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 뮤진트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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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3 켄트 하루프.

사랑보다 내가 먼저 죽길 바란다고 말하는 건 겉으로는 나 없는 자유를 누려봐, 하는 배려인 듯하지만 사실 죽는 날까지 외롭고 싶지 않은 욕심이다.
지금까지 산 만큼 더 살고 난 뒤에, 나는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누구와, 어떻게 살고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내가 놓일 상황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바꾼 삶을 상상하지 못했으니.
많이 읽으시지만 바빠서 쓰지는 못하시는 이웃님이 댓글로 알려주신 책을 읽어 보았다. 늦게 만난 찐사랑-으로 요약할 만한 이야기였다. 늙은 뒤에, 한 사랑이 사라진 뒤에 또다른 사랑을 만나는 일은 어마어마한 행운이 아닐까 싶다. 가끔은 슴슴하고 잔잔하고 애틋한 소설도 읽어야지.

배우자와 사별한 칠십 대 애디와 루이스는 애디의 제안으로 밤을 함께 보내기 시작한다. 어떤 관용구 같은 게 아니고, 그야 말로 밤에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잠을 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토마시는 테레자하고만 잔다. 그녀에게만 사랑을 느낀다. 다른 수많은 여자들과 정사를 나누지만 잠은 테레자의 독점 영역이다. 나는 같이 있어도 감은 눈의 사람은 곁에 없는 것만 같고, 나를 바라봐줘야 함께 있다고 느낀다. 어떤 사랑은 같이 눈감고 다시 눈뜬 자리에 사랑하는 사람이 그대로 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애디와 루이스도 그랬다. 소설 말미에 가면 사랑을 나누긴 하지만 노쇠한 몸이라 엄청 스펙타클한 건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도 둘은 함께라서 행복하다. 둘만이라서가 아니라, 먼저 돌아가시는 이웃 루스 할머니도 나들이에 함께 하고, 잠시 맡아 기른 애디의 손자 제이미도 함께 침대에 눕고, 제이미에게 안겨 준 멍멍이 보니와 함께 거닐고, 이곳저곳 놀러다니고 햄버거를 먹고 마시멜로를 굽는 시간이 잔잔한 행복이다. 주변에서 그들이 밤을 보내는 걸 둘러싸고 수근거리는 건 부러워서 그랬을 거다. 애디의 아들 짐이 둘을 못 만나게 갈라 놓은 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죽은 아버지 핑계를 왜 대냐 살아있는 어머니 행복이 더 중요하지. 전화로만 몰래 겨우 이어지는 둘의 마지막 모습이 많이 슬펐다.

+밑줄 긋기
-앞쪽 보도를 걸어 앞문으로 오세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 갖지 않기로 결심했으니까요. 너무 오래, 평생을, 그렇게 살았어요. 이제 더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 이렇게 뒷골목으로 들어오면 마치 우리가 몹쓸 짓이나 망신스럽고 남부끄러운 일을 하는 것 같잖아요.

-왜 날 선택했는지 궁금했어요. 서로 많이 알지도 못하는데요.
  내가 아무나 골랐을 거라 생각했어요? 누가 됐든 밤에 따뜻하게 해줄 사람을, 함께 이야기나 나눌 늙은이를 대충 찍은 줄 알았어요?
  그렇게는 생각 안 했고요. 다만 왜 나를 선택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당신을 선택해서 유감이에요?
  아니에요. 그런 건 전혀 아니고, 그냥 호기심이죠. 궁금했을 따름이에요.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친절한 사람이요.
  내가 그런 사람이면 좋겠군요.

-나는 이 물리적 세계가 좋아요. 당신과 함께하는 이 물리적 삶이요. 대기와 전원, 뒤뜰과 뒷골목의 자갈들, 잔디, 선선한 밤, 그리고 어둠속에서 당신과 함께 누워 있는 것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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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10-03 2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확 와닿네요. 사랑은 결국 저런 작은 일상을 함께 누리는 것이 좋은거 맞는것같아요

반유행열반인 2020-10-04 06:33   좋아요 0 | URL
작은 일상. 함께 누리기. 적절하게 요약된 표현이네요!!

바다그리기 2020-10-03 2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늘 조용히 감동과 감탄 사이를 오가는 감상으로 님이 올려주시는 글들을 읽다가 수다가 떨고싶은 기분이 드는 글을 만나면 소심하게 한마디 보태곤 했는데, 이렇게 제 댓글에서 지나가듯 언급했던 책을 읽으시고 감상까지 써주시니 괜히 또 혼자 감동하고 감사하고 기쁘고 막 그러고 있습니다.
사실 요즘 정신 없이 바쁘기도 하지만 님을 비롯해 엄청난 내공의 훌륭한 글들에 기가 죽어서 선뜻 써지지 않아 읽기만 하는것도 있어요.
다행히 정말 바빠서(핑계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지금은 올해의 각오대로 매일 한권씩 책을 읽는것도 버거우니 한동안은 이렇게 가끔 좋은 글(기쁜 글도요^^)에 댓글 다는 것으로 만족하렵니다.
이러다 어느날 갑자기 뭔가 끄적거리면 이제 다시 쓰고싶어졌나보다 생각 해주세요^^
저는 이 책이 (마지막은 슬펐지만) 나이 든 후의 삶에 대해 아주 큰 위로와 희망을 주기도 했던 따뜻한 책이라서 참 좋았는데, 제 댓글로 보게되신 책이 님께도 좋은 시간을 주었기를..
늦었지만 해피 추석!
남은 휴일 즐겁게 보내세요~

반유행열반인 2020-10-04 06:35   좋아요 1 | URL
저는 매일 읽으시는 속도 보면서 대단하시다고 생각했어요. 나도 쓸데 없는 거 주절댈 시간에 더 읽기나 할까 하고 ㅎㅎㅎ좋은 책 많이 읽으시니까 추천 비슷(?)한 건 믿고 읽기로 했어요. 앞으로도 많이많이 좋은 책 알려주시고 여유가 생기시면 좋은 글도 남겨주세요. 다시 쓰고 싶어지시는 날이 얼른 오길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