아주 맛이 좋다. (296, 날 가지에 굴젓이라니 참신한 레시피… 지금은 그 물가지라는 게 남아나지 않은 것 같다. 우리 할머니가 키운 가지는 나물 무쳐도 맛잇었는데, 시장의 가지는 다 맛없다.)

-내가 들은바, 철원에 나이 팔십 세가 된 노부인이 있는데 천성이 고추를 좋아하여, 떡과 밥을 먹는 이외에는 모두 고추를 뿌려 붉은색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맛을 본다고 한다. 한 해 동안 먹은 것을 합해보면 백여 말에 달할 정도라 한다. (308, 외래종이지만 두루 심기는 고추와 호박에 관한 글에서. 팔십 살 넘었다는 저 할머니는 ‘세상에 이런 일이’나 ‘화성인 바이러스’에 등장해서 “할머니, 고추는 적당히 드시고 오래오래 건강하세요~”하는 멘트로 끝날 것 같은 에피소드의 인물이었다.)

-서울에 있을 때를 회상해보매, 매양 술집에 들어가서 연거푸 서너 잔의 술을 마시고 손으로 시렁 위의 붉은 고추를 집어서 가운데를 찢어 씨를 빼내고 장에 찍어 씹어 먹으면 주모가 반드시 흠칫 놀라며 두려워하였다. 남양에 살게 되어서는 가루를 내어 양념장을 만들어 회와 함께 먹는데, 또한 누런 겨자즙보다 나았다. (310, 이옥 선생의 맵부심, 고추 사랑. 마지막 양념은 초장에 회 찍어 먹는 느낌인데 식초는 아직 안 섞었나 보다.)

-매년 여름 시골집에서 마늘을 먹은 사람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입을 한 번 열자마자 역한 냄새가 방에 가득하여 곁에 있는 사람을 참을 수 없게 만드니, 암내나 방귀보다 심하다.(…)비록 연꽃 향으로 입 안 가득 채우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어찌 불결한한결기운으로 도처에 냄새를 풍길 수 있겠는가? 깊은 병에 약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 먹지 않은 일이다. (319, 어우 마늘 냄새, 불결해!를 여기서 시전하는 옥이 씨ㅋㅋㅋ 18, 19세기의 이옥은 마늘 고추 팍팍 넣고 빨갛게 무친 배추 김치는 못 먹어봤지 싶다. 배추 글에서도 종류만 나오고 용도를 논하지 않는다. 그런데 겨자랑 생강(심지어 생생강 깨물어 먹음…)은 많이 먹고 좋아한다고 자랑하는데 걔들도 냄새나!!!!)

-매년 한여름 단비가 처음 지나가면 상추잎이 매우 실해져 마치 푸른 비단 치마처럼 된다. 큰 동이의 물에 오랫동안 담갔다 정갈하게 씻어내고, 이어 반의 물로 두 손을 깨끗이 씻는다. 왼손을 크게 벌려 승로반처럼 만들고, 오른손으로 두텁고 큰 상추를 골라 두 장을 뒤집어 손바닥에 펴놓는다. 이제 흰밥을 취해 큰 숟가락으로 퍼서 거위 알처럼 둥글게 만들어 상추 위에 올려놓되, 그 윗부분을 조금 평평하게 만든 다음, 다시 젓가락으로 얇게 뜬 송어회를 집어 황개장에 담갔다가 밥 위에 얹는다. 여기에 미나리와 시금치를 많지도 적지도 않게 더하여 송어회와 어울리게 한다. 또 가는 파와 향이 나는 갓 서너 줄기를 집어 회와 나물에 눌러 얹고, 곧 새로 볶아낸 붉은 고추장을 조금 바른다.
그러고는 오른손으로 상추잎 양쪽을 말아 단단히 오므리는데 마치 연밥처럼 둥글게 한다. 이제 입을 크게 벌려 잇몸은 드러나고 입술은 활처럼 되게 하고, 오른손으로 쌈을 입으로 밀어 넣으며 왼손으로는 오른손을 받친다. 마치 성이 난 큰 소가 섶과 꼴을 지고 사립문으로 돌진하다 문지도리에 걸려 멈추는 것과 같다. 눈은 부릅뜬 것이 화가 난 듯하고, 뺨은 볼록한 것이 종기가 생긴 듯하고, 입술은 꼭 다문 것이 꿰맨 듯하고, 이는 신이 난 것이 무언가를 쪼개는 듯하다. 이런 모양으로 느긋하게 씹다가 천천히 삼키면 달고 상큼하고 진실로 맛이 있어 더 바랄 것이 없다. 처음 쌈을 씹을 때에는 옆사람이 우스운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야 된다. 만일 조심하지 않고 한번 크게 웃게 되면 흰 밥알이 튀고 푸른 상추잎이 주위에 흩뿌려져, 반드시 다 뱉어내고 나서야 그치게 될 것이다. (…)나는 상추를 유달리 좋아하여, 때때로 이 방법대로 쌈을 싸 먹곤 한다. (324-325, 유독 공들여 묘사한 이옥의 상추쌈 싸먹는 법이 이 책의 백미였다. 뒤에 나 상추 좋아해, 덧붙이는 게 불필요할 정도로 생생한 먹는 법이었다.)

-이제 우리말의 호칭대로 나누어보면 ‘떡갈나무’라는 것은 잎이 넓고 껍질이 두꺼우며, 도토리는 깍지가 있어 둘러 싸고 있다. 이것이 이아에서 말한 역나무이다. ‘소리참나무’라는 것은 잎도 조금 작고 열매도 또한 작은데, 이것이 각나무이다. ‘참나무’라는 것은 잎은 밤나무 같고, 열매는 조두라고 하여 매우 크다. 이것이 작나무이다. (332, 중국 책에 나온 생물 이름과 우리 말이나 방언을 그대로 음차해서 한자로 쓴 것을 연결해주곤 한다. 차마 한글은 못 써도 떡갈나무를 ‘덕가을목’이런 식으로 소리를 옮긴게 재미있다.)

-그런데 오행(성정과 형체는 있지만 지각은 없는 것 다섯 가지) 가운데 오직 나무만은 지각이 있는 것에 가장 가까우니,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것은 나고 죽는 것과 같고, 바람에 따라 흔들리거나 고요해지는 것은 가고 멈추는 것과 같으며, 종자를 서로 전하는 것은 자손을 잇는 것과 과다. (350, 나무를 베는 것을 살생의 유라 하니, 역시나 이옥은 나무를 매우 사랑했군.)

-남초, 연초, 담파고, 담박귀(378-380, 모두 담배를 이르던 말. 어찌나 정성스레 담뱃잎을 키우는지, 백운필에 담배 글 하나가 있는데, “연경”이라는 담배 백과사전 같은 걸 아예 따로 만들어서 이 전집에도 실려있다. 비교적 최근에 발굴된 책이라고 한다.)

-”(…)아! 낳는 것은 하늘에 있으나 영화롭게 하는 것은 인간에 달려 있다. 하늘은 사심이 없기에 그 조화가 균일하지만 인간이 널리 베풀지 못하므로 소원함도 있고, 친함도 있는 것이다. 하늘이 이미 낳아주었는데, 또한 어찌 사람이 영화롭게 하고 그렇지 않게 한다고 원망하겠는가? 나는 비록 느낀 바가 있지만 풀은 무정한 것이니, 그것이 소의 목구멍을 채우는 것을 보매 나비의 향기 다툼의 대상이 되는 것과 다름이 있겠는가?“ (385-386, ‘꽃의 귀천’이라 이름 붙인 글인데 수능 공부할 때 지문으로 봤던 글이어서 오, 읽어봤네, 했다.)

-여기서 옛사람이 만물에 대하여 진실로 기록할 만한 좋은 점이 한 가지라도 있으면, 그 물건이 보잘것없다고 해서 버려두지 않고, 그 숨겨진 것을 수집, 열거하고, 그 속에 포함된 것을 밝게 드러내면서, 모아서 책으로 만들어 후대에 가르침을 주지 않음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온갖 미물이라도 보잘것없고 초라한 것들을 밝게 드러내어 천하 후세의 사람들과 그 쓰임을 공유한 것이다. 그 뜻이 어찌 일시적인 붓장난에 불과하겠는가?(395, 이옥의 글/책에 대한 생각이 압축되어 있다.)

-강한 맛이 너무 센 것은 말린 대추 살점을 썰어 뒤섞으면 좋다. 혹 연잎을 썰어서 섞기도 하고, 혹 향가루를 휘저어 태우면 맛이 좋다. (416, 조선시대에도 가향담배가 있었어...대추향 연잎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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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부학 책 《그레이 아나토미》의 비밀
빌 헤이스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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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0 저자: 빌 헤이스.



책을 다 읽고 앞표지를 다시 보고 나서야 알았다. 무슨 무늬이겠거니 했던 그림은, 얼굴과 목 사이의 근육과 혈관, 신경 같은 것들이 그려진 해부도였다.
저자는 해부학 실습실에 자주 드나들었다. 거기에 나를 자신과 시신 옆에 앉혀 놓았다. 나는 인체 구조에 대해 아는 게 없지만, 이게 뭐고 저게 뭔지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열성적으로 떠드는 저자가 재미있고 신기하기도 해서 계속 자리를 지켰다.

빌 헤이스는 ‘인썸니악 시티’라는 책으로 먼저 만났다. 그 자신도 작가이지만, 올리버 색스의 마지막 연인이었다는 게 더 유명한 사람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쓴 서문, 뒷표지에도 그 사실을 계속 언급해 놓았다. 하긴,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려면 무슨 일이든 해야겠지.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빌은 누구누구의 연인으로만 불리기에는 꽤 아까운 작가였다.

해부학 교과서 ‘그레이 아나토미’의 그레이에 관한 전기가 하나도 없는 걸 알게 된 빌은 집요하게 그의 흔적을 추적한다. 해부학 실습실에서 도서관으로, 미국에서 런던으로, 또 희망봉으로 (인도는 안 간다) 그의 (올리버를 만나기 전 사별한) 연인 스티브와 함께 가서 열심히 뒤지고 다닌다. 그러던 중 그레이 아나토미의 삽화를 그린 헨리 반다이크 카터의 존재를 알게 된다. 별 기록을 남기지 않은 헨리 그레이보다는 훨씬 풍부하게 써 놓은 카터의 일기장을 꼼꼼히 훑으며 당시 상황을 짐작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어느 부분은 약간 ‘빌 헤이스가 헨리 카터의 일기장을 읽고 남긴 감상문’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뭐 일기 읽고 독후감 쓸 수도 있지. 빌 헤이스는 문서 더미에만 집요하게 매달린 게 아니라, 관련된 장소에도 열심히 찾아간다. 그 추적 과정을 적어 이 책을 남겼다.

해부학 책 이름으로만 강렬하게 남았을 뿐, 헨리 그레이의 일생(짧기도 했다)은 우리에게 그다지 전해지는 게 없다. 새로운 판본에 삽화가 이름이 생략되어 있는 탓에 또 다른 헨리는 이름마저 잊힐 뻔 했다. 그러나 카터는 자신을 알아차릴 누군가를 기다린 것처럼 이것저것 기록을 남겨놔서, 거의 200년 이후의 내게도 자신의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게 해 주었다.

나를 비롯한 우리 대부분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고 남긴 주절거림은 좀 더 오래 남겠지. 당장 과거의 내 글도 현재의 나에게 가끔 눈에 띄어 작은 즐거움을 준다.(자가발전) 카터의 일기처럼 너무 성찰문 같거나 교훈적이거나 자기비하를 잔뜩 남기고 싶진 않은데 말이야. 동명의 소설, 페데리코 안다아시의 ‘해부학자’를 읽고 실망을 많이 해서 이 책으로 치유받자, 했는데 충분히 그럴만한 즐거운 독서였다. 미래의 내가 조금 더 재미있을 수 있도록 이것저것 남겨두고 싶다.

+밑줄 긋기
-지식에는 끝이 없으므로, 가장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도 아직 배울 게 많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오. (115, 브로디 박사님의 연설 마무리.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나는 참 지성인이 될 수 없어서 징징)

-일기는 자기 자신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의인화하게 된다. 하루의 삶이 아무리 생경해도, 일기장은 모든 단어와 모든 고통(또는 즐거움)을 흡수하며, 텅 빈 페이지들은 더 많은 고백을 유도한다. 금박을 입히고 가죽으로 장정된 일기장이 됐든, 노트북에 설치된 단순한 일기장 파일이 됐든, 일기장을 파괴한다는 것은 점점 더 가당치 않은 생각이 된다. 그건 자기 몸에서 살점을 베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의 진실은 ‘지금 일기장에 써놓으면, 당신의 희망 중 일부가 훗날 언젠가 읽히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낯간지러워도, 당신은 ‘특별한 누군가’를 위해 일기를 쓰는 것이다. 그는 ’완벽한 독자‘로서, 당신의 문장을 폭풍 흡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바로 당신의 미래 자아인 것이다. (128, 일기장 파괴의 이점은 과거 망각 정도이겠다.)

-사람은 표면상으로만 사람이다. 피부를 벗기고 해부하면, 순식간에 기계장치가 된다. (159, 폴 발레리의 글이라는데, 시인의 말 같지 않다. ‘사람 껍질을 입은 우리들/장막을 걷어내면/그 안의 톱니와 나사들’이래야 할 것 같음.)

-“오늘은 일기 쓸 거리가 별로 없다.” 카터는 1855년 11월 25일 일기에 무덤덤하게 적는다. “그레이는 학생들을 위해 <<해부학 편람>>을 편찬할 예정인데, 그 책에 들어갈 삽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좋은 생각이다.” (이 책은 나중에 <<그레이 아나토미>>로 유명해질 책이지만, 그건 까마득히 먼 훗날의 이야기다. 현 시점에서 카터는 이 책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짐작조차 못하고 있다.) “구체적인 계획은 전혀 없다.” 그는 이렇게 덧붙이며, 이 프로젝트에서 단순한 화가로 활동하지는 않을 거라고 여운을 남긴다. 그와 그레이는 대등한 공동 작업자로 해부를 함께 진행하게 될 것이다. (204, 알려진 저자인 헨리 그레이 뿐 아니라, 동료 해부학자이자 의사였던 헨리 반다이크 카터가 삽화 대부분을 그리고 공동 저자로 참여했음을 추적하는 게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읽기 시작하면 주인공이 그레이가 아니라 카터라는 걸 금세 알게 된다.)

-niche니치: 나만의 틈새시장, 나에게 꼭 맞는 독보적인 영역(238, 그대로 니치, 라고 번역되어 있어서 뜻을 찾아보았다.)

-“나는 해부가 좋아요, 그것도 아주 많이.” 다른 해부학 수업(약대생이나 물리치료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 해부학)에서는 이렇게 열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곧 의사가 될 의대생들은 뭐가 달라도 확실히 다르다. 그들은 인체-풍성함, 복잡함, 섬뜩함, 그리고 아름다움의 집합체-의 속삭임과 노랫소리를 독특하고 강렬한 방식으로 듣는다. (244, 빌은 세 학과를 대상으로 한 세 가지 수업에 차례로 참관하면서 학생들의 특성까지 분류한다. 의대생한테 혈관 이름 알려주는 부분은 약간 으스대는 것 같이 보인다.)

-문득 두 젊은이가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들의 지식에 뭔가가 부족함을 깨닫고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자기가 뭔가를 모른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258, 마지막 문장의 답이 제일 어렵다.)

-나는 이 시간에 실습실에 머무는 걸 좋아한다. 어린 시절 미치도록 좋아했던 도서관의 고요 속으로 나를 데려가주는 느낌이다. (267, 평범한 대사이지만, 해부학 실습실에 시신을 앞에 두고 혼자인 사람이 느끼는 마음치고는 독특하다.)

-“일별, 시간별로 낱낱이 해부해보면, 나의 인생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의 연속이었다.(…)신은 숨어 있고, 나는 예수를 알지 못한다.(…) 나는 아무런 계획이나 목적 없이 나태함 외로움 침울함 단절감 무력감에 휩싸여 수동적인 객체로 전락했다.”(284, 해부학 전문가인 의사 선생님조차 때때로 이런 자아 붕괴에 놓인다.)

-‘지금 여기 사는 사람들은 한때 누가 이 마룻바닥 위를 걸어 갔었는지 알까?’(294, 전에 비슷한 생각으로 지금 사람들이 디딘 자리 중에 누군가 죽었던 곳은 얼마나 많을까? 했었다.)

-”그의 손길이 닿았던 것은 모두 모닥불이 되었을 거예요.“(324, 그레이는 천연두에 걸려 삼십 대에 죽었다. 전염성 질환이라 그의 비말이 닿은 유품은 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저자와 키스(그레이 연구자)는 추정한다.)

-카터는 작은 것에 집중하고, 사물을 분석하고, 정신적으로 해부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능력은 자아 성찰 과정에서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었지만, 다른 한편 그를 ‘정밀한 해부학 화가’와 ‘천부적인 연구자’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335, 왠지 이 부분에서 저자는 ‘나도 그렇다.’ 하고 쓰고 싶었을 것 같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일(또는 임무)을 수행하면,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내게는 이 좌우명이 늘 허무맹랑하게 느껴진다. (342, 저렇게 기분 좋아질 사람이면 대체로 행복했을 것 같은데 카터는 별로 안 그랬다.)

-과거는 현재나 미래와 분리되지 않고 본래 있었던 자리(또는 머무를 것으로 의도됐던 장소)에 머물러 있지만, 간혹 서둘러 지나가거나 뒤늦게 죽마고우처럼 미소를 지으며 나타나도 괄시받지 않아. 오래된 생각이나 사실을 제거하거나 바꾸려고 노력할 때까지, 우리는 그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어. (344, 카터 아닌 동생 조의 말. 알 수 없지.)

-그러나 그 많은 시신들 사이에서, 정작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인체와 죽음은 각기 배우는 곳이 다르다. 인체는 해부학 시간에 시신을 해부하며 배우는 거지만, 죽음이란 사망-사랑하는 누군가와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359,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게 다행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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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좀 들어봐
줄리안 반즈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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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6 저자: 줄리언 반스.



책의 말미를 거의 앞두고 있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책 뒤편으로 갔다. 옮긴이의 말이 있었고, 친절하게도 줄거리를 써 놨다. 그렇게 뒷마무리를 스포일러 당한 후에 마저 읽었다. 결말을 모르고 읽었어도 그렇게 흥미롭진 않았을 것 같다.

오랜 친구이지만 성격이나 삶의 모습이 너무도 다른 스튜어트, 올리버, 그리고 스튜어트의 여자친구였다가 부인이 된 질리언, 결혼식날 질리언에게 반해버린 올리버, 엄청 꼬셔대는 올리버에게 넘어가 버린 질리언, 두번째 결혼식, 올리버가 두 커플을 지켜보고 지분대던 시절처럼 그 주위를 맴도는 스튜어트. 구질구질한 모습으로 퇴마해버리고 어딘가로 떠나는 가족.

이게 다였다. 세 인물이 화자로 왔다갔다 하면서 방백처럼 독자에게 말을 거는 형식은 그렇게 정신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별로 재미는 없었다. 일단 말마다 프랑스어 섞어 써서 빡치게 만드는 올리버를 가르치는 학생 성희롱이나 하고 남의 부인 빼앗고도 전원에서 유유적적하게 그려 놓아서 완전 나쁜놈의 전형처럼 미워하게 만들어놨다. 질리언은 그렇게 입체적인 인물도 아니고 이 남자 저 남자 쉽게 빠지고 쉽게 갈아타고 그런 마당에 뭔 지혜로운 포샤처럼 잔재주를 쓴다. 스튜어트는 올리버가 워낙 나쁘게 말해대니까 좀 불쌍하다 싶은데 작가가 혹여 독자들이 얘한테 이입할까 봐 좋은 놈 아니게 하려고 이혼 후 성매매 순례 다니는 놈으로 망쳐놨다. 좀 어거지였다.

있으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삼각관계이지만, 결혼-이혼-또 결혼 이 사이를 어물쩡 얼렁뚱땅 제일 갈등 심할 구간을 적당히 비벼서 지나간다. 작가는 그저 위치가 뒤바뀐 두 남자가 거울처럼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 것 같다. 하여간에 개빻은 남자들이랑 똑똑한 척 하는 멍청한 여자가 나오고 막 엄청 재미있는 척 재치있는 척 하는데 작위적이란 생각만 들었다. 차라리 두 번 결혼해서 둘다 같이 살았던 ‘아내가 결혼했다’의 주인아 씨 같으면 깜찍한 구석이라도 있지… 일처일부제와 독점적 이성애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구식책은 새롭게 읽히는 게 없다…

책 앞표지로 가서 언제 나온 책인지 보니까 1991년도라고 한다… 이제 줄리언 반스 선생은 소설 안 쓴다고 했댔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연애의 기억’, 산문집 ‘빨간 코트를 입은 남자’,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산책’(이거는 읽었던 것마저 잊어버림)은 아주 오래된 책들은 아니라 그냥저냥 읽을만 했다. 그런데 내 또래 때 쓴 소설은 영 후졌네요… 그동안 적당히 즐거웠어요. 또 만나지 않아도 건강히 잘 사세요.


+밑줄 긋기
-<스튜어트>는 계속 중도 노선을 대표하는 ‘그들의’가 제일 좋다고 주장했다. (15, 에브리원이나 썸원을 데어라는 대명사로 받는 거 나름 선구적이었는데 소설의 다른 인물들은 반대했다. 퀴어들이 대신 받아들였다.)

-세상 사람 중 반은 자신감이 있는 것 같지만, 나머지 반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나는 이쪽 반에서 저쪽 반으로 건너뛰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자신감이 있으려면 먼저 자신만만해야 한다. 그건 악순환이다. (36, 악순환이지.)

-인생을 사는 데 문제는, 이미 때가 늦은 뒤라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것투성이라는 거야.(55, 나도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아. 그 상태를 견디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녀는 변할 것이지만, 다른 어떤 사람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또 다른 모습의 자기 자신으로 바뀔 것이다. 난 그 변화를 옆에서 지켜보고 싶다. (76, 찐사랑이네)

-사람들은 만나는 자리에서 자기 연민에 빠져 혼자 앉아 있어선 안 된다고.
인생에서 당신이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발견하고, 할 수 없는 게 무엇인지 인식하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결정해서, 그걸 목표로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난 생각해. (80, 다른 건 다 해 봤는데 아직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뭔지는 못 찾았다.)

-그래서 난 다음 사실을 받아들여야 해. 스튜어트를 사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올리버와 사랑에 빠진것 같다는 사실.(181, 질리언은 진부하게 올리버의 꼬임에 넘어가고 선언까지 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도 구질구질했는데 남은 페이지는 얼마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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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세계 - 뇌과학자가 전하는 가장 단순한 운동의 경이로움
셰인 오마라 지음, 구희성 옮김 / 미래의창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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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3 저자: 셰인 오마라.


책의 후반부를 읽을 무렵 깨달았다. 뇌과학, 도시생태, 사회학, 진화, 질병 예방 다 끌어다가 걷기의 효용을 두루 다루는 책을 읽으면서도 오늘 하루 그냥 집에만 있었다. 움직이는 게 낫겠지, 하고 오랜만에 실내자전거를 30분쯤 탔다. 저녁은 굽네치킨 고추바사삭과 치즈볼을 먹었다. 그러고서 읽던 책을 마저 다 읽었다.

곁의 사람이 산책을 나가자고 했다. 해는 8시 다 되어서 지는데 7시 반쯤 되었다. 피곤해서 망설이다 같이 가기로 했다.

우리의 걷기는 사뭇 다르다. 나는 빠르게, 넓은 보폭으로 걷는 걸 좋아한다. 곁의 사람은 땀이 나는게 싫어서 느릿느릿 보폭도 좁게 걷는다. 나는 걸으면서 전화기를 들여다보지 않지만, 곁의 사람의 전화기는 물아일체 수준이다. 나는 낯선 골목, 사람 적은 시간의 대로, 숲길 걷기를 좋아한다. 곁의 사람의 걷는 목적은 어떤 곳에 다다르는 것이다. 주로 마트나 빵집 같은 곳을 둘러보며 구경하길 좋아한다. 하나만 골라, 하면 나는 마냥 걷기를 고르겠지만, 곁의 사람은 빵과 과자와 아이스크림(세 개 잖아!)을 택할 것이다.

길을 나서자마자 학교 아이들을 마주쳤다. 서로 못 본 체 했지만 알았을 것이다. 평소에도 빛나는 행색은 아니지만 오늘은 뻗친 머리 가릴 버킷햇에다 원피스 대충 골라 입고 나왔는데 창피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나를 속상하게 한 적이 많은 터라 불편했다.

직장을 걸어서 오갈 수 있는 건 아주 좋은 일이다. 최대의 장점을 고르라면 그렇게 적당히 걸을 수 있는 거리라는 것. 단점은 너무 많아서 생략한다. 아니, 아까처럼 아이들을 동네에서, 오가는 길에서 자주 마주친다. 일부러 내게 어디어디 사시잖아요? 하고 떠보듯 대놓고 말하는 아이에게 태연한 척 그래, 하면서 불쾌함을 삼킨다.

그래서 그렇게 아쉬운 시작을 지나 지하철 역이 있는 대로를 향하고, 그 반대편으로 건너갔다. 시장과 먹거리 골목이 있어 적당히 둘러보았다. 결국 발길이 머문 건 처음 가보는 빵집. 멜론빵과 대파베이컨패스츄리? 대충 그런 걸 샀다. 그러고나서 다시 건너에 있는 마트에 갔다. 사람이 사는데 무엇을 그리 많이 사는가. 복작복작했다. 과자 코너에서 신제품이 보이자 곁의 사람이 신나했고 나는 부지런히 장바구니에 새로운 스낵들을 담았다. 라면 코너를 주의깊게 보았지만 새로운 건 없어서 넘어갔다. 식자재보다는 주로 냉동, 가공식품류들, 유제품과 마실 거리를 구경하고 셀프 계산대에서 바코드 찍고 나왔다. 빵값은 8천 얼마, 과자값은 9천 얼마, 운전도 안 하고 인터넷 장보기를 더 많이 하는 편이라 그렇게 장보기 나들이도 가볍다. 에코백과 그물백에 과자봉지랑 빵을 적당히 나눠담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볍게 나갔다 생각했는데 5434보라고 한다. 많지도 적지도 않게 걸었다. 그런데도 무릎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참 자전거를 먼저 탔구나. 어제는 병원에 가는 날이라 진료 시간을 기다리며 오늘보다 만걸음은 더 걸었었다. 이틀간 누적된 피로도 있겠다.

걷기를 즐기는 내게 그래서, 걷기의 효용을 이렇게 저렇게 외쳐대는 책은 딱히 쓸모도, 재미도 없었다. 걷기 싫은 사람에게 이 책을 읽힌다면, 와 역시 걷기가 좋은 거구나, 하고 설득되서 벌떡 일어나 나설지는 잘 모르겠다. 걷는 거 좋은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나. 몰라서 안 걷는 사람이 있을까?

혼자 오붓한 것도 좋지만, 조곤조곤 이야기 나누며 둘이 걷는 길이 재미있다. 이런저런 걸 보고 아무말이나 하며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 손은 잡아도 안 잡아도 좋다. 날씨가 좋으면 좋아서, 궂으면 궂어서 걷기 좋다. 그걸 알면, 같이 걷자, 할 사람이 있으면 어디든 저절로 걷게 될 것이다.

걷는 사람은 많이들 쓴다. 많이들 읽는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이 많다. 걸으면서 감각하는 세상을, 생각을 지금 이 순간의 나만 알기엔 아쉬운가 보다.

걷는 걸 좋아하게 된 지 8년차쯤 되었다. 별로 길지 않은가 싶다가 어느새 길어져 있었다. 세상 길은 무수하고 가닥가닥 연결도 잘 되어 있어서 한 번 밟고 갈 곳이 넘친다. 지루할 새가 없다. 다만 노동자는 하루의 긴 시간을 실내에 갇혀 계단을 오르내리고 복도를 오고간다. 실내보다는 실외 걷기가 뇌 활성화에 더 좋다고, 당연한 사실 같은데 이 책은 실험으로 증명된 걸 알려준다. 나는 내 뇌가 더 움직이길, 두 다리가 노곤하도록 마냥 움직이길 바란다. 가고 싶은 곳은 많이 없는데 걷고 싶은 곳은 늘 있다. 굳이 안 읽고 그 시간에 걸었으면 더 좋았겠다.


+밑줄 긋기
-인간의 가까운 친척이라고 할 수 있는 침팬지들은 손과 발을 함께 사용하여 걷는 중간 단계의 직립보행을 한다. 이 변형된 형태는 ‘너클 워킹Knuckle Walking(손가락 관절 보행)‘이라 불리는데 특별히 효율적인 이동 방법은 아니다.(곁의 사람과 지난 번 걷기 때 이족보행에 대해, 영장류의 보행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저자는 인간의 걷기와 다른 동물들의 두 다리 사용에 제법 굵게 선을 긋는다. 난 이런 걸 보면 인간우월주의라고 외치고 싶어지고…)

-최근 유엔은 향후 30년 이내로 세계 인구가 2.9억 명으로 증가하고 22세기가 되기 이전에 3억 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2050년이 오기 전에 인구의 80~90퍼센트 이상이 도심에서 거주할 것이라고 예측했다.(이건 오자 같아서 옮겨 왔다. 세계 인구가 아니라 도시 거주 총 인구라고 해도 숫자가 맞지 않다.)

-일반적으로 도시 규모가 클수록, 또 경제력이 높을수록, 그리고 특히 경제 성장이 더 높을수록 해당 도시 거주자들은 더 빨리 걷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걷기는 평등하지 않을 수도…)

-결과적으로 노력을 관리하는 뇌 체제와 획득할 수 있는 보상을 예측하는 뇌 체제는 매우 밀접하게 연동한다. 들이는 노력이 클수록 그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적은 보상이 있는 경우에는 비교적 느리게, 많은 보상이 있는 경우 더 빠르게 걸어간다. 이는 도시에서 흔한 풍경이다.(내게 걷기는 뭔가 많은 걸 보상하나 보다. 누구보다 빠르게-)

-나아가 뇌는 노력과 보상의 균형을 통해 노력은 최소화하고 보상은 최대화하려는 시도를 한다. 이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나태함과 노력의 균형을 이루는 뇌의 진화된 반응으로 이해하면 된다.(인류 조상들의 움직임도 지금보다 딱히 더 많지 않았다고, 대신 덜 먹었다고 한다.)

-사용하지 않는 근육의 부피는 빠르고 쉽게 줄어든다. 더 나아가 근육량의 손실은 지속적으로 평생 새로운 뇌세포를 생산하는 뇌의 영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근육이 손실됨에 따라 뇌의 기능도 악화된다. 이와 함께 성격, 감정과 뇌 구조 자체에 유해한 변화도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자가 처방할 수 있는 치료제의 일종인 놀라운 자체 수정 메커니즘이 있는데, 이는 바로 운동이다.(뇌근육 손실은 생각을 잘 못했다… 걸으면 뇌를 움직일 수 있다는 건데, 동시에 읽는 중인 ‘천 개의 뇌’에서도 뇌의 작용을 움직임으로, 움직임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뇌는 사고, 기억, 문제 해결, 기획, 기분 조절 등 기타 다른 다양한 일들을 돕는 목적을 갖는다. 규칙적인 리듬과 속도로 걷는다면 뇌의 전반적인 기능이 빠르게 개선된다는 얘기다.(그런데 걷기가 수학하는 뇌까지 살려주진 못한다…)

-걷기를 통해 건강상의 실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규칙적으로 적정한 거리를 높은 속도로 걸어야 한다. 일주일에 최소 4, 5회씩 최소 30분간 대략 시속 5~5.5 킬로미터를 꾸준히 걷는 것이 좋다.(오, 유일하게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팁을 준 부분이다.)

-우리는 ‘네트워크 중심의‘ 관점에서 뇌가 어떻게 특정 기능을 돕는지 관찰하며, 더 이상 개별 영역을 언어, 시각, 촉각, 움직임 등과 같은 특정 기능만을 위한 곳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뇌의 다른 영역들 간 상호작용의 패턴이 학습과 기억 그리고 언어와 시각, 청각의 기능을 돕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는 관점에서 바라본다.(‘천 개의 뇌’라는 책에 비슷한 내용이 나왔다.)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연령층과 성별에 무관하게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자연에 노출되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개인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소득과 교육 수준, 종교의 유무, 결혼의 유무, 봉사활동, 외적 매력과 같은 요인들에 못지않게 높다는 것이다.
개인의 소득 수준이나 외적 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지만, 나가서 산책을 하는 것은 모두가 쉽게 할 수 있다. 자연환경에서 하는 활동이 행복과 웰빙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입증되었기에 비록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자연이 유일하게 도심 속 공원일지라도 규칙적으로, 또 습관적으로 자연 속에서 걷는 것을 장려해야 한다. (걷기는 평등하다. 평등해야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 했는데 내가 누가 싫어서 안 가냐! 했던 게 얼마전인 것 같은데...무슨 독후감에서였지…‘쉬어도 피곤한 사람들’이었다...)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은 나무, 삼림지대의 개울, 바위와 같은 자연에서도 영혼을 찾을 수 있다는 고대 범신론적 자연 숭배에서 대지의 어머니와 신들을 숭배하는 종교 그리고 오늘날의 ‘가이아‘와 같은 여신에 이르기까지 지구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체를 스스로 제어하는 하나의 생태계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러브록 씨의 가이아 이론은 의외로 다른 과학 책에도 자주 등장해서 ‘태양을 먹다’였나? 하여간에 이만큼 반복되면 간단히 적어놓고 기억해줘야겠네 싶었다.)


-시끄럽고 한눈에 봐도 술에 취한 듯한 두 명의 남자들도 홀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나는 대각선 방향으로 걷고 있었고, 한 남자가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적대적인 시선으로 응시했고 더 빠르게 걷기 시작하더니, 왼쪽 어깨를 뒤로 살짝 움직였다. 거리가 아주 가까워졌을 때, 나는 그가 내 왼쪽 어깨를 있는 힘껏 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부딪치려는 순간 나는 내 왼쪽 어깨를 그로부터 멀리 돌렸고, 예상대로 그는 그의 어깨로 나를 치려는 시도를 했지만 내 어깨는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았다. 그는 한 바퀴 빙 돌더니 어색한 모습으로 넘어졌다. 이것은 그의 뇌가 예측한 것이 아니었고, 그가 예상한 결과가 아니었다.(어깨빵 당할 뻔 한 걸 피했다-이 한 문장을 세세하게 관찰하고 꼼꼼하게 기억했다가 적어 놓았다. 작가의 성질을 긁으면 다들 이렇게 박제될 것이다…)

-그런데 꿈을 꾸는 것의 문제는 그때 떠오른 생각들을 기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걷기를 통해 꿈의 특성인 시간적 의미의 상실 그리고 몽상, 서로 다른 기억과 생각의 자유로운 연상을 경험할 수 있다. 척수의 패턴 발생기에 의해 걷는 속도가 규정되고, 규칙적인 걷기 리듬에 빠져들어 시간을 덜 의식하게 되면 모두가 필요로 하는 창의적 사고의 문이 열린다.(꿈과 걷기 중 저자는 글쓰기에 더 유리한 걷기의 손을 들어준다.)

-우리의 시간에 대한 인식은 시계처럼 정확하거나 일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고,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단위는 실제 시간의 단위와 다르다. 이 경우 즐거움이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인간은 흔히 당시 기분에 따라 시간을 지나치게 짧게 또는 길게 예측하는 경향이 있다. 아인슈타인은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손을 뜨거운 난로에 올려놓고 있으면 일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아가씨와 앉아있으면 한 시간이 일분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대성 원리다.˝(‘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 제목 말고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유한을 걱정하면서도 또 영원을 믿게 된다’고 독후감에 써 놓았다.)

-보다 자유로운 창의적 인지 상태를 장려하고 싶다면, 근로자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 화면에서 떨어져 움직이라고 해야 한다. 움직임이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은 강력하고, 이전에 제대로 활용되지 않은 새로운 아이디어 개발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자유롭게 걸어 다니고 교류할 수 있는 실내•외 공간이 있는 사무 공간과 건물이 장려되어야 하며,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과 영감을 쉽게 기록할 수 있는 수단도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행동을 근무하면서 할 수 있도록 합법화하고, 지원하고, 제도화하는 것이다.(산책을 좋아하지만, 직장 안에서는 사람 마주치는 게 힘들어서 걸을 틈이 있어도 앉아서 보낸다. 그래서 늘 안절부절 못하는 것 같다.)

-오랜 기간의 심사숙고, 준비와 아이디어 개발, 새로운 문제의 적극적인 구축과 공식화, 장기간의 사고를 통한 다양한 답안에 대한 검증 그리고 걷기가 있었다.(수학자가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덕을 걷기에게도 돌리는 저자)

-수학은 때로 낯설고 매일의 일상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현대의 물리학과 컴퓨터 게이밍, 애니메이션, 그래픽 그리고 심지어 전자 칫솔의 디자인 등에도 적용될 수 있다.(대부분 그걸 모르고 이를 닦지요.)

-그러나 몽상은 적어도 이 개념의 일반적인 정의에 따른다면 단순히 게으름이나 시간의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정신 관리의 관점에서는 매우 필수적인 행동으로 우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합하고 자신의 사회적 생활에 대해 질문하고 대규모의 개인적 서사를 가능하게 한다. 만약 몽상이 게으름이라면 이는 매우 독특하고 적극적인 형태의 게으름이다. 행동으로는 조용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매우 활동적인 상태인 것이다.(아침 시간에 멍때리는 아이들 보면 뭐라도 하라고 말은 했지만, 그렇게 명상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 생각 그대로 말해도 될지는 아직 판단이 안 선다.)

-정부는 시위행진이 자유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이나 부상에 대한 위험 또는 재산에 손실이 있지 않는 이상 지나친 통제는 금지되어야 한다. 정의 사회를 완벽하게 마비 상태로 만들도록 설계한 시위가 아닌 이상,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변화를 일으킬 에너지가 발산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걷기가 변화를 일으킬 거라는 긍정과 믿음. 오늘 퀴어퍼레이드가 있었다고 한다. 퍼레이드는 걷는 거지? 그 주변에 기독교 단체가 무대를 설치하고 한 자리에 모여 주여, 하는 영상을 라이브로 보았다. 왜 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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