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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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5 다나베 세이코.

영화 있는 거 보고 장편인 줄 알았는데 단편이더라. 친구가 말한 소설과 같은 이름의 영화를 예전에 본 줄 알았는데 그 무렵 본 건 ‘메종 드 히미코’였다. 문득 처자식 다 버리고 떠난 게이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워졌다. 히미코도 그렇고, 마츠코도 그랬고, 일본 영화에는 결함 많고 상처 받기 쉽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나말고도 저렇게 완벽하지 않은 존재들이 함께 세상을 이루고 있다는 걸 자꾸 보여주며 위로를 시도하는 건가.
일본 소설은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무라카미 류 소설 좀 찾아본 것 말고는 별로 본 게 없다. 가끔 읽으면 이걸 어떻게 읽어야 하나 늘 낯설다. 그런데 이 소설집 번역자가 무라카미 류 소설 많이 번역했던 양억관 아저씨였다. 오, 일단 심리적 장벽 한 단계 낮아졌음. 소설가 다나베 세이코는 우리 외할머니랑 같은 1928년생 용띠였다.(밀란 쿤데라는 한 살 어린 뱀띠라오…) 우리 외할머니는 아직 잘 계신데 다나베 세이코 할머니는 2019년에 돌아가셨다. 사후에 리커버판으로 다시 나온 모양이다. 책이 처음 나온 해는 내가 날 무렵인 1985년이고, 다나베 세이코가 57살일 때 낸 책인데, 책의 등장인물은 지금 내 나이 또래인 삼십 대 여자가 퍽 많다. 나이 들어 쓴 소설들은 노년에 관한 것일까 싶어 잠시 검색해 보니 에세이집도 여러 개 썼나 보다. 여자는 허벅지- 라는 에세이집에 잠시 관심이 갔는데 별점 한 개랑 안 좋은 평이 잔뜩ㅋㅋㅋ 음담패설 에세이래… 역시 이 할언니… 내공이 느껴진다…

친구는 소설집 안에 슬픈 사랑, 금지된 사랑 이야기가 많다고 했는데 어쩐지 그런 사랑하는 여자들 대부분이 씩씩하고 꿋꿋해 보였다. 그건 어느 정도는 체념의 결과이고, 남들이 뭐라면 어때 아무렴 어때 나는 내 갈 길 간다, 하는 주체성 같기도 했다. 물론 어떤 여자 인물들은 남자에게 의존하고 남자가 그지같이 구는 데도 어쩔 줄 모를 때도 있었지만, 30몇 년 전의 사회상 생각하면, 그 당시 내 나이면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 키우고 전업주부로 가정에 매여 있는 인구 비율이 많았을 텐데 그걸 감안하면 자기 일 열심히 하면서 남자가 떠나도 스스로 자신을 먹여 살리며 알아서 잘 하는 여자들을 일부러 열심히 등장시킨 것 같다. 그건 당연한 거야!라고도 할 수 있지만 사실은 대단한 일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먹여 살리고 그와중에 열심히 사랑도 하는 사람들은 자부심 느껴도 되지 않겠습니까… 스스로 먹여 살리지 않더라도, 지금은 나 자신만 사랑하려고 애쓰는 중이더라도 죽지 않고 열심히 살아남기로 한 사람 또한 대단한 일 하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밑줄 긋기
-“꿈에 나오면 어떡해…”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보긴 왜 봐.”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을 때. 무서워도 안길 수 있으니까.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호랑이를 보겠다고...만일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평생 진짜 호랑이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중)

-그리고 우네의 상냥함에 마음을 놓고, 아무렇게나 몸을 맡겨오는 어린애 같은 유지의 젊음에, 우네는 영문 모를 슬픔을 느낀다.
어른이란 존재는 그 상냥함 뒤에 언제나 공갈과 위협의 칼날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그런 순진한 신뢰가, 우네의 가슴에 아프게 와닿는다. 순진무구한 소년소녀를 웃음과 과자로 유혹해 잔인하게 죽이는 유럽 사회의 성범죄자들, 그리고 그림 동화에 나오는 범죄자들의 고독한 쾌락을, 우네는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모두 정치한 이중인격자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
(‘사랑의 관’ 중)

-“우리, 산꼭대기 검은 땅에 커다란 구멍을 파서, 남모를 사랑의 관을 묻나니.” …
말로 다할 수 없는 둘만의 사랑이었네
우리 누운 관 위에 풀이 피어나는 날에도
이 사랑 아는 이 없으리
(‘사랑의 관’ 중)

-‘어쩜 이렇게 사람을 안을 수 있을까.’
포옹뿐만 아니라, 입술 위에 따스한 눈처럼 떨어지는 남자의 부드러운 입술도 어딘지 모르게 자신의 입술과 꼭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서 감탄하고 만다. 몸이, 또는 인생의 틀이 잘 들어맞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바의 몸은 딱딱하지만, 이와코에게는 하나도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팔도 혀도 입술도 한없이 부드러웠다. 남자의 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생명의 매끄러움 그 자체라는 느낌이었다. 몸 자체가 만족의 한숨인 것 같았고, 이와코는 그 한숨에 안겨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눈이 내릴 때 까지’ 중)

-리에는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그대로 의자에 앉아 할말을 잊고 말았다. 농담도 할 수 없었다. 기력이라도 넘쳤으면 무슨 말이라도 했을 테지만, 마침 기분이 가라앉아 있어서 자기연민의 눈물만 스멀스멀 구토처럼 치고 올라왔다.
그런 감정이 갑자기 수그러든 것은, 그 순간, 미노루가,
“밥”하고 말했기 때문이다. 리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엉?”
“밥. 빨리 밥 줘. 배고파.”
“지금 내가 밥차릴 때야! 먹고 싶으면 자기 손으로 해 먹어!”
“뭘 먹어? 오늘 저녁은 뭐야?“
벼락이 떨어지고, 창이 빗발처럼 날아 오더라도, 자신의 바람기가 발각이 나더라도, 어쨌든 리에가 밥을 지어주리란 것을, 미노루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빛나는 에고였다. (‘사로잡혀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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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1-01-16 1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조제가 단편이었구나. 저는 그 영화 혼자 살 때 진짜 많이 틀어놨어요. 거기 나오는 남자애가 밥을 되게 맛있게 먹거든요 ㅋㅋㅋ (이상한데 치인다..) 다시 혼자로 돌아가면 슬프겠지만 그것도 괜찮아, 라는 말에는 열반인님 말씀처럼 체념도 있고 주체성도 있고 그렇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반유행열반인 2021-01-16 11:26   좋아요 1 | URL
저도 처음 듣고 아, 조제가 단편이었구나 생각했어요. 밥 맛있게 먹는 남자애 좋으다ㅎㅎㅎ 다시 혼자로 돌아가도 괜찮아, 하겠지만 호랑이 봐도 안 무서운 같이가 더 괜찮아, 싶네요. (기만자.... ㅋㅋㅋㅋㅋ죄송합니다)

하나 2021-01-16 11:28   좋아요 1 | URL
힝..입니다 ㅋㅋㅋㅋㅋ 니 내 좋지, 금 내랑 호랭이 보러 가자! (금방 배운다...)

반유행열반인 2021-01-16 11:35   좋아요 1 | URL
그래 가자 호래이 보러 ㅎㅎ

syo 2021-01-16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리뷰 써야 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 요즘 리뷰가 손에 잘 안 잡히네욬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1-16 20:17   좋아요 0 | URL
언넝 써서 다음 달에는 사만원 받으세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