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6 백석.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고 백석 시집을 읽어보자 했다. 출석하면 하루 백원 주는 전자책 적립금을 아흐레 모아 구백원에 파는 백석 시집을 샀다. 시집 사슴에 실린 시와 다른 곳에 실린 시들을 모은 책이었다. 죽은 시인에게도 시인의 식솔에게도 인세가 가지 않을 걸 생각하면 한 푼 안들여 좋은 시를 읽는 게 미안하지는 않은데. 왜 구백원일까 궁금하면 이 책의 엉터리 문장으로 짜깁기하듯 쓰여진 서문을 읽으면 아, 한다. 아무 것도 달지 않고 시만 실었으면 구천원 받아도 되었겠다. 처음 읽는 게 아닌 시를 만나면 반가웠다. 이십 년 쯤 전에 읽었을 시들은 내 뇌 어딘가에 흔적을 남기긴 했나 보다. 나는 수능 언어영역에 문학이 다루어지는 걸 아주 찬성한다. 새파란 중고딩이가 김승옥 소설집을 반복해서 읽고 문학상 수상집 같은 걸 뒤적이며 야한 부분을 찾아 헤매도 공부하는 걸로 위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문학 문제집이 없었다면 산문형 인간이던 내게 시 몇 가락이라도 얻어볼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흰 바람 벽이 있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같은 워낙 유명한 시들은 다시 읽어도 역시나 좋았다. 옮겨 오지는 않았지만 혼자 심심할 때 따라 적어보고 싶었다. 조선일보에 연재한 연작시 ’남행시초’ 네 편은 창원만 빼고 가본 남쪽 동네가 나와서, 읽기만 해도 길을 거니는 것 같아서 반가웠다. 통영, 고성, 사천, 그리고 안 가본 창원까지 따뜻한 날에 들러보고 싶다. 지금은 말고...코로롱 언제 끝날래...+밑줄 긋기저녁밥 때 비가 들어서바다엔 배와 사람이 흥성하다참대창에 바다보다 푸른 고기가 께우며 섬돌에 곱조개가 붙는 집의 복도에서는 배창에 고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이즉하니 물기에 누굿이 젖은 왕구새자리에서 저녁상을 받은 가슴 앓는 사람은 참치회를 먹지 못하고 눈물겨웠다어득한 기슭의 행길에 얼굴이 해쓱한 처녀가 새벽달같이아 아즈내인데 병인病人은 미역 냄새 나는 덧문을 닫고 버러지같이 누었다(‘가키사키枾崎의 바다’ 전문)아카시아꽃의 향기가 가득하니 꿀벌들이 많이 날아드는 아침귀신은 없고 부엉이가 담벽을 띠고 죽었다(‘정문촌’ 중)낡은 나주 소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아서쓸쓸한 저녁을 맞는다흰밥과 가재미와 나는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 긴 날을 모래알만 헤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 들은 탓이다외따른 산골에서 솔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여졌다착하디 착해서 세괏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흰밥과 가재미와 나는우리들이 같이 있으면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선우사膳友辭 - 함주시초 4’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