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테리아 문학과지성 시인선 454
김이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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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6 김이듬.

나는 시를 쓰기는 커녕 읽기도 힘들었다. 시는 너무 어려워. 그렇지만 언제부터인가, 어떤 말들이 나를 휙휙 휘감아 어떤 느낌을 전해주는 때가 있었다. 자기실적평가서라는 걸 쓰는데, 귀찮아서 4년 전 걸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 했더니 거짓말 해 버렸다. 연간 130여권의 책을 읽으며 자기계발을 어쩌구… 그해에는 130권을 넘게 읽었구나. 올해는 그 서류를 낼 쯤엔 겨우 100권을 넘겼었다. 나는 거짓말쟁이구나. 그래서 얇은 책들만 골라 보기 시작한다. 역시, 시집이 얇지. 나는 거짓말을 잘 못해서 일단 거짓말을 해 놓고 그걸 거짓말이 아니게 바꾸는 편이다.

대부분 시집은 얇지만 쉬이 읽히진 않는다. 그런데 이 시집은 후다다다다다다닥 읽어버렸다. 시집 그렇게 읽는 거 아니라고 맨날 되뇌이면서도...이전 ‘말할 수 없는 애인’은 그렇게까지 잘 읽히지 않았는데. 이 시집은 귀기. 슬픔. 체념. 그래 나 미친년이다 꺄아아아아악 하는데 이건 내가 좋아하는 방식의 꺄아아아아악이라서

숙제를 하다 말고 자꾸 놀려고 도망다니는 어린이에게 ‘너 숙제나 다 하고 놀아!’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린이가 글자 연습을 하던 깍두기 10칸 공책을 내려다 보니 ‘소리를 지르면 안 돼.’라고 써 있어서 머쓱해졌다.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꺄아아아아악 하지 말아야겠다. 아님, 이런 나라도 괜찮나요? 괜찮지 않나요?

글을 쓰러 도서관에 온 내 친구에게 떡을 나눠주던 이듬이 누나가 계속 시를 무섭게 잘 쓰면서도 조금은 덜 불행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집 감상이 왜 이 모양이냐. 내 생일날 어울리는 시집이다.(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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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일어나 밖으로 나와 절박하지 않게 치욕적인 감정도 없이
커다란 펜을 문 채 나는 빤다 시가 쏟아질 때까지
나는 감정 갈보, 시인이라고 소개할 때면 창녀라고 자백하는 기분이다 조상 중에 자신을 파는 사람은 없었다 ‘너처럼 나쁜 피가 없었다’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펜을 불끈 쥔 채 부르르 떨었다
나는 지금 지방 축제가 한창인 달밤에 늙은 천기가 되어 양손에 칼을 들고 춤춘다(64, ‘시골 창녀’ 중. 시집 펼치자 마자 처음 읽은 시)

-아무 이유 없이 몇. 시인지 궁금하다 아무도 모르게 내 안장과 핸들은 뜯겼고 한쪽 바퀴도 사라졌다 터진 타이어 같은 내 영혼은 보관대에 붙어 있다 컴컴한 시각 폐자전거들과 함께 이 땅에 발 딛고 있다 나는 멈추었다 뭐가 보이는가 공구함을 열고 찢어발겨진 영혼을 수습해보려 한다 축축한 어깨 또 다른 도둑이 다가온다 나를 만진다 내 구부러진 살에 바퀴에 오줌발을 갈긴다 마치 신나게 달려 나갈 것처럼 나의 발판은 흔들린다 (105, ’어른‘중. 일부만 훔쳐가지 말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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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은 - 13일 동안 이어지는 책에 대한 책 이야기
요시타케 신스케.마타요시 나오키 지음, 양지연 옮김 / 김영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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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5 요시타케 신스케, 마타요시 나오키.

그 책은 한 번 펼치면 멈출 수가 없다.
다정하게 함께 읽던 아이들이 한 쪽 더, 12쪽, 20쪽, 30쪽, 더, 더, 읽게 만든다. 그 책을 펼친 아이들은 경이로운 행복감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책장은 읽을 수록 점점 불어난다. 책의 결말은 알 수가 없는데, 읽는 속도가 불어나는 속도를 미처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요시타케 신스케와 잘 모르는 마타요시 나오키라는 작가가 협업해서 낸 책이다. 책에 관한 책은 역시 ’있으려나 서점‘을 넘길 만큼 귀여운 걸 아직 찾지 못했다. 그림책 부분은 좋은데, 잘 모르는 작가의 부분은 잘 몰라서 그런가, 정말 재미가 없게 써서 그런가 책 두께가 쓸데없이 두껍다는 생각을 했다. 그럴 듯하다 느낌이 안 들고 진귀한 책 이야기라 하기에는 많이 식상했다. 종이 두께도 빳빳해. 재미 없는 부분은 찢어서 비행기를 접어 날리면 잘 날아다닐 것 같다. 하늘을 나는 책(이었던 것)이다. 배를 만들어 물에 띄우면 안 젖고 먼 바다까지 갈 것 같다.

마타요시 나오키를 검색해보니 ‘불꽃’이라는 소설로 아쿠타가와상을 탔다고 한다. 이름이 나오키라서 나오키상은 안 줬나 보다. 올해는 아쿠타가와상도 나오키상도 수상자 없음이라고 한다. 일본도 문학이 쭈그러드는 시절인가 보다. 아니 문학은 저 할 일 한다고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이제 문학에 관심이 없어진 건가. 이 책은 문학이라고 해야 하나, 그림책이라고 해야 하나, 애매했다. 책 이야기라고 해도 재미있는 책도 있고 뻔한 것도 있으니, 늘 좋기만 할 수는 없지.
책에 대해 엄청 떽떽 거리는데도 재미있게 읽은 건 조 퀴넌 아저씨의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정도였다. 그런데 의외로 극불호인 독자들도 많아서 놀랐다. 그러니 ‘그 책은’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겠다...하고 찾아보니 정말 내가 후하게 친 앞의 책보다 별점이 훨씬 더 높고 좋다는 리뷰도 많다… 취향 뭘까… 이게 책의 매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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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자기 자신을 구할 수는 없다.
다른 누군가를 구할 뿐.
그렇기에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른 누군가로부터 구원받기 위해. (77, 구원은 셀프, 하던 내게 콩밤을 날리는 구절)

-마지막 그림은 나랑 너. 우리는 인간이야. 인간은 강하지? 어떤 이야기에서든 귀신을 이기잖아. 전부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 이기잖아? (118, 이겨라)

-’어쩌면 나는 본래 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스쳤다.
한때 마가 끼어서 잠시 인간이 되고 싶다고 바랐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전부터 내가 내가 아닌 듯한
내 자리가 아닌 곳에 내가 있는 듯한 불안을 느껴 왔다.
그건 내가 본래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다. (155, 어쩌면 나도 본래 책이었는지도 모른다!)

-상상 이상으로 악마는 예의 발랐다.
“엇, 악마는 무서워야 하는 거 아냐?” 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악마는 웃으면서 “다 옛날 얘기죠. 그땐 저도 어렸고요.”라고 말했다. (164, 인간은 어릴 때가 덜 무서운데.)

-세상에는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실은, 가닿지 못한 책들이 별만큼이나 많을지도 모른다. (177, 내게 닿고자 했으나 내가 쳇 하고 튕겨버린 책들에게 미안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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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에 Historie 12
이와키 히토시 지음, 오경화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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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나온 걸 오래 냅뒀다가 이제야 봤다. 그간 스토리 다 잊어버림... 사람이 많이 죽었다. 13권은 또 몇 년 뒤에 나올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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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5-12-15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걸 샀나... 안샀나.... 집에 가서 확인해봐야겠네요 ^^;;;
(전에도 그런 적 있는듯)

반유행열반인 2025-12-15 19:43   좋아요 0 | URL
저도 꽂힌 걸 간만에 발견해서 읽었어요. 또 한 5년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총상 입은 밤하늘
오션 브엉 지음, 안톤 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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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오션 브엉.

남자는 베트남 전쟁에 다녀왔다. 싸우다 다쳤다. 돈을 벌어왔고, 깡통에 든 온갖 조림과 과일과 커피와 주스 가루와 향기로운 비누 같은 걸 집에 가져왔다. 그렇지만 이후 내내 술로 살았다. 큰아들을 전쟁에 내보낼 만큼 가난했던 부모를 원망하고, 어머니에게 술주정을 했다.
큰아들의 큰아들은 남자의 꾸중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가 떠돌았다. 나이 든 아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는 췌장암 말기 환자가 되어 있었고,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어느 나무 밑에 묻었다.
큰아들의 작은아들은 나이를 먹도록 혼인을 못했다. 자신보다 스무살 가까이 어린 여자아이를 베트남 깡시골에서 데려왔다. 여자는 한국을 동경했지만 한국살이에, 혼인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고향집에 다녀오겠다는 걸 보내면서, 가서 싫으면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여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해방 두 달 전 태어난 남자는 8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암 진단을 받고 몇 달 지나지 않아서였다. 참전용사 해병병장이었던 남자의 유해는 국립현충원의 충혼당에 모셔졌다. 살아서는 놓여 본 적 없는 로얄층 로얄라인, 한 벽면의 가로 세로 한가운데에 죽어있게 되었다.

나는 그 친척 남자가 베트남에 다녀온 걸 떠올릴 때면, 사람을 죽여봤겠지, 민간인도 죽여봤을까? 베트남 여자들에게 몹쓸짓을 했을까? 잠시 궁금했다. 그렇지만 한 번도 전쟁에 대해 물을 생각은 안 했다. 남자는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는 그저 말이 없고, 내가 다니러 가면 00이 왔니, 하고 더 할 말을 못 찾았다. 아주 어린 오래 전에 00이가 공부를 잘 한다며, 한 게 가장 길게 걸어온 말이었던 것 같다.

베트남, 하면 그렇게 다녀왔던 남자가 떠오르고, 나중에 다낭 여행을 갔다가 거기는 완전 열대기후는 아니라 겨울에는 선선하구나, 수영을 할 수 없구나, 하고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오래 줄 섰다 먹은 반미는 정말 맛있었는데, 미국이 싫어서 반미인가, 그런 시덥잖은 농담만 맴돌고.

소설 ‘지상에서 잠시 우리는 매혹적이다’를 먼저 사 놨다. 친구가 어느 구절을 옮겨 주며 어떠냐고 물었는데, 별 감흥이 없었다. 어머니, 아버지, 이렇게 많이 찾았던 것 같다. 같은 작가의 시집이 있는 걸 알고 제목이 강렬해서 마련해 두었다. 영한 번역 처음 한다는 한영 번역 위주로 하던 번역가가 옮겼으니 베트남어 아니고 영어로 쓰인 시일 것이다.

시인이 표지 사진만 보면 지정 성별 남성으로 보이니까, 시를 읽다 보니 이 남자는 남자들을 사랑하는 것 같고, 아버지로 괴롭고, 어머니로 조금 녹고, 누군가 총에 맞았던 모양이고, 그랬다.
친구가 단골로 다니던 혼술집에 두어번 따라갔었는데, 어느날 친구가 그 사장님 여자예요, 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나는 남의 성별이나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이나 그런 걸 함부로 예단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글 잘 쓰는 게이들이 꽤 많다는 생각은 떨쳐낼 수 없어… 나는 사람 되려면 멀었다.

베트남의 전쟁을 겪은 세대의 후손들이나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의 자식 손주들은 거기에서 받은 영향을 글로 꽤 많이 풀어낸 것 같다. 그런데 한국전쟁을 치르고 태평양 전쟁에 희생된 사람들의 후예인 우리들은 거기에 대해 너무 모르고, 그래서 잘 이야기하거나 쓰지 못했던 것 같다. 분명 그 시절을 거친 조부모나 친척 어른들과 생애의 접점이 있긴 했는데, 우리는 물을 생각을 못했고, 그들은 말할 생각을 못했다. 그러고는 21세기에 하나둘 돌아가셨다. 이미상의 소설 ‘셀붕이의 도’에서는 그 상처를 조심성 없이 후벼파서 할아버지를 긁어버린 미히 같은 애도 있었다. 그러진 말아야지.
나의 부모도 정작 제일 뼈아프고 부끄러웠던 젊은 기억은 나에게 말해주지 않는다. 내가 적당히 몰래 훔쳐봤을 뿐… 그러니까 유산처럼 이야기 따위 물려받을 생각 말고, 유산도 개뿔 없으니 받을 생각 말고, 내 이야기는 내가 매조지 하고 가야겠는데… 내 아이들은 내 엄마나 자기 엄마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긴 할까?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이야기들은 나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쓰인 것만 남는다고 설터 할아버지가 그랬는데, 나는 남의 책 읽고 투덜거린 것만 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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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은 중력에 닿았을 때 바뀌었지. 중력은 우리의 슬개골을
부러뜨리는 한이 있어도 하늘을 보여주려고 해. 왜 우리는 자꾸
그래라고 말했을까-저 많은 새들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누가 우리를 믿을까? 라디오 안의 내 목소리가
뼈처럼 바스러지고. 바보 같은 나. 난 사랑이 진짜고
몸은 상상이라고 믿었지. 화음 하나만으로 모든 게
가능하다고. 하지만 우리 다시
여기-이 추운 벌판에 서 있잖아. 그녀를 부르는 그.
그의 곁에 있는 그녀. 그녀의 발굽 아래에서 끊어지는
서리 내린 풀. (68-69, ’에우리디케‘ 중. 슬개골은 무릎 앞의 작은 뼈)

-미군 용사가 어느 베트남 시골 처녀를 박았지. 그래서 우리 엄마가 존재하고. 그래서 내가 존재하고. 고로 폭탄 없음=가족 없음=나 없음.

세상에. (92, ‘노트의 파편들’중)

-듣고 있니? 네 몸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어머니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모든 부분이란다.
여기, 한 가닥의 지뢰선으로 깎아내린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이 있네.
걱정 마. 그냥 그걸 지평선이라고 부르면
절대 닿을 일 없으니.
(…) 두려워 마, 총소리는
조금 더 오래 살려는 자들이 내는
실패하는 소리일 뿐. 오션아. 오션아-
일어나. 네 몸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몸의 미래야. 그리고 기억해,
외로움마저도 세상과 같이 보낸
시간이라는 걸. 여기,
모두가 있는 방이야.
네 죽은 친구들은 바람이
풍경을 통과하듯
너를 통과하고 있어. 여기 절름발이
책상 그리고 그 책상을 지탱하는 벽돌이 있어. 그래, 여기 방이 있어
따뜻하고 피처럼 가까운,
맹세해, 넌 잠에서 깨면-
이 벽들을
피부로 착각할 것이라고.
(107-108, ‘언젠가 난 오션 브엉을 사랑할 거야’ 중)

-번역은 본래 정치적인 행위이며 역사적으로도 제국주의, 식민주의와 얽혀 있어 번역가들을 “제국의 시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답니다. 그 어감이 매우 불쾌하지만 그 말의 뜻이 아주 정당하지는 않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요? (117, 옮긴이 안톤 허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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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구지 G1 우라가 고고구 - 500g, 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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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가 고고구 농장 이름이 재미있어서 예가체프를 제끼고 구지 원두를 사 봤다. 꼬수운 맛이 군고구마는 오케이. 산미는 덜하고 살짝 달달한 무난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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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5-12-14 15: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시다모 난세보 이런거 잘 마셨는데 시다모가 행정구역 개편으로 구지와 게데오로 나뉘었다고 한다!!! 오늘 처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