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약속의 땅 - 버락 오바마 대통령 회고록 1
버락 H. 오바마 지음, 노승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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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3 버락 오마바.

부끄러운 일이지만, 현재 일어나는 정치 사건에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생존 인물을 숭배하고 추앙하는 일에 경계를 많이 하고 인기가 높은 사람들이 왜 사랑받는가 곰곰 생각할 때도 있지만 공감하거나 동조하지 못한다. 잠시 호감 갖던 인물을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게 될 때 이후로 오랫동안 싫어하게 되는 일도 많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에 관해서도 서거 이후 유시민이 정리한 운명이다를 읽기 전까지는 잘 알지 못했다. 오바마가 집권하던 약 십 년 전의 미국과 세계에 대해서도 그저 뉴스 헤드라인으로 스쳐지나가듯 훑고 지나가서, 금융 위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도 올해에나 책 몇 권으로 만났다.
2년 전에 미셸 오바마의 비커밍을 먼저 보았는데, 별 기대하지 않았는데 글을 깔끔 명료하게 잘 써서 단순히 대통령이었던 사람의 배우자로 퉁치기에는 아깝고 아쉽고 앞으로도 자기 몫을 할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도 여전히 오바마에 대한 관심은 없었는데, 이 책을 노승영 번역가가 옮겼다는 걸 알고 조금 혹해서 결국 빌렸다. 사실 두 권 밖에 읽은 책이 없지만 역시나 깔끔 명료한 문장에 반해가지고 말레이 제도, 시간과 물에 대하여, 제임스 글릭의 타임트래블 세 권은 갖춰 모셔 놓고 있던 참이었는데 신간이 새치기를 했다. ㅋㅋㅋ 미셸의 군더더기 없는 문장에 비하면 오바마는 신중하다 못해 아 이 사람은 한 마디로 끝날 이야기를 정당화, 정치적 올바름 준수, 사회적 약자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 것까지 고려해서 몇 십 분이고 늘려 말할 사람이로구나…연설가나 저자라면 덕목이겠지만 친구나 가족이라면 가끔 빡쳐서 요점만 말해!할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래도 국민이라면 도덕적으로 미숙한 언어를 공식적으로 나불대는 걸, 감정과 혐오를 드러내는 걸, 필터 없이 툭 던지는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걸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걸, 그게 그런 화살이 된 줄도 모르는 권력자보다는 말과 글의 품위로 사람들에게 신뢰와 확신과 비전을 제시해줄 사람 한 번 가져보는 게 위안이 되지 싶었다. 물론 말과 글만 번드르르 하고 삶은 개차반인 사람이면 안 되겠지만…
다른 책이나 영화, 당시 뉴스 보도로 드문드문 만났던 사건들-금융 위기, 건강보험 문제, 성소수자 군인의 강제 전역 반대, 멕시코만 석유 유출, 아랍의 봄과 빈라덴 사살 등등-을 당시 큰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관여했던 미국 대통령의 입을 빌려 듣는 건 제법 흥미롭고 새로웠다. 문득 민주화의 열망으로 거리로 나왔던 이슬람 국가의 현재가 궁금해 최근 기사를 검색해보니, 독재자들이 물러난 뒤 더 나은 국가로 나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무력 지배 아래 경제적 곤궁에다 펜데믹까지, 나아지지 않은 민중의 삶이 슬펐다. 어쩌면 1987년 이후 잘못된 방향을 향해 망해버렸을 우리의 평행 우주를 보는 것도 같아서.
법안이 통과되거나 폐기되는 과정을 교과서 딱딱한 도표로만 간결하게 접하다가 정말 그것이 세상을 바꾸고 나아지게 하는 한 걸음이라고 믿는 사람이 성취로 환호하거나 예상치 못한 악재로 좌절했을 때를 생생하게 그려주니 선거나 입법이나 정책이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최근의 나는 정치에 대한 회의와 무력감, 대안 삼을 방향을 찾지 못해 제대로 냉담 지경에 이르렀는데 아직도 변화를 믿고 분투하는 사람들의 낙관과 열정이 부럽기도 했다. 왜 내가 믿고 한 표 던질만큼 나를 설득할 사람은 나타나지 않는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나요…아직 초등학교 다니고 있나요…
책의 대미는 빈라덴을 사살하여 911의 원한을 갚는 걸로 장식했다. 아직 재선은 나오지도 않았으니 한참 후에 회고록 2탄이 또 나오겠구나… 트럼프 비긴즈처럼 슬쩍슬쩍 정치판에서 트럼프가 난장치는 걸 언급하다 마는데 2탄에서는 진정 빌런으로 나올 것인가…미셸의 회고록에는 결말이 트럼프 당선이었다. 그 참담함과 경악은 다행인지 단임 임기로 마무리되었고 미국 국민들이 완전 정신줄 놓은 이들이 아니라는 반증은 되겠지만… 이런 걸 보면 누가 되어도 엉망이다, 라고 하는 건 또 무리가 있겠다 싶었다. 제발 내게도 덜 엉망진창이라는 희망이라도 생겼으면…
꼬박 한 달을 읽었는데 그래도 올해 읽은 벽돌책 붕괴 보다는 재미있었다. 다만 임기 전체를 900페이지에 못 담고 재선 선거운동은 이 책에서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게 충격…얼마나 더 할 말이 남은 것인가 오바마여… 그래도 같은 옮긴이 책이면 또 볼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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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1-11-13 19: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열반인님 이런 책도 보시는군요 ㅎㅎ 역시 열반인님은 독서의 폭이 넓습니다.주로 tv를 통해서만 보던 일들을 오바마의 시각에선 어떻게 볼런지 궁금하네요..

반유행열반인 2021-11-13 19:50   좋아요 4 | URL
인물에 원래부터 애정과 관심 있으셨으면 한 번 볼 법도 한데 책이 너무너무 길어서 오래도록 잡혀 있기에는 인내심이 많이 필요해서 막 권하기는 그렇네요 ㅋㅋㅋ미셸 오바마 책이 후다닥 읽기는 더 좋았어요. 인물 성격도 오바마 같은 사람 존경 받을 부분도 있다고 보지만 글이든 성격이든 마음에 조금 더 드는 쪽은 미셸이요 ㅋㅋㅋㅋ

얄라알라 2021-11-13 23: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커밍도 읽으셔서 부부의 글스타일이 대조적(?), 많이 다르다는 걸 예리하게 짚어내주시네요. 얼마나 더 할 말이 남은 것인가 오바마여˝ ㅋㅋㅋ회고록 2탄이 또 나올거라는 열반인님의 예견, 저는 1편도 못읽었고 열반인님의 정성 리뷰로 대신하겠습니다^^ ˝

반유행열반인 2021-11-14 09:55   좋아요 1 | URL
예견이라기보다 아예 회고록 1하고 나중에 보니 부제도 달려 있더라구요 ㅋㅋㅋ넵 좋은 읽을 거리 많은데 굳이 벽돌은 정말 끌리실 때 ㅋㅋㅋ

scott 2021-11-13 2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이님 오바마가 인터뷰에서 아내 미셸은 베스트 고스트 라이터 고용해서 완성 했다고 합니다
자신은 스스로 모든 걸 기록하겠다는 일념으로 거의 골방에 틀어 박혀 완성하고
2부가 곧 나온다능 ㅋㅋ

앞부분 대통 되기 이전 이야기가 넘 짧아서 아쉼!

재미는 미셀! ㅎㅎ

오바마는 매끼니 저녁은
연어와 브로콜리, 아보카도 롤
요렇게만 수도승 처럼 먹는 다고 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11-14 09:56   좋아요 1 | URL
이잉 오바마여 왜 나의 환상을 깨는가 ㅋㅋㅋ 대필 작가라니 그걸 또 일르고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