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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미래의 책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6
양안다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6월
평점 :
-20231030 양안다.
시를 너무 빨리 읽으면 안 되겠다고 다짐한지 삼일도 안 된 새끼가 이 시집은 금세 다 읽어 버렸다. 책은 가벼웠고, 처음 읽은 양안다 시집보다 실린 가짓수도 적고, 여전히 어렵지만 그래도 한 권 봤다고 익숙해서 그랬다고 하기에는 역시나 너무 빨리 읽었잖아. 삐뚤빼뚤한 글씨로 시를 일부 옮겨적어 놓고 옛다 독후감이다 한 글에 검색어 유입이 너무 많았다. 시집 읽고 독후감 쓰는 사람은 적어서 쏠림 현상 같은 게 있나 보다. 나는 유입된 검색어를 반대로 다시 검색해서 채널예스에서 양안다를 인터뷰한 글을 훑어 보았다. 좋아하는 작가를 자기 자신으로 꼽아서 웃겼고 거기에서 ‘작은 미래의 책’이 첫 시집인 것도 알았다. 첫 책이 나와서 너무 좋았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 책은 여기서 끝난다.
(‘작은 미래의 책’ 중)
-이 영화는 여기서 끝난다.
(에세이 ‘극장에서 엔딩 크레딧’ 중)
시집을 받고 뒷부분부터 훑어보다 자꾸 끝난다, 는 두 문장에 눈이 멈췄다. 4년 전 여름에 식탁을 버리는 여자가 나오는 소설을 썼었고, 그 마지막 부분이 이것과 아주 비슷했다.
-새 식탁이 얼마나 매끈하고 단단한지, 단단하지만 부딪혀도 전보다는 덜 아픈지, 과연 예전부터 그려왔던 모습 그대로인지, 그래서 볼 때마다 미소지어지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조만간 알 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알 수 없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나기 때문이다.
(‘식탁’ 중)
내가 쓴 소설에 인용 표시 붙이니 개웃기다ㅋㅋㅋㅋ저렇게 끝나면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나? 이 소설을 읽은 두 친구 중 한 명은 저 마무리를 좋게 여기지 않았고, 한 명은 저런 마무리라서 좋다고 했었다. 시집에서 마주친 끝난다 연타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이 소설을 다시 읽는데 이걸 내가 썼다고? 너무 낯설었다. 식탁을 너무 버리고 싶었던 마음이 식탁을 버린 뒤에도 남아서 썼던 소설인 건 알겠고 나머지는 남이 쓴 거 처럼 생소했다. 키보드에 손을 얹고 숨 몇 번만 쉬면 이야기가 술술 나오던 때가 짧지만 있었다. 사나흘이면 만오천자 만육천자 뚝딱 단편 한 편 분량 나올 때가 있었다. 설익은 글들이지만 쓸 땐 정말 재미있었는데 말야. 고쳐보려고 몇 년만에 문서를 열면 엄두가 나질 않는다. 내가 쓴 것 같지 않게 너무 멀어졌는데 이걸 어떻게 고치냔 말이야. 다시 뭔가를 써 보자고 새 문서를 열면 이제는 기력을 잃은 손가락과 뇌가 삐걱삐걱, 문장이 다 마음에 들지 않고 중언부언하는 느낌이다. 금세 쓸 마음이 사그라지고 온몸이 쑤신다. 못 하겠어. 이야기는 대강 정해져 있지만 끝맺지 못하게 된 나는 이렇게 소설쓰기를 잃은 기분이다.
시집 이름을 보며 관형어가 이중으로 해석되는 상황을 헤아려 보았다. ‘작은’은 책을 꾸밀 수도, 미래를 꾸밀 수도,시인은 그 두 가지를 다 노렸을 것이다. 얇고 가볍고 시가 많지 않아 금세 봤으니 작은 책인 게 맞을 수도. 책이 쓰이고 아주 오랜 뒤는 아니지만 약간 지나서 내가 봤으니 그게 작은 미래일수도. 시 속에서 고아랑 개랑 죽은 걸 귀신이 내려다 보는 이미지를 상상해 그렸으면 그게 쭈그러든 나쁜 미래일수도. 시의 말들은 온통 열려 있고 쫓아가서 대체 이게 무슨 말이요 시인 양반, 내가 모자라니! 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주어진 말맛이나 슬쩍 보고 생각을 굴려가며 짐작만 할 뿐이다.
마지막에 시인의 짧은 산문을 볼 수 있어서 그건 조금 참신한 책묶음 방식 같았다. (평론 안 싣는 거 좋음…나는 소설 뒤 평론도 싫지만 시 뒤의 평론이 더 싫다 내 읽기에 삑 오답입니다 하고 태클거는 나보다 더 멍청한 선생을 보는 기분) 시인은 뭔가 산문도 느릿느릿한 것 같다. 읽다 보면 산문도 시 써 놓은 거 같은데 사실 크게 재미는 없다. 문득 영화보다 자원 투입도 적고 지구한테도 덜 미안한 건 시 아닌가?! 영화는 프레임이 이어지지 않으면 미완이지만 시는 프레임으로도 완결성을 갖춘 예술의 궁극 아니냐 움하하하 너 이런 생각한 적 없어? 하면 으쓱 하고 노코멘트 하는 시인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나새끼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영화찍고 잘 한다… 뭔가를 계속해 나간다는 건 대단한 일이고, 지금 잘 쓰는 사람들 옛날 작품 봤을 때 지금이랑 크게 다르지 않은데(그건 일관성, 개성이라 할 수도) 그러면서도 더 나아진 기분이 들면 이게 꾸준함과 끈질김의 힘… 존버란 그렇게 속된게 아니라 나아짐의 전제조건이겠다 하는 생각도 했다. 생각 그만하고 뭐라도 해라… 이 독후감은 여기서 끝난다.
+밑줄 긋기
-우리는 우리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남들도 그러고 있으니까. 특별함에 가까울수록 평범함에 가까워지지 않습니까
(’레몬 향을 쫓는 자들의 밀회‘ 중. 이거 애기 때 이상 시 프린트해서 읽던 애들은 끄덕끄덕 하겠지.)
-지금 나와 같은 순간에 어떤 이도 이 책을 읽고 있을 거라는 믿음
(‘작은 미래의 책’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