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6 김이듬. 나는 시를 쓰기는 커녕 읽기도 힘들었다. 시는 너무 어려워. 그렇지만 언제부터인가, 어떤 말들이 나를 휙휙 휘감아 어떤 느낌을 전해주는 때가 있었다. 자기실적평가서라는 걸 쓰는데, 귀찮아서 4년 전 걸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 했더니 거짓말 해 버렸다. 연간 130여권의 책을 읽으며 자기계발을 어쩌구… 그해에는 130권을 넘게 읽었구나. 올해는 그 서류를 낼 쯤엔 겨우 100권을 넘겼었다. 나는 거짓말쟁이구나. 그래서 얇은 책들만 골라 보기 시작한다. 역시, 시집이 얇지. 나는 거짓말을 잘 못해서 일단 거짓말을 해 놓고 그걸 거짓말이 아니게 바꾸는 편이다. 대부분 시집은 얇지만 쉬이 읽히진 않는다. 그런데 이 시집은 후다다다다다다닥 읽어버렸다. 시집 그렇게 읽는 거 아니라고 맨날 되뇌이면서도...이전 ‘말할 수 없는 애인’은 그렇게까지 잘 읽히지 않았는데. 이 시집은 귀기. 슬픔. 체념. 그래 나 미친년이다 꺄아아아아악 하는데 이건 내가 좋아하는 방식의 꺄아아아아악이라서 숙제를 하다 말고 자꾸 놀려고 도망다니는 어린이에게 ‘너 숙제나 다 하고 놀아!’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린이가 글자 연습을 하던 깍두기 10칸 공책을 내려다 보니 ‘소리를 지르면 안 돼.’라고 써 있어서 머쓱해졌다.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꺄아아아아악 하지 말아야겠다. 아님, 이런 나라도 괜찮나요? 괜찮지 않나요? 글을 쓰러 도서관에 온 내 친구에게 떡을 나눠주던 이듬이 누나가 계속 시를 무섭게 잘 쓰면서도 조금은 덜 불행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집 감상이 왜 이 모양이냐. 내 생일날 어울리는 시집이다.(뭐?)+밑줄 긋기-자다가 일어나 밖으로 나와 절박하지 않게 치욕적인 감정도 없이 커다란 펜을 문 채 나는 빤다 시가 쏟아질 때까지 나는 감정 갈보, 시인이라고 소개할 때면 창녀라고 자백하는 기분이다 조상 중에 자신을 파는 사람은 없었다 ‘너처럼 나쁜 피가 없었다’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펜을 불끈 쥔 채 부르르 떨었다 나는 지금 지방 축제가 한창인 달밤에 늙은 천기가 되어 양손에 칼을 들고 춤춘다(64, ‘시골 창녀’ 중. 시집 펼치자 마자 처음 읽은 시)-아무 이유 없이 몇. 시인지 궁금하다 아무도 모르게 내 안장과 핸들은 뜯겼고 한쪽 바퀴도 사라졌다 터진 타이어 같은 내 영혼은 보관대에 붙어 있다 컴컴한 시각 폐자전거들과 함께 이 땅에 발 딛고 있다 나는 멈추었다 뭐가 보이는가 공구함을 열고 찢어발겨진 영혼을 수습해보려 한다 축축한 어깨 또 다른 도둑이 다가온다 나를 만진다 내 구부러진 살에 바퀴에 오줌발을 갈긴다 마치 신나게 달려 나갈 것처럼 나의 발판은 흔들린다 (105, ’어른‘중. 일부만 훔쳐가지 말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