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가끔 사는 게 창피하다 - (나에게) 상처 주고도 아닌 척했던 날들에 대해
김소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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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2 김소민.

에세이 읽기는 도박하는 심정으로 시작한다. 제목을 보고 아 나도 그런데, 하고 펼쳤는데 이번에는 꽝!
5분의1쯤 읽고 이럴 시간에 다른 거 볼까 때려칠까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우씨 그동안 읽은 게 아까워서 다 보고 깔 거야, 매몰비용 고려 안 하는 합리적이지도 주류경제학 가르침 따르지도 않는 인간. 관대하지 못한 나란 인간.

작가의 삶의 방식이나 고민까지 뭐라 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책으로 묶어 누군가의 시간과 돈을 들여 읽어주라 할 정도라면(저는 시간만 들여 송구합니다…빌려 읽었습니다) 조금 더 잘 다듬어 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아주 컸다. 누군가에게는 공감가고 좋은 책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랑은 결이 맞지 않았다. 한겨레신문 기자 출신이 아니었다면 한겨레 출판에서 이 책을 내줬을까? 신문사랑 출판사랑 별개라 해도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부족함을 느꼈는데…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겠죠 다음 책은 더 나아지길 바라요…하고 보니 이미 두 번째 책이네요… 하여간에 나아지시길…

1. 작은 글 마다, 그리고 책 전체가 중심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삶의 중심을 잡지 못할 때 그럴지, 기획을 제대로 못한 탓인지 내내 궁금했다. 이러저러한 연령대와 성별과 사회적 지위의 사람이 돌연 퇴직 후 자아성찰하며 풀어낸 이야기, 쯤 되는데 그것만으론 약하다. 구심점이 없어 그냥 친구 일기장 훔쳐보는 느낌이다.
2. 에세이들 보면 작가가 접한 문화 컨텐츠를 인용하며 경험이나 사건을 엮는 게 안전하고 널리 퍼진 형식 같고, 이 책도 그랬다. 책, 영화, 드라마, 음악을 인용하며 각 꼭지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인용하는 방식도 매끄럽지 않고 끌어온 이야기들이 도무지 무슨 주제와 내용인지 잘 전달이 안 될 때가 많았다. 그러니까 드라마 안 본 사람한테 애청자인 누군가가 막 지난 줄거리랑 등장인물 두서 없이 풀어주는 걸 옆에서 지켜보는데 그 풀어주는 사람이 훌륭한 이야기꾼은 아닌 상황 같은… 내가 접하지 않은 많은 컨텐츠와 내가 접한 일부 컨텐츠가 모두 인용되는데, 두 쪽 다 같은 느낌이었다. 스포일러 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간접적으로 이야기 전해 듣는 사람이 원전을 찾아보고 싶은 흥미를 느낄 만큼은 전달해줘야 할 텐데 그 부분에서 많이 약했다.
3. 전달은 결국 문장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미문을 추구하는 쪽이라면 비유나 상징으로 두루뭉술해도 아 뭔말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예쁘네 그것만도 좋다 할 텐데 그 쪽은 확실히 아니었다. 문장 사이 사이가 말로 전하는 걸 듣는 듯 생략과 여백이 많고 흐름이 매끄럽지 않아서 곱씹을 부분도 아닌데 다시 생각하고 한 번 더 읽게 하는 게 별로였다. 글쓰는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명징한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마는데 그것도 편견일수도 있겠지만, 하여간에 높은 기대에 비해 읽기가 힘든 건 내 독해력 탓인지 취향의 차이인지 글쓴이의 부족함인지 혼자서는 판단할 길이 없다.
4. 그래서 내 글 또한 읽는 누군가 이런 걸 나무의 시체에 새기고 배터리 닳아가며 읽은 걸 한탄하는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이미 그랬을지도 모르니 괜시리 창피해지는 읽기였다. 내 주말 내놔…(지가 선택해 놓고 떼부리는 나새끼…이런 새끼 싸대기 칠 만큼 다음 책은 더 잘 써달란 말야…츤츤)
+밑줄 긋기
-현실의 잔인함에는 맥락이 없고, 고통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지 모른다. 노크도 없이 들이닥치는 불운들 앞에 무기력해져 버리기도 한다. 세상은커녕 내 머릿속마저도 통제할 수 없는 바다가 출렁인다. 그 속에서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 삶의 사건 대부분 내가 선택할 수 없지만 그 이야기는 내가 쓸 수 있다. 콧물과 눈물을 빼면서, 쓰고 지웠다 쓰고 지우면서, 이별을 독립의 이야기로, 상실의 고통을 한때 가졌던 행운의 증거로, 결핍을 공감의 끈으로, 그리움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으로, 쓸 수 있다. 쓸 수 있다고, 쓰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내 인생에 “네”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와 타인을 믿을 수 있을 때까지 다시 쓰다 보면, 핏빛 태평양을 표류하면서도 아름답게 빛나는 생명체 호랑이 리차드 파커와 함께 ”감각이 마비될 정도로 밝고 시끄럽고, 묘하고 섬세한 생명의 표정”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꼬집힐래 물릴래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 같지만 그래도 굳이 꼽으라면 아줌마라고 불리고 싶다. 한국에서 아줌마와 어머니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생물이다. 아줌마엔 무시와 혐오의 양념을 덤으로 친다. 그럼에도 아줌마를 고른 까닭은 애가 없는 나한텐 폭력적인 ‘존경’보다는 차라리 무시가 낫기 때문이다. 40대 여자 중에 어머니가 되기 싫은 여자, 또는 될 수 없는 여자도 많다. 다짜고짜 ‘어머니’라고 부르는 건 다 대학은 나왔을 거란 전제를 깔고 몇 학번이냐 묻는 것과 같다. 40대면 응당 어머니는 된 줄로 아니,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 인생에 어딘가 붙어 있을 ‘미완성’의 딱지를 찾게 된다. 아줌마라고 하면 째려볼 수라도 있는데, ‘존경하는’어머니로 불리면 기분이 상해도 성질도 못 낸다.

-“시선 때문이었던 것 같아. 내 또래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 물건같이 시선을 받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모멸감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고, 어떤 수치 같기도 했어.” 보는 사람과 보이기만 해야 하는 사람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정말…너무 초라하게…”파도 소리 때문인지, 마지막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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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5-22 21: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딱 이런일 있었는데 저는 심지어 내돈내산...(먼산봄)며칠은 그래도 읽어보려 애를 썼는데.. 결국 신간이니 어느정도 되돌려받을 기대에 후다닥 팔아버렸지요. 나름 유명한 작가..북플 고수님들이 그 분보다 잘씀요.ㅋㅋ🥲(부들부들)

반유행열반인 2021-05-22 22:09   좋아요 2 | URL
이렇게 저렇게 우리를 독자로 성장시키는(?) 작가님들…. ㅋㅋㅋ

Yeagene 2021-05-22 22: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인 경험인데,기자 출신이라는 분들이 기대보다 글을 못 쓰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구요..이상하죠..기자는 글 잘 써야하는 거 아닌가요...?(아닌 것 같기도;;;)

반유행열반인 2021-05-23 07:00   좋아요 3 | URL
기대가 너무 높거나 기사 뽑는 건 어느 정도 형식이 정해져 있고 제목도 데스크가 뽑아주는데 다른 장르 글 쓰려하면 그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건 기자도 글도 잘 모르는 바보의 넘겨집기 입니다 ㅋㅋㅋ

새파랑 2021-05-22 22: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번 읽으면 끝까지 읽어야 하는 습관 때문에 저런 상황이 꽤 있더라구요. 어쩔수 없이 읽는? ㅜㅜ 아무래도 에세이가 그러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진입장벽이 낮아서 그런거 같기도 하고...

반유행열반인 2021-05-23 07:01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읽던 책 포기하는 게 어려워서 고친다 하고는 아직 못 고친 버릇이에요 ㅋㅋ그래서 다음부터는 다른 장르는 몰라도 에세이는 이웃님이 진짜 괜찮다 하는 것만 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