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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한 집 1 ㅣ 비꽃 세계 고전문학 24
찰스 디킨스 지음, 김옥수 옮김 / 비꽃 / 2020년 11월
평점 :
-20241219 찰스 디킨스.
‘나보코프 문학강의’ 덕에 찰스 디킨스를 처음 읽게 되었다. ‘황폐한 집’은 처음 듣는 소설이었는데, 무려 3권이나 되는데 전자 도서관에 있었다. 이런저런 익살이나 빈정거림이나 블랙 유머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아직 1권 밖에 못 봤어… 언제 다 봐… 재미있긴 한데 퍽 길다.
카프카가 ‘소송’이나 ‘성’을 쓰기 전에 이 책을 읽었는지 궁금했다. 이 소설 배경인 영국, 런던(맞나)에서도 길고 끝없는 소송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소모되고 소송 비용이 눈처럼 불어나고 많은 이들이 고통 받는다. ‘잔다이스 대 잔다이스’ 소송이라 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얼 다투는지는 잊혀진 건지 자세히 나오진 않는다. 소송의 피후견인이라 하는 젊은이 에이다와 리처드는 사랑에 빠지고, 에이다의 말벗 겸 집안일 돌볼 ‘꼬마 아줌마’로 함께 데려온 에스더가 중심 화자처럼 주변을 관찰하고 이런저런 사건을 파악해 나간다. 나보코프는 ‘맨스필드 파크’에서 더부살이 패니를 중심인물 삼은 것처럼 하녀나 가정교사 같은 상대적으로 좀 덜 존중받는 인물을 관찰자나 화자로 삼는 것에 주목한다. 여기서도 에스더가 하는 행동이나 주변을 파악하는 걸 보면, 처음에는 조금 어리숙한 듯 하다가 점차 이것저것 관찰하고 오히려 주변 상황을 꿰뚫고 리처드가 진로 선택 제대로 못해 방황하는 걸 걱정하고 지적하거나, 잔다이스 아저씨가 고민하는 데 다가가서 위로하고, 사랑에 빠진 에이다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게 도우려고 애쓰기도 한다. 정작 에스더 자체도 뭔가 출생의 비밀이 있는 것처럼 냄새만 팍팍 피워놓고 아직 이야기를 충분히 풀지 않은 채로 1권이 끝나지만…
법정을 둘러싸고 대법관부터 변호사들, 법률문서 대서하는 사람들, 재판 관련 문구 파는 사람, 심부름꾼, 소송 당사자들, 배심원들 우왕좌왕 많이도 나왔다. 정체 잘 모를 귀족들 이야기도 나오고 소송 걸면서 땅 가지고 분쟁하는 두 집도 나오고… 그런데 정작 법률과 소송은 많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재판 그 자체에 빠져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한다. 그리고 오래 전엔 아이들을 참 가혹하게 대했구나… 부모 없이 떠돌며 여기저기 천대받고 의심받는 빗자루질 하는 조가 그랬고, 사회사업한다고 미쳐 다니며 자기 아이 안 돌보는 뭐시기 부인네 아이들이 또 그랬다. 피피란 아이가 계단 여기저기 부딪히고 굴러떨어지며 방치되는 장면도 맴찢… 부모한테 용돈 다 털려서 기부하고 다니는 불만에 찬 어린이들도 안타깝고…
이 소설 안에서 사람들을 살게 만드는 건 법이나 제도보다 누군가를 가엾게 여기는 마음, 어린 아이를 도우려는 호의, 건넨 작은 돈, 음식, 친절, 위로, 뭐 그런 것들이었다. 자꾸 반복해서 보여주는 당연한 장면들인데 그 새삼스러운 것들이 이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꾸 잊히는 구나 싶었다. 법과 정의는 필요한 것이지만 과정과 절차에 매여 지나치게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자꾸 등장해서 디킨스가 뭘 말하고 싶은지는 참 또렷하지만… 이걸 2권 3권에서 또 어떻게 어디까지 끌고 갈지는 더 봐야겠네… 언제 다 보나… 재밌긴 한데 요즘 책 읽는 것조차 힘들고 그렇다. 감기도 심하고 복직할 마음도 심란하고ㅋㅋ 아파서 나가 걷지도 못하고 누워 앓다보니 한 주가 훅 갔다. 내 마음엔 법원을 세우지 말자… 그냥 다독다독이나 해 주자… 정신 없어 아무말잔치…
+밑줄 긋기
-여기가 대법정이니, 영국 곳곳에서 건물은 무너지고 토지는 말라비틀어지고, 정신병원마다 미치광이는 녹초가 되고, 공동묘지마다 죽은 자는 가득하고, 망가질 대로 망가진 원고는 뒤축이 닳아빠진 신발에 실밥이 드러난 차림으로 사람들을 이리저리 찾아다니며 돈을 빌리거나 구걸하고, 돈 많은 부자는 판결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단이 넉넉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추구하는 자는 돈과 인내심과 용기와 희망을 완벽하게 빨리다 머리가 깨지고 심장이 무너지는 터라, 고결한 법률가치고 “아무리 억울한 일을 겪더라도 법정만큼은 안 찾는 게 좋다”는 경고를 안 하는 사람이 없구나! (대법정 무섭다... 판사님 이 독후감은 모두 뒷산 고양이가 쓴 것입니아옹)
-그는 도덕적으로 엄격하고, 인색하거나 비열한 행위를 경멸하며, 자신의 진정성을 비난받느니 차라리 죽는 편을 선택할 신사다. 한마디로 명예를 존중하며 완고하고 진실하고 기개가 높고 편견이 심한, 완벽하게 비이성적인 인물이다. (결론이 웅장. 비이성적인 새끼야)
-젊은 사내가 실수로 잉크를 몸에 쏟은 모습으로 인도에서 저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링컨 법학원에 있는 켄지와 카보이에서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젊은 사내는 친절했어요. 짐을 삯마차로 옮기는 걸 감독한 다음에 제가 올라타도록 거들고, 저는 런던 어디서 큰불이 났느냐고 물었어요. 거리마다 짙은 갈색 연기가 가득해서 아무것도 안 보였거든요. 그러자 젊은 사내가 대답했어요.
“어이쿠, 아닙니다, 아가씨. 이건 런던 명물이랍니다.”
저는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고, 젊은 사내는 다시 말했어요.
“안개요, 아가씨.”
“아, 그렇군요!” (아니 그거 무진의 명물 아니었어?!)
-“안개가 정말 짙네요!”
제가 말하니, 거피가 마차 발판을 내리며 대답했어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겉모습으로 판단하건대, 아가씨한테는 오히려 잘된 것 같네요.”
좋은 뜻으로 하는 말 같아, 저는 얼굴이 붉어지는 걸 가볍게 웃어넘기고, 거피는 문을 닫고 마부석에 올라탔어요. (안개 좀 알게 되서 인사치레 했다가 허튼 소리 들었는데 못 알아 듣는 에스더. 여기서 디킨스씨 개그 좀 치시네 했다.)
-노인이 살짝 고갯짓해서 세입자를 가리키며 이어나갔어요.
“톰 잔다이스는 여기에 자주 왔다오. 재판 일정이 잡히면 주변을 끊임없이 돌아다니면서 조그만 상점 주인한테 말하는 습관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대법정 소송은 피하라고, ‘그건 천천히 돌아가는 맷돌에 온몸을 갈아대는 것과 똑같으니까. 천천히 타오르는 불길에 온몸을 태우고, 벌침에 한 방씩 물리며 천천히 죽어가고, 하나씩 떨어지는 물방울에 익사하고, 조금씩 미쳐가는 것과 똑같으니까’라고 말하는 습관이 있었거든. 어린 아가씨가 지금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 하마터면 그대로 자살할 뻔했지.”
우리는 공포에 휩싸이고, 노인은 손가락으로 고물상 통로를 천천히 가리키며 이어갔어요.
-스킴폴 선생은 아침 식사 때도 간밤처럼 명랑했어요. 식탁에 벌꿀이 있어서 꿀벌에 대한 담론으로 나아갔지요. 자신은 벌꿀은 반대하지 않지만(꿀벌을 좋아하는 걸 보면 정말 그런 것 같은데), 벌꿀을 가지고 교만한 억측을 펴는 건 반대한다. 바쁘게 일하는 꿀벌을 모델로 삼아야 하는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자신이 볼 때, 꿀벌은 꿀 만드는 걸 좋아한다. 꿀을 만드는 게 싫다면 안 만들 거다. 꿀벌은 자신의 취향을 그렇게 자랑할 필요가 없다. 모든 인간이 온 세상을 윙윙대며 날아다니다 무어든 길을 막는 물체에 부닥치고, 자신은 일하러 가니까 방해하지 말라고 소리친다면 세상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게다가 꿀벌은 꿀을 다 만드는 즉시 연기를 맡고서 쫓겨나는 신세가 아니더냐. 맨체스터 노동자가 면직물을 짜는 목적이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잘못 생각한 거다. 자신이 볼 때 수벌이야말로 누구보다 명랑하고 현명한 사상을 실천한다. 수벌은 있는 그대로 말한다. ‘미안합니다. 나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엔 볼거리가 널리고 구경할 시간은 짧으니, 나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구경하다, 돌아다니길 싫어하는 분에게 먹을 걸 구걸하겠습니다.’ 나는 수벌 철학을 아주 좋은 철학으로 여긴다. 수벌은 꿀벌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늘 애쓴다. 그래서, 자신이 아는 한, 늘 간편하게 산다, 상대가 꿀만 내준다면, 그리고 꿀이 얼마나 있는지만 안 속인다면! (어린이처럼 묘사되는 스킴폴 선생을 세 글자로 말하자면 식충이)
-“지상에 있는 지옥 불 가운데 대법정처럼 지독한 곳은 어디에도 없어. 그런 곳은 개정 기간 중 가장 바쁜 날에 땅속에다 지뢰를 파묻어, 위쪽과 아래쪽, 높은 놈과 낮은 놈은 물론 거기에 관여하는 놈 모두랑 기록과 법률과 선례까지 모조리 모아놓고 화약 천 톤을 터트려서 깡그리 날려버려야 해, 조금이라도 개혁하려면!”
그분이 굵직한 목소리로 강력한 개혁 방법을 열심히 내놓는 모습에 누구나 웃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웃으니, 그분 역시 머리를 꼿꼿이 들고서 널찍한 가슴을 흔들며 주변이 또 마구 흔들릴 정도로 커다랗게 “하하하!” 웃어댔어요. 그런데도 자그마한 새는 아무렇지 않았어요. 완벽하게 안전한 느낌으로 머리를 이쪽저쪽 홱홱 돌리며 식탁을 쫑쫑쫑 뛰어다니다, 반짝이는 눈을 갑자기 돌려서 주인을 쳐다보는 게, 자신과 똑같은 새라고 여기는 것 같았어요. (장비 같은 입 걸고 불 같은 보이손 선생1)
-...해군본부 위원회 놈이라면 하나도 남김없이 다리를 – 두 다리를 – 분질러 버린 다음, 48시간 안에 군의관 대우 체계를 완전히 안 고친다면, 그 다리를 고쳐주는 의사는 해외로 모조리 유형을 보내야 한다고.”
“일주일은 여유를 줘야 하지 않을까요?”
잔다이스 아저씨가 묻자, 보이손 선생이 단호하게 소리쳤어요.
“안 돼! 안 될 말이야! 48시간! 도시든 성당이든 사목회든 멍청이만 가득한 모임에서 그런 말이나 주고받는 놈들은 하나같이 수은광산으로 끌려가서 짧은 여생을 강제노동하며 살아야 마땅하다고. 밝은 대낮에 그런 말이나 해서 영어를 오염시키는 일이 없도록. 젊은이들이 그렇게 훌륭한 일에 용감하게 뛰어드는 걸 이용해서 야비하게 이익이나 챙기는 놈들은, 젊은이들이 인생 황금기를 바쳐가며 비싼 돈으로 오랫동안 공부하고 사회에 봉사하는데 쥐꼬리만 한 봉급만 주는 놈들은, 하나같이 목을 분지른 다음, 두개골을 외과의 협회 회관에 진열해서 두개골이 얼마나 두꺼울 수 있는지를 젊은 의사들이 실제로 만져보면서 일찌감치 깨닫게 해야 한다고!” (장비 같은 입 걸고 불 같은 보이손 선생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