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히로시마 내 사랑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9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7년 6월
평점 :
-20250207 마르그리트 뒤라스.
맞지 않는 책을 아깝다고 읽지 말자…
(주로 욕으로 끝나니까 뒤라스 팬은 조용히 돌아가시거나 저한테 뒤라스 할머니 대신 욕을 날려주세요…)
이 책 샀을 때 나름 인상 깊었다. 중고판매자는 모든 책 하나하나를 종이 재질 완충재로 감쌌고, 책마다 앙증한 북마크가 하나씩 꽂혀 있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어제’랑 김연수 에세이에서 보았던 ’속담 인류학‘을 사려다가 이거저거 다 담고 뒤라스도 아...안 맞던데 망설이다 그냥 담았다.

책 낱권마다 꼼꼼한 종이 포장재+종이 테이프

미공개 중고 책탑 (24년 10월 19일)…시험 전부터 나중 읽을 책 모으던 나새끼…

책마다 꽂힌 앙증한 책갈피는 덤. 인상 깊은 중고 판매자였다.
작년 10월에 산 이 책을 펼친 건...얇아 보여서? 시나리오라고 들었는데 분량이 적어서 금방 읽겠지 싶어서… 뭐 망했죠… 오래도록 읽었다. 그리고 재미가 너무너무 없었다.
오늘 저녁엔 프랑스에서 펼쳐진 무슨 갈라 어쩌구 공연 라이브 영상들을 보았다. 풀밴드에 오케스트라까지, 편곡도 그럴싸하고 관객도 많고 무대도 멋지게 꾸며놨는데, 출연진 중 많은 가수들이 한국 사람이라 신기했다. 나랑 동갑인 케이티페리는 살을 많이 뺐는데 성대폴립 수술이라도 받고 왔는지 특유의 음색이 사라지고 맑은 발성을 쓰며 여전히 쩌렁쩌렁한데도 아...내가 알던 그 소리가 아닌데...혼자 그러고 있었다. 난 내가 젊어 보고 듣던 가수, 연예인들이 늙거나 변한 모습을 볼 때 쟤들이 저 정도면 난 얼마나 늙은 거냐...새삼 노화를 자각한다.
프랑스에 대한 동경이 가득한(배경이 자꾸만 프랑스야) 한국 작가 소설집을 본 적도 있고, 영화도 드라마도 파리 배경으로 하면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처럼 제목부터 파리 내세우는 게 많았던 것 같다. 파리 사람이 아닌 사람들은 그렇게 파리 패리스 하는데, 프랑스인들은 그럼 어느 도시를 창작 배경으로 삼고 싶을까...싶은데 뒤라스는 히로시마를 택했다.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이나 영화 ’오펜하이머‘에는 히로시마의 광경이 묘사되지는 않는다. 자기들이 연구하고 개발하는 그 무언가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건강과 터전을 순식간에 소멸시킬 걸 제대로 알았는지는 모르겠다. 어렴풋이는 알았을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이 시나리오 속 프랑스 여자(부록에서 ’리바‘라고 부른다. 일본 남자 이름은 끝내 안 나온다. 여자가 넌 히로시마…한다)는 계속 알아요, 봤어요, 하면 일본 남자는 넌 몰라, 넌 못 봤어, 한다. 별 서사는 없다. 둘이 불꽃 튀어서 하룻밤을 보내고, 남자는 여자한테 반해서 계속 쫓아다니면서 또 만나고 싶다, 더 머물러라 하지만 여자는 나 파리로 돌아갈 거야, 하면서 첫사랑이던, 적군 독일인이던 죽은 남자를 떠올리고 그에 관해 일본 남자에게 말해준다. 그 사실을 들은 게 일본 남자가 처음이라고 한다. 그러고는 여자가 떠나는 장면은 안 나왔지만 뭐 파리 갈 거라고 했으니 갔겠지.
부록에선 여자가 느베르에서 사랑하던 독일군 병사의 죽음을 겪고, 독일인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붙잡혀 삭발을 당하고, 가족에 의해 지하실에 갇히고, 미쳐 날뛰고, 그러다가 머리가 다시 자라고 느베르를 떠나 파리로 가는 이야기가 자세하게 묘사되는데, 이건 뭐 또 다른 영화 한 편 같다. 실제 시나리오에선 이런 배경이 깔려 있을 뿐 잠시 잠깐 느베르가 비춰지긴 하는데 자세하게 시시콜콜 보여주지는 않는 것 같다. 반대로 남자의 서사는 그렇게 자세하게 짜여져 있지 않다. 그냥 어떤 캐릭터인지 짜 둔 글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내가 이 책 읽는다 소리 들은 친구가 책표지나 영화 포스터를 본 건지 우와, 이 남자 되게 서양 사람 같네, 했는데 뒤라스는 일부러 일본 사람 같지 않고 서구적인 남자 캐릭터를 지시했다. 동양의 신비, 뭐 그딴 걸로 사로잡힌게 아냐! 이러면서 세계시민주의 인 듯 구는데… 그냥 괜찮고 잘생긴 남자라 좋아한 거야...하여간에 좋은 남자임 이러쿵저러쿵 다 괜찮게 자란 사람임… 그렇게만 그려놨다. 시나리오에서는 자신은 전쟁에 참여한 중이었고, 가족들은 히로시마에 있다 죽었다는 걸 잠시 언급하는데. 전쟁 파병도, 가족의 핵공격 희생도 다 인생 뒤틀어버릴 큰 사건이라 생각하는데 시나리오 안에도, 캐릭터 묘사에도 뒤라스는 그걸 하나도 고려 안 했다. 그냥 내 첫사랑이 죽었고 사랑했다는 이유로 수치스럽게도 삭발 당했어… 그런 충격과 절망만 묘사한다. 철저히 프랑스 여자 관점이다. 프랑스 중심을 벗어날 것처럼 지시했지만 이거 뭐… 초점 인물은 어디나 있어야 이야기가 중심이 잡히겠지만 남자는 그냥 납짝했다. 여자한테 반해 따라 다니는 소품 같았다. 잘생긴 액세서리 같았다. 히로시마라는 도시 자체가 그냥 난 이런 참상에 관해 자세히 보여주지 않고도 그걸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들고 싶어, 하면서 사실 자기 하고 싶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영화도 안 보고 영화에선 삭제된 부분까지 포함된 시나리오만 보고 너무 예단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와...시나리오만 봐도 영화도 더럽게 재미없을 것 같아…
제목은 히로시마 내 사랑인데, 히로시마, 내 사랑이 아니었다. 일본 남자를 사랑한다고는 하는데 사실 그 사랑 하나도 모르겠고 히로시마에서 내 오래 전 사랑에 파묻혀 그걸 계속 곱씹고 그러면서도 계속 살아간 여자가 중심이었다. 대부분 이야기엔 주인공이 있고, 뭘 어떻게 이끌어갈지는 쓰는 자 마음이지만, 자기 이야기 안에서는 그래서 전능이겠지만, 내 마음이다, 하겠지만… 뒤라스 진짜 나랑 안 맞아. 이제 진짜 그만 봐도 된다. 삭이지도 못할 대작가한테 자꾸 얼쩡대다 퉤퉤 거리지 마라...ㅋㅋㅋㅋ마찬가지로 아니에르노도 집에 엄마가 사 둔게 한 보따리 있어도 더는 읽지 않는게 좋겠다. 둘이 비슷한 결은 아닌데도 묘하게 독서가 나한테는 재미없고 읽기 싫어서 꾸역꾸역 그래 뭐라 하나 끝까지 보자, 하고 참다가 아이시발, 하고 끝난다.
+밑줄 긋기
-그들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는 영화에서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 어디서나 사람들은 만난다. 중요한 것은 늘 일어나는 이런 만남들 이후에 이어지는 일이다. (9)
-비가 무서워지죠.
태평양 바닷물에 비처럼 내리는 재.
태평양 바닷물이 생명을 앗아가요.
태평양 어부들이 죽었어요.
음식이 무서워져요.
한 도시 전체의 음식을 내버려요.
온 도시들이 전부 음식을 파묻어요.
한 도시 전체가 분노해요.
온 도시들이 전부 분노해요. (32-33)
-그: 프랑스에서 당신에게 히로시마는 뭐였어요?
-그녀: 전쟁의 끝, 그러니까, 완전한 끝이요. 사람들이 그런 일을 감히 하려 들었다는 게…...경악스럽고…...그 일을 정말 해냈다는 게 경악스러웠어요. 그리고 또 우리에게는 알 수 없는 공포의 시작이기도 했죠. 그리고 또 무관심, 무관심에 대한 공포이기도….... (55)
-그는 아주 단호하게 자기 의견을 말한다.
그: 그렇군요, 마침내. 여기 히로시마에서는 평화에 대한 영화를 우습게 여기지 않지요. (76, 서래씨, 아니 찬욱씨, 마침내. 혹시 이 영화가 출처인가요? ㅎㅎㅎ아님 말어...)
-그녀: 하루가 다 지나고 밤이 새도록 나는 그의 시신 곁에 있었어요.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이 와서 시신을 거둬 트럭에 실었어요. 그날 밤 느베르가 해방됐어요. 생테티엔 대성당의 종이 울리고…...또 울리고….... 내 몸 아래에서 그는 점점 차갑게 식어 갔어요. 아! 죽는 데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언제냐고? 정확히 몰라요. 나는 그 사람 위에 엎드려서…...그래요….... 그 사람이 죽은 순간은 정말로 기억에서 달아나 버렸는데, 왜냐하면…...왜냐하면 바로 그 순간에도, 그리고 그다음에도, 맞아, 그다음에도, 나는 죽은 그 사람 몸과 내 몸이 조금도 다르게 느껴지지가 않았으니까….... 그 몸과 내 몸 사이에는 같은 점만…...명백하게 같은 점만 있었다고요, 알겠어요? 내 첫사랑이었다고…....(큰 소리로 외침). (117)
-그녀: 아! 때로 누군가와 같이 있다는 건 정말 얼마나 좋은지.
두 사람은 아주 천천히 서로 떨어진다.
그: 맞아요. (손가락을 그녀의 입술에 대면서.) (123)
-그녀: 세상이 우리 앞에 내놓는 이런 난관들을 가끔 생각하지 말아야 해요. 그러지 않고는 완전히 숨이 막혀 버릴 거예요.
(마지막 문장을 말할 때 ‘바람’이 불게 한다.) (126)
-그녀:[나는 이제 조국이 없었으면 좋겠어. 내 아이들에게 난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들이 가진 악의와, 무관심과, 영악함과, 애국심이 어떤 건지 가르칠 거야.] (134)
-그녀: 당신을 만나요.
당신을 기억해요.
이 도시는 사랑에 꼭 맞게 만들어져 있네요.
당신은 내 몸하고 꼭 맞게 만들어져 있네요.
당신은 누군가요?
당신은 나를 죽여요.
나는 굶주리고 있었어요. 배신과, 불륜과, 거짓말, 그리고 죽음에.
오래전부터.
어느 날 내 앞에 당신이 불쑥 나타나리라 짐작하고 있었어요.
한도 끝도 없는 조바심 속에서 조용히 당신을 기다렸지요.
나를 삼켜 버려요. 당신 모습대로 나를 바꿔 버려요. 당신 이후 어떤 남자도 왜 그렇게 엄청난 욕망이 내게 휘몰아치는지 알지 못하게.
내 사랑, 우리 둘만 남을 거예요.
밤은 끝나지 않을 거예요.
아무에게도 이제 날이 밝아 오지 않을 거예요.
절대. 다시는 절대. 마침내.
당신은 나를 죽여요.
당신과 함께 있으면 좋아요.
우리는 지나간 그 옛날을 마음을 다해 애통해할 거예요.
지나간 그 옛날을 애통해하는 것 외에 우리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을 거예요.
시간이 흘러갈 거예요. 오직 시간만이.
그리고 시간이 오겠지요.
시간이 올 거예요. 우리를 이어주는 것이 무언지 우리가 더 이상 그 이름을 댈 수 없게 되는 시간이. 그 이름은 우리 기억에서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 갈 거예요.
그런 다음 완전히 사라지겠지요. (135-136)
-거기에서 사랑은 용서받지 못한다. 느베르에서 사랑은 죄가 된다. 느베르에서 행복은 죄악이다. 권태는 허용되는 덕목이다. (156, 부록 ‘한밤의 명백한 일들‘ 중)
-도시에 있는 남자들은 모두 독일 사람들뿐이었다. 나는 열일곱 살이었다.
전쟁은 끝이 없었다. 내 젊음도 끝이 없었다. 나는 전쟁에서도, 젊음에서도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여러 종류의 윤리 도덕들이 이미 내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175, 부록 ‘느베르’ 중)
-그녀가-히로시마에서-그 일본 남자에게 내어 주는 것, 그것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진 가장 귀한 것, 현재 시점의 그녀 표현을 따르자면, 느베르에서 자신의 사랑이 죽고도 살아남았음이다. (186, 부록 ‘프랑스 여자의 초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