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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웃음소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평점 :
-20260704 저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서사는 뻔하다. 한 부유한 남자가 어린 여자에 미쳐 부인과 딸을 버려두고 떠났다가 시각을 잃고 목숨까지 잃는다. 한 문장으로 스포일러 끝.
주요 인물
여자에 미친 남자: 알비누스
어린 여자: 마르고트
어린 여자의 전/현 애인 겸 알비누스 친구인 화가: 렉스
여자에 미친 남자의 가족들: 부인 엘리자베스, 가엾은 딸 이르마, 처남 파울
그렇지만 나보코프 선생에게 중요한 건 디테일이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문장을 차곡차곡 쌓고, 나중에 쓸 복선 거리도 던져 놓고, 잠시 등장하는 인물이라도 캐릭터를 갖춰 준다. 끝은 대부분 비극이지만, 그 순간조차 읽는 사람을 웃게 만들려고(해학이든 조소든 냉소든) 밑밥을 열심히 깔아놓는다.
나보코프의 소설 속 인물은 대부분 어리석어서 죽거나 망한다. 그리고 렉스나 마르고트처럼 더 사악한 인간들은 유유히 장면을 빠져나간다. 그래도 이 소설에서 모두 나쁜 인간만 나오는 건 아니다. 눈먼 매형을 구렁텅이에서 끄집어 내는 파울과 패가망신에 눈까지 잃은 전남편을 집에 들여주는 엘리자베스가 있다. 그렇게 다시 살아갈 수도 있었던 알비누스는 너무도 어리석었다. 눈이 안 보이는데도 마르고트를 처치할 수 있다고 생각한 알비누스는 자기 죽을 곳으로, 원래 집으로 제 발로 찾아간다.
어떻게 줄여도 이야기가 후져진다. 나보코프 소설들은 소재만 들으면 그게 뭐야, 하지만 읽어봐야 작가가 열심히 가꾼 구조물을, 길을, 미로를 겪을 수 있다. 최초 발표 당시 제목은 카메라 옵스쿠라, 바늘구멍 사진기였다. 조그만 구멍을 뚫어주고 어둠 상자를 거쳐 거꾸로 된 장면을 보여준다. 뜻을 알고 보면(안 찾아보면 몰라서 탈이지) 이전 제목이 어둠 속의 웃음소리 보다는 나은 것 같다.
아주 오랜만에 네 사람 분의 이불을 빨고 말렸다. 먼지망에 걸린 이부자리 먼지는 평소(회색)와 달리 하얬다. 이불 위로 침구 노즐로 청소기를 돌리면 다른 떄보다 훨씬 곱고 입자가 미세한 먼지가 먼지통에 쌓인다. 아마도 사람과 이불의 구성 물질이던 애들이 서로 비비대다 떨어져 나왔을 것이다. 나는 그걸 그냥 쓰레기봉투에 쏟아 버린다. 어디엔가 그런 먼지들을 모아서 소조를 빚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소설쓰기도 비슷한 것 같다. 먼지야, 하고 망각으로 떨어버리든가, 미친놈처럼 조물딱대다가 만들고 싶은 이야기와 사람 모양을 갖춰놓든가. 오늘의 나는 쓰레기봉투 쪽이다.
+밑줄 긋기
-마지막으로 결혼 직전에 베를린에서 못생긴 얼굴에 여위고 따분한 여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녀는 토요일 밤이면 찾아와 자신의 과거를 자세하게 이야기하곤 했다. 늘 염병할 똑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한 뒤 그의 품에서 지친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자신이 아는 유일한 프랑스어 구절, “그게 인생이죠C‘est la vie˝로 마무리를 하곤 했다. (15, 여기서 긁혀서 알비누스-안 좋은 연애운 열거 중- 개새끼네 하면 내가 진 거야?)
-그녀는 손이 빠른 편이라 두 달이 지나자 열두 개의 방에서 그의 과거의 삶은 완전히 죽었다. (115, 화장실3개라 치고, 주방, 식사실, 거실, 응접실, 이렇게 쳐도 방이 다섯 개는 되는 구나...알비누스 엄청 부자였군.)
-어쩌면 그에게서 유일하게 진짜인 것은 예술, 과학, 정서의 영역에서 창조된 모든 것은 대체로 영리한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타고난 믿음이었는지도 모른다. (174, 그 영역만일까요. 나는 사회 자체가 속임수 같다.)
-그녀를 죽일 수는 있지만, 그녀와 헤어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21, 아이고…알비누스야 넌 엘리자베스한테 총 맞아도 할 말 없다.)
-어둠 속에는 빛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꾸불꾸불한 길은 기어다니는 더러운 생물이 사람 피부에 남기는 자취처럼 그의 안에 타올랐다.(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