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박상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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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30 박상영. 


  요즘은 잘 안 그러지만, 작가한테 한 번 꽂히면, 전작 간다, 나도 모르게 그랬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제 안녕, 떠나 보내는 작가도 늘어가고…(꼴에 자랐다고…) 박상영도 어느새 출판된 소설집, 장편, 연작, 지난 에세이집까지 다 봤다. 다섯 권, 그리고 이 책까지 여섯 권. 사실 여행 에세이 출간되었을 땐 지난 번 굶고 자야지, 하는 책이 별로였어서 역시, 소설가 산문집은 읽는 거 아니다! 걔들은 좋은 문장은 소설에 쓸라고 인색해서 에세이는 구려, 그런 지론 같은 게 있었는데. 12월 읽은 책이 한 권이었다. 연휴 때는 놀아야지, 해 놓고 오롯이 놀지도 못했다. 나새끼 휴일엔 그닥 열심히도 아니면서 서너시간 정도는 공부한다고 붙잡고 있는 것이었다...그래서 연휴 끝에 이 책 빌렸다. 제목 좋잖아, 했던 건 휴식이 필요한데 저 이제 제대로 쉬는 게 뭔지 잊어버린 것 같아요...열심히도 쉬는 것도 아닌 시간들을 자꾸만 보낸다. 쉰다, 라면서 바깥을 걷거나 실내자전거를 탄다. 어이어이 그건 쉬는 게 아니라 ‘운동’이란 거라고… 내게 독서는 쉼이었구나… 약간 치열하고 전투적인 쉼...


 큰 기대 없이 여행 에세이라니, 그닥, 하고 펼쳤는데 의외로 잘 읽혔다. 이전 식탐과 싸우며 우울과 불면에 절었던 이야기 보다는 이미 감지했지만 서서히 나아지고 더 밝아진 작가 모습이랄까, 가드 내리고 주변 친구들 이야기 잔뜩 질러 나 인싸다 친구 많다 헤헤 하고 극I인 왕따 나새끼 염장 지르는 면모도 없잖아 있었지만, 감정에 휩싸이고 교감 신경 과활성이고 잘 쉴 줄도 몰랐다는, 원가정의 불행으로 어딘가로 자꾸만 떠나고 싶고 또 이런저런 것들 써 버리고 싶던 작가의 모습에 자꾸만 아이 참 나도 그랬는데, 했다. 에세이래도 좀 문장 정갈하고 그런 산문은 아니고 몇 년 지켜본 블로거 이웃 게시판 드나들며 읽는 것 같이 거칠면서도 그래도 쭉쭉 읽히는 여정들이었다. 가파도 레지던스는 하아...그래도 사람 사는 곳에 지네랑 그리마 해결도 안 하고 거기 물리면서 지내는 환경이라니...빡치기도 했지만 김연수 소설가가 지네 다리 이쁘다잖아(물려 놓고서)… 김연수 소설가가 상영, 하는 말투나 이금희 아나운서가 하는 교과서 말투 이런 거 대화체 은근 잘 살려놔서 음성지원 되는 거… 


 2016년에 거제도, 2017년에 베트남 다낭 여행 다녀온 이후 원거리 여행은 갱신되지 않고 있다. 이코노믹 증후군이라 불리는 혈전 환자까지 되어버려서 오래 좌석 앉는 이동이 겁이 나기도 한다. 소소하게 멀지 않은 주변, 골목, 도시 곳곳을 기회되는 대로 마구 걸어 다니며 샛길 발견하고 신나하는 놈이 되긴 했지만...제자리 맴돌고 있는 나날이라 그런가 그렇게 즐기지 않던 남의 여행 이야기 읽는 것도 신났다. 너무 오랜만의 독서이기도 했다…


 그래서, 올해 독서는 110권으로 시마이!


+밑줄 긋기

-자아,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서울’을 꿈꿔왔었다. 나는 내가 처한 환경이 싫었다. 부모님과 학교, 나아가 대구라는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한 도시가 나를 꽉 쥐고 속박하는 것만 같았다. 고향을 떠나기만 하면, 서울로 가기만 하면 이 모든 것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내 삶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서울’이라는 도시를 지상 낙원으로 상정하고 두 눈을 가린 채 그저 앞으로만 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낙원일 리 없었다. 한 학기라는 시간은 이상의 공간이라고 여겼던 ‘서울’이 실은 내가 살던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곳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기에 충분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몸에도 일정 이상의 나트륨이 존재하고 결국에는 인간의 손이 닿는 자연은 일정 부분 훼손될 수밖에 없으며, 심지어 인간의 삶은 서로가 서로를 부서뜨리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과장된 생각에까지 도달해버렸다.


-송지현은 조용히 “삼보 일 무덤이다”라고 중얼거렸고 나는 그게 왠지 웃겨 핸드폰 메모장에 ‘삼보 일 무덤’이라고 받아 적었다. 

(황인찬은 친구들과 이야기 하다 네 무덤 냄새, 하는 말이 재미나서 휴대전화에 적었다 시로 써먹었다고 했는데 그거랑 비슷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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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2-30 0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2023년 마지막 책이군요 한해 동안 책 많이 보셨군요 2023년엔 몸이 아프기도 했는데, 지금은 많이 아프지 않기를 바랍니다 건강해야 뭐든 하죠 2023년 마지막 주말 편안하게 즐겁게 지내시고 2024년 새해 반갑게 만나세요 늘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반유행열반인 2023-12-30 13:52   좋아요 1 | URL
희선님 건강과 평온한 휴일까지 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아보니 아픈 핑계로 공부 쉬고 한해 중간 기간은 실컷 읽으며 잘 지낸 시절 같습니다. 희선님도 늘 건강하시고 새해에도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유수 2023-12-30 0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적북적은 반을 허해서 별점이 더 디테일해지네요 ㅎㅎ 시마이!
한권도 안 읽어봤지만 상영, 장하네요.

반유행열반인 2023-12-30 13:53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별 네개 주고도 뒤돌아서 북적에 3.5주며 이게 좀 더 정의롭군 ㅎㅎㅎ하는 좋은 앱이에요.
상영, 잘 자라고 팬도 많고 친구도 많고 이제 난 내 앞가림만 잘하면 되겠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