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섬
김한민 지음 / 워크룸프레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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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8 저자: 김한민.



이 책은 어쩌다가 내게 왔고 내 책꽂이에서 오랜 시간 나를 기다렸다. 나이 든 저자와 눈이 안 보이는 어린 독자가 삽질을 하면서 책을 만들어 놓고 하염 없이 읽어주길 기다린다. 그 기다림은 낚시 비슷하다.

그림책 같기도 시집 같기도 한 책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몇 달 전에 아이에게 읽어준 ‘꽃들에게 희망을’이 생각났다. 책 말고도 한참 고민하고 부딪힌 문제와 씨름하고 공들여 만든 걸 남들이 발견해주길, 하고 바라게 되는 일은 많은 것 같다.

한 번 시작된 이야기를 마무리 짓긴 어렵고, 마무리 지을 만큼 나아가기도 쉽지 않다. 애초에 뭘 쓸지 찾기도 떠오르기도 녹록치 않다. 그냥 어느 날 이거 써야지, 하고 파박 찾아오길 기다리는 거지.
책은 아니지만 아무말이나 쓰고 싶어서, 난 책섬들을 떠도는 여행자가 되었고, 다음에 같은 책섬을 찾아가려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은 안 될 여행일기 같은 걸 계속 만들고 있다. 놀러 가서 사진을 듬뿍 찍어오는 사람들처럼, 그런데 누가 보면 좋고 아니더라도 나중의 내가 아, 거기 갔었지, 그런 곳이고 그런 느낌이었군, 하고 떠오를 정도만 남겨두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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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오솔길
문장 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다 보면,

걸려 넘어지는 문장이 있어.

그 문장 앞에서 넌 작아지지. (81, 그렇게 걸리는 문장들은 일단 주섬주섬 모아 놓는다.)

-이 결투는 처음부터 불리한 게임.

쓰지 말 이유는 수만 가진데,
써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는.(98-99, 쓰기는 왜 쓰는지를 찾아가는 여정 아닐까)

-책은 만든 사람 게 아니니까.(13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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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례기 - 창비장편소설
방영웅 지음 / 창비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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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7 저자: 방영웅.


어려서 텔레비전에서 ‘분례기’ 드라마를 봤던 것이 아직도 생각난다. 아이들 볼만한 수위는 아니었다. 그래도 배우들이 연기를 잘했고, 나무 하러 간 분례가 강간 당하고, 노름쟁이 남편에게 폭행 당하고, 미쳐버려 옥화처럼 보퉁이를 든 채 어딘가로 떠나는 장면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데, 책으로 다시 읽어보니 그때 드라마를 꼼꼼하게 다 봤던 모양이다. 찾아보니 드라마가 방영된 시기가 1992년, 국민학교 2학년때인데 그 어린애가 보기엔 좀 충격이었을 것 같다.
1997년에 창비에서 나온 초판을 중고로 샀는데 책이 때도 타고 세게 찍힌 자국도 있고 책장 사이에서 정체 불명의 터럭도 나왔다. 그런데 이야기 결이랑 책 모양새랑 어울렸다. 이야기 속 남자들은 죄 개보다 못한 새끼들이고 여자들은 다양하게 고생을 하다가 죽거나 미쳤다.
슬프기도 하고 짐승 같기도 하고 허구래도 이런 삶을 산 여자들이 있었대면 미치고 팔짝 뛰겠고 그런데 문장은 또 예쁘게 잘 깎아놔서 재미있었다. 똥 위에서 태어나 평생 똥례라 불리며 살아갈수록 점점 불행으로 흘러드는 삶인데, 그걸 보고 재미있으니 좀 미안하다. 책을 읽으면서 30년도 더 전에 본 드라마가 다시 떠오르게 만드는 건 이야기의 힘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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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저것들은 무슨 새일까? 섬삼새, 콩새, 고지새, 방울새, 장박새, 되새, 멧새, 촉새, 무당새, 쑥새…...? (28, 나도 늘 새 이름이 궁금한데 생김새 분간을 잘 못하겠다.)

-찔레는 똥례에게 말한다.
얘, 뭘 죽니. 죽지 마.
찔레가 이렇게 속삭이자 그 주위에 있던 솜나무, 얼레지, 인동, 으름, 놋동이, 때죽나무, 오리나무, 청미래, 가막살나무, 세잎양지, 개서나무, 매자나무, 층층나무, 대사초, 고로쇠나무 등이 덩달아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찔레 말이 옳어. 죽긴 왜 죽니, 이팔청춘에…(120, 나무 이름은 익어도 나무의 모습이 어떤지 떠올릴 줄 모른다. 새도 나무도 잘 모르고, 모른다고만 하고 게으르다.)

-“지난 겨울에 졌던 꽃이 지금 또다시 폈잖어. 그러니께…”
똥례는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알아차린다. (122, 연쇄 강간범 용팔이가 똥례한테 건넨 말인데 그냥 확 용팔이놈은 가새바위에서 떠밀어버리고 싶다.)

-“돈 있다고 그런 디다 쓰면 어떡해유. 그러니께 우리가 이렇게 못산다 말유.”(170, 우동 사 먹고 밥집에서 옷 갈아입고 시집 가라는 걸 분례는 굳이 상엿집 안에서 갈아입고 가겠다고 한다. 남들 눈에 띌 새라 몰래 n번째 부인 되러 가는 길이 서러운 줄도 모른다.)

-봄이 되어 그런지 기운이 하나도 없다. 아니 답답하다. 방안은 똥이 가득 찬 똥독 같은 생각이 들고 누가 똥바가지로 똥독 속에 든 자신을 꾹 누르는 것 같다. (197, 평생 똥이라 불려온 여자가 기분마저 똥통 빠진 것 같다니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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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뇌 - 뇌의 새로운 이해 그리고 인류와 기계 지능의 미래
제프 호킨스 지음, 이충호 옮김 / 이데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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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4 저자: 제프 호킨스.


책을 쓴 사람은 신경과학자이면서 컴퓨터 공학자이다. 뇌에 대해 뭔가를 알고 싶다면 1부로 족하다. 2부의 인공지능에 대한 생각은 책이 나온 2021년에조차 유효했을지 의문이다. 한계가 많고 범용성이 떨어진다며 그 발전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던 AI는 생각보다 똑똑하고 학습을 잘하고 문제해결능력도 우수해졌다. 3부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주로 저자의 자유로운 상상이다. 책 초반의 뇌 이론마저 저자가 속한 연구팀의 가설이 대부분이고 이게 검증되고 통설이 된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이 책을 잘 못 알아들으면서도 읽고, 이 글에 여러 단어를 동원하고 자판을 눌러 글자가 새겨지는데에는, 뇌의 움직임과 뇌의 명령을 받은 몸의 움직임과 세상을 지각하는 뇌의 감각과 과거의 지식 같은게 마구 동원되었을 것이다. 뇌의 작용을 다른 신체활동과 마찬가지로 아주 작은 부위들의 움직임의 모임, 새로운 틀 짓기 같은 것으로(내가 제대로 봤다면) 표현한 게 흥미로웠다. 나머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그런 기대는 확률이 낮은, 이런 상상들은 그닥 내 뇌가 움직이는데 도움이 못됐다. 뇌에 관해 꼭 읽어보라거나 많은 걸 알려준다고는 못 하겠다. 그냥 이런 의견도 이런 상상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읽히는, 그러나 앞머리 이론 설명 덕에 결코 만만하게 쉽게 읽히지는 않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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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주가 존재했다가 사라졌는데, 그것을 아는 뇌가 하나도 없었다면, 우주는 실제로 존재한 것일까?(33)
만약 어떤 것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면, 우리는 그것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348, 책의 시작과 마무리에서 비슷한 질문을 던지며 지능이란 무엇인지 저자의 생각을 전개한다.)

-이것을 나타내는 용어가 바로 감각-운동 학습이다. 다시 말해, 뇌는 우리가 움직일 때 우리의 감각 입력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함으로써 세계모형을 배운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고 노래를 배울 수 있는 이유는 집 안에서 우리가 이 방 저 방으로 돌아다니는 순서와 달리 노래의 음정 순서가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에 존재하는 것 중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66-67)

-가지돌기 극파는 먼쪽 가지돌기에서 서로 인접한 시냅스 집단이 동시에 입력을 받을 때 일어나며, 이것은 그 신경세포가 다른 신경세포의 활동 패턴을 알아챘다는 것을 의미한다. 활동 패턴을 감지하면 가지돌기 극파가 발생하는데, 이 극파는 세포체의 전압을 높이면서 신경세포를 예측 상태로 돌입하게 한다. 이제 신경세포는 극파를 발화할준비가 되었다. (80, 신피질의 90퍼센트의 시냅스들은 신경세포를 활성화하되 충분히 자극하지는 못하는 가지돌기 극파를 통해 뇌가(사람이?) 예측을 하게 만든다.)

-정상적인 시각은 정적인 과정이 아니라 활동적인 감각-운동 과정이다. (141)

-어떤 것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수천 개의 피질 기둥에 분산되어 있다. (149)

-신피질은 모형을 배우는 일을 멈추는 법이 없다. 주의를 옮길 때마다 어떤 것의 모형에 새로운 항목이 추가된다. 모형이 일시적이건 오래 지속되는 것이건 학습 과정은 동일하다. (159, 뭔가 배움 종류마다 뇌 쓰임이 다를 것 같은데 이 책에서는 꼭 그렇지는 않은 감각-운동 영역과 계속 생성되는 틀에 관해 이야기한다.)

-지능 기계가 우리보다 더 빠르고 깊게 생각하고,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것을 감지하고,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을 가는 날이 오면, 우리가 무엇을 배우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231)

-하지만 대다수 분야에서는 학습 속도가 세계와 물리적으로 상호 작용해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제한된다. 따라서 기계가 갑자기 우리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게 되는 지능 폭발은 일어날 수 없다. (237,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초인적 지능 기계는 모든 종류의 비행기를 능숙하게 조종하고, 모든 종류의 기계를 다루고, 모든 프로그래밍 언어로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다. 또 세계 각국의 언어를 다 말하고, 전 세계 모든 문화의 역사를 알고, 모든 도시의 건축을 이해해야 한다. 사람이 집단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의 목록은 너무나도 길기 때문에, 어떤 기계도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237, 모두 까지는 아니라도 아주 다양하게는 가능한 범용 인공지능의 세계가 왔습니다 선생님…)

-나는 지능과 지식을 기반으로 한 후손의 가능성을 고려하라고 했고, 이 후손이 유전자를 기반으로 한 후손과 똑같이 가치 있는 존재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346, 인류의 유전자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책의 구성
-1부-신피질이 작용하는 방식, 세계 모형을 방식을 설명하는 이론
-2부-오늘날(2021년 이전)의 AI는 진정한 지능이 있지 않다는 주장
-3부-지능과 뇌 이론을 바탕으로 보는 인간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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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이옥전집 3 : 벌레들의 괴롭힘에 대하여 완역 이옥 전집 3
이옥 지음,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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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1 저자: 이옥.

천천히 읽기로 했는데 어쩌다보니 올해 안에 이옥 전집을 다 읽고 말았다. 3권은 ‘백운필’이란 책과 ‘연경’이란 책이 함께 묶여 있다.

‘백운필’ 구성은 1,2,3,4가 아니고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이렇게 종류마다 넘버링을 12개 해 놨다. 새, 물고기, 짐승, 벌레, 꽃, 곡식, 과일, 채소, 나무, 풀 이렇게 큰 주제 아래 소소한 자연물 하나씩을 글제로 짧은 짓기를 해 놓았다. 다 써 놓은 걸 그렇게 엮은 건지, 일부러 박물지처럼 그렇게 한 건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막 빼어나고 엄청 재미있고 그런 건 없고 약간 소소한 팁과 지식(대부분 중국 고서들이 출처인데 검증할 도리는 없음), 누구네 그거 있다더라, 어디서 주워다 들은 효능, 잡다한 종류가 많은데 내가 다 알진 못해, 하는 나열이 많았다.
정 쓸 게 없으면 이 책 목차 따라 자연물에 대해 잡글을 써 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벼슬은 못했어도, 이옥 집안은 땅과 집이 있고 부리는 사람도 있어 그럭저럭 잘 살았다. 곡식밭, 채마밭을 종더러 일구게 해서 잘 키운 무가 배보다 시원하다는 걸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양반 사대부 왕족 귀족 아닌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까이 듣고, 동식물 이야기도 하나하나 경험하거나 고서와 대조하면서 당시 삶을 글로 박제해 놓았다. 너무 관심사가 두루 많아 한 가지만 파는 전문가는 못되었다. 역사 교과서에 한 줄 실리지는 못했지만, 이쯤되면 이옥도 실학자 기질이 있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동물 부분은 어디서 들은 이야기들 위주라 좀 약하고, 꽃, 과일 이야기는 그보다는 나은데, 채소 이야기는 아주 신나서 적어둔 느낌이다. 오이 반찬 먹는다고 가난뱅이라고 누가 비웃으니 (아마도 긁혔을 것 같은데 초연한 척) 고서에서 본 부추 반찬 세 가지를 들먹이며 온갖 오이 반찬 먹는 내가 부자다, 하는 게 허세라도 자존감이 세 보여서 좋았다. 나도 시골 출신이라 그런가 채소 부분이 제일 재미있었다.

나무 부분에서 이옥은 시골 살며 심은 나무 종류와 그루 수까지 깨알같이 적어놨다. 이건 그냥 본인이 심심파적으로 헤아려봤나 싶게 누구를 위한 글인지 모르겠지만, 나무들을 세세한 종류별로 나누고, 차이를 구별하고, 고서 이름과 대조하고, 이러니 나무도 사랑했을 것이다. 바닷가에 절로 자란 해송을 사람들이 땔감으로 써서 까까머리, 벌거숭이 산이되자, 시골 사람들이 나무지키미로 결성한 결사대에 ‘장청사’라는 이름까지 붙여 주었다. 장청사의 규칙과 벌은 제법 엄격해서 진지한 모임이었구나 싶다.

‘연경’은 담배대백과 같이 재배법, 잎관리법, 불붙이기, 피우는 법, 도구, 담배 매너까지 다 나온 책이다. 세세하게 가르치는 듯 설명한 건 가상하나 하필 그게 몸에 안 좋은 담배야. 이 책이 이옥의 글 중 조금 늦게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시중에 별로 안 돌아다니고 안 읽혔으면 흡연자 늘리는 과오는 덜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담배잎 재배 과정을 자세히 읽게 된 나는 그냥 신기하다.

이렇게 전집 3권까지 이옥 읽기를 마쳤다. 4권은 원문, 5권은 저본 영인-원판을 사진 찍은 듯 그대로 올리는 것이라 하니 한문학 연구자 아니면 일부러 찾아볼 일이 없을 것 같다. 시대상이나 작가의 사상이 드러나는 글들이 많았다. 다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글을 독특하게 잘 쓰던 선비였다. 정조가 너무 에프엠이라 급제해도 떨어뜨리고, 과거도 못 보게 하고, 살아있는 동안은 벼슬에 미련이 없지 않았겠다. 그렇게 한가한 덕분에, 글을 이리저리 굴리며 살다간 사람 덕분에, 읽을 거리들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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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양 인가에 들어가 알록달록한 비둘기들이 지붕 꼭대기에 줄 지어 앉아 있는 것을 보면, 문득 주인의 품위가 열 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는 후생들이 경계할 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66, 지금 우리 곁의 비둘기는 이미 이백여년 전 조상들이 집에서 키우다 방생한 놈들이었나 보다. 무늬 따라 비싼 애들도 있었대…)

-새 중에서 조그만 것으로 참새보다 더 작은 것이 없지만, 마작 이외에도 더 작으면서 조금씩 모습이 다른 것들이 또한 많다. 혹 작으면서 조금 푸른 것, 조금 누른 것, 조금 붉은 것, 조금 검은 것들이 있으니 그 이름을 분별할 수가 없는데, 시골 사람들은 ‘박새’니, ‘피죽새’니, ‘굴뚝새’니, ‘면화작’으로 일컬으며 구별하기도 한다. 가장 작은 것을 ‘수사자’라 하니, 곧 뱁새(붉은머리오목눈이)이다. 그러므로 속담에 따라가지 못할 것을 억지로 흉내 내는 것을 두고 ”뱁새가 황새의 걸음 따라가려 한다“고 말한다. (89, ‘참새’ 전문. 옥이 아저씨는 조그만 새들 이름을 잘몰라 뭉뚱그려 참새, 해버렸는데 시골 사람들이 더 분류를 잘했다. 나도 작은 새이름을 죄 알면 좋겠다. ‘한반도의 새’ 도감을 열심히 봐야겠어...)

-경기와 호서의 까마귀는 모두 큰 부리에 새카만 빛을 띠고 있는데, 영남과 호남은 모두 갈까마귀이다. 내가 일찍이 영남에서 보니 그 무리가 몇 천마리인지 알 수 없는데, 날면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고, 내려앉으면 산 하나가 오통 새까맣게 된다. 그곳 사람들은 밤이면 죽림 가운데서 이들을 잡는데, 먹으면 또한 맛이 좋다고 한다. (92, ‘까마귀’ 전문. !!! 까마귀 고기를 먹었냐, 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조상들은 까마귀도 먹었다. 우리 동네랑 남쪽 동네 까마귀가 다른 종류인 것도 처음 알았다.)

-물고기가 오래도록 올라오지 않으면 긴 목을 늘이고 조심스레 작은 발걸음을 옮기며 엿보다가 요행히 물고기를 만나면 쫓아가서 쪼는데, 날갯죽지는 춤추는 듯 발걸음은 넘어질 듯하여 그 모습이 마치 미친 것처럼 보인다. 또 사방을 둘러보며 살피다가 다가오는 동류를 부리로 쳐서 좇아낸다.
대개 물고기의 처지에서 살펴보면 닭, 오리, 솔개, 까마귀와 진실로 다른 것이 없다. 아! 모습은 한가롭고 깨끗함을 취하고, 이름은 고상하고 우아함을 구하지만, 이익을 보고는 홀연 거꾸러지고 정신을 못 차리니, 세상에서 가장 험한 것은 욕심이요, 막기 어려운 것은 이익인 것이다. 사군자들도 오히려 지조를 잃고 타락을 하고 마는데, 하물며 새에 있어서랴!
(94, ‘갈매기와 해오라기’ 중. 방죽의 갑문을 지키며 학꽁치를 잡아 먹는 갈매기, 한가롭고 우아한 새라고 글의 문을 열더니 묘사된 바로는 별로 우아하진 않다. 그리고 나도 덩달아 지조를 잃고 타락했다는 기분이 든다.)

-작년 봄, 나무하는 아이가 우연히 여우 새끼 한 마리를 산에서 잡아 묶어 왔기에, 나는 빨리 때려죽이라고 하였다. 한 마리를 잡으면 한 마리를 죽이고, 천 마리를 잡으면 천 마리를 죽여야 하니, 잡는 대로 죽여야 하는 것은 오직 여우이다. (155, 시체 파먹는게 싫어서 여우를 혐오하는 옥이 씨. ‘여우와 나’ 라는 책을 읽어보면 생각이 달라지실까…)

-어지 알겠는가, 보지 못하고 심지 못한 것 중에 또 얼마나 어떠한 괴기한 모양이 있을 것인가?(219, 꽃의 모양을 논하던 중에. 궁금증도 많고 겸손함도 갖췄다. 내가 다 알지, 하지는 않고 늘 여지를 둔다.)

-대저 나의 집이 서울과의 거리가 불과 백이십 리인데, 매양 채소와 과실 등속을 비교해보면 늘 한 달쯤 늦게 이루어지니, 사람 노력의 부지런함과 게으름 탓만이 아니요, 또한 지기가 미약한가, 왕성한가에 달린 문제이다. 식물이 오히려 그러하거늘,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랴. (222, 환경의 영향을 강조하는 옥이 씨)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가령 집 뒤의 대나무가 큰 것이었다면 대그릇을 만들고 부챗살을 붙일 수 있을 것이고, 그 다음의 것이었다면 피리에 구멍을 내고 지팡이로 잘라 쓸 수가 있을 것이고, 작은 것이었다면 그래도 붓에 꽂고 담배통에 이을 만한 것이니, 장차 도끼로 베임을 당할 날이 이르렀을 것이다. 어지 능히 푸르게 우거지고 빽뺵하여, 도리어 책상을 맑게 하고 거문고와 서책에 어울림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인가? 그렇다면 대의 무성함은 그것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니, 쓸모가 없다는 것은 도리어 쓸모가 있는 것보다 낫다 하겠다. (227-228, 문장의 무성함은 쓸데없는 글에서 나올 수도 있겠다. 이옥은 동물보다는 식물에 대한 글을 더 잘 쓰고 또 더 잘 아는 것 같다. 이 말에 화답하듯 다음 글에서는 원래 게을러서 꽃 잘 못 돌보다가 노년이 되면서 꽃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장준(감의 종류)은 매우 높고 홈은 자못 선명한데, 그 껍질은 두꺼워 떡으로 만들어 먹는다. (264, 감 껍질로 감껍질 버무리 같은 떡을 만든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내 성질이 씨를 삼키지 못해 비록 앵두의 작은 씨라 하더라도, 씨를 삼켜 내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일찍이 앵두를 얻으면 그것을 잘게 부수어 베로 싼 뒤, 비틀어 즙을 내어 마셨다. 그 색은 담홍색으로 매우 예뻤다. 또 청포도를 얻으면 그 방법에 따라 즙을 냈는데, 그 빛깔 역시 옅은 초록색으로 예뻤다. 앵두에 비교하면 더 맑고 시원하게 느껴진다. (278, ‘앵두즙과 청포도즙’ 전문. 씨 못삼켜서 즙내달라고 징징대는 애기 같은 영감님. 뭔가 주스 광고 같아서 퍼왔다. 깨작깨작 쓸 때는 이걸 이백몇 년 후 어떤 애가 베끼고 앉았을 거라는 생각 못했겠지.)

-이는 개를 잡아 찢어 벽사하면서 갱헌(종묘의 제례에 쓰던 삶은 개고기)의 예를 쓰지 않는 것과 같은 잘못이다. (282, 복숭아만 제사에 안 쓰는 걸 지적하는데 종묘제례에 개고기 쓰는 TMI까지 알게 되었다.)

-혹시 과일에도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술배처럼 따로 과일배가 있는 것인가?(…) 나는 본디 과일에 벽이 없어서, 먹으면 또한 좋지만 많이 보면 쉽게 염증을 느낀다. (288, 저때도 술배 타령한 게 웃긴데 과일 앉은 자리에서 몇십 몇백 개 먹는 사람들 이야기 전하면서 디저트 배는 따로 있나 하는 것 같다. 실제로 잔뜩 먹은 사람도 디저트를 보는 순간 배가 꿀렁 하면서 자리를 만든다는 글을 어디서-아마도 찰스 스펜스- 본 것 같다. 그리고 마무리로 난 안 그래, 하는 게 또 새침하다. 다른 글에서는 ‘나는 천성이 산나물을 좋아해서 보게 되면 반드시 포식을 하고 만다.’하고 객점에서 산나물 반찬에 밥 몇 그릇 뚝딱-심지어 귀한 건어물과 바구어-먹은 이야기가 있다. 이옥은 과일은 그냥저냥 좋아했고 산나물은 무척 좋아했구나...)

-이 때문에 홍초, 만두, 청과, 송병, 생해, 침채는 그 근원을 궁구하면 모두 동성에서 전한 것이다. (291, 음식 사치하는 먼저 망한다고 옷 사치가 낫다고 뒤에 덧붙인다. 이 부분은 주석이 거의 없어 각각 음식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엄청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을 나열한 듯하다. 침채는 김치를 말하는 것 같다.)

-내 집에 작은 채마밭이 있는데, 마루 앞에 바로 면해 있다. 아이종 하나가 거기에 부지런히 힘을 기울이면 밥반찬으로 나물을 마련하는 데 이바지 할 수 있다. 그 심은 것으로는 파, 마늘, 부추, 무, 배추, 겨자, 아욱, 방아, 해바라기, 상추, 시금치, 오이 등이다. 이 채소들은 절여 먹을 수 있고, 국을 끓여 먹을 수 있고, 데쳐 먹을 수 있고, 생으로 먹을 수 있고, 해물이나 고기에 넣어 먹을 수 있고, 즙을 내어 먹을 수 있고, 약용으로 쓸 수도 있다. (294, 나열한 채소 뒤에 호박, 박, 미나리, 가지 고추도 있다고 추가로 자랑한다. 그러고는 주자가 안 부럽다, 이렇게 마무리하는 패기. 주자가 채소 13종에 대해 오언절구로 시를 지은 것은 주석 덕에 알게 되었다.)

-산가지는(…)생으로는 먹을 수 없다. 물가지는 굴젓에 섞으면 생으로 먹어도 아주 맛이 좋다. (296, 날 가지에 굴젓이라니 참신한 레시피… 지금은 그 물가지라는 게 남아나지 않은 것 같다. 우리 할머니가 키운 가지는 나물 무쳐도 맛잇었는데, 시장의 가지는 다 맛없다.)

-내가 들은바, 철원에 나이 팔십 세가 된 노부인이 있는데 천성이 고추를 좋아하여, 떡과 밥을 먹는 이외에는 모두 고추를 뿌려 붉은색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맛을 본다고 한다. 한 해 동안 먹은 것을 합해보면 백여 말에 달할 정도라 한다. (308, 외래종이지만 두루 심기는 고추와 호박에 관한 글에서. 팔십 살 넘었다는 저 할머니는 ‘세상에 이런 일이’나 ‘화성인 바이러스’에 등장해서 “할머니, 고추는 적당히 드시고 오래오래 건강하세요~”하는 멘트로 끝날 것 같은 에피소드의 인물이었다.)

-서울에 있을 때를 회상해보매, 매양 술집에 들어가서 연거푸 서너 잔의 술을 마시고 손으로 시렁 위의 붉은 고추를 집어서 가운데를 찢어 씨를 빼내고 장에 찍어 씹어 먹으면 주모가 반드시 흠칫 놀라며 두려워하였다. 남양에 살게 되어서는 가루를 내어 양념장을 만들어 회와 함께 먹는데, 또한 누런 겨자즙보다 나았다. (310, 이옥 선생의 맵부심, 고추 사랑. 마지막 양념은 초장에 회 찍어 먹는 느낌인데 식초는 아직 안 섞었나 보다.)

-매년 여름 시골집에서 마늘을 먹은 사람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입을 한 번 열자마자 역한 냄새가 방에 가득하여 곁에 있는 사람을 참을 수 없게 만드니, 암내나 방귀보다 심하다.(…)비록 연꽃 향으로 입 안 가득 채우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어찌 불결한한결기운으로 도처에 냄새를 풍길 수 있겠는가? 깊은 병에 약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 먹지 않은 일이다. (319, 어우 마늘 냄새, 불결해!를 여기서 시전하는 옥이 씨ㅋㅋㅋ 18, 19세기의 이옥은 마늘 고추 팍팍 넣고 빨갛게 무친 배추 김치는 못 먹어봤지 싶다. 배추 글에서도 종류만 나오고 용도를 논하지 않는다. 그런데 겨자랑 생강(심지어 생생강 깨물어 먹음…)은 많이 먹고 좋아한다고 자랑하는데 걔들도 냄새나!!!!)

-매년 한여름 단비가 처음 지나가면 상추잎이 매우 실해져 마치 푸른 비단 치마처럼 된다. 큰 동이의 물에 오랫동안 담갔다 정갈하게 씻어내고, 이어 반의 물로 두 손을 깨끗이 씻는다. 왼손을 크게 벌려 승로반처럼 만들고, 오른손으로 두텁고 큰 상추를 골라 두 장을 뒤집어 손바닥에 펴놓는다. 이제 흰밥을 취해 큰 숟가락으로 퍼서 거위 알처럼 둥글게 만들어 상추 위에 올려놓되, 그 윗부분을 조금 평평하게 만든 다음, 다시 젓가락으로 얇게 뜬 송어회를 집어 황개장에 담갔다가 밥 위에 얹는다. 여기에 미나리와 시금치를 많지도 적지도 않게 더하여 송어회와 어울리게 한다. 또 가는 파와 향이 나는 갓 서너 줄기를 집어 회와 나물에 눌러 얹고, 곧 새로 볶아낸 붉은 고추장을 조금 바른다.
그러고는 오른손으로 상추잎 양쪽을 말아 단단히 오므리는데 마치 연밥처럼 둥글게 한다. 이제 입을 크게 벌려 잇몸은 드러나고 입술은 활처럼 되게 하고, 오른손으로 쌈을 입으로 밀어 넣으며 왼손으로는 오른손을 받친다. 마치 성이 난 큰 소가 섶과 꼴을 지고 사립문으로 돌진하다 문지도리에 걸려 멈추는 것과 같다. 눈은 부릅뜬 것이 화가 난 듯하고, 뺨은 볼록한 것이 종기가 생긴 듯하고, 입술은 꼭 다문 것이 꿰맨 듯하고, 이는 신이 난 것이 무언가를 쪼개는 듯하다. 이런 모양으로 느긋하게 씹다가 천천히 삼키면 달고 상큼하고 진실로 맛이 있어 더 바랄 것이 없다. 처음 쌈을 씹을 때에는 옆사람이 우스운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야 된다. 만일 조심하지 않고 한번 크게 웃게 되면 흰 밥알이 튀고 푸른 상추잎이 주위에 흩뿌려져, 반드시 다 뱉어내고 나서야 그치게 될 것이다. (…)나는 상추를 유달리 좋아하여, 때때로 이 방법대로 쌈을 싸 먹곤 한다. (324-325, 유독 공들여 묘사한 이옥의 상추쌈 싸먹는 법이 이 책의 백미였다. 뒤에 나 상추 좋아해, 덧붙이는 게 불필요할 정도로 생생한 먹는 법이었다.)

-이제 우리말의 호칭대로 나누어보면 ‘떡갈나무’라는 것은 잎이 넓고 껍질이 두꺼우며, 도토리는 깍지가 있어 둘러 싸고 있다. 이것이 이아에서 말한 역나무이다. ‘소리참나무’라는 것은 잎도 조금 작고 열매도 또한 작은데, 이것이 각나무이다. ‘참나무’라는 것은 잎은 밤나무 같고, 열매는 조두라고 하여 매우 크다. 이것이 작나무이다. (332, 중국 책에 나온 생물 이름과 우리 말이나 방언을 그대로 음차해서 한자로 쓴 것을 연결해주곤 한다. 차마 한글은 못 써도 떡갈나무를 ‘덕가을목’이런 식으로 소리를 옮긴게 재미있다.)

-그런데 오행(성정과 형체는 있지만 지각은 없는 것 다섯 가지) 가운데 오직 나무만은 지각이 있는 것에 가장 가까우니,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것은 나고 죽는 것과 같고, 바람에 따라 흔들리거나 고요해지는 것은 가고 멈추는 것과 같으며, 종자를 서로 전하는 것은 자손을 잇는 것과 과다. (350, 나무를 베는 것을 살생의 유라 하니, 역시나 이옥은 나무를 매우 사랑했군.)

-남초, 연초, 담파고, 담박귀(378-380, 모두 담배를 이르던 말. 어찌나 정성스레 담뱃잎을 키우는지, 백운필에 담배 글 하나가 있는데, “연경”이라는 담배 백과사전 같은 걸 아예 따로 만들어서 이 전집에도 실려있다. 비교적 최근에 발굴된 책이라고 한다.)

-”(…)아! 낳는 것은 하늘에 있으나 영화롭게 하는 것은 인간에 달려 있다. 하늘은 사심이 없기에 그 조화가 균일하지만 인간이 널리 베풀지 못하므로 소원함도 있고, 친함도 있는 것이다. 하늘이 이미 낳아주었는데, 또한 어찌 사람이 영화롭게 하고 그렇지 않게 한다고 원망하겠는가? 나는 비록 느낀 바가 있지만 풀은 무정한 것이니, 그것이 소의 목구멍을 채우는 것을 보매 나비의 향기 다툼의 대상이 되는 것과 다름이 있겠는가?“ (385-386, ‘꽃의 귀천’이라 이름 붙인 글인데 수능 공부할 때 지문으로 봤던 글이어서 오, 읽어봤네, 했다.)

-여기서 옛사람이 만물에 대하여 진실로 기록할 만한 좋은 점이 한 가지라도 있으면, 그 물건이 보잘것없다고 해서 버려두지 않고, 그 숨겨진 것을 수집, 열거하고, 그 속에 포함된 것을 밝게 드러내면서, 모아서 책으로 만들어 후대에 가르침을 주지 않음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온갖 미물이라도 보잘것없고 초라한 것들을 밝게 드러내어 천하 후세의 사람들과 그 쓰임을 공유한 것이다. 그 뜻이 어찌 일시적인 붓장난에 불과하겠는가?(395, 이옥의 글/책에 대한 생각이 압축되어 있다.)

-강한 맛이 너무 센 것은 말린 대추 살점을 썰어 뒤섞으면 좋다. 혹 연잎을 썰어서 섞기도 하고, 혹 향가루를 휘저어 태우면 맛이 좋다. (416, 조선시대에도 가향담배가 있었어...대추향 연잎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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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부학 책 《그레이 아나토미》의 비밀
빌 헤이스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 202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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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0 저자: 빌 헤이스.



책을 다 읽고 앞표지를 다시 보고 나서야 알았다. 무슨 무늬이겠거니 했던 그림은, 얼굴과 목 사이의 근육과 혈관, 신경 같은 것들이 그려진 해부도였다.
저자는 해부학 실습실에 자주 드나들었다. 거기에 나를 자신과 시신 옆에 앉혀 놓았다. 나는 인체 구조에 대해 아는 게 없지만, 이게 뭐고 저게 뭔지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열성적으로 떠드는 저자가 재미있고 신기하기도 해서 계속 자리를 지켰다.

빌 헤이스는 ‘인썸니악 시티’라는 책으로 먼저 만났다. 그 자신도 작가이지만, 올리버 색스의 마지막 연인이었다는 게 더 유명한 사람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쓴 서문, 뒷표지에도 그 사실을 계속 언급해 놓았다. 하긴,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려면 무슨 일이든 해야겠지.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빌은 누구누구의 연인으로만 불리기에는 꽤 아까운 작가였다.

해부학 교과서 ‘그레이 아나토미’의 그레이에 관한 전기가 하나도 없는 걸 알게 된 빌은 집요하게 그의 흔적을 추적한다. 해부학 실습실에서 도서관으로, 미국에서 런던으로, 또 희망봉으로 (인도는 안 간다) 그의 (올리버를 만나기 전 사별한) 연인 스티브와 함께 가서 열심히 뒤지고 다닌다. 그러던 중 그레이 아나토미의 삽화를 그린 헨리 반다이크 카터의 존재를 알게 된다. 별 기록을 남기지 않은 헨리 그레이보다는 훨씬 풍부하게 써 놓은 카터의 일기장을 꼼꼼히 훑으며 당시 상황을 짐작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어느 부분은 약간 ‘빌 헤이스가 헨리 카터의 일기장을 읽고 남긴 감상문’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뭐 일기 읽고 독후감 쓸 수도 있지. 빌 헤이스는 문서 더미에만 집요하게 매달린 게 아니라, 관련된 장소에도 열심히 찾아간다. 그 추적 과정을 적어 이 책을 남겼다.

해부학 책 이름으로만 강렬하게 남았을 뿐, 헨리 그레이의 일생(짧기도 했다)은 우리에게 그다지 전해지는 게 없다. 새로운 판본에 삽화가 이름이 생략되어 있는 탓에 또 다른 헨리는 이름마저 잊힐 뻔 했다. 그러나 카터는 자신을 알아차릴 누군가를 기다린 것처럼 이것저것 기록을 남겨놔서, 거의 200년 이후의 내게도 자신의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게 해 주었다.

나를 비롯한 우리 대부분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고 남긴 주절거림은 좀 더 오래 남겠지. 당장 과거의 내 글도 현재의 나에게 가끔 눈에 띄어 작은 즐거움을 준다.(자가발전) 카터의 일기처럼 너무 성찰문 같거나 교훈적이거나 자기비하를 잔뜩 남기고 싶진 않은데 말이야. 동명의 소설, 페데리코 안다아시의 ‘해부학자’를 읽고 실망을 많이 해서 이 책으로 치유받자, 했는데 충분히 그럴만한 즐거운 독서였다. 미래의 내가 조금 더 재미있을 수 있도록 이것저것 남겨두고 싶다.

+밑줄 긋기
-지식에는 끝이 없으므로, 가장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도 아직 배울 게 많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오. (115, 브로디 박사님의 연설 마무리.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나는 참 지성인이 될 수 없어서 징징)

-일기는 자기 자신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의인화하게 된다. 하루의 삶이 아무리 생경해도, 일기장은 모든 단어와 모든 고통(또는 즐거움)을 흡수하며, 텅 빈 페이지들은 더 많은 고백을 유도한다. 금박을 입히고 가죽으로 장정된 일기장이 됐든, 노트북에 설치된 단순한 일기장 파일이 됐든, 일기장을 파괴한다는 것은 점점 더 가당치 않은 생각이 된다. 그건 자기 몸에서 살점을 베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의 진실은 ‘지금 일기장에 써놓으면, 당신의 희망 중 일부가 훗날 언젠가 읽히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낯간지러워도, 당신은 ‘특별한 누군가’를 위해 일기를 쓰는 것이다. 그는 ’완벽한 독자‘로서, 당신의 문장을 폭풍 흡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바로 당신의 미래 자아인 것이다. (128, 일기장 파괴의 이점은 과거 망각 정도이겠다.)

-사람은 표면상으로만 사람이다. 피부를 벗기고 해부하면, 순식간에 기계장치가 된다. (159, 폴 발레리의 글이라는데, 시인의 말 같지 않다. ‘사람 껍질을 입은 우리들/장막을 걷어내면/그 안의 톱니와 나사들’이래야 할 것 같음.)

-“오늘은 일기 쓸 거리가 별로 없다.” 카터는 1855년 11월 25일 일기에 무덤덤하게 적는다. “그레이는 학생들을 위해 <<해부학 편람>>을 편찬할 예정인데, 그 책에 들어갈 삽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좋은 생각이다.” (이 책은 나중에 <<그레이 아나토미>>로 유명해질 책이지만, 그건 까마득히 먼 훗날의 이야기다. 현 시점에서 카터는 이 책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짐작조차 못하고 있다.) “구체적인 계획은 전혀 없다.” 그는 이렇게 덧붙이며, 이 프로젝트에서 단순한 화가로 활동하지는 않을 거라고 여운을 남긴다. 그와 그레이는 대등한 공동 작업자로 해부를 함께 진행하게 될 것이다. (204, 알려진 저자인 헨리 그레이 뿐 아니라, 동료 해부학자이자 의사였던 헨리 반다이크 카터가 삽화 대부분을 그리고 공동 저자로 참여했음을 추적하는 게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읽기 시작하면 주인공이 그레이가 아니라 카터라는 걸 금세 알게 된다.)

-niche니치: 나만의 틈새시장, 나에게 꼭 맞는 독보적인 영역(238, 그대로 니치, 라고 번역되어 있어서 뜻을 찾아보았다.)

-“나는 해부가 좋아요, 그것도 아주 많이.” 다른 해부학 수업(약대생이나 물리치료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 해부학)에서는 이렇게 열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곧 의사가 될 의대생들은 뭐가 달라도 확실히 다르다. 그들은 인체-풍성함, 복잡함, 섬뜩함, 그리고 아름다움의 집합체-의 속삭임과 노랫소리를 독특하고 강렬한 방식으로 듣는다. (244, 빌은 세 학과를 대상으로 한 세 가지 수업에 차례로 참관하면서 학생들의 특성까지 분류한다. 의대생한테 혈관 이름 알려주는 부분은 약간 으스대는 것 같이 보인다.)

-문득 두 젊은이가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들의 지식에 뭔가가 부족함을 깨닫고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자기가 뭔가를 모른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258, 마지막 문장의 답이 제일 어렵다.)

-나는 이 시간에 실습실에 머무는 걸 좋아한다. 어린 시절 미치도록 좋아했던 도서관의 고요 속으로 나를 데려가주는 느낌이다. (267, 평범한 대사이지만, 해부학 실습실에 시신을 앞에 두고 혼자인 사람이 느끼는 마음치고는 독특하다.)

-“일별, 시간별로 낱낱이 해부해보면, 나의 인생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의 연속이었다.(…)신은 숨어 있고, 나는 예수를 알지 못한다.(…) 나는 아무런 계획이나 목적 없이 나태함 외로움 침울함 단절감 무력감에 휩싸여 수동적인 객체로 전락했다.”(284, 해부학 전문가인 의사 선생님조차 때때로 이런 자아 붕괴에 놓인다.)

-‘지금 여기 사는 사람들은 한때 누가 이 마룻바닥 위를 걸어 갔었는지 알까?’(294, 전에 비슷한 생각으로 지금 사람들이 디딘 자리 중에 누군가 죽었던 곳은 얼마나 많을까? 했었다.)

-”그의 손길이 닿았던 것은 모두 모닥불이 되었을 거예요.“(324, 그레이는 천연두에 걸려 삼십 대에 죽었다. 전염성 질환이라 그의 비말이 닿은 유품은 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저자와 키스(그레이 연구자)는 추정한다.)

-카터는 작은 것에 집중하고, 사물을 분석하고, 정신적으로 해부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능력은 자아 성찰 과정에서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었지만, 다른 한편 그를 ‘정밀한 해부학 화가’와 ‘천부적인 연구자’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335, 왠지 이 부분에서 저자는 ‘나도 그렇다.’ 하고 쓰고 싶었을 것 같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일(또는 임무)을 수행하면,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내게는 이 좌우명이 늘 허무맹랑하게 느껴진다. (342, 저렇게 기분 좋아질 사람이면 대체로 행복했을 것 같은데 카터는 별로 안 그랬다.)

-과거는 현재나 미래와 분리되지 않고 본래 있었던 자리(또는 머무를 것으로 의도됐던 장소)에 머물러 있지만, 간혹 서둘러 지나가거나 뒤늦게 죽마고우처럼 미소를 지으며 나타나도 괄시받지 않아. 오래된 생각이나 사실을 제거하거나 바꾸려고 노력할 때까지, 우리는 그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어. (344, 카터 아닌 동생 조의 말. 알 수 없지.)

-그러나 그 많은 시신들 사이에서, 정작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인체와 죽음은 각기 배우는 곳이 다르다. 인체는 해부학 시간에 시신을 해부하며 배우는 거지만, 죽음이란 사망-사랑하는 누군가와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359,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게 다행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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