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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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0 김정선.

작년 말 친절한 친구가 내 문장을 하나씩 짚어가며 다듬어 주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세상에는 조사 하나로 오래도록 고민하는 사람이 있구나. 저렇게 치열하게 문장과 다투고 달래면서 천천히 새겨나가는구나. 한편으로는 심하게 부끄러웠다. 뚝딱뚝딱 긴 글 뱉는 건 쉽다고 여겼었다. 새기는 게 아니라 뱉으니 쉽지. 글자수가 많아도 별 내용 담지 못한 쭉정이였다. 예쁘게 꾸미는 미사여구의 몫도 아니었다. 군더더기가 잔뜩 달라붙어 분량만 과장하고 있을 뿐.
늦게라도 문장 다이어트가 필요한 걸 알게된 점은 다행이었다. 다만 군살을 뺄 방법을 몰랐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어디가? 왜? 그럼 어떻게 고칠까?’
누구든 붙잡고 묻고 싶은 질문이 제목인 책을 발견했다. 초반부를 읽다 말고 직전에 올린 게시물과 댓글로 돌아갔다. 수정 버튼을 누르고 부지런히 글자들을 없애기 시작했다ㅋㅋㅋ. 그동안 글쓰기 고치기 책 안 읽고 딴청 부린 나야. 왜 고집부렸어ㅋㅋㅋㅋ 직면 대신 회피하는 삶이란 개선도 발전도 없단다...그만 울고 마저 읽어…
오랜 세월 교정 교열일을 한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문장 쓰는 나쁜 습관과 모범 수정 사례를 보여준다. 한눈에 답답함이 느껴지는 예문을 마구 잘라 고치니 속이 시원했다. 고치기 전 사례만 봐도 나는 이미 무엇이 좋은 문장인지 알고 있었다. 다만 알면서도 그렇게 깔끔하게 쓰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 뿐… 남이 후지게 쓰면 화내고 정작 나는 내키는대로 쓰는 안일함...
책 구성이 특이한데, 문장 고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챕터 사이사이에 저자가 몸살을 앓다가 국숫집에서 잔치국수를 먹(거나 못먹)은 이야기, 예전에 교열한 원고의 저자인 함인주씨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교류한 일화가 끼어있었다. 소설 읽는 듯 소소한 반전의 반전이 있는 수필이었다. (중간에 못참고 저자 이름과 함인주님 성함을 검색했다가 스포일러 당하고 말았지만…)
늘 다짐하지만 지키지 못한 일을 되새긴다. 퇴고를 하자.고치고 또 고치자. 복사-붙여넣기-올리기 하기 전 적어도 한 번은 다시 읽자. 뒤늦게 자꾸 수정 버튼 누르지 말라고 무책임한 놈아...
의식의 흐름따라 아무말잔치하듯 술술 쓰는 건 장점일수도 있다. 아예 못쓰고 막히는 것보다는 일단 쓰고 나중에 고치는 게 나으니까. 그런데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글을 쓸 때 망설임이 늘었다. 후지고 지저분한 문장으로 디지털 쓰레기를 만드는 데 가책을 느끼게 되었다. 책 내용을 떠올리며 배운대로 가볍고 날씬한 문장을 쓰려고 꽤나 노력하는 중이지만, 벌써 읽은 기억이 흐릿해져서 지금 쓰는 글에도 하지 말라는 짓을 잔뜩 처바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 점은 만족스러웠지만 성인지 감수성 바닥치는 몇 군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1. 후반부에서 계속 미망인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렇게나 맞춤법과 올바른 표현에 신경쓰시는 분이 왜 어휘 선정에서는 예민하지 못했을까. 알려진대로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 고루한 말로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를 지칭하는 게 불만이었다. 유부인, 유족이라는 말도 남겨진, 이라는 의미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대안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저자가 고민했어야 할 부분이잖아. 그냥 고 누구님 부인, 돌아가신 분의 배우자, 아님 처음에만 가족관계를 밝히고 그분의 이름이나 이니셜을 직접 제시하는 게 나았지 싶다. (이런 내용이 언급된 적은 없지만 혹시라도) 한 단어로 줄이는 게 의미 전달 잘 되고 경제성 있다 운운한다면 그거야 말로 폭력 아닐까. 몰라서 그런 건지 굳이 저 말을 쓴 의도가 있는지 궁금하다.
2. ‘김훈의 주체는 주어와는 달리 (첩질을 하지 않는다.) 서술어를 여럿 거느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인용문의 괄호는 내가 쳤다. 괄호 없애도 의미 전달에 지장 없다. 그럴 듯한 비유라 생각하고 썼는지 모르지만, 간결한 문장 표현 강조하던 저자가 문장을 굳이 두 개로 나누어가며 첩질...이라고 썼다. 저자의 성별 연령 등에 관해 어떤 편견도 없이 읽고 있었는데, 첩질의 비유에 부딪힌 순간 헉, 하고 말았다. 구시대 혼인제도의 구질구질한 모습을 가져다 붙이면 지조 없이 주어 하나에 서술어 주렁주렁 달고 있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고 판단한 것인가. 최선이고 유일한 선택지였을까. 구리다 후지다 으으으으 잘 만든 책에 가부장제 재 뿌렸다 안타깝다.
구리고 후진 문장으로 지적하려니 다시 가책이 느껴지지만 깔 건 까야지. 위의 두 표현 말고는 대체로 좋았다.

전자책 대여로 읽었는데, 읽다가 나중에 다시 보고 싶다 구매할까 하다가 위 감점 요인 때문에 구매를 보류했다 ㅋㅋㅋ 게다가 다른 리뷰를 보니 종이책의 물리적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니 퇴고에 관한 책 많이 안 봤지만 자기 문장을 고치고 싶은 열망이 넘치는 분은 전자책으로 사 보시기를 권합니다. 저는 초판에서 위의 두 부분이 수정되었다는 소문이 나면 살 예정입니다 ㅋㅋㅋ 나란 녀석 ‘적의를 보이는 것들’ 중 하나인가...ㅋㅋㅋ

이러고 다 쓰고나서 또 퇴고 안 하고 복사부터 했다. 다행히 붙여넣기 전 정신차렸다. 읽었으면 좀 나아져라 어리석은 인간아...인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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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0-02-20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쓰다보니 ‘디지털 쓰레기’ 양산에 일조하고 있는 1인이 바로 저라는 생각이 드네요. ㅋ

반유행열반인 2020-02-20 21:17   좋아요 0 | URL
이상하다...그건 저예요 저 ㅋㅋㅋ 당치 않은 말씀이십니다 ㅎㅎㅎ

다락방 2020-02-20 2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칭찬만큼 바로 이 부분에서 말도 많았는데요, 저는 어쩔 수 없이 남자 작가의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 저는 작가의 이 책은 읽지 않았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2-21 07:48   좋아요 0 | URL
네 비슷한 생각하신 다른 분도 있었군요. 동사의 맛인가 하는 책도 궁금한데 아직 읽을 엄두는 안 나네요 ㅎㅎ

다락방 2020-02-21 07:51   좋아요 1 | URL
저는 동사의 맛을 읽다가 중단한지 몇 년된 상황입니다. 중단의 이유는 딱히 없고요 읽다보면 재미있긴 했는데 중간에 멈추고나니까 다시 시작이 안되어서 그만...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이런 책 많음)

반유행열반인 2020-02-21 07:54   좋아요 0 | URL
워낙 많이 읽으시니까요. 읽다 만 책들이 가는 나라에서 다락방님 언제 날 찾죠(시무룩)하면서 턱 괴고 목 빼고 기다리는 책이 많을 것 같아요. 저는 펼친 건 다 보고 새 거 보자, 하다보니 험한 꼴을 사서 자주 겪는 듯 합니다 ㅎㅎ

다락방 2020-02-21 08:54   좋아요 1 | URL
저도 사실 ‘이 책 다 보고 새 책 보자‘ 주의거든요. 동시에 여러권 읽는 사람도 아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중간에 손놓고 저기 처박힌 책들이 쌓이네요. 인생...ㅎㅎ

반유행열반인 2020-02-21 09:0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댓글에 인생 연타로 나왔어요ㅎㅎㅎ인생 고민이 많은 때이신가 봅니다ㅠㅠ게임 아이디로 인생별거있나 하던 시기가 있는데 별 거 많고 구차하죠 인생...ㅠㅠ