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겨울 2020 소설 보다
이미상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2월
평점 :
품절


-20201227 이미상, 임현, 전하영.

소설보다는 처음 사 봤다. 중단편소설 세 편과 작가와의 인터뷰 실은 책이 3500원, 새 소설과 작가들 만날 기회로 괜찮은 기획 같다.
젊은작가상 수상집에서 이미상 작가의 ‘하긴’을 인상 깊게 읽었다. 다음 작품이 궁금한 작가였는데 올 겨울의 소설로 선정되었다고 해서 이 책을 펴게 되었다. 임현 작가도 나름 꾸준히?읽고 있으니까. 역시 젊은작가상으로 알게 되고 소설집을 사 보았는데 제법 인상 깊었다. 그때는 최신 한국소설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었다. 처음 쓴 습작을 읽은 친구가 내 글이 되게 올드하다고 했다. 당연하지. 나의 한국소설 독서는 현대문학사를 따라 1920, 30, 40, 50년대... 전후 문학을 거쳐 김승옥 쯤에 멈춰 있었다. 그래서 최신 트렌드는 하나도 모르고 그나마 김애란 정유정 같은 작가 신작이 나오면 챙겨보는 정도였다. 새로 나오는 한국소설들 보기 시작한지 겨우 3년 밖에 안 되었다. 처음에는 뭔가 유행이나 시류 같은 게 있다고 착각했다. 지나고보니 그런 거 없고, 작가들은 그때 자기가 가장 쓰고 싶은 것, 그중에 자기가 쓸 수 있는 것을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상, 여자가 지하철 할 때
몇 쪽 넘기고서 역시 이 언니,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고 혼자 기뻐했다. ‘하긴’의 운동권 후일담은 진짜 뭔 미래 예언서처럼 되어 버렸어… 여전히 거리에서 일인 시위니 집회니 하면서 돌아다니는 586 운동가를 알고 있다. 처음에는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보니 그 사람이 옳았다. 독재자를 타도한 사람들은 거리에 남든가 다 죽었어야지, 빈 권좌에 올라서는 안 되었다. 잡소리가 기네.
지하철 안에서 분열된 얼굴들과 함께 위험도를 재어 가며 생존을 위해 눈알을 굴리고 분투하는 경험. 마지막에 아기 상어 노래 속 물고기들 처럼 살았다 뚜루뚜루- 하면서 해맑게 지상으로 올라오는 죽도록 피곤한 수진의 얼굴이 너무도 익숙해서 암울했다. 환대와 안전, 평등. 당연하게 마주할, 과오를 빚갚음하는 죽음과 그저 두려움에 떨다 당하는 개죽음. 일상과 구조 속의 계층화. 얼핏 보면 미친 소설인데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아놔서 마냥 신기하고 우러르게 되었다. 이런 거 쓰려면 최소 4년은 쓰고 고치고 해야 하는 거였군요…작가의 다른, 다음 작품들도 자꾸 궁금해졌다.

-임현, 거의 하나였던 두 세계
소설도 소설인데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윤리와 논리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이 더 마음에 남았다. 자기 소설 잘 안 읽는다고 안타까워 하는 모습도...친구가 작가와 같은 문학촌에 한동안 있었는데, 본인은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데 술먹은 다음 날 아침 마주친 작가님이 너 어제 어디서 술 마시고 들어오다 나랑 만나서 더 마셨잖아, 했다고. 그게 진짜 있던 일인지 놀리느라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좋아하던 소설가랑 술 마시고 밥 먹는다고 스스로를 성덕(성공한 덕후)으로 칭하던 자네도 소설가잖아...성덕 하지 말고 성골 되어라 너도…
가르치는 위치에 서는 일은 영 싫다. 누군가의 삶에 의도를 통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믿지 않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서. 그건 너무 막중한 일이다.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을 누군가에게 해야 밥 벌어 먹고 살 수 있는 삶. 그와중에 내가 하는 어떤 말들이 나도 모르게 누군가들을 다치게 하고 그에 대한 책임과 미움을 다 지고 가야 하고...비난 받고 벌 받는 누군가를 보며 저게 나였을지도 몰라, 하고 고민하는 삶은 지옥에 가깝다.

-전하영,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 책에서 처음 만나고 새로 발견한 소설가이다. 제법 긴 중편 소설이었는데, 서른 일곱을 닷새 쯤 남긴 시점에서 서른 일곱과 스물 하나의 사랑?유혹?에 대해 이야기하니 저절로 발목이 잡혔다. 나는 스물 한 살에 시작한 사랑을 서른 일곱인 아직까지 하고 있고, 서른 일곱의 사랑이 언제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모르겠다. 책 속 서른 일곱의 화자는 같은 나이의 친구 연수와 스물 한 살에 서른 일곱의 남자를 사랑했고, 그 남자와 같은 나이가 된 지금에 와서는 그런 남자들을 경멸할 줄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그래. 그때 겪지 않았으면 지금 같은 나도 없었을 걸. 나 역시 한 번도 주인공이 된 적이 없다고, 순종적이고 친절한 친구 옆에 꼬여드는 고학번이니 복학생이니 하는 징그러운 오빠들을 쫓아내는 목격자이고 향단이고 보호자라고 스스로를 생각해 본 적이 있거든. 그런데 말린다고 그게 되는 게 아니더라. 오히려 그 친구는 내가 말리던 선택을 하고 나를 피하게 되지. 그리고 마냥 목격자일 것 같던 나도 목격자를 필요로 하는 위치에 순식간에 놓이기도 한다. 그런데 또 지나고 보면 사실 남들의 인정도 부정도 손가락질도 아무런 의미가 없고, 인정하든 부인하든 그건 나의 몫이었다. 그러니까 굳이 남을 구하겠다고 애쓸 필요 없고 나 하나만 잘 구해도 다행이 아닐까 싶다. 뭔 소리 하는 거야 나...하여튼 이 작가도 소설집이 나오면 관심 있게 볼 것이다.

+밑줄 긋기

-나는 아무 힘이 없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 사람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라고 말했어. 그런 상태를 오래도록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제일 고귀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사람은 말이지, 불가능한 걸 꿈꾸는 대신 잘할 수 있는 것을 해야 돼. 근데 그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야. 가끔씩 나는 뭔가 다른 게 되고 싶거든. 뭔가 내가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중, 139)

-네가 모르는 게 뭔지 알아? 원하는 게 있으면 노력해야 돼. 사랑받으려면 정말 죽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중, 159)

-연인의 탄생에는 항상 목격자가 있는 법이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야기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목격자 역을 맡은 여자에 대해 생각했다. 삭제된 분량의 삶. 나는 지난 삶의 대부분을 목격자로 살아왔으므로 남은 여자의 삶에 대해 항상 궁금해해왔다. 남자의 세계로 여자친구를 떠나보낸, 남은 사람의 시간, 여자 주인공의 특별함을 돋보이게끔 하기 위해 평범함의 기준처럼 제시되는 삶.(‘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중, 162)

-가끔은 무언가 이야기 같은 것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속도로 내 인생을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중,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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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12-27 1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살래요! 전하영 소설 부분에서 무릎을 치면서 광광 웃었다ㅋㅋㅋㅋㅋㅋㅋ(그래도 울었다 아님)

반유행열반인 2020-12-27 14:33   좋아요 1 | URL
광광 웃을 정도면 우리 되게 건강해진 거 아닐까요? 자꾸 본의 아니게 하나님 주머니 막 턴다 ㅋㅋㅋ나 다 읽은 거 주고 싶네요 ㅋㅋㅋ가져가세요!!!

하나 2020-12-27 14:3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열반인님 알라딘 엠디 특채 가야된다... 책 진짜 잘 파셔... (걍 나도 비밀이야 안하고 깠다) 서른일곱 살 되니까 왤케 화가 나냐... 걍 광광 웃으면서 소설이나 읽어야지~~

반유행열반인 2020-12-27 14:41   좋아요 1 | URL
이제 깐 화 앞으로 십 년은 갈 건데...큰일이네요 ㅋㅋㅋ저는 십 년 쯤 화내고 나니 이제 좀 여유로워지는 중...(죄송합니다 먼저 갑니다...) 알라딘 엠디 언니들 나 싫어하지 않을까요 비속어 사용 책과 관계 없는 내용 판매를 저해하는 행위 등등...ㅋㅋㅋㅋㅋㅋㅋ무엇보다도 아 저런 애랑 같은 사무실 있기 싫다 ㅋㅋㅋㅋ하실 듯

하나 2020-12-27 14:44   좋아요 1 | URL
아.. 먼저 가서 길을 만들어죠요 ㅋㅋㅋㅋㅋ 알라딘 엠디 언니들 열반인님 좋아하실 듯... 알라딘 마을 매력악동쯤? 전 열반인님이랑 같은 사무실 있음 회사다닐래여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12-27 14:47   좋아요 2 | URL
음 일단 화를 더 내고 욕을 더 해야 합니다.... 뒤에서도 앞에서도 ㅋㅋㅋㅋㅋ뭘 가르치는 것인가 가르치기 싫다매...안 좋아할 거에요 리뷰 안 뽑아주는 거 봐!!! ㅋㅋㅋㅋㅋㅋㅋ그냥 내 돈 주고 사야지...저 같이 살던 언니랑 사이 왕창 나빠지고 멀어진 경험이 있어서 안전거리 두기로 해요 그냥 ㅋㅋㅋㅋㅋ가끔 만나면 좋은 친구입니다 ㅋㅋㅋㅋ

하나 2020-12-27 14:55   좋아요 2 | URL
(가끔) 만나면 좋은 친구 🎶도 어렵다.. 저도 꼭 그렇게 될게요! 일단 앞에서도 뒤에서도 화를 내서 심신을 가다듬고... 그리고 알라딘 진짜 우리 누나 서운하게 하지 마로라... 좋으면 좋다고 표현을 해라...

막시무스 2020-12-27 15: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열반님의 영업으로 구매해본 1인으로서 MD특채 강력하게 청원합니다!ㅎ

반유행열반인 2020-12-27 15:45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성원에 힘입어 알라딘 강제 이직하는 건가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