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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 - 낭만과 상실, 관계의 본질을 향한 신경과학자의 여정
스테파니 카치오포 지음, 김희정 외 옮김 / 생각의힘 / 2022년 10월
평점 :
-20231112 스테파니 카치오포.
뷰렛-Love Forever.
읽는 중간중간 기대나 예측을 벗어나며 흥미를 불러오는 사랑에 관한 책이었다. 계속 읽어오던 뇌과학책들이랑 비슷한 교양서인가 했는데, 읽다 보면 이거 뭐냐 연애 에세이냐, 로맨스 소설이냐, 하다가 마지막엔 그렇게 간단하지 않군, 했다. 뒤로 갈수록 좋았다. 누가 무슨 책이에요? 하고 짧게 답해 달라고 하면 한 사랑의 일대기, 하겠다.
저자 스테파니는 유럽에서 나고 자라 심리학과 뇌과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었다. 스테파니의 엄마 아빠는 사이 좋고 다정한 부부였다. 맨날 우울하고 싸움박질에 폭력을 일삼는 부모 아래 자라다 보니 다정한 부모 아래 자라는 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스테파니는 부모가 너무 다정하니까 나는 저런 사랑은 얻지 못할 것이다, 하고 일찌감치 기대를 내려 놓았다고 했다. 그게 의외인 듯했지만, 또 좋은 배우자를 만난 자신의 부모처럼 자기도 늘 좋은 사람을 만나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오히려 나쁜 사람을 만날 가능성을 대비 못할 수도 있으니까 자식 대까지 혼인 생활이 성공적이지는 않을 수도, 반대로 부모가 망한 혼인 생활했어도 그거 보고 자식은 반면교사 삼아 잘 살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스테파니는 누굴 좋아해 본 적도, 연애한 적도 없이 37살 다 되도록 모태솔로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사랑과 관계 맺음의 중요성. 그런 스테파니에게 운명의 사랑이 나타난다. 상하이 학회에 참석했다가, 유명 심리사회과학자인 존 카치오포를 만난다. 사회신경과학 창시자이기도 하고, 정교화 가능성 이론, 하면 다 알 걸? 해서 아...나도 들어봤을지도? 했다. 대학원 시절 다정한 법교육 전공 선배들이랑 사회심리학 스터디를 했었는데 이거 저거 배우면서 엄청 즐거웠던 기억이 났다.(차분하고 끈질기고 친절한 스터디원 중 최소 셋이 일찌감치 박사하고 교수, 평가원 연구원이 되었고, 성질 급하고 불친절한 나는 법교육 전공을 포기했다. ㅋㅋㅋㅋㅋ) 스터디 할 때 보던 사회심리학 교재에 카치오포 좀 나오겠다? 하면서 나중에 이 책 다 읽고 색인 뒤져보니 막 카치오포 인용 페이지가 다섯 개나 나오는...그런 거물이었다. 둘은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학회 기간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홀다닥 반했다. 스테파니가 메일로 존에게 연락을 하면서 그 마음을 확인하고는, 미국의 존과 스위스의 스테파니는 대륙을 넘나들며 연애한다. 파리의 노화 관련 행사에 존이 연사로 초대되어 스테파니가 함께 참석했는데, 거기서 만난 학자 하나가 너네 결혼할 때 내가 주례 해 줄게, 나 혼인 절차 진행하는 거 수료했음- 했다. 그말에 꽂혔는가 존은 스테파니에게 청혼하고, 스테파니는 부모에게 전화로 알리고 허락도 받고, 야 그냥 당장 하자, 하고서 행사 참석 학자들(대부분 그날 처음 봄) 초대해서 당장 적당한 장소 섭외를 못해서 근처 공원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파리 경찰이 쫓아와서 허락없이 잔디밭 망쳤다고 혼내서 잔디밭에서는 나와야 했지만.
내가 사회심리학책 뒤적이기도 전에 스테파니는 자기 반려자가 얼마나 짱짱맨인지 장황하게 자랑하고,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잘 통하는지, 나는 사랑에 관해, 존은 외로움에 관해 연구해서 뇌과학의 그쪽 분야로는 전문가인데 우리가 만나면서 겪는 모든 과정이 우리가 이론적으로 배운 그대로였어, 우리는 이론만 바삭하고 실제 삶은 그와 동떨어지게 나는 모솔, 존은 이혼만 두 번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우리가 만나서 얼마나 찹쌀떡-이었는지 한참 풀어댔다.와….
BIGBANG-BAE BAE (듣고 있자니 존나 배배 꼬임 ㅋㅋㅋㅋㅋ)
내가 어린 시절 사람들이 한동안 쓰다 지금은 잘 안 쓰는 말이 있다. 오랜만에 그 말이 생각났다. ‘염장질하다.’
염장은 염통, 심장을 일컫는 말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심장을 쥐어지르는 짓. 염장은 소금에 절이는 일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 소금 뿌리고 싶은 재수 없는 짓. 주로 쓰이는 상황은 연인 둘이서 남들 보이는 데서 애정을 과시하며 소외감을 느끼게 할 때였다. 두 가지 다 맞을 수도, 외로운 누군가의 심장을 쥐어지르고, 그래서 보고 있으면 소금 뿌리고 싶을 만큼 꼴보기 싫은 모습.
왜 남들의 사랑은 때로 부러움을 넘어 부정적인 감정을 자아낼까. 장기하는 부럽지가 않어-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가 갖지 못한 뭔가를 남들이 풍요롭게 누리면 부럽다 못해 분한 모양이다.
대작가가 된 뒤라스도, 아니 에르노도, 우리 완전 찰떡이에요, 나 햄복해요 호호호 하는 글을 써서 사랑받지는 않았다. 대부분 망한 사랑, 사랑 때문에 고통 받고 남들이 자기 사랑 가지고 뭐라고 하고,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은 지나간 이야기를 좔좔 써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거나 공감하지 않더라도 특별한 느낌을 가지고 읽었다. 이 점도 궁금했다. 왜 다들 남의 잘 되는 사랑 이야기는 심드렁한데 망한 사랑 이야기는 좋아할까...샤덴 프로이데처럼 꼬소하다, 이건 아닌 거 같고 그냥 같이 맘 아파하고...망한 거는 공감하는데 잘 지내는 거는 또 공감 잘 못하는 것 같기도...나만 그런가!!!
처음에는 스테파니가 굳이 저렇게 우리 사랑 짱짱맨 하는 게 잘 이해가 안 됐다. 그런데 그렇게 둘만 마냥 좋다고 다 인 건 아닌 걸 슬슬 밝혔다. 둘이 혼인 할 때 나이가 스테파니 37살, 존 60살. 스테파니가 존의 나이가 되었을 때 존은 살아 있지 않을 확률이 아주 높다.(-고 책에도 써 놨다.) 스테파니가 스위스에서 근무처를 옮겨 시카고대학 존의 사무실에 옮겨 함께 근무하고(그러니까 교수실을 부부 교수님이 같이 쓰는 거지…), 성도 존의 성인 카치오포로 바꾸자(둘다 이탈리아계 혈통이 섞여 있어 스테파니는 자신과 비슷한 문화적 배경을 공유하는 사랑하는 사람 성으로 바꿔서 너무 좋다고 했다), 주변에서 잔소리도 했다. 여성 연구자들한테 네가 하는 일들이 악영향을 미칠거라고. 그니까 다들 곱게 안 본 거다. 나이도 엄청 어린 애가 노인인 학계 권위자의 아우라에 올라타서 커리어 찐하게 올려서 득보는 걸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둘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멋진 새 차를 뽑고, 좋은 집을 구해 이사하고, 여행을 다니고, 공부도 일도 함께 하고, 매일매일을 신혼여행처럼 살았다. 실제로 혼인 무렵엔 둘다 너무 바빠서 신혼여행을 못한 대신 일상의 매 순간을 특별하게 보냈다.
오...그런데 혼인한 챕터 다음 다음에 위기가 훅 들어왔다. 둘이 혼인한 지 4년 만에 존의 뺨 부위에 침샘암이 4기까지 진행된 것이 발견되었다. 진단 받고 1년 후 생존율이 매우 낮은 병이었다. 약 2년 정도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 온갖 합병증 치료하면서 존은 고통을 겪었다. 그와중에 식사 잘 못해서 근육 째고 음식 공급하는 선 넣는 시술 했는데 그게 너무 아파서 총상인 줄 알고 “오바마를 보호해야”한다는 잠꼬대 같은 걸 해서 존의 비밀요원 판타지를 두고 나중에 둘이 웃은 이야기는 진짜 웃펐다. 악화와 회복을 반복하는 와중에 호전이 있어 존은 다시 강의와 연구에도 복귀하고 둘 사이도 더 탄탄해지는 느낌이었는데… 어느 날 급격히 상태가 나빠진 존이 집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응급대원이 왔지만 심폐소생술을 해도 존은 일어나지 못했다. 스테파니가 마지막으로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이미 존은 떠났고, 스테파니는 들것에 실린 존과 마지막으로 30층 아파트에서 1층까지 내려왔다. 혼인 7년 만이었다.
이후 오래도록 스테파니는 난파된 것처럼 ‘복합 비애’라는 심한 슬픔의 상태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이웃과 친구들이 스테파니를 위로하려고 애를 썼지만 스테파니는 홀로 된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고 마냥 수렁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주 오래 전 알았던 은퇴한 프로 테니스 선수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혼인 사실과 사별 사실도 모르던 유럽 멀리 있던 그 친구가 메일과 전화로 밖에 나가서 겁나게 달리라고 시켰다. 1년 간 매일 9킬로씩 시키는 대로 달리면서 쇠약해진 몸과 마음을 회복한 스테파니는 친구의 또다른 처방대로 다시 테니스를 시작하고 계속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 책의 마지막인 에필로그 부분이 내겐 가장 좋았다. 책의 시작도 솔로였던 스테파니가, 결국 책의 말미에도 혼자 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게, 사람은 누구나 시작도 끝도 혼자인데도 왠지 직접 그 과정을 따라가 보니 더 서글프기도 했다. 2018년 존을 잃고, 2020-2021년 스테파니는 홀로 팬더믹의 시대를 지났다. 그런데 그렇게 모두가 외롭게 고립된 순간에 수많은 사람이 스테파니를 찾았다. 외로움 박사는 존이었는데 존이 죽었으니 그 공동 연구자인 (심지어 성이 같아서 그녀를 존으로 착각한 기자들도 있었다) 스테파니에게 조언을 구했고, 스테파니는 존의 부재를 느끼게 하는 그 상황이 슬프기도 했지만, 이런 관심을 좋아하고 성의있게 답변했을 존을 떠올리며 응대를 했다. 고립된 우주인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비대면이지만 그들과 소통한 뒤, 머리 위를 지나는 우주정거장이 남일 같지 않게 된 것처럼, 존의 육체는 스테파니의 곁에 없지만, 존은 많은 기억과 흔적과 의미를 그녀에게 남기고 영원한 존재로 함께 하게 된 것이다. (‘당신의 부재는 여전히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지만 당신은 내 심장 가까이에서 언제나 함께 합니다.’ (283))
내가 본 책들 중에 특히 마지막 감사의 말이 길었다. 내가 별로 읽지 않아 그렇지, 많은 과학자들의 사랑 이야기가 있을 텐데, (이 책에도 제법 인용이 되어 있다) 아직 살아 있는, 그리고 사랑을 먼저 떠나보낸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 쓴 책으로 읽는 건 편지를 받은 것처럼 깊은 느낌이 있었다. 스테파니는 아직 제법 젊으니 존을 마음에 간직한 채 그대로 살아갈 수도, 존은 마음에 계속 남고 또다른 사랑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올초에 제때 발견해 치료에 들어가지 않으면 사망률이 제법 높은 폐색전증에 걸렸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 이야기를 읽으니 내가 남은 이들에게 저런 고통을 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약간 아찔했다. 사랑을 잃어 본 경험이 있다. 상대방이 죽은 건 아니었지만 영영 이별은 그 사람이 죽어 다시 못 돌아오는 거나 다름없다. 부재의 시간은 큰 고통이 내내 반복되었다. 다행히도 내가 없는 게 상대방도 힘이 들었는지 여름에 죽은 사랑은 여름이 다 가기 전 살아서 돌아왔고, 이런저런 굴곡은 있었지만 사랑도 나도 다 잘 지낸다. 생살을 잘라내는 고통이야 이제 왠만해서는 오지 않겠지만, 모든 관계는 이별의 순간이 온다. 토마시와 테레자처럼 한날 한시 한 사고로 죽지 않는 이상 이르고 더딘 차이가 있을 뿐 혼자 남는 때를 누구나 겪는다. 그래도, 없는 것에 힘들겠지만 내게 누군가 있었다는 것이 계속 살아갈 힘이 될 것이다. 혼자 남을 누군가에게 내가 그 힘이 되도록, 또 내가 언젠가 힘을 낼 수 있도록 계속 사랑하는 것 말고 지금 할 일이 또 뭐가 있겠어.
+밑줄긋기
-사랑은 선택사항이 아니며, 없어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생물학적 필수 요건이다. (17)
-우리는 통계의 의미와 긍정적 자극에 대한 반응에 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대화 내내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나는 속으로 이런 게 신경과학자들이 서로를 유혹하는 방식일까 하고 생각했다. (106)
-그는 나를 너무도 잘 이해했다. 둘 다 “저도요!”와 “동감이에요“를 너무 자주 연발해서 오히려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이렇게 조화로운 대화를 나누는 사람을 나란히 앉히고 뇌파 검사 장치EEG에 연결해 보면 두 사람의 뇌파가 일치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신경과학자들이 뇌 간 교란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113)
-“사랑은 우연히 찾아오지 않았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겠다고 선택한 것이었다.”(228, 케이트런의 에세이 인용)
-“슬픔에 잠긴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겁니다. 시간이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과 인지, 타인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중요합니다.” (249, 존 카치오포)
-(파인만의) 편지는 잊을 수 없는 아름답고도 놀라운 두 문장으로 끝이 난다. “내 아내를 사랑한다. 내 아내는 죽었다.” 그리고는 서명을 한 뒤 다음과 같은 추신을 달았다. “이 편지를 부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 줘. 난 당신의 새로운 주소를 모르잖아.” (266)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일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나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다 해도 말이다.
존을 내 삶에 계속 존재하게 하려면 존을 기억할 때의 고통을, 유령을 끌어안으려 할 때의 고통을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269)
+적절한 짤 발견. 웨딩피치 악마였네…닥, 닥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