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오, 사랑 - 제1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126
조우리 지음 / 사계절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11119 조우리.

루시드 폴-오, 사랑
https://youtu.be/DKDVhCWsgP4

사랑이 아니라 한다. 또는 나쁜 사랑이라고, 빨리 헤어지라 한다. 사랑은 보편의 일인데 그 사랑의 틀마저 정해진 것처럼 말하고, 독점적 이성애자라는 꼬리표는 붙일 필요를 못 느끼지만 그 밖의 모양에는 온갖 멸칭을 긁거나 지져서 새기고 그런 인간들, 로 몰아세운다. 뭉뚱그려 부르자면 간단한 한 글자, 죄, 두 글자 죄악,을 붙이면 쉽다.
이렇게 맨날 안고 있으면 미친 듯이 좋은데. 맨날 왜 그래.

십대의 힘든 사랑을 다룬 점에서 이전에 읽은 1차원이 되고 싶어, 와 결이 비슷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순간, 과정, 그런데 마냥 힘든 마음 같은 걸 잘 그려내는 게 신기하다. 그렇지만 이 책이 조금 먼저 나왔고, 청소년 소설로 나와 그런지 성애 장면도 없어서 허들이 더 낮을 것 같다.
열여덟 사랑이와 열아홉 솔이는 오픈채팅방 오프모임에서 우연히 만나고, 사랑하게 된다. 같은 학교 다니며 사귀는 여자 아이 남자 아이는 아이들 앞에서 애정을 과시하며 온갖 부러움과 질투를 사곤 하는데, 이 아이들은 같이 있는 모습 만으로도 SNS에 신기한 것마냥 공유되고, 모르는 사람들조차 온갖 악플을 달고, 주변 친구들마저 더럽고 병적인 것 취급을 하여 고립된다.
그와중에 사랑이는 엄마의 숨겨진 과거, 자신의 출생의 비밀 같은 걸 알고 고민하다 아이들의 학교 폭력을 피해 솔이와 멀리 도망친다. 소설은 좋다. 학교도 가족도 출입국 제약도 전염병도 일단은 없는 그 세상 속에서 아이들은 잠시나마 달아날 수 있다. 단둘이.

소설 속 인물들은 주인공들과 사랑이 엄마 아빠 말고는 대개 납작한 느낌이라 아쉬웠다. 나쁜 사람은 많이 나오지 않는데, 사랑이를 괴롭히고 소문을 퍼뜨리는 암흑의 핵심 같은 세영이, 익명의 인터넷 유저들, 사기치고 얼굴조차 안 나오는 민박집 주인 정도이다. 나머지 두 아이가 만나는 어른들은 대개 친절하고 아이들에게 호의적이었다. 그게 아이들에게 세상이 그리 어두운 것만은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어 좋을 수도 있지만 잘 모르겠다. 나는 아이들이 타투샵 라방에 참여할 무렵에도 걱정했고, 외따로 이국 땅에 떨어졌을 때, 무작정 찾아간 주소지와 펍, 역무실, 부동산, 전부 걱정 투성이였다. 부모 몰래 처음 집을 나온 어린 여자 아이 둘은 눈에 띄고 귀신 같이 그들을 악용하려 꼬이는 인간들이 있잖아. 내가 오히려 클리셰에 빠져 있는 걸까.
사랑이가 만난 할머니의 가족들도 굉장히 작위적인 느낌이었다. 그저 핏줄 또는 연인과 얽혀 있다는 이유 만으로 그렇게나 끈끈한 애정을 과시하다니. 원래부터 엄청 친한 대가족 마냥 다양성 백과사전, 도감처럼 그려놓은 가족의 모습이 작가가 뭘 의도한지는 알겠지만 너무 올바름을 말하기 위한 도구처럼 그려진 것 같았다. 이건 다정한 원가족을 체험하지 못한 나의 좁은 시야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사랑이와 솔이를 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이야기니까, 동화 같대도 그런 이야기가 필요한 것도 같다.
사랑이가 온갖 막장 드라마 소재가 자신에게 밀려오는 걸 너무 쉽게 모든 걸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갸웃했다. 그 아이가 오래도록 사랑 받고 커왔고, 지금도 사랑해주는 가족들이 참 많다, 그러면 가능한 이야기일까. 트집을 잡는 건 허구 속 주인공조차 부럽기 때문입니다. ㅋㅋㅋㅋㅋ
솔이의 엄마 이야기는 에이드리언 리치를 떠올리게도 했다. 영국 어느 미술관의 붉고 검은 그림들을 바라보다 가족을 떠날 결심을 하고 다른 사랑에게로 간 마음은 어떤 걸지 나는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사랑이 누군가를 머물게 하거나 멀리 떠나게 하는 이야기가 가득해서 금세 읽었다. 어른이 십대 흉내내는 것 같은 주인공 묘사에 처음에는 약간 오그라드는 느낌도 들었는데, 뒤로 갈수록 밑줄 치고 싶은 문장과 표현이 많았다. 오픈채팅, 페이스북, 유튜버, 인스타그램,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끈들이 이어준 사랑 이야기도 언젠가는 내가 어릴 때 놀던 피씨통신 동호회, 엠에센, 네이트온, 싸이월드에 얽힌 흑역사처럼 구시대 유물 같은 게 될까 궁금하기도 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부만두 2021-11-20 09: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전막을 치면서 헤쳐가기엔 소재들이 너무 위험해 보이는데요? .. 사실 전 표지에서 탁, 멈춰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11-20 09:30   좋아요 1 | URL
저는 위험한 소재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ㅎㅎㅎ

새파랑 2021-11-20 09: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루시드폴 너무 좋네요~!
제목하고 표지를 보면 열반인님 취향(?)이 아닐거 같은데 내용은 좋은거 같아요~!

반유행열반인 2021-11-20 09:30   좋아요 2 | URL
제 취향이란 뭘까요 ㅎㅎㅎㅎ별 기대 없이 정보 없이 어쩌다보니 읽었는데 나쁘지 않았어요.

Yeagene 2021-11-20 10: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뭔가 요즘 시대의 사랑이야기같은 느낌이에요 ㅎㅎ 열반인님 맘에 안드시는 구석도 있는데 그래도 전체적으론 맘에 드시나 봐요ㅎㅎ(뭔 소리?;;;;)

반유행열반인 2021-11-20 11:08   좋아요 2 | URL
기대 안 하고 보니 금방 읽어지는 책이라 소소하게 재미있었어요. 제가 생각보다 누구 죽고 망하고 파국인 이야기 좋아하는데 이제 달달한 거도 가끔 읽으면 정화되는 기분이구나 싶어요 ㅋㅋ SNS는 요즘 사랑의 수단이지만 에이드리언 리치는 29년생 우리 할머니 또래인 거 보면 오오오오오오래 전부터 사랑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거보다 훨씬 무궁무진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