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2- 지아 톨렌티노. 읽는 중.

3장 언제나 최적화 중
같은 사무실 동료 K가 말했다.
다이슨 에어랩 너무 사고 싶어요. 그거 보는 순간 00님(나) 생각났어요.
본인의 지름 욕구를 나에게 투사하는 과정이 이상하긴 하지만 이해는 되었다. 나는 부스스한 악성 곱슬머리라서 갓 매직스트레이트를 한 몇 주를 제외하면 늘 잔머리를 여기저기 삐친 채 다닌다. 5년 전 생일날 스스로에게 이만원짜리 새 드라이어를 사주고 아주 뿌듯했던 기억이 나는데, 새로 나왔다는 드라이어?헤어셋팅기구? 가격은 그 25배가 넘는다. 그 정도 지출이라면 나 같은 사람이라도 정돈되고 가지런한 머릿결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를 했나 보다. 그런 도구라면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모발 소유자인 K에게도 유용하겠다 싶었겠지. 웃으며 말했다.
필요하면 미용실 가서 드라이 하면 되는데 난 그게 일 년에 한 두 번 될까 말까 해요. K님도 미용실 갈 횟수 따져서 연 50만원 안 넘으면 좀 참고, 매일 셋팅할 거면 질러요.
K는 지금도 아침마다 고데기를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K는 파운데이션이 자꾸 묻어서 초반에는 덴탈마스크만 쓰다 코로나가 심하게 확산된 뒤에야 코 아래 메이크업을 포기하고 KF80 이상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겨울에도 A라인이 넓게 퍼지는 샤스커트를 즐겨입는다. 꾸밈을 위해 들이는 노력과 부지런함이 놀라웠다. K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 동료들은 주기적으로 미용실을 가고 새로 산 화장품으로 화장을 고치고 다양한 미용 시술(네일아트, 속눈썹연장, 피부 관리)에 시간과 비용을 들였다. 진작부터 내 외모에 저런 것들을 해 봤자 품만 들고 소용없다 하며 시도조차 포기한 일들이어서 신기하면서도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복직하고 나서는 같이 탈코르셋 하시죠, 마스크 쓰면 어차피 다 가릴 거, 누구 좋으라고 하는지 모를 꾸밈 노동 집어치우고 그 시간에 잠을 더 자 전투력을 기르자, 하는 말을 장난처럼 던졌다. 그 말에 함께 웃던 동료들조차 눈썹을 안 그려서 주변 사람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하고, 남 좋은 게 아니라 자기 만족을 위한 거라고도 말했다. 이전 직장 동료들 중 요가나 헬스를 끊어 놓고도 내내 빼먹는 걸 자책하는 것도 전부 여성들이었다.
우리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누가 이렇게 키웠어.

‘자기 관리’의 전시장이 절정을 이룬 모습을 인스타그램에서 본다. 정확히는 인스타그램의 여성 사진들을 스크랩하는 블로거 페이지를 가끔 구경한다. 유명 연예인은 아니고, 유튜버, 레이싱모델, 잡지모델, 인플루언서 등등 사진 찍히는 일이 많은 여성들 사진이 주로 올라온다. 블로그에 방문하는 건 대부분이 연세 지긋한 남자들 같고, 불행 중(?)다행히도(??) 신체 품평이나 성적인 댓글 대신 감사인사만 줄창 달린다. 사진이 피사체를 잡는 방식과, 그런 사진을 열심히도 모아 올리면서 모델들을 소개하는 포스팅 방식 자체가 남성들이 여성의 신체를 소비하는 형태를 드러낸다. 키가 크고 커다란 가슴, 시술이나 성형으로 변형한 이목구비, 진한 화장, 거기에 덧씌운 포토샵이나 앱 보정, 가슴이 많이 파인 원피스, 비키니, 신체 굴곡이 두드러지는 탱크탑과 레깅스. 인스타그램에 그런 사진을 올리는 것은 대부분 사진 속 본인일 것이다. 사진을 올린 사람들은 인정욕구와 홍보와 유명세를 위해 열심히들 업로드를 하는 것일까. 다른 이유가 있을까. 나도 싸이월드 하던 이십대 초반에는 셀카를 열심히 올렸는데 어떤 마음으로 그랬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주로 안 하던 화장이나 렌즈 착용을 했을 때, 간만에 매직 스트레이트 했을 때 올린 거 보면 예쁘다 소리 듣고 싶어 그랬을 것도 같다. 한참 지나서 보면 좋긴 했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고 라떼 타령할 수 있어서 ㅋㅋㅋㅋ

지아 톨렌티노는 ‘건강’과 ‘체력’을 내세우는 (미국에서 핫하다는) 바 운동과 샐러드 도시락, 그리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애슬레저룩 조차, 자본이 더 효율적으로 사람들을 뽑아낼 구실을 한 결과물임을 지적한다. 책을 읽다가 스팽스가 뭐야 하고 찾아보기도 하고(응 보정속옷이래…), 유명인들 입은 레깅스나 탱크탑 같은 허술한 옷들의 가격이 결코 허술하지 않은 것도 지아가 일일이 나열해준 덕에(뭔 쫄졸이가 십만원이야…) 알았다. 단정하게 정돈된 머리 모양과 옷 차림새와 그 옷이 딱 떨어지는 몸매를 갖추기 위해, 잡티와 주름을 가리고 눈코입을 뚜렷하고 예쁘게 만들기 위해 쏟아 붓는 돈과 시간이 거대한 미용 산업과 패션 산업을 지탱한다는 사실과, 또 그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끝없이 일해야 하는 노동자의 삶을 떠올리니 뭔가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원래부터 아름다운 것들은 돈이 드는 일이긴 하다. 그래서 예술작품 속 화려한 치장을 한 말끔한 사람들은 전부 막대한 부를 물려 받거나 민중을 착취한 귀족들이었지. 그런 아름다움을 빼다 놓은 회화나 조각 같은 예술작품을 만들게 시킨 것도, 비싼 악기와 악사를 불러다 좁은 공간에 장중한 음악을 채운 것도, 균형과 조화를 갖춘 거대한 건축물을 세우는 것도 그런 특권 계층들의 부와 거기 동원된 사람들의 피땀눈물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비교적 돈 안 들이고 아름다움을 만드는 문학은 양호한 건가 싶기도 했다. 그치만 정도의 차이일 뿐 대문호들은 자기 배우자나 연인이나 식구들의 등골을 빼 먹으며 집필을 하지…아름다움은 착취의 산물이냐!!!!

적어도, 스스로 아름다워지길 선택하고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여기는 와중에 그것이 정말 주체적 선택인지, 지나칠 정도로 애쓰면서도 이 정도는 다들 하는 거라고 체념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아침에 화장 안 하면 저녁에 클렌징도 안 해서 겁나 편하거든요. 세수 쓱쓱 하고 세타필 바르고 끝. 머리 세팅 그런 거 포기하면 쉽거든요. 응 나 악성곱슬이라 노답임 매직해도 며칠 못 감 그러니까 이해하세요... 그러다가 백만년만에 조금 꾸미면 관심과 효과를 열 배쯤 거둬들일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다구요. 아침마다 풀세팅 갖추시는 동지들 존경합니다. 저에게는 거의 수련의 경지로 느껴지는 노고를 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아름다움을 건네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르겠다.
에어랩 살 돈으로 책 오십 권 살라고요...안녕 다이슨.

4장 순수한 여자 주인공들
지아는 이 장에서 동화부터 청소년소설, 성인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 속 여성상을 분석해 놓았다. 내가 읽은 작품은 극소수라서 솔직히 아주 재미있게 읽지는 못했다. 대부분 영미문학 관련이고 특히나 미국 현대 소설이 비평의 대상이라 더 그런 것 같다. 그래도 문학에서 여성을 다루는 관점에 대해 비판을 제기한 점은 가치 있게 읽혔다. 아마도 이 장을 읽고 (추천사 열심히 쓴)여성 작가들이 뭔가 나아갈 길에 대해 통찰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이 자주 인용되는데 오, 읽을 때마다 그럴싸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렇지만 원전을 읽을 엄두는 나지 않고 그냥 인용된 거나 감사히 볼게요.ㅋㅋㅋ
삶의 방향이 결혼으로 귀결되고 그와 함께 자유와 인간성을 상실하는 여성 서사는 고전에도 근대 현대소설에도 많이 등장한다. 어려서 키다리 아저씨 소설과 애니메이션 모두 재미있게 보았는데 후원자와 결혼하는 고아라는 결말이 해피엔딩처럼 그려지는 것도 돌아보면 슬프다. 그 이상의 자아실현과 성공담은 상상할 수 없었던 시대였나 싶고. 며칠 전 읽은 박완서 소설에서도 화자인 박이 결국 남자 둘 사이에서 고민하다 더 나아보이는 남자 골라 결혼하고 일 그만두는 모습에서 그 이상 대안이 없던 시대구나 싶어 아쉬웠다. 그나마 소설가가 되었다는 걸 알면 조금 덜 아쉽지만…. 그러니까 그런 삶의 형태만 줄창 써놨다고 뭐라고 하기는 좀 가혹하고, 지아 역시 그런 글들을 엄마 이야기 듣는다 하고 읽으면 좀 참을만 하다고 했다.
결국 새 시대의 새 여성 이야기가 나와야 하고, 그러려면 남다르게 행복하게 사는, 아니 꼭 행복해야 하냐? 불행하더라도 남다르게 살면서 자유와 나다움을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와야 할 것 같다. 삶을 갈아서 실증하지는 않더라도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솔직히 누가 그런 작업을 잘하고 있는지 한국문학에서는 떠오르지 않는다.(이제 이 책을 본 작가님들이 써 주실 거죠?) 나도 자신이 없어! ㅋㅋㅋㅋ 드럽게 어려운 과제를 던져준 장이었다. 그래서 길게 더 할말이 없다...

오늘 읽은 사분의 일은 전보다 신나게 읽히지 않아서 글도 쓰고 나니 매가리가 없다…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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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1-02-23 00: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거 보다가 렌즈 뺐어요. ㅋㅋㅋ 오늘 동생 졸업사진 찍어주러 잠깐 나갔다 왔거든요. 근데 진짜 요즘 학생들은 인서타 때문인지 꾸미는 게 우리 때랑은 차원이 다름... 막 졸업가운을 예쁜 걸로 따로 빌려오더라고요. (대학원 졸업식도 안 간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어 ㅋㅋㅋㅋ) 번잡한 하루였지만, ˝너의 거짓말˝ 종일 즐겁게 들었어요. 일본 애니 오프닝송 좋아하는 저는 취향 저격당함..

아니 이렇게 좋은 로고송이 있었네? ㅋㅋㅋㅋㅋㅋㅋㅋ 부터
탑밴드 결승까지 갔지만 새 프론트맨 못 만나서 회사 다니고 있는 베이시스트도 생각나고...(시집 가서 잘 사는 제 친구 첫사랑)

그리고 저도 새 시대의 새 여성 이야기 나와야 된다는 거 대공감.
저는 주변에 우울맨만 가득해가지구 40 넘으면 죽는 줄 알았거든요. 이십대 후반부터 끝났다고 사방에서 그랬었고요. (뭐가 끝나냐! ㅋㅋㅋ) 서른 즈음에 진짜 만 45살 미만은 못 듣게 해야 된다.. ㅋㅋㅋㅋㅋ 근데 제가 오늘 제 동생한테 뭐라 그랬냐면 주변에 나 같은 언니 한 명 알았으면 그렇게 겁 안 났을텐데.. 이런 말을 했어요. 그렇다고 꼭 내 삶을 갈아 넣어서 증명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ㅋㅋㅋㅋ 얘들아 남의 말 듣지 마 걔들도 잘 몰라서 아무 말 하는 거야...

반유행열반인 2021-02-23 07:59   좋아요 3 | URL
동생이님의 졸업을 축하합니다 ㅋㅋㅋ대학원 졸업을 다하다니 난 수료인데ㅋㅋㅋ영원한 수료일 듯(내 전공 재미업써!!ㅋㅋㅋ)
같이 사는 사람이 일본음악 죽돌이라 편곡이 그런 스타일로 가더라고요. 탑밴드 열심히 봤었는데 (나만) 아는 사람이겠다 ㅋㅋㅋ
그게 진짜 소비하는 문화 컨텐츠 따라서 락음악- 하면 막 짐모리슨 재니스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3J이러면서 절명한 아이콘들 많잖아요?(유튜브에서 가끔 나이든 락커들 약에 술에 꼴아서 늙어서 빌빌대는 꼴 보면 일찍 죽은 게 승자야 싶기도 했지만) 국문학도 공부하다 보면 윤동주 이상 등등 연표에 남은 작가들 죄 일찍 죽어서 다들 오해한 거 같아요. 내가 (예술로 뜰라면) 일찍 죽어야 해... ㅋㅋㅋㅋ 뭔가 잘못된 인과의 오류가 아니었을까... 저는 그 이십대 중후반의 우울도 진화의 산물 아닐까 가끔 생각했어요. 우울해? 생식을 해, 그리고 애를 낳아, 그럼 죽지도 못해, 하고 조상들이 유전자에 폭탄 심어 놔서 죽든가 애 때문에 죽지 못해 살든가 하는 게 아닌가 하는...뭔 소린지 아침부터 모르겠다 얘들아 남의 말 듣지 마 나도 잘 몰라서 아무 말 한 거야 2222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