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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부학 책 《그레이 아나토미》의 비밀
빌 헤이스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 2020년 3월
평점 :
-20260620 저자: 빌 헤이스.
책을 다 읽고 앞표지를 다시 보고 나서야 알았다. 무슨 무늬이겠거니 했던 그림은, 얼굴과 목 사이의 근육과 혈관, 신경 같은 것들이 그려진 해부도였다.
저자는 해부학 실습실에 자주 드나들었다. 거기에 나를 자신과 시신 옆에 앉혀 놓았다. 나는 인체 구조에 대해 아는 게 없지만, 이게 뭐고 저게 뭔지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열성적으로 떠드는 저자가 재미있고 신기하기도 해서 계속 자리를 지켰다.
빌 헤이스는 ‘인썸니악 시티’라는 책으로 먼저 만났다. 그 자신도 작가이지만, 올리버 색스의 마지막 연인이었다는 게 더 유명한 사람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쓴 서문, 뒷표지에도 그 사실을 계속 언급해 놓았다. 하긴,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려면 무슨 일이든 해야겠지.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빌은 누구누구의 연인으로만 불리기에는 꽤 아까운 작가였다.
해부학 교과서 ‘그레이 아나토미’의 그레이에 관한 전기가 하나도 없는 걸 알게 된 빌은 집요하게 그의 흔적을 추적한다. 해부학 실습실에서 도서관으로, 미국에서 런던으로, 또 희망봉으로 (인도는 안 간다) 그의 (올리버를 만나기 전 사별한) 연인 스티브와 함께 가서 열심히 뒤지고 다닌다. 그러던 중 그레이 아나토미의 삽화를 그린 헨리 반다이크 카터의 존재를 알게 된다. 별 기록을 남기지 않은 헨리 그레이보다는 훨씬 풍부하게 써 놓은 카터의 일기장을 꼼꼼히 훑으며 당시 상황을 짐작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어느 부분은 약간 ‘빌 헤이스가 헨리 카터의 일기장을 읽고 남긴 감상문’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뭐 일기 읽고 독후감 쓸 수도 있지. 빌 헤이스는 문서 더미에만 집요하게 매달린 게 아니라, 관련된 장소에도 열심히 찾아간다. 그 추적 과정을 적어 이 책을 남겼다.
해부학 책 이름으로만 강렬하게 남았을 뿐, 헨리 그레이의 일생(짧기도 했다)은 우리에게 그다지 전해지는 게 없다. 새로운 판본에 삽화가 이름이 생략되어 있는 탓에 또 다른 헨리는 이름마저 잊힐 뻔 했다. 그러나 카터는 자신을 알아차릴 누군가를 기다린 것처럼 이것저것 기록을 남겨놔서, 거의 200년 이후의 내게도 자신의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게 해 주었다.
나를 비롯한 우리 대부분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고 남긴 주절거림은 좀 더 오래 남겠지. 당장 과거의 내 글도 현재의 나에게 가끔 눈에 띄어 작은 즐거움을 준다.(자가발전) 카터의 일기처럼 너무 성찰문 같거나 교훈적이거나 자기비하를 잔뜩 남기고 싶진 않은데 말이야. 동명의 소설, 페데리코 안다아시의 ‘해부학자’를 읽고 실망을 많이 해서 이 책으로 치유받자, 했는데 충분히 그럴만한 즐거운 독서였다. 미래의 내가 조금 더 재미있을 수 있도록 이것저것 남겨두고 싶다.
+밑줄 긋기
-지식에는 끝이 없으므로, 가장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도 아직 배울 게 많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오. (115, 브로디 박사님의 연설 마무리.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나는 참 지성인이 될 수 없어서 징징)
-일기는 자기 자신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의인화하게 된다. 하루의 삶이 아무리 생경해도, 일기장은 모든 단어와 모든 고통(또는 즐거움)을 흡수하며, 텅 빈 페이지들은 더 많은 고백을 유도한다. 금박을 입히고 가죽으로 장정된 일기장이 됐든, 노트북에 설치된 단순한 일기장 파일이 됐든, 일기장을 파괴한다는 것은 점점 더 가당치 않은 생각이 된다. 그건 자기 몸에서 살점을 베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의 진실은 ‘지금 일기장에 써놓으면, 당신의 희망 중 일부가 훗날 언젠가 읽히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낯간지러워도, 당신은 ‘특별한 누군가’를 위해 일기를 쓰는 것이다. 그는 ’완벽한 독자‘로서, 당신의 문장을 폭풍 흡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바로 당신의 미래 자아인 것이다. (128, 일기장 파괴의 이점은 과거 망각 정도이겠다.)
-사람은 표면상으로만 사람이다. 피부를 벗기고 해부하면, 순식간에 기계장치가 된다. (159, 폴 발레리의 글이라는데, 시인의 말 같지 않다. ‘사람 껍질을 입은 우리들/장막을 걷어내면/그 안의 톱니와 나사들’이래야 할 것 같음.)
-“오늘은 일기 쓸 거리가 별로 없다.” 카터는 1855년 11월 25일 일기에 무덤덤하게 적는다. “그레이는 학생들을 위해 <<해부학 편람>>을 편찬할 예정인데, 그 책에 들어갈 삽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좋은 생각이다.” (이 책은 나중에 <<그레이 아나토미>>로 유명해질 책이지만, 그건 까마득히 먼 훗날의 이야기다. 현 시점에서 카터는 이 책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짐작조차 못하고 있다.) “구체적인 계획은 전혀 없다.” 그는 이렇게 덧붙이며, 이 프로젝트에서 단순한 화가로 활동하지는 않을 거라고 여운을 남긴다. 그와 그레이는 대등한 공동 작업자로 해부를 함께 진행하게 될 것이다. (204, 알려진 저자인 헨리 그레이 뿐 아니라, 동료 해부학자이자 의사였던 헨리 반다이크 카터가 삽화 대부분을 그리고 공동 저자로 참여했음을 추적하는 게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읽기 시작하면 주인공이 그레이가 아니라 카터라는 걸 금세 알게 된다.)
-niche니치: 나만의 틈새시장, 나에게 꼭 맞는 독보적인 영역(238, 그대로 니치, 라고 번역되어 있어서 뜻을 찾아보았다.)
-“나는 해부가 좋아요, 그것도 아주 많이.” 다른 해부학 수업(약대생이나 물리치료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 해부학)에서는 이렇게 열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곧 의사가 될 의대생들은 뭐가 달라도 확실히 다르다. 그들은 인체-풍성함, 복잡함, 섬뜩함, 그리고 아름다움의 집합체-의 속삭임과 노랫소리를 독특하고 강렬한 방식으로 듣는다. (244, 빌은 세 학과를 대상으로 한 세 가지 수업에 차례로 참관하면서 학생들의 특성까지 분류한다. 의대생한테 혈관 이름 알려주는 부분은 약간 으스대는 것 같이 보인다.)
-문득 두 젊은이가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들의 지식에 뭔가가 부족함을 깨닫고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자기가 뭔가를 모른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258, 마지막 문장의 답이 제일 어렵다.)
-나는 이 시간에 실습실에 머무는 걸 좋아한다. 어린 시절 미치도록 좋아했던 도서관의 고요 속으로 나를 데려가주는 느낌이다. (267, 평범한 대사이지만, 해부학 실습실에 시신을 앞에 두고 혼자인 사람이 느끼는 마음치고는 독특하다.)
-“일별, 시간별로 낱낱이 해부해보면, 나의 인생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의 연속이었다.(…)신은 숨어 있고, 나는 예수를 알지 못한다.(…) 나는 아무런 계획이나 목적 없이 나태함 외로움 침울함 단절감 무력감에 휩싸여 수동적인 객체로 전락했다.”(284, 해부학 전문가인 의사 선생님조차 때때로 이런 자아 붕괴에 놓인다.)
-‘지금 여기 사는 사람들은 한때 누가 이 마룻바닥 위를 걸어 갔었는지 알까?’(294, 전에 비슷한 생각으로 지금 사람들이 디딘 자리 중에 누군가 죽었던 곳은 얼마나 많을까? 했었다.)
-”그의 손길이 닿았던 것은 모두 모닥불이 되었을 거예요.“(324, 그레이는 천연두에 걸려 삼십 대에 죽었다. 전염성 질환이라 그의 비말이 닿은 유품은 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저자와 키스(그레이 연구자)는 추정한다.)
-카터는 작은 것에 집중하고, 사물을 분석하고, 정신적으로 해부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능력은 자아 성찰 과정에서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었지만, 다른 한편 그를 ‘정밀한 해부학 화가’와 ‘천부적인 연구자’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335, 왠지 이 부분에서 저자는 ‘나도 그렇다.’ 하고 쓰고 싶었을 것 같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일(또는 임무)을 수행하면,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내게는 이 좌우명이 늘 허무맹랑하게 느껴진다. (342, 저렇게 기분 좋아질 사람이면 대체로 행복했을 것 같은데 카터는 별로 안 그랬다.)
-과거는 현재나 미래와 분리되지 않고 본래 있었던 자리(또는 머무를 것으로 의도됐던 장소)에 머물러 있지만, 간혹 서둘러 지나가거나 뒤늦게 죽마고우처럼 미소를 지으며 나타나도 괄시받지 않아. 오래된 생각이나 사실을 제거하거나 바꾸려고 노력할 때까지, 우리는 그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어. (344, 카터 아닌 동생 조의 말. 알 수 없지.)
-그러나 그 많은 시신들 사이에서, 정작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인체와 죽음은 각기 배우는 곳이 다르다. 인체는 해부학 시간에 시신을 해부하며 배우는 거지만, 죽음이란 사망-사랑하는 누군가와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359,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게 다행인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