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여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4
이서수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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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31 이서수.

가슴이 너무 없고 말라 자신 없어 하는 내 또래 화자를 보면서 오, 나냐, 했었다. 나는 그래도 내 몸이 마른 건 좋아했다. 생애 최고로 살이 찌는 걸 보고 이 산 저 산 돌아당기다가 발목 인대를 뿌서 먹은 걸 보면. 그 발목 나아지자 마자 실내 자전거 빙빙 돌리다가 허리 고장낸 거 보면. 그래도 물리치료랑 자세 교정이랑 폼롤러에 드러 눕기 열심히 해서 허리 많이 나았다. 히히. 작은 가슴은 아직도 아쉽지만 두 아이 일년 반씩 젖 먹이면서 크기와 상관없이 할 기능은 다 했다, 하고 심미성은 부족해도 실용성은 갖췄으니 만족하기로 했다. (실용주의자)
임신도 출산도 처음에는 계획대로가 아니었대도 나는 그것을 유지하고 실행하기로 마음 먹었고, 그 과정이 힘들긴 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임신한 동안 늘 혼자가 아니었고 내곁에 누군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해 내가 만든 식구들이 나를 둘러싸게 되서 외로움이 많이 줄어들었다.

나는 그냥 그런 선택을 한 것이고, 또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기로 선택한다. 소설 속 화자처럼 내 몸을 섹스를 하는데, 아이를 낳는데 사용하고 싶지 않다고 마음 먹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는 그런 사람을 불쌍하게 보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에이섹슈얼이나 그레이섹슈얼 같은 말들이 알려져서 누군가의 욕망의 상태를 설명할 수 있게 된 게 다행인 것도 같다.

소설 읽다가 화자가 처음 사랑했던 남자에게 강간을 당하는 장면이랑, 거칠지 않고 화자의 말을 듣고 곰곰 생각해보는 남자랑 혼인했지만 성적 욕구나 횟수, 출산에 대한 의견이 달라 결국 이혼하고 마는 장면을 보고서 조금 울쩍했다. 뭔가 공감하고 오버랩 되는 장면이 있어서 라기보다, 욕망의 불균형에 관해 생각했다. 자신의 강한 욕망을 실현하겠다고 상대를 비집고 윽박지르는 인간은 못되먹었고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것도 알겠다.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과 상대가 바라는 만큼의 간극이 너무 큰 것도 불행이니까, 그런 것에 대한 합의나 이해 없이 연애나 혼인 관계를 맺는 상황 자체가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혼인신고서에 추가될 칸이 있다고 생각해… 배우자 각각 어느 정도의 빈도로 상대방과 성행위를 원하는지...주 몇 월 몇 연 몇 이런식으로… 적어낸 숫자의 간극이 크면 관청에서 등기를 보류하고 다시 합의하고 오세요...하는 식으로… 사람 욕망과 바람이 살다보면 변하고 건강 상태 따라서도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초기에 어느 정도를 바라나 딱 까고 확인해봐야 헥 그렇게 많이/적게 하자고? 난 반댈세, 이러고 신중해질 수 있지 않겠냐고… 사귈 때도 애초에 성애에 많이 관심 없으면 저는 로맨틱한 관계만 원하고 신체적 행위는 여러모로 사절인데요, 하고 딱 밝혀줘야 서로 맞는 사람한테 찾아가시라고 보내줄 수 있지 않겠냐고…

말은 쉽지만 슬프게도 (요즘 사람들은 어쩐지 모르겠지만) 내 또래나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뭘 원하고 뭘 원하지 않는지 잘 모르는 채로 자라나 남들 하는대로 연애를 시작하고 혼인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자라면서 생각했던 거보다 신체적으로 사랑 받고 사랑 주는 일을 많이 원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데 놀랐던 부분…

이 소설도 그런 이야기였다. 몸의 서사를 솔직하게 늘어놓고, 나 내 몸 그런데다 쓰기 싫거든? 하면서 침범받은 몸의 경험들을 그려 놓았다. 그런데 와… 나 이서수 단편들은 엄청 좋아했는데 장편보니까 진짜 확 깨는 느낌이었다. 단편에서 반복되던 언니들 나오고 여자 셋 친하면서도 서로 이해 못하는 부분 나오는 거랑, 엄마와 딸 반복인 건 공통점인데, 소설 중간에 잠시 엄마 목소리 나오는 챕터 툭 꼈다가 사라지는 것도 구성 엄청 어색하고, 엄마 미복씨 목소리랑 딸 목소리랑 습니다, 해요체로 담담하게 서술하는데 둘이 전혀 분간도 안 되게 써 놓았다. 화자가 설파하는 방식도 너무 촌스럽고 직설적이어서 뜻이 아무리 좋대도 되게 프로파간다 같이 읽히고, 그래서 공감하거나 설득되기 보다 그냥 와...어쩌라고… 왜 이렇게 못 썼어...하고 꾸역꾸역 읽게 되었다. 언니 장편 못 쓰네… 단편은 너무 좋았는데… 흑흑.

몸과 욕망의 서사는 너무나 다양하고 그 중 하나다...하고 공감하며 좋게 읽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거기 들지 못했다. 공감의 문제라기보다 그냥 무슨 말 하고 싶은지 정리가 안 된 것 같고, 내가 좋아하던 재치나 웃픈 분위기 걷어내니까 이걸 왜 읽고 있나 모르겠고...그래도 혹시 모르니, 하고 끝까지 봤지만 몸과 욕망의 담론을 깊게 끌어가기엔 여러모로 서사든 표현이든 구성이든 많이 실망스러운 소설이었다. 그래서 그럼 니가 제대로 써 보든가 흥, 하면 난 더 못 쓰겠고요 데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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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나를 무참히 짓밟고 결국 죽일 것이다.
저는 그런 마음으로 집을 나왔습니다.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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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0-31 2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솔직한 리뷰, 잘 읽었어요. 내돈내산책의 리뷰가 그래서 좋아요.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10-31 23:04   좋아요 0 | URL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호시우행님. 제가 이 작가님 단편에 꽂혀서 이 소설책 너무 싸게 파시는 개인셀러 분께 신나서 샀는데요. 그 분도 다 읽어보시고 가격 매기셨구나...내가 중고책이나 빌린 책에는 후한데 이번엔 안 되겠어... 장편 말고 단편들은 다 제 취향이었는데 그래서 더 충격이 컸습니다. 몸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책은 읽는 이가 무릎 탁 치든가 입틀막 하게 잘 써줬으면 하는 기대치가 있습니다...

hnine 2023-11-01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서수 작가에 대해 더 알고싶어 ‘문장의 소리‘ 에서 이서수 작가 초대편을 찾아듣고 있는데 이 소설이 나오기 전에 녹음된 것이네요. 흥미있는 작가 같아요.

반유행열반인 2023-11-01 11:39   좋아요 0 | URL
단편집 두 권은 저한테는 확실히 흥미롭고 재미있었고 이 장편(?) 사실 장편이라기엔 한 권이지만 많이 짧아 중편에 가까운데 단편보다 호흡 긴 이 책은 정말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원래는 당신의 4분 33초라는 장편이 먼저 궁금했는데 이번에 한김 가라앉아서 조금 많이 미뤄뒀다 보려고 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