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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드릴게요 - 정세랑 소설집
정세랑 지음 / 아작 / 2020년 1월
평점 :
-20200708 정세랑.
혹시 이 책을 읽다가 앞부분에서 문장이 왜 이렇게 구려, 뭘 이렇게 못 썼어 하고 짜증이 나는 (나 같은) 독자가 있다면. 조금만 참고 더 읽어보세요. 마지막 소설 읽을 때 나 막 글썽거렸잖아.
앞부분 소설들은 확실히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너무 다듬지 않은 날것을 책으로 묶었다 싶은 미흡함. 책 처음 내는 작가도 아니고 몇 권째인데 이게 뭐야 하고 조금 힘들게 읽었는데 뒤에 소설들은 재미있고 완성도도 괜찮았다. 한 권에 묶였는데 소설마다 왜 이렇게 편차가 심한 거야...심지어 별로였던 소설들이 생각보다 최근 글들이고 또 가장 오래된 축인 목소리를 드릴게요는 여운이 어우 한참 남았다. 정세랑의 상상력과 특유의 삐끕 서술자 느낌과 그러다 종종 훅 들어오는 문장들과 장면 묘사들은 밑줄을 문단째 긋게 만들었다.
-미싱 핑거와 점핑 걸의 대모험
엄청 짧은 소설인데 솔직히 소화 못했다...여기서부터 삐끗했어...
-11분의 1
이 소설이 제일 별로였다. 오글오글오글. 백조왕자 같은 동아리 오빠들이 병풍처럼 나오는 것도 이상했고 동아리 홍일점이던 내가 이래라저래라 결정권 가진 것 마냥 깝치는 것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리셋
사방으로 걸어가는 망한 인류의 이야기. 거대 지렁이의 이미지와 환경 이야기 접목은 좋은데 표현 방식이 조금 더 다듬어졌더라면 하고 아쉬웠다. 여기까지 엄청 힘들었다. 조금만 참고 더 읽어봅시다.
-모조 지구 혁명기
지구에서 한아뿐, 에 까메오 출연하는 작은 행성의 테마파크 직원(전직 에버랜드 출신)과 천사의 사랑이야기. 동화같으면서 약간 오글거리는데 일단 사랑이야기이고, 전에 읽은 이야기랑 겹치는 게 좋고, 천사의 선택을 받은 주인공이 사랑 때문에 망한 테마파크 행성을 떠나지 않고 나쁜놈 무찌르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삐끕 앨리스쯤은 되는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리틀 베이비블루 필
약에 관한 이야기는 묘하게 읽어본 느낌이 드는데 나는 여기 나오는 거랑 반대되는 약이 너무 가지고 싶다.
-목소리를 드릴게요
주인공이 영어 선생님이라 더 몰입했잖아...어벤저스에 가까운 괴물들을 가두는 그곳은 수용소가 아니라 천국이라고… 마지막 대사가 곧 제목인데 딱 적절했다.
-7교시
정세랑 소설책에는 늘 지구를 생각하는 친환경 착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곳에서 상상하는 미래는 나 같은 나쁜놈 때문에 오지 않을 것이다.
-메달리스트의 좀비 시대
나는 좀비물을 좋아하지 않는데, 좀비와 함께 멸망하는 세상 속에서도 올림픽 메달의 꿈을 잃지 않고, 살아남고, 활시위를 당기고, 좀비가 된 사랑이 변해가는 걸 마주하다 보내주고, 스스로를 보내줄 화살을 옷걸이로 만들고, 그런 장면과 과정이 막 내 눈두덩이를 두들겨팼다. 울음 참느라 혼났네. 결말의 인심쓰는 듯한 손톱 만한 희망 한줄기는 진부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 그런 게 정세랑답다.
전에도 말했지만 계속 세상의 밝음을 맡아주세요...나는 어둠을 맡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