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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ㅣ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6
이문구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평점 :
-20241124 이문구.
1학년, 국민학교 첫 여름방학이었다. 할머니는 어디 친척집에 며칠 다니러 가셔서 엄마가 우릴 데리고 할머니댁에 머물며 할아버지 밥을 해주고 지냈다. 더위에 허술하게 보호장비를 했던지, 농약이 너무 독했던지, 정한 희석 농도보다 높았던지 알 수 없지만, 논인지 밭인지 분무기에다가 약 주고 돌아온 할아버지가 우물가에 쓰러져 누웠다.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경련을 일으켰다. 엄마는 할아버지 팔다리를 주무르다, 아마도 구급차인지 삼촌인지 누군가에게 연락했고, 할아버지는 병원으로 실려갔다. 할아버지는 며칠 입원했고, 친척집에서 돌아온 할머니가 병원에서 병바라지 하는 동안 엄마랑 나랑 동생은 예정보다 더 오래 할머니댁을 지키고 있어야 했다. 책도 못 가져오고 학교 숙제인 탐구생활 한 권, 그림일기 하나 들고온 터라 무척 지루한 날들이었다. 그무렵 찍은 사진들이 남아있다. 밀집모자를 쓰고, 머리에 꽃도 달고, 익살스럽게 찍어뒀지만 농약중독사고를 직접 목격한 충격은 삼십년 지난 아직도 기억에 남았다.
그 후로도 할머니댁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금부터 20년전까지 농사를 지었다. 할아버지는 본업은 건설현장 노동자로(노가다 십장) 중동이랑 북아프리카랑 해외로 오래 떠돌았다. 벼농사랑 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 이런 저런 채소 밭농사랑 짓는데 한국의 농업이란 무척 노동집약적이고, 도시나 읍내에서 직장 다니거나 회사 다니는 할아버지의 아들들은 농번기에는 휴일마다 수시로 불려 가서 모를 심고, 자꾸 고장나는 경운기를 고치고, 고추모를 심고, 이거저거 다 했다. 며느리들은 밭농사를 돕거나 밥을 해날랐다. 나는 어린 사촌동생들이랑 논둑 근처 솔밭 아래 돗자리 깔고 애들이랑 놀아주다가 뱀이 나타나서 어린애들을 껴안고 뱀!!! 뱀이다!!!! 하고 비명을 질렀더니 뱀이 이리 기어오다 놀라 달아났다. 동생들은 뱀이 나오면 언니처럼 뱀!!!하고 소리지르면 된다고 잘못 배웠다.
도농복합시 읍내 살다 군이 시되는 걸 보고 자라서, 술먹고 엄마 두드려패는 아빠 피해 가출해서 서울 와서 이제 거의 이십년 가까이 되었다. 그때도 이미 꿈도 희망도 없는 농촌이었지만, 그런 농촌에 자본주의 들어오고 소비와 욕망만 늘고 상품 수익성은 택도 없어 죽어라 일해야 빚만 늘고 그냥 서서히 망해가는 농촌 이야기 적어둔 소설 보며 나는 농업 종사는 커녕 들일 밭일 거들어 본 적도 없이 구경만 했는데도 그냥 내내 쓸쓸했다. 이전 읽은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는 이문구 선생 말년에, 이번 읽은 ‘우리 동네’보다도 좀 더 지나 거의 다 죽은 농촌의 서글픔, 거기 약간의 체념과 작가 생명 숙어지던 질병 앓던 시절이라 그런가 더 처절하게 잘 쓴 것 같았다. 그보다 아마 조금 젊던 시절 쓴 ‘우리 동네’는 그래도 아직 안 죽었다고, 중년의 농촌 쯤 되는 시절을 그린 느낌의 연작 소설이었다. 나는 수능 전 이문구 소설집은 다 읽고 간다, 했는데 하나 밖에 못 읽고 이건 너무 두꺼워서 이제야 다 봤다. 보고 나니, 이건 수능에 못 나와… 너무 야해… 정씨는 귀숙어매랑 동네서 몰래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틀어져 경찰서까지 가서 드잡이 하고, 아재들은 수매가격 그지같이 곡식을 넘기고 신경림 시의 ‘농무’에 나오는 농악대처럼 울분 토하다가 유흥업소 가서 술 퍼마시고 단체로 성매매하러 가… 핍진하긴 한데 역시나 개빻아가지고, 하긴 인생 막장 개털인데 저러고 막가는게 인간이지 싶고 가엾으면서도 예쁘게 볼 수 없는 모습들, ‘드러-’ 하는 추임새처럼 진짜 드럽게 놀며 현실 도피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을 내가 안 살아봤으니 막 욕할 수도 없고 그랬다…
그래도 나름 재밌고 호감간다 싶은 아재도 하나씩은 나왔다. 안 좋은 꿈 꿨다 싶어 그것 때문에 손탈까 가족 걱정하며 일찌감치 들에 나와 안절부절 못하는 김씨 아저씨가 그랬다. 새에게 모이 주고 새잡이 총질하는 도시 사람과 싸우는 최씨가 또 그랬다. 연작 소설집의 시작과 말미를 김씨의 활약으로 열고 닫는다. 첫 소설부터 양수기 빌려다 물대다가 싸움나고, 그러다가 민방위 오라니까 다들 샥 몰려가서 관에다가 바른 말 하는 김씨와 그걸 거드는 주변 사람들이 절창이다. 너무 재미났다. 막판에 농민들의 사자후라 해야 하나, 농민 등처먹는 아이콘인 황씨한테 망신 주고 대거리하다가 도시 것들, 높은 사람 들으라는 듯 마지막 울분을 뿜어내는데, 이게 이미 망해버린 농촌의 뒤늦은 유언 30년 후에 듣는 것 같아서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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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면장은 무슨 말이 나오는 것을 참는지 한참 동안 입술만 들먹거리더니 겨우 말머리를 찾은 것 같았다.
“도대체 당신 워디 사는 누구여? 뭣 허는 사람여?”
그러자 누군가 뒤에서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 사람두 높어유.”
그 말이 떨어지기 전에 또 다른 목소리가 곁들여졌다.
”놀미부락 개발위원이구, 마을문고 후원회원이구…...“
그러자 여기저기서 우르르 하고 아무나 한마디씩 뒵들이를 했다.
”부랄 조심(가족계획) 추진위원이구…...“
”부녀회 회원 남편이여.“
”연료림 조성 대책위원이유.“
”야산 개발 추진위원이구.“
”단위조합 회원이여.“
”이장허구 친구여.“
”죄용해 줘유. 앉어줘유. 그만해 둬유. 입 다물어줘유.“
하고 부면장은 다시 마이크에 대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약간 수그러들자 부면장은 언성을 낮추어 말했다.
”일 헥타는 삼천 평입니다. 앞으루는 이백 평이니 말가웃지기니 허구 전근대적인 단위는 삼가주셔야 되겄다-이겝니다.“
말허리를 끊으며 김이 말했다.
”이 바닥에 헥타르를 기본단위로 말할 만치 땅 너른 사람이 멫이나 되느냐 이게유.“
부면장은 들은 척도 않고 하던 말을 계속했다.
”에, 날두 더운디, 지루허시드래두 자리 흐트리지 마시구 담배나 피시며 쉬서유. 저 놀미 사는 높은 양반두 승질 구만 부리시구 편히 쉬서유. 미안헙니다.“
그러자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김은 그 박수의 임자가 자기라고 믿으며 속으로 웃었다.
(‘우리 동네 김씨’ 중, 34-35)
-”세상이 아무리 뭣같이 되었더래두 헐 말은 허구 살아야겄더라구.“
이장은 계속했다.
”촌늠은 나이가 명함이지만 나두 막말을 안 헐 수 웂어 허는디, 당신이 계장님 만나러 예까장 온 속심을 우리가 모르지 않어. 물간 새우젓, 곯은 황새기젓 좀 농민들헌티 멕여보까 허구 시방 지켜앉어 있는디, 아스슈, 아스라구. 나두 작년 같잖여. 나두 정신채렸다구. 작년만 해두 동네서 쥑일 늠 소리를 들었고, 또 그래야 쌌어. 허지만 나두 싫어. 왜냐. 나두 당신 말마따나 젊어. 넘으 잔치에 설거지해 주다 내 배 곯구, 동네서 소릴 들어가며 살구 싶지는 않더라 이게여. 그러구 이건 내 개인문제가 아녀. 그럼 뭐냐. 하늘과 땅과, 비바람두 눈보라두 우리를 보호해 줘. 심지어 개돼지두 우리를 위해 살어. 그러나 사람은 틀리더라 이게여. 그러니 이저는 세상웂이 거시기헌 늠이 무슨 소리를 해두 못 믿것더라 이게여.“
이장은 말허리를 끊고 좌중을 한차례 둘러본 다음 나머지를 이었다.
”그러니께 결과적으루 우리 스스로 우리를 보호허지 아니허면 아니되겄더라-이게 결론여. 내 맘만 같으면 당신이구 오도바이구 죄 남댑문표 빤쓰에 싸서 둠벙 속에 처늫겄어. 또 그래야 옳어. 그러나 워쨌든 간에 당신은 우리게 사람여. 우리는 아직두 이웃을 보살피구 동네 사람들 애끼구 싶다 이게여. 그리구 당신 빤쓰 아니더래두 수재민들이 홑바지는 안 입는답디다. 부디 니열 새벽 빤쓰버텀 걷어가슈. 당신 손으루. 동트기 전에.“
“…...”
황은 응수하지 않았다. 틈을 여투어 김이 말했다. (중략)
“내가 헐라는 말은 저기여. 벨것이 아니라, 하늘을 쳐다보구 땅만 믿구 사는 우리찌리는 여전히 경우가 있구, 이웃두 있구, 우정두 있구, 이런 것 저런 것 다 분별이 있는디, 직업이 사람을 상대루 허는 직업은 우리가 마소나 들풀이나 돌멩이 같은 다른 저기들과 다름웂이 뵈는 모양여. 우리가 있음으루 해서 각기 직업두 생긴 겐디, 그 직업을 한번 붙잡었다 허면 우선 인심부터 내버리구 저기허더란 말여. 직업을 권세루 알기루 말헐 것 같으면 하늘을 입구 흙을 먹는 우리네 위로 올러슬 것이 웂을 텐디두…...그러나 우리를 업신여긴 것치구 오래 안 가데. 나는 배움이 웂어서 지난 역사를 저기헐 수는 웂지만 아마 사람 위에 올러스려구 버둥댄 것치구 저기헌 적이 웂을겨. 그랬으니께 오늘날에 우리가 있는 게구, 우리는 또 자식들이 사는 걸 저기하면서 저기허는 게구…...”
김은 하던 말을 남기고 일어설 채비를 했다.
(‘우리 동네 황씨’ 중, 393-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