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읽지 못한 말더듬던 소설가 책에 우연히 눈이 닿아 꽂힌 책등을 훑다가, 갑자기 꽃집하는 시인을 궁금해하다가, 검색하다가 황인찬의 시 중 ’백 살이 되면‘이 있는 걸 알게 되고, 그런데 그 시가 곧 그림책으로 나온다는 걸 또 알았다. 신기한 방식으로 아직 나오지 않은 책을 알아내는 나야. 너는 왜 너를 모르는 너도 모르는 것들에 쓸데없는 관심이 많니. 백 살이 되면 오롯이 나한테만 관심이 머물까, 아님 모든 것에서 관심을 거둘까. 나는 둘다 아닐 것 같다. 여전히 내 밖의 모든 것을 뒤지고 헤집고 궁금해하지 않을까. 




 살이 되면 좋겠다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아도 된다면

좋겠다


엄마가 불러도

깨지 않고


아빠가 흔들어도 깨지 않고

모두 그렇게 떠나고 나면


창밖에 내리는

빗소리에 가만히  기울이면 좋겠다


물방울이 풀잎에 구르는 소리

젖은 참새가 몸을 터는 소리


이불 속에서 듣다가

나무가 된다면 좋겠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무 밑에서 조용히 쉬고 계시면 좋겠다


빛을 안고

뿌리를 뻗으며


오래 평화롭게 잠들  있다면 좋겠다


 잠에서 깨어나면

여전히 한낮이었으면 좋겠다


 가족이 모여  침대를 둘러싸고 있으면 좋겠다

부드러운 오후의  속에서


 쉬었어?

오늘 기분이 어때?


내게 물어보면 좋겠다

그럼 나는 웃으면서


  동안 쉬어서 아주 기분이 좋다고


그렇게 말할  있다면 좋겠다

정말 좋겠다


(황인찬, ‘백 살이 되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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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3-04-02 2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평화롭고도 쓸쓸한 기분이 드는 글이네요... 시에 그림을 덧붙인다면 그림작가 나름의 해석도 들어가 더 풍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4-03 01:11   좋아요 1 | URL
친구랑 제가 황인찬 시인 좋아해서 (좀 예의없지만) 인찬이, 잘 쓰지? 인찬이, 언젠가 교과서 실릴까? 했는데 이 시부터 초등교과서에 실릴 느낌이네요 ㅎㅎㅎ 시도 그림도 편안하면서도 너무 뻔하지 않아서 좋아요.

Yeagene 2023-04-03 05: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가 좋네요..황인찬 시인 기억해두겠습니다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4-03 21:12   좋아요 0 | URL
제가 시를 잘 모르지만 시를 잘 모르는 제가 봐도 황인찬 시는 잘 썼고 좋더라구요.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 좋았어요.ㅎㅎㅎ 이 그림책도 수채화 그림 느낌이 좋아서 나중에 사려고요 ㅎㅎㅎㅎ

라로 2023-04-22 0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좋다! 저도 이 시집 갖고 싶어요..

반유행열반인 2023-04-22 09:41   좋아요 0 | URL
시 한 편으로 어린이 그림책 한 권 만드는 거는 전에 백석 마을은 맨천구신이 되어 한 권 사 봤는데 제가 좋아하고 요줌 젊은 시인 중 제일 잘 쓰는 황인찬 시인 시로도 이렇게 나왔더라구요 ㅎㅎㅎ 엊저녁에 작은 어린이 자기 전에 읽어주니 좋아했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