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 - 정신과 전문의가 들려주는 트라우마의 모든 것
김준기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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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4 김준기.

예전에는 영화를 제법 많이 챙겨 보는 편이었다. 장르를 불문하고 이것저것 많이 보고 좋아하는 영화는 여러 번 반복해 보기도 했다. 뭐 그래서 영화에다 심리학을 합쳐 놓았다는 제목에 끌려 빌렸다. 다양한 영화 속 사례와 트라우마의 원인, 증상, 치유 과정 등을 풀어 놓은 책인데 아주 재미있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과거에 겪었던 많은 심리적 문제의 원인과 증상에 대해 돌아볼 수 있던 점은 좋았다.

아직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신입 시절에 임시로 참여한 어떤 프로젝트에서 마지막 날 뒷풀이로 술자리를 가졌다. 뭐 이상한 노래주점 같은데를 엉겁결에 따라 갔는데 어둑한 곳에서 함께 일하던 아저씨 하나가 술에 취해 나는 니가 좋다, 너는 남자들이 이렇게 푸는 걸 이해해야 한다, 개뻘소리를 하다가 급기야 남들이 안 보는 사이 갑자기 뒤편에서 껴안았다. 놀라서 울고 항의했지만 일을 무마하려는 다른 관리자들 때문에 별다른 책임을 묻지도 못하고 흐지부지 되었다. 몇 달 후에 단체 회식 자리에서 직장 동료들과 노래방을 갔는데 갑자기 노래를 부르라며 여러 명의 나이든 사람들이 호들갑 떨고 일으켜 세우는 순간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발작을 일으키듯 울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비슷한 환경에 놓이면 공황 같은 게 생기는 걸 그때 알고는 몇 년 동안 노래방을 못 갔다. 그때 그런 증상을 보인 게 성희롱을 겪는 상황에서 트라우마가 생겼던가 보다, 뒤늦게 돌아보게 되었다.

트라우마는 커다란 재난, 사고 상황에서 생존한 사람들이 겪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지난 봄에 본 만화 ‘홀’에서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사람들의 구조에 도움을 주었던 의인이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접하고 구하지 못한 것에 자책감을 가진데다 사람들의 편견에 부딪히고 제대로 된 사과와 진상 규명을 접하지 못하면서 점점 더 괴로워하는 모습을 접하고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트라우마는 큰 사건사고 뿐 아니라 일상 속의 지속적인 소외와 상처로 인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울증, 정서 장애 등으로 진단 내려지는 수많은 증상들도 그 원인을 돌아보면 트라우마를 야기하는 수많은 환경들이 배경이 될 수 있다.

‘ACE 연구(아동기 부정적 경험Adverse Childhood Experiences)는 우선 아동기의 부정적인 경험 열 가지를 1)심리적 학대 2)신체적 학대 3)성적 학대 4)정서적 방임 5)신체적 방임 6)가족의 약물 및 알코올 남용 7)부모의 별거나 이혼 8)가족의 정신질환 9)가족 내 폭력 10)가족의 범죄행위로 규정했다.’고 한다. 와, 나 해당 항목 최소 네 개…했지만 해당 연구 결과 4개 이상 항목에 해당하는 응답을 한 사람이 12.5%였다고 한다. 해당 항목의 점수가 높을 수록 정신적, 신체적 건강이 위협받는 상관 관계도 나타났다. 내가 겪던 불안과 우울의 배경에 아빠의 알코올 중독, 부모의 이혼, 아빠의 조현병 발작과 입원 목격, 아빠가 엄마와 동생에게 가하던 폭력 등이 충분히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장면들에서 내가, 내 뇌가 그 상황에 적응하려는 나름의 신체, 정서적 반응을 보이고, 그게 굳어져 습관화 되어 내 성격이나 행동이나 인지 경향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단점도 있지만 그걸 바탕으로 내가 이루고 강점처럼 삼은 부분도 있다.
어쨌거나 주변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내가 양육자로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에 있으면서 좋게 작용하지 않는 부분들은 끝없이 의식하고 나아지려는 노력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양육자의 태도가 아이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는 부분에서는 반성할 점이 많았다.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내가 나를 너무 미워하지 않는 게 역시나 가장 중요한 일이다.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계속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내가 나를 가장 좋아하는 날이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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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6-14 19:4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일들 너무 많네요. 저도 생각나는일 몇가지 있지요ㅠㅇㅠ아우... 여자들은 모두 주짓수라도 배워야하나 별의별 생각 다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6-14 20:57   좋아요 5 | URL
저 아는 언니는 길에서 묻지마 폭행을 당하고… 복싱을 배워 프로복서 데뷔도 했어요ㅎㅎㅎ저는 그런 호신 기술은 또 안 챙겨놨네요. 어느 공동체든 거기서 제일 왕(?)을 골라 약점 나오면 소리지르고 두들겨패며 혼내는 스킬(?)은 익혔는데 덕분에 다들 가까이 오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반대로 약자에겐 한없이 약해요ㅋㅋㅋ

2021-06-14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14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14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21-06-15 00: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반열님, 저는 10개 중 2개가 해당하는 듯요.. 하.. 살기가 가끔 힘이 듭니다. 그래도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에 격한 공감을 하며 내가 나를 가장 사랑하는 그날까지 파이팅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6-15 07:04   좋아요 1 | URL
넴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이유를 찾는 것도 나아지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파이팅!!!

Yeagene 2021-06-15 1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가 나를 가장 좋아하는 그날까지 같이 노력해봐요!ㅎㅎ
열반인님도 저도 화이팅!:)

반유행열반인 2021-06-15 11:32   좋아요 1 | URL
제일 중요한 과제네요 ㅋㅋㅋ화이팅입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