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친구
앙꼬 지음 / 창비 / 201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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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0 앙꼬.

중학교에 들어가서 제일 충격이었던 건, 남녀공학인데도 여자반 남자반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그리고 날라리들의 존재였다. 아직 일진이라는 말은 없었다. 왁스나 스프레이나 헤어젤을 발라 굳힌 머리를 이마에 챡, 붙이거나 볼륨감 있게 최대한 띄우고 실핀을 아주 많이 꽂았다. 치마는 허벅지의 중간 이상 올라오도록 줄였다. 학교에서는 비침이 없는 검정색 학생용 스타킹만 허용했지만 살색이나 커피색 스타킹을 신었다. 눈썹칼로 눈썹을 밀고 새로 그리거나 그리지 않았다. 소지품 검사마다 사복이나 담배를 숨기려고 난리였다.
나는 맨 앞 자리 앉아 책이나 읽고 공부나 하는 반 일등 내지 전교 일등이었기 때문에(ㅋㅋㅋ) 날라리들과 얽힐 일은 많이 없었다. 다만 한 번은 개념 없이 구는 반의 한 아이에게 한 소리 했더니 싸움이 났는데, 걔가 다른 반의 덩치 큰 날라리를 데려왔다. 과장 안 하고 몸집이 내 두 세 배였다. 무개념이가 덩치에게 뭐라고 속닥속닥했더니 덩치가 가까이 다가와 몸통 박치기를 했고, 나는 화장실 바닥에 나가 떨어졌다. 흑흑흑. 다음 해에 덩치와 같은 반이 되었지만 자기가 나를 날려 버린 건 기억을 못하는 모양이었다.

이름이 갑순이인 남자 선생님이 계셨다. 가위를 들고 다니면서 애들 머리를 일부분 자르고 여기 맞춰 잘라와, 하는 통에 별명이 공포의 가위손이었다. 애들은 갑순이 떴다!!하며 소리지르고 도망다녔고, 어느날은 그 선생님이 “갑순이가 니 친구냐?” 하고 픽 웃는 걸 봤다. 몸집 조그만 날라리 하나가 있었는데, 가출을 했었다는 것도 같고, 갑순이가 잡으려고 쫓아가자 복도 끝까지 뛰다가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고 했다. 성장판이 다쳐서 이제 더 자랄 수 없다고도 했다. 조그만 날라리가 한 동안 절룩거리며 다니는 걸 본 것 같은데, 기억해 보니 초등학교 일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였다. 지금도 이름이 기억이 난다. 그 친구가 700에 몇번몇번에 전화하면 자연의 소리, 라는 곳에서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알려줘서 정말 새소리를 듣고 전화요금이 많이 나와서 엄마아빠에게 디지게 혼났었다. 여덟 살 때는 재잘재잘 나한테 말도 많았던 아이인데, 열 네 살이 되어서는 지나가다 나랑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매서운 눈길로 시비 붙는 애가 있으면 욕을 퍼붓기도 했다.

궁금하긴 하다. 쟤네 아빠도 술을 많이 먹었을까. 집 상황이 많이 안 좋은 날라리도 있었을 것이고, 그냥 잘 사는 집 아이들인데 우루루 몰려다니고 오빠들 만나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다같이 노는 게 좋아서, 아니면 그냥 예쁘게 꾸미고 싶어서 그런 애들도 있었을 것이다. 부모에게 맞은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은 많았다. 나는 내가 맞지는 않았지. (스무 살 넘어서만 술주정 말리다 두어번 맞음)

앙꼬 만화 보면서, 집에 좀 안 들어왔다고, 담배피웠다고, 찢어지게 맞는 진주가 안타까웠다. 그렇게 맞으면서도 그게 내가 재미있는 대가, 라고 여기는게 더 슬펐다. 정말, 두드려패고 정신차리라고 혼내는 어른들이 있어서 내내 험한 길로 가지 않은 걸까? 그나마 내가 돌아갈 곳이 있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어서 영영 떠나지 않는 건 맞는 것 같다. 진주는 온통 날라리들의 아지트가 되었던 정애의 집을 떠올린다. 성매매 집결지에 있다는 정애 동생 소식을 전해 듣는다. 버스에서 마주친 아기 업은 정애를 외면한다.

책이 안 읽히면 만화책이지…하고 펼쳤다 금세 읽긴 했는데 무겁고 여운이 많이 남는 만화였다. 바른 삶이 대체 무얼까 생각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고 부모나 학교나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걸 안 하고 규칙을 위반하면 맞고 그래서 정신차리고 남들 같이 살면 그게 잘 사는 것일까. 인생은 언제 어떻게 꼬여버리는 것일까. 착하게 말 잘 듣고 담배 안 피우고 술 안 퍼마시고 살면 가난해질 확률이 줄어들긴 하는 것일까.(건강을 해칠 확률은 좀 줄겠지…그런데 나 술담배 안 했는데 병자인 걸? ㅋㅋㅋㅋ) 그냥, 처음부터 꿈도 희망도 없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를 아이들은 어쩌지.

만화가가 된 아이들은 상처입은 어린 시절을 그린다. 작가가 된 아이들은 글을 쓰고, 목청 좋고 감정 잘 잡는 아이들은 노래할 것이다. 선생이 된 아이들은 나도 어려서 놀아봤는데 정신 차려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했겠지. 나 말고 같이 근무하던 동료 선생 ㅋㅋㅋ 어렸을 때 자칭 양아치였댔는데 알고보니 곁의 사람과 초딩 때 동창이었다…이름이 특이하고 둘이 나이 같고 개포동 특정하고 나니 같이 농구하던 친구ㅋㅋㅋ 자기 과거를 아는 사람이 있는 걸 굉장히 부끄러워하며 개명해버리겠다고 농담을 했다. 선생이 어느 날엔가 길에서 술 먹다가 경찰에 잡혔는데 아버지가 오셔서 훈방되었다. 그날 아버지가 혼내지 않고 조용히 워드프로세서 책을 내밀며 한 달 안에 따라고 하셨단다. 그게 그 친구 인생을 바꿔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이런저런 꿈을 키운 모양이었다.

때리지 않고, 혼내지 않는 부모가 과거에도 존재하긴 했구나…나는 세상 모든 아버지가 술꾼에다가 엄마를 패는 줄 알았다. 그래서 아버지를 좋아하고 가족끼리 친한 집들을 보면 그게 그렇게 신기했다. 나는 내 동생하고 안 만난지도 한 이삼년 된 것 같다…아빠랑은 십팔 년… 그런 거에 비하면 내 새끼들 세대는 좀 나아졌구만… 엄마가 좀 못된 거 빼고는(ㅋㅋㅋ) 평온하게 만들기를 하고 피아노를 치고 게임을 한다. 세상에 나쁜 엄마가 많은데 나는 거기서 최하위라고 제법 위로까지 한다. 그러니 나중에라도 저 고지식함이 휙 틀어져 사춘기 지랄을 부리고 술 좀 마시고 나돌아다녀도 나쁜 친구 만나고 다닌다고 때리고 혼내고 그러지 말아야 겠다. 왜 벌써 그런 다짐하고 다니냐…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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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5-21 16: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전교1등 출신 열반인님이시군요~!! 열반인님도 좀 노셨을(?)거 같은데...
요즘은 확실히 아동 학대 이런게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거 같아요~! 세상에 나쁜 친구는 없는거 같습니다. 내가 나쁜거지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5-21 17:47   좋아요 2 | URL
이 만화 보구서 뉴스에서 청소년 자녀 두들겨 패던 가족들 잡혀가는 거 보고 그래도 이제는 처벌이 강화되서 부모 가족이라고 맘놓고 패지는 못하겠지…지들 잡혀갈 걱정에 좀 수위 조정은 하겠지…그러면 나아진 걸까 싶습니다. 저는 친구가 많이 없어서 혼자 논 편이고 ㅋㅋㅋ그러다보니 막 브레이크 못 밟고 그러진 않았네요 ㅎㅎ

얄라알라 2023-05-21 22:34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 저는 꾸준히 열반인님의 페이퍼에서 공부의 신神이라는 단서를 찾아 왔기 때문에 ‘전교‘ 수식어가 붙어도 놀라지 않아요^^
700-**** 새소리 ㅋㅋㅋ이건 정말 너무나 귀여운 에피소드네요.
그런데 왜 자연의 소리가 나왔을까요?^^
슬픈 내용의 페이퍼인데 재밌게 읽고 웃다 갑니다. 이것이 글의 매력

새파랑 2023-05-22 07:28   좋아요 2 | URL
글의 매력! 맞습니다 ㅋ 제가 좀 둔해서 눈치가 없습니다 ㅎㅎ 열반인님 공부의 신이셨군요~!!

반유행열반인 2023-05-22 09:26   좋아요 2 | URL
얄님 ㅋㅋ새소리 말고 물소리 바람소리 다 있던 것도 같네요 ㅋㅋㅋ날씨 알려주는 공짜 번호도 알려줬던 듯…
새파랑님 ㅋㅋ아주 어릴 때는 신급이었던 것 같은데 굳이 늙어 공부를 시작해서 지상계로 쫓겨난 걸 확인했어요. 게다가 늙어서 공부하면…죽을 수도 있습니다. 수학의 유해성…ㅋㅋㅋ

2023-05-21 1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21 1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Yeagene 2023-05-22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두운 만화군요.그림도 밝아보이진 않네요;;;;

반유행열반인 2023-05-22 19:26   좋아요 1 | URL
그런데 또 담담해서 마치 제가 쓴 글 같은 느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