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4 정승규.
약에 관한 교양서는 3년 전에 한 권 봤다. ‘위대하고 위험한 약 이야기’. 벌써 3년이 지났다니. 최은미 소설가의 장편소설 ’아홉 번째 파도’는 약과 도시의 비밀을 소재로 해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주인공은 약학 전공한 공무원이고, 또다른 훈훈한 인물은 약국 차리는 게 꿈인 약국에서 알바하는 약대생 공익이다. 척주시라는 가상 도시의 노인들은 약에 의존하면서도 오남용이 심하고, 공무원인 주인공은 이들을 계도하러 다닌다. 작은 도시 안에서 약국은 노인들과 정치인들이 세력을 이루고 반목하는 거점이 된다. 도시의 랜드마크로 거대한 약사여래불이 자주 등장한다. 이것도 벌써 읽은지 3년이 되었는데 워낙 인상 깊은 소설이었어서 약에 관한 정보를 접하면 이 책부터 떠오른다.
항생제, 말라리아 치료제, 환각제, 소염진통제, 마취제, 근이완제, 프로바이오틱스, 스타틴(고지혈증약), 비타민, 혈압약, 비아그라, 항암제, 다양한 약 중에서도 열 두 가지를 뽑아 개발 및 개선의 역사를 다루었다. 약에 대한 책인데 의약품이 아닌 프로바이오틱스나 비타민 같은 건강기능식품을 두 꼭지 다룬 게 좀 책의 주제랑 안 맞는 느낌이긴 했지만 제약사와 약국의 주력 상품이면서 건강 유지에 필요한 것들이긴 하니까…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인류를 구한, 인데 독자의 흥미 유발을 위한 건지 환각제가 끼어든 건 역시나 제목에서 많이 벗어났다 싶었다. 의약품 관련 책이면 피임약을 한 꼭지로 다루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 이거야 말로 인류의 권익과 복지를 구한 약이 아닌가 싶은데 이 책에서는 빠졌다. 대신 비아그라가 들어갔다… 아저씨들의 행복은 구했겠구나… 하여간에 역사 속 의약품의 역할과 기여도, 약의 개발 과정을 정리해 놓은 걸 읽는 건 흥미롭긴 했다. 그렇지만 다 읽고 나니 크게 남는 건 없었다. 그리고 가끔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 등장해서 아쉬움이 남았다.
온갖 약의 도움을 받아봤고 나이가 들수록 더더욱 그럴 일이 많아질 것이다. 나말고도 누구나 그럴 테니 약에 관해 기본적인 정보를 알고 가는 건 약물 오남용을 예방하고 임의로 복용 중단해서 치료 효과를 망치는 걸 막는 데 필요한 것 같다. 그러니까 약에 관해 제대로 알려주는 재미있고 잘 쓴 책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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