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백석 시집 사슴 - 100부 한정본 평역
백석 지음 / 라이프하우스 / 2016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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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6 백석.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고 백석 시집을 읽어보자 했다. 출석하면 하루 백원 주는 전자책 적립금을 아흐레 모아 구백원에 파는 백석 시집을 샀다. 시집 사슴에 실린 시와 다른 곳에 실린 시들을 모은 책이었다. 죽은 시인에게도 시인의 식솔에게도 인세가 가지 않을 걸 생각하면 한 푼 안들여 좋은 시를 읽는 게 미안하지는 않은데. 왜 구백원일까 궁금하면 이 책의 엉터리 문장으로 짜깁기하듯 쓰여진 서문을 읽으면 아, 한다. 아무 것도 달지 않고 시만 실었으면 구천원 받아도 되었겠다.

처음 읽는 게 아닌 시를 만나면 반가웠다. 이십 년 쯤 전에 읽었을 시들은 내 뇌 어딘가에 흔적을 남기긴 했나 보다. 나는 수능 언어영역에 문학이 다루어지는 걸 아주 찬성한다. 새파란 중고딩이가 김승옥 소설집을 반복해서 읽고 문학상 수상집 같은 걸 뒤적이며 야한 부분을 찾아 헤매도 공부하는 걸로 위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문학 문제집이 없었다면 산문형 인간이던 내게 시 몇 가락이라도 얻어볼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흰 바람 벽이 있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같은 워낙 유명한 시들은 다시 읽어도 역시나 좋았다. 옮겨 오지는 않았지만 혼자 심심할 때 따라 적어보고 싶었다.
조선일보에 연재한 연작시 ’남행시초’ 네 편은 창원만 빼고 가본 남쪽 동네가 나와서, 읽기만 해도 길을 거니는 것 같아서 반가웠다. 통영, 고성, 사천, 그리고 안 가본 창원까지 따뜻한 날에 들러보고 싶다. 지금은 말고...코로롱 언제 끝날래...


+밑줄 긋기

저녁밥 때 비가 들어서
바다엔 배와 사람이 흥성하다

참대창에 바다보다 푸른 고기가 께우며 섬돌에 곱조개가 붙는 집의 복도에서는 배창에 고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즉하니 물기에 누굿이 젖은 왕구새자리에서 저녁상을 받은 가슴 앓는 사람은 참치회를 먹지 못하고 눈물겨웠다

어득한 기슭의 행길에 얼굴이 해쓱한 처녀가 새벽달같이
아 아즈내인데 병인病人은 미역 냄새 나는 덧문을 닫고 버러지같이 누었다
(‘가키사키枾崎의 바다’ 전문)


아카시아꽃의 향기가 가득하니 꿀벌들이 많이 날아드는 아침
귀신은 없고 부엉이가 담벽을 띠고 죽었다

(‘정문촌’ 중)


낡은 나주 소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아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 긴 날을 모래알만 헤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 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솔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여졌다
착하디 착해서 세괏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선우사膳友辭 - 함주시초 4’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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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06 15: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백석이 번역한 ‘테스‘
[소리 없는 두 박퀴 달린 아츰 우편마차가 이때도 언제나 마찬가지로 화살같이 이 오솔길을 달려오다가 불도 없이 뜨즉뜨즉 가는 테스의 짐수레에 부닥처 벌인 것이다.]
테스한테 나쁜짓하는 놈, 평안도 사투리로 번역했는데 굉장히 토속적인 느낌을 화악 살려냈어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시가 테스 소설에 영향을 받고 지었다고 하는데 테스 소설 번역할때 친구에 여친을 사랑하고 고백했다가 거절당했던 경험을 투영시켰다고 합니다.
[ ‘사나이의 입술이 그의 뺨에 닿을 때 그것은 마치 주위의 끝에 난 버섯껍질 같이 축은하고 미츳미츳하니 선듯하였다.]
의성어 의태어를 이렇게 살려서 번역하니 소리내어 읽고 싶어질정도로 백석 번역은 뛰어난것 같아요.

반유행열반인 2020-12-06 17:55   좋아요 3 | URL
번역 잘 하는 분들 글 읽으면 그것도 창작이다 싶지요. 뜨즉뜨즉 미츳미츳 사전에도 없을 것 같은 흉내냄말들 좋네유

하나 2020-12-07 0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키사키枾崎의 바다˝는 김연수 소설에서 ˝가키사키 처녀의 일은 시가 되었두만˝, 에서 그 시인 거 같아요.

백석 읽기 좋은 계절이네요. 저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 “나 혼자서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라는 부분을 읽을 때마다 백석 ˝INFJ인가봐..˝. 이렇게 혼자 생각합니다. ㅋㅋㅋㅋㅋ 소중하게 모아서 마련하신 귀한 시집 이야기에 엠비티아이 끼얹어서 죄송해요.

반유행열반인 2020-12-06 17:54   좋아요 2 | URL
오오 나 2019년 4월 22일(클라우드 메모장 일기를 뒤져보니) INFJ나왔어요 ㅋㅋㅋ그보다 이년 전에는 INTJ였는데 성격 바뀜 ㅋㅋㅋ저도 그 부분 훅 들어오든데 엠비티아이 생각보다 신빙성 있는 것인가요?!?! ㅋㅋㅋㅋ

하나 2020-12-06 17:5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 저는 t/f가 아주 비슷하긴 한데요 할때마다 INFJ 나와요. 백석 인프제 맛집... 인정합니다! (아 나 열반인님이랑 성격 유형 똑같아!!!)

반유행열반인 2020-12-06 18:02   좋아요 2 | URL
아 난 하나 님이랑 똑같아!! 유유상종 진짜 무서운 말이었군요 ㅋㅋㅋㅋ

scott 2020-12-06 20:47   좋아요 2 | URL
연수횽도 예전에 독자들과 대화 할때 INFJ라고 했어요.
백석-김연수-하나님-열반인님 INFJ

모두 형제 ^0^

2020-12-06 1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6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6 1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6 18: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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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6 18: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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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6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Yeagene 2020-12-07 1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시집 다시 읽고 있거든요..
백석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반유행열반인 2020-12-07 18:2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시를 정말 안 봤고 모르는데 백석은 수능 준비 때 좀 봤다고 익숙한데 여전히 좋네요!!! ㅎㅎㅎ

하나 2020-12-10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올해의 서재 선정되신 거 축하드려요. 올 여름부터 정말 덕분에 울고 웃고 있어요. 좀 더 빨리 알았으면 더 좋았을텐데. 그래도 지금 만난 것도 되게되게 좋아요. 연말 인사를 너무 빨리하는 거 같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팬심은 고백해야죠! ㅋㅋㅋㅋㅋ 알라딘이가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 헤헤 나중에 팬 오조오억명 되어도 나 까먹지 않기! 까먹어도 되니까 열반인님 앞길에 꽃길만 있어라~ 아... 좋아... ㅋㅋㅋㅋㅋㅋㅋ
- 반유행열반인님 비공식 팬클럽 회장 드림

반유행열반인 2020-12-10 21:41   좋아요 2 | URL
우앙 ㅋㅋ난 이번 달 리뷰 알라딘이 뽑아주면 필립 로스 할배 신간 사볼래...했는데 안 뽑혀서 알라딘 갯새키 소세키 하고 친구랑 욕하고 있었거든요... 올해의 서재 처음 되어보는데 이 영광을 팬클럽 회장님께 돌립니다 ㅋㅋㅋ 바람 잡아주신 덕에 누추한 곳에 볕들었습니다 ㅋㅋㅋㅋ

하나 2020-12-10 21:4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알라딘 치사하게 리뷰도 뽑지 서재 달인만 시켜주냐 왜. 그래도 명예로운 날이니까요!! 우리 스타 서재에 마크 달렸다!! 알라딘 솔직히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광고에 우리 열반인님 그렇게 써먹으면 뭐라도 죠라 롱패딩이라도 ㅋㅋㅋㅋ 바람이라뇨~ 저는 저의 순수한 열정을 고백할 뿐! *_*

반유행열반인 2020-12-10 21:48   좋아요 1 | URL
그냥 알라딘한테 게시물 삭제 안 당하고 영구정지만 안 먹어도 감사해요 할라구요...(블랙리스트로 소설 쓴 거 걸리면 진짜 영구정지각 ㅋㅋㅋㅋ)

scott 2020-12-24 2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가족 모두 행복하고 따스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서재방에 트리 한그루 놓고 가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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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

반유행열반인 2020-12-24 22:07   좋아요 1 | URL
scott님도 즐겁고 건강한 휴일 보내시길 진심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