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다시 일어나 테레자 쪽으로 왔다. 그는 그녀에게 그 조그만 것을 손에 쥐여 주었다. 그것은 공포에 사로잡혀 몸을 떨었다. 토끼였다. 그는 토끼를 테레자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공포와 슬픔은 사라졌고 그녀에게 속했던 이 작은 동물, 그녀가 품에 껴안을 수 있는 이 작은 동물을 손 안에 든 그녀는 행복했다. 너무 행복해서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울었고 울음을 멈추지 않았으며 눈물 너머로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그녀는 마침내 목표를 달성해 그녀가 가고자 했던 곳, 더 이상 도망칠 이유라곤 없는 그런 곳에 있다고 생각하며 토끼를 집으로 데려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중에서
지구도, 인류도, 민족공동체도, 구할 자신도 의지도 없었다. 그저 나 한 몸과 내 가까운 사람 정도는 더 나아지게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대부분의 일들은 마음 먹은대로 이루어졌다. 가끔 아프고 가끔 불행했지만 고통의 시간이 너무 길지는 않았다. 회복은 늘 찾아왔고 때때로 행복했다.
약 4-5년의 시간. 분기점은 어딜까? 마지막 아이를 낳은 때? 30대의 절반을 넘어 후반부에 접어 들면서? 펜데믹이 도래해서? 연간 읽은 책 100권을 돌파한 때부터?(ㅋㅋ) 모르겠다. 그간 내가 익힌 대부분은 체념, 무기력. 내가 바라는 대로 무한정 이룰 수는 없다는 뒤늦고 새삼스러운 깨우침이었다. 딱히 망한 것도 없지만, 딱히 바란 걸 이루지 못했다.
이전까지 바라던게 폭력에서 벗어나고 싶다, 내 밥벌이는 하고 싶다, 혼자이고 싶지 않다, 사랑받고 싶다, 그런 가장 기초적인 욕망이었어서 필사적이었고 또 그런 건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나는 욕심을 부렸다. 더 편해지고, 더 오래 지속되는, 더 부대끼지 않는 삶을 바랐던 것 같다. 사실 이제는 무얼 바랐는지 바라는 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토마시에서 토끼가 되어, 점점 작고 약해지다 안길 품 하나만 남은 채. 테레사마저 먼저 사라지면 어쩌나 조바심만 남긴 채.
셀프 구원을 외치던 인간은 자기 자신 하나도 구하기 버거운 순간이 왔을 때, 나 좀 구해달라고 내맡길 바깥이 하나 없어 끝을 모르고 가라앉는다. 뭘 구해, 애쓰지 마. 그냥 냅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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