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읽지 못한 말더듬던 소설가 책에 우연히 눈이 닿아 꽂힌 책등을 훑다가, 갑자기 꽃집하는 시인을 궁금해하다가, 검색하다가 황인찬의 시 중 ’백 살이 되면‘이 있는 걸 알게 되고, 그런데 그 시가 곧 그림책으로 나온다는 걸 또 알았다. 신기한 방식으로 아직 나오지 않은 책을 알아내는 나야. 너는 왜 너를 모르는 너도 모르는 것들에 쓸데없는 관심이 많니. 백 살이 되면 오롯이 나한테만 관심이 머물까, 아님 모든 것에서 관심을 거둘까. 나는 둘다 아닐 것 같다. 여전히 내 밖의 모든 것을 뒤지고 헤집고 궁금해하지 않을까.
백 살이 되면 좋겠다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아도 된다면
좋겠다
엄마가 불러도
깨지 않고
아빠가 흔들어도 깨지 않고
모두 그렇게 떠나고 나면
창밖에 내리는
빗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 좋겠다
물방울이 풀잎에 구르는 소리
젖은 참새가 몸을 터는 소리
이불 속에서 듣다가
나무가 된다면 좋겠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 나무 밑에서 조용히 쉬고 계시면 좋겠다
빛을 안고
뿌리를 뻗으며
오래 평화롭게 잠들 수 있다면 좋겠다
그 잠에서 깨어나면
여전히 한낮이었으면 좋겠다
온 가족이 모여 내 침대를 둘러싸고 있으면 좋겠다
부드러운 오후의 빛 속에서
잘 쉬었어?
오늘 기분이 어때?
내게 물어보면 좋겠다
그럼 나는 웃으면서
백 년 동안 쉬어서 아주 기분이 좋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정말 좋겠다
(황인찬, ‘백 살이 되면’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