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보리피리 - 범우문고 273 범우문고 273
한하운 지음 / 범우사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40910 한하운.
 
 
 피-ㄹ 닐니리 하는 피리 소리 슬픈 시가 국어 문제 풀다가 나왔다. 엄마가 아주 오래 전에 문둥병 시인, 하고 한하운을 언급하던 것도 생각나고. 그래서 전자책으로 시집을 사 보았다. 나온지 70년이나 된 시집이었다. 치료가 어렵던 시절에는 낫는 줄 모르고 그저 옮을 게 두려워, 병으로 인한 증상이 가시적으로 무서워 사람들은 한센병 환자들을 배척하고 차별하고 국가 주도로 가둬두기 까지 했다. 시인은 병이 나은 뒤로 한센병 환자들의 권익을 위한 이런저런 사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질환에 대한 공포가 감염병 예방이라는 명목으로 억압과 차별까지 닿는 장면을 나는 생생하게 보았다. 한센병이 아니라 무엇이든 괴물이 될 수 있다. 안 걸린 개인들 뿐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공공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한답시고 인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 뭐 그렇다. 그렇지만 누구나 병이 들 수 있고 장애인이 될 수 있다.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더 혜택이 가는 차별만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롤즈식 사회 정의론은 정책 결정이나 여론 형성에 크게 힘을 쓰지는 못하는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느끼는 내가 몸 담은 사회는 그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 소수는 죽어라 할 때가 많다…
 
 70년 전 오래된 시다 보니 서양인 여자 일컬어 양녀, 하면서 이런저런 외모 묘사하고는 뭔 계집, 이러는 빻은 시도 있고, 한자어를 잔뜩 발라놔서 현학적이다 싶은 시도 있었지만, 대부분 시들은 서러움을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말들이 담겨 있었다. 서러운 삶은 가고 시는 남았다. 우리가 유한한 존재가 아니었다면 글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죽어도 남을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쓰는 동안엔 위로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밑줄 긋기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먼 전라도 길.
(‘전라도길-소록도로 가는 길’ 중)
 
-그래도 살고 싶은 것은 살고 싶은 것은
한 번밖에 없는 자살을 아끼는 것이오.
(‘봄’ 중)
 
-간밤에 얼어서
손가락이 한 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 위에 떨어진다.
 
이 뼈 한 마디 살 한 점
옷깃을 찢어서 아깝게 싼다.
하얀 붕대로 덧싸서 주머니에 넣어둔다.
 
날이 따스해지면
남산 어느 양지터를 가려서
깊이 깊이 땅 파고 묻어야겠다.
(‘손가락 한마디’ 전문)
 
-썩은 육체 언저리에
네 헒과 균菌과 비悲와 애哀와 애愛를 엮어
뗏목처럼 창공으로 흘려보고파진다.
(‘하운’ 중)


어린이 책에도 한하운 시가 실려 있어서 반가웠지. 그래서 따라 써 봤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아 2024-09-11 09: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러운 삶이 가야 시가 남는다.
열반인님이 밑줄긋기 해준 시를 보면
시인이 마치 ‘자신의 서러운 삶‘을 떨어져 지켜보는 것 같아 그 말이 맞는 것 같네요.
가장 취약한 자가 때론 가장 강하는 말에 걸맞는 시집인 듯 합니다. 담아갑니다!

반유행열반인 2024-09-12 07:50   좋아요 2 | URL
약간 객관화할 만큼은 지나야 시든 소설이든 읽어줄 만하게 되는 것도 같아요 ㅎㅎㅎ
서른은 지났으니 더는 서러워 말고 마흔이라고 말아먹지 말고 씩씩하게 잘 지내야 겠습니다 ㅋㅋㅋ 좋은 나날 보내세요 청아님!!!!

유수 2024-09-11 19: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밑줄 그어준 부분 너무 좋아요. 역시. 조만간 따라 사겠군요 너란 범우문고 ebook
(이북 잘 안사다가 이번에 몇권 살 일 있어서..저번 이북 꿀팁 잘 따라하고 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4-09-12 07:51   좋아요 1 | URL
우왕 근데 나중에 팔백작님이 3년 전 밑줄 그어 둔 시 보니 똑같더라고요 ㅋㅋ저게 전자책 2천원어치의 다 일수도? ㅋㅋㅋㅋ
이북 내가 팁 방출하고나서 이제 만원 이상 사야 쓸 수 있는 천원 적립금만 줘요 ㅋㅋㅋㅋㅋ짠돌이 자본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