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일반판)
올리버 색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알마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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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7 올리버 색스.

올리버 색스의 책 네 권을 읽었다. 박사가 돌아가신 뒤 2년은 지나서였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환각, 의식의 강, 온더무브 순이었다. 네 권이나 읽었는데도 마니아 순위가 왜 이리 낮냐, 한 권 더 봐야지 했다. 찾아보니 알라딘에 독후감 올리기 시작한 게 2018년이고 앞의 두 책은 2017년에 읽었더라. ㅎㅎ. 슬며시 클라우드에 있던 두 편 복사 붙여넣기 했다. 등수놀이가 왠말이냐.
집에는 아직 읽지 않은 뮤지코필리아와 깨어남이 있다. 두툼해서 아직 시도를 못하고 있다. 조만간 읽고 싶다.
이번에 미친 놈처럼 한 주 동안 열 몇 권의 중고책을 사 모았는데 거기 색스 박사 책 한 권이 끼어있었다. 처음 받았을 때는 샘플북인 줄 알았다. 엄청 얇은 수첩? 미니 노트? 같은 판형이었다. 담긴 내용은 그리 얄팍하지 않았다.
내가 만난 색스 박사의 다섯 번째 책. 의식의 강을 박사의 마지막 책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은 박사가 시한부 삶 8개월을 앞두고 쓴 마지막 에세이들을 모아 엮었다고 한다.

-수은
마지막 공연에서 카피한 Smashing Pumpkins의 Adore라는 노래에 Drinking Mercury- 하는 가사가 있다. 베이스 오빠가 고대에는 불로불사 약으로 수은을 마시곤 했대- 하며 뒷받침 설명을 해줬다. 주기율표 원소번호 80번. 나이 80을 앞두고 수은 꿈을 꾸고 80세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수은 병을 선물로 주고 그걸 마신다는 농담을 주고 받는 걸 보니 그 노래가 생각났다.
말 들은 김에 내 사랑 주기율표 담요를 펼쳤다. 나의 올해 원소번호는?

만 나이, 의학 나이로 따져볼까. 안녕? 난 브로민이야.

솔직하게 한국 나이로 가면. 약수도 자기 자신과 1 밖에 없는 예쁜 이름의 루비듐입니다.

나이를 원소번호로 말해 보세요. 한 살 더 먹을 수록 방사성 원소를 향해 갑니다. 점점 유독해지죠.
어려서 백문백답 같은 걸 하면 꼭 몇 살까지 살고 싶나요? 하는 질문이 끼어 있었다. 대략 그즈음의 평균 나이인 74살을 댔다. 텅스텐까지만 살면 좋겠어요.
먼저 늙어본 색스 박사는 젊은이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달래는 말처럼 이 글을 건넸다. 발견된 원소는 아직 118개 뿐이니까 안녕, 올해는 오가네손이야, 하는 때가 온대도 겁내지 말아야지.

‘나는 노년을 차츰 암울해지는 시간, 어떻게든 견디면서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시간으로만 보지 않는다. 노년은 여유와 자유의 시간이다. 이전의 억지스러웠던 다급한 마음에서 벗어나,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탐구하고 평생 겪은 생각과 감정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시간이다.
나는 여든 살이 되는 것이 기대된다.’

-나의 생애
9년 전 안구 흑색종 제거 수술을 한 색스 박사의 간에 전이된 암이 자라났다. 박사는 데이비드 흄의 짧은 자서전과 같은 제목의 이 글을 썼고,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다. 자서전 온더무브의 축약판 같은 글이라 더욱 친숙하게 읽혔다. 삶의 끝에서 초연하고, 살아있다는 감각을 강렬하게 느끼고, 고맙다고 말할 수 있다면 괜찮게 살았다 할 수 있겠지.
‘무엇보다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다.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나는 아직 그 특권을 누리고 있고, 모험의 도중에 있다. 그러니 두려울게 뭔가.

-나의 주기율표
박사가 이토록 주기율표를 사랑하는 것을 내가 알았던가 몰랐던가. 물리 화학에는 무지하지만 세상을 이루는 물질에는 오래도록 관심이 많다. 꾸준히 공부해 보고 싶다. 엉클 텅스텐도 읽고 싶어졌다.
테이블 위의 비스무트들은 왠지 찡했다. 83번째 원소를 보며, 새로운 과학계의 발견을 네이처에서 읽으며, 나는 볼 수 없을 그 날들을 떠올리는 마음이란. 김초엽의 감정의 물성이 떠올랐다. 원소번호로 만져지는 나이의 의미, 재미난 생각을 박사 덕에 알게 되었다.

-안식일
블랙 사바스의 사바스가 안식일인 건 오늘 처음 알았다. 나이를 먹은 그가 자신의 출발점인 유대교 공동체, 유대인 가족을 떠올린다. 가족 안에서의 평안함과 충만감이란. 나도 그런 걸 그리워할 수 있을까. 그런 게 있긴 했나.
삶에서 맞이할 마지막 안식일은 죽음의 날이다. 생의 마지막을 이런 글로 마무리한다는 것, 아니 죽는 날까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이제 쇠약해지고, 호흡이 가빠지고, 한때 단단했던 근육이 암에 녹아 버린 지금, 나는 갈수록 초자연적인 것이나 영적인 것이 아니라 훌륭하고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생각이 쏠린다. 자신의 내면에서 평화를 느낀다는 게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안식일, 휴식의 날, 한 주의 일곱 번째 날, 나아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일곱 번째 날로 자꾸만 생각이 쏠린다. 우리가 자신이 할 일을 다 마쳤다고 느끼면서 떳떳한 마음으로 쉴 수 있는 그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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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3-07 2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약수가 많기로 유명한 나이입니다. 헤헤. 원소기호는 코리아의 약자같네요.

반유행열반인 2020-03-08 05:05   좋아요 0 | URL
안녕 약수도 많은 크립톤님. 우주에서 온 광물 느낌인데 무색무취 기체래요. 형광등 안에 밀봉해 넣어서 잘 빛나게 하는.

무식쟁이 2020-03-18 21: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 학창시절 최악의 시험점수가 화학에서 나왔다지요. 리비듐보다 더 아래숫자였다는.... 그 이후로 저는 화학이 싫어욧!하고 문과인생이 되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3-18 22:24   좋아요 0 | URL
이건 화학이 아닙니다. 세상의 근원입니다. 무님과 저를 이루는 원소들...그래서 무님은 원소번호 몇 번이요? ㅎㅎㅎ

무식쟁이 2020-03-18 22:43   좋아요 1 | URL
저는 약수도 1빼곤 저밖에 없는 외로운 아방가르드 에이지, 실버
(아무말대잔치 -_-)

반유행열반인 2020-03-18 23:33   좋아요 0 | URL
고귀한 나이네요. 루비듐이가 십 년 후면 될 수 있겠죠 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